“어릴 적 살던 동네가 생각나네요”…김기찬의 골목사진

입력 2023.03.24 (13:46) 수정 2023.03.24 (13:4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김기찬 사진작가 1938~2005김기찬 사진작가 1938~2005

뉴스가 나간 뒤로 많은 분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사는 곳은 다 달랐지만,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생각난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저 먼 남해안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제게도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은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넉넉하진 않았어도 행복했던 시절.

[연관 기사] [주말&문화] 흑백사진에 담긴 추억…골목 풍경 속으로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24291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이사와 정착한 곳도 골목이 유난히 많은 변두리 산동네였습니다. 수많은 골목을 철없이 누비는 동안 어느새 훌쩍 자라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릴 적 살던 고향집을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집이, 녹슨 대문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다섯 살 때 대문 앞에서 찍은 사진 속의 나. 10여 년이 흘렀는데 변하지 않았기를 바라다니.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까.

골목길을 더듬어 찾아간, 어린 시절 제가 살던 집은 놀랍게도 그대로였습니다. 말끔하게 새로 칠한 대문도 옛 모습 그대로더군요. 그 변하지 않았음에 저는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동네분에게 부탁해 다섯 살 제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사진을 찍었죠. 다섯 살의 저와 스무 살의 제가 고향의 옛집 대문 앞에서 찍은 사진은 앨범 속에 나란히 붙어 있답니다.

김기찬의 골목사진은 제게 그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

"이런 일이 하루이틀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골목에 들어서면 늘 조심스러웠다. 특히 동네 초입에 젖먹이 아기들을 안고 있는 젊은 엄마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은 동네에서 쫓겨나기 알맞은 행동이었다. 사실 젊은 엄마들을 찍을 수 있었던 시기는 내 나이 오십이 넘어서였다.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향해 사진 찍는 행위가 그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길 원했다. 그리고 해가 거듭될수록 나는 자연스레 골목안 사람이 되어갔고, 그들도 나를 받아들여주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를 의논 상대로 생각해주기도 했다."

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

"김기찬 씨는 작위적으로 궁핍을 강조하거나 인물을 괴물로 둔갑시켜 독자에게 특정한 주제를 강요하는 모험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런 모험에 그는 관심이 없으며, 이 점이 그의 작품의 두드러진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 송영, 골목 서민들의 공간, 『골목안 풍경』 1집, 열화당, 1988

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

"중림동은 참으로 내 마음의 고향이었다. 처음 그 골목에 들어서던 날, 왁자지껄한 골목의 분위기는 내 어린 시절 사직동 골목을 연상시켰고, 나는 곧바로 '내 사진 테마는 골목안 사람들의 애환, 표제는 골목안 풍경, 이것이 곧 내 평생의 테마이다.'라고 결정해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러한 나의 결정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

"그가 사진가로서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남들이 종종 그러는 것처럼 탤런트나 배우, 가수 사진을 찍는 일이었을 것이다. 유명세에 기대 유명해진다는 것은 공식과 같은 일이다. 유명 스타를 찍어 한국의 대표 사진가 반열에 오른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을 김기찬은 하지 않았다. 그는 편한 길을 놔두고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기록이 어떻게 예술의 지위를 획득하는지를 보여주었다."

 - 이규상, 다시 돌아본 골목,  김기찬 대표사진선집 『골목안 풍경』, 눈빛출판사, 2023


"세월만 간다고 투덜거렸는데 세월만 간 것이 아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재개발 사업은 공덕동으로 번지고 공덕동에서 인왕산 밑 행촌동으로 건너뛰었다. 1997년, 결국은 중림동도 그 운명을 다했다. 높다란 아파트가 들어섰고 그곳에 살던 골목안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흩어져버렸다. 골목은 내 평생의 테마라고 했는데 내 평생보다 골목이 먼저 끝났으니 이제 골목안 풍경도 끝을 내지 않을 수가 없다."

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

■전시 정보
제목: Again 골목안 풍경 속으로 - 김기찬 사진전
기간: 2023년 4월 3일까지
장소: 갤러리 인덱스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45 인덕빌딩 3층)
작품: 김기찬의 골목사진 30점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생각나네요”…김기찬의 골목사진
    • 입력 2023-03-24 13:46:13
    • 수정2023-03-24 13:47:49
    취재K
김기찬 사진작가 1938~2005
뉴스가 나간 뒤로 많은 분의 연락을 받았습니다. 사는 곳은 다 달랐지만, 어릴 적 살던 동네가 생각난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그렇습니다. 저 먼 남해안의 어느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제게도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은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넉넉하진 않았어도 행복했던 시절.

[연관 기사] [주말&문화] 흑백사진에 담긴 추억…골목 풍경 속으로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24291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이사와 정착한 곳도 골목이 유난히 많은 변두리 산동네였습니다. 수많은 골목을 철없이 누비는 동안 어느새 훌쩍 자라 대학에 합격하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릴 적 살던 고향집을 찾아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그 집이, 녹슨 대문이 그대로 남아 있을까. 다섯 살 때 대문 앞에서 찍은 사진 속의 나. 10여 년이 흘렀는데 변하지 않았기를 바라다니.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까.

골목길을 더듬어 찾아간, 어린 시절 제가 살던 집은 놀랍게도 그대로였습니다. 말끔하게 새로 칠한 대문도 옛 모습 그대로더군요. 그 변하지 않았음에 저는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동네분에게 부탁해 다섯 살 제가 앉았던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사진을 찍었죠. 다섯 살의 저와 스무 살의 제가 고향의 옛집 대문 앞에서 찍은 사진은 앨범 속에 나란히 붙어 있답니다.

김기찬의 골목사진은 제게 그 추억을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
"이런 일이 하루이틀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골목에 들어서면 늘 조심스러웠다. 특히 동네 초입에 젖먹이 아기들을 안고 있는 젊은 엄마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것은 동네에서 쫓겨나기 알맞은 행동이었다. 사실 젊은 엄마들을 찍을 수 있었던 시기는 내 나이 오십이 넘어서였다. 오랜 시간을 두고 서서히 접근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향해 사진 찍는 행위가 그들의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길 원했다. 그리고 해가 거듭될수록 나는 자연스레 골목안 사람이 되어갔고, 그들도 나를 받아들여주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를 의논 상대로 생각해주기도 했다."

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
"김기찬 씨는 작위적으로 궁핍을 강조하거나 인물을 괴물로 둔갑시켜 독자에게 특정한 주제를 강요하는 모험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런 모험에 그는 관심이 없으며, 이 점이 그의 작품의 두드러진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 송영, 골목 서민들의 공간, 『골목안 풍경』 1집, 열화당, 1988

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
"중림동은 참으로 내 마음의 고향이었다. 처음 그 골목에 들어서던 날, 왁자지껄한 골목의 분위기는 내 어린 시절 사직동 골목을 연상시켰고, 나는 곧바로 '내 사진 테마는 골목안 사람들의 애환, 표제는 골목안 풍경, 이것이 곧 내 평생의 테마이다.'라고 결정해버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러한 나의 결정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
"그가 사진가로서 쉽게 성공할 수 있는 길은 남들이 종종 그러는 것처럼 탤런트나 배우, 가수 사진을 찍는 일이었을 것이다. 유명세에 기대 유명해진다는 것은 공식과 같은 일이다. 유명 스타를 찍어 한국의 대표 사진가 반열에 오른 이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마음만 먹으면 가능한 일을 김기찬은 하지 않았다. 그는 편한 길을 놔두고 꼬불꼬불한 골목길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기록이 어떻게 예술의 지위를 획득하는지를 보여주었다."

 - 이규상, 다시 돌아본 골목,  김기찬 대표사진선집 『골목안 풍경』, 눈빛출판사, 2023


"세월만 간다고 투덜거렸는데 세월만 간 것이 아니었다.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한 재개발 사업은 공덕동으로 번지고 공덕동에서 인왕산 밑 행촌동으로 건너뛰었다. 1997년, 결국은 중림동도 그 운명을 다했다. 높다란 아파트가 들어섰고 그곳에 살던 골목안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흩어져버렸다. 골목은 내 평생의 테마라고 했는데 내 평생보다 골목이 먼저 끝났으니 이제 골목안 풍경도 끝을 내지 않을 수가 없다."

사진제공: 갤러리 인덱스
■전시 정보
제목: Again 골목안 풍경 속으로 - 김기찬 사진전
기간: 2023년 4월 3일까지
장소: 갤러리 인덱스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45 인덕빌딩 3층)
작품: 김기찬의 골목사진 30점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