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리, 바빠?” 퇴근 후 ‘카톡’, 법으로 금지할 수 있을까?

입력 2023.03.2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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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당직을 서고 녹초가 된 A 씨는 귀가와 동시에 곯아떨어졌습니다.

몇 시간 뒤 잠에서 깨 부서 카톡방을 확인해보니, A 씨를 찾는 상사의 카톡이 와있었습니다. 엄연한 휴식시간이었지만 곧바로 답장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문책이 이어졌습니다.

언제, 어떤 지시가 떨어질지 모르니 전 직원이 24시간 긴장하면서 카톡을 주시해야 합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실제 사례입니다.

전화, 문자, 카카오톡을 이용한 업무지시가 보편화 되면서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 업무수행은 어느새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습니다.

출근 전, 퇴근 후를 가리지 않고 오는 업무 지시를 하나 둘 처리하다 보면 업무가 자연스레 일상을 침범합니다. 일과 여가의 경계가 흐려지고 '로그아웃' 없는 삶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휴식시간에는 회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보장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입니다.

■ 직장인 10명 중 8명 "퇴근 후 업무지시 받아봤다"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83.5%가 "퇴근 후 업무 관련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 중 약 64%는 "연락이 와서 답장한 적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 결과 업무시간 외 또는 휴일에 업무 목적으로 스마트기기를 이용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11시간, 평일 하루 평균 1.44시간에 달했습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퇴근하고 매일 약 2시간 정도의 '추가 노동'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근무시간도 아닌데 업무 지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기연구원이 경기도에 사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외부기관이나 상사의 갑작스러운 업무처리 요청 때문'이란 답변이 70%를 차지했습니다. 퇴근 후에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단 겁니다.

하지만 '생각난 김에 지시하려고'가 20.1%, '시간에 민감하지 않아서'가 5.1%를 차지한 것을 보면, 불가피하지만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쉴 때는 회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

"대표님은 하루종일 회사에 없어 카톡으로 자료를 보고하는 경우 새벽이 지나도 가라고 문자하지 않으면 퇴근하면 안 됩니다. 업무시간 외 카톡은 당연하며 밤 11시가 넘는 시간에도 주저 없이 보냅니다. 여기서 일하는동안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졌고 회사 꿈을 꾸며 악몽에 시달립니다."

"근무시간 외 수시로 카톡과 전화로 업무지시를 해 출근 이전과 이후 상관없이 추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출근 전에 전화해서 '스타킹 사와라', '물건을 들고 와라' 등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킵니다."

-직장갑질119 제보 사례-

"회사 꿈을 꾸며 악몽에 시달린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졌다" 반응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카톡 지옥'에 빠진 직장인들은 극심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호소합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업무시간 외 스마트기기를 통해 직장 업무를 한 적이 있는 경우, 절반이 넘는(50.6%) 직장인이 업무 관련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답했습니다.

회사와 끊임없이 연결됨으로써 받는 스트레스와 '공짜 노동'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바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입니다.

근무시간 외 직장에서 오는 전자 우편이나 전화, 메시지 등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 말 그대로 '회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자는 겁니다.


해외에선 관련 논의가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노동법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Le droit de la déconnexion)'를 세계 최초로 법제화 하고, 2017년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50인 이상 기업은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노사 협의 내용을 의무 연례 협상에 포함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기업의 사업주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750유로 이하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프랑스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도입을 위해 '호출 대기'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호출 대기' 시간은 원칙적으로는 휴식 시간이지만, 전화나 메시지 등으로 연락을 받고 업무 활동을 하게 되면 노동시간으로 간주하고 보상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밖에 이탈리아, 포르투갈, 필리핀 등의 국가들도 법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 정부, '연결되지 않을 권리' 논의 착수

우리나라에서도 일명 '카톡금지법'이라 불리는 법안이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통과된 적은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이 있습니다. 근무시간 외 시간에 업무지시를 반복적·지속적으로 한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하지만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의 기준이 모호하고, 업종·직종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 적용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따랐습니다.

앞서 발의된 유사한 법안들도 현실적으로 집행될 가능성이 낮고, 과잉 규제라는 이유로 대개 상임위에 머물다 폐기됐습니다.


그런 가운데 정부가 처음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6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내용이 담겼는데, 올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논의 TF'를 운영해 본격적으로 논의에 착수할 계획입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데엔 공감대가 이루어졌지만, 그 방식에 대해선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정당한 사유가 없는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를 어떻게 규율할 것이가에 대한 논의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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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대리, 바빠?” 퇴근 후 ‘카톡’, 법으로 금지할 수 있을까?
    • 입력 2023-03-25 08:07:28
    취재K

야간 당직을 서고 녹초가 된 A 씨는 귀가와 동시에 곯아떨어졌습니다.

몇 시간 뒤 잠에서 깨 부서 카톡방을 확인해보니, A 씨를 찾는 상사의 카톡이 와있었습니다. 엄연한 휴식시간이었지만 곧바로 답장하지 않은 것에 대한 문책이 이어졌습니다.

언제, 어떤 지시가 떨어질지 모르니 전 직원이 24시간 긴장하면서 카톡을 주시해야 합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실제 사례입니다.

전화, 문자, 카카오톡을 이용한 업무지시가 보편화 되면서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 업무수행은 어느새 자연스러운 풍경이 됐습니다.

출근 전, 퇴근 후를 가리지 않고 오는 업무 지시를 하나 둘 처리하다 보면 업무가 자연스레 일상을 침범합니다. 일과 여가의 경계가 흐려지고 '로그아웃' 없는 삶에 놓이게 되는 겁니다.

휴식시간에는 회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를 보장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입니다.

■ 직장인 10명 중 8명 "퇴근 후 업무지시 받아봤다"


한 취업포털사이트가 지난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직장인의 83.5%가 "퇴근 후 업무 관련 연락을 받은 적이 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 중 약 64%는 "연락이 와서 답장한 적이 있다"고도 했습니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사 결과 업무시간 외 또는 휴일에 업무 목적으로 스마트기기를 이용하는 시간은 일주일에 11시간, 평일 하루 평균 1.44시간에 달했습니다.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퇴근하고 매일 약 2시간 정도의 '추가 노동'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면 근무시간도 아닌데 업무 지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경기연구원이 경기도에 사는 직장인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외부기관이나 상사의 갑작스러운 업무처리 요청 때문'이란 답변이 70%를 차지했습니다. 퇴근 후에 연락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단 겁니다.

하지만 '생각난 김에 지시하려고'가 20.1%, '시간에 민감하지 않아서'가 5.1%를 차지한 것을 보면, 불가피하지만은 않은 경우도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쉴 때는 회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

"대표님은 하루종일 회사에 없어 카톡으로 자료를 보고하는 경우 새벽이 지나도 가라고 문자하지 않으면 퇴근하면 안 됩니다. 업무시간 외 카톡은 당연하며 밤 11시가 넘는 시간에도 주저 없이 보냅니다. 여기서 일하는동안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졌고 회사 꿈을 꾸며 악몽에 시달립니다."

"근무시간 외 수시로 카톡과 전화로 업무지시를 해 출근 이전과 이후 상관없이 추가 업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출근 전에 전화해서 '스타킹 사와라', '물건을 들고 와라' 등 개인적인 심부름을 시킵니다."

-직장갑질119 제보 사례-

"회사 꿈을 꾸며 악몽에 시달린다",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졌다" 반응도 있었습니다. 이른바 '카톡 지옥'에 빠진 직장인들은 극심한 불안과 스트레스를 호소합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업무시간 외 스마트기기를 통해 직장 업무를 한 적이 있는 경우, 절반이 넘는(50.6%) 직장인이 업무 관련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답했습니다.

회사와 끊임없이 연결됨으로써 받는 스트레스와 '공짜 노동'으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 바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Right to Disconnect)입니다.

근무시간 외 직장에서 오는 전자 우편이나 전화, 메시지 등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권리, 말 그대로 '회사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자는 겁니다.


해외에선 관련 논의가 이미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노동법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Le droit de la déconnexion)'를 세계 최초로 법제화 하고, 2017년부터 시행하고 있습니다.

50인 이상 기업은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노사 협의 내용을 의무 연례 협상에 포함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기업의 사업주에게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3,750유로 이하의 벌금을 부과합니다.

프랑스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도입을 위해 '호출 대기'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호출 대기' 시간은 원칙적으로는 휴식 시간이지만, 전화나 메시지 등으로 연락을 받고 업무 활동을 하게 되면 노동시간으로 간주하고 보상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밖에 이탈리아, 포르투갈, 필리핀 등의 국가들도 법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 정부, '연결되지 않을 권리' 논의 착수

우리나라에서도 일명 '카톡금지법'이라 불리는 법안이 국회에서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통과된 적은 없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9월 더불어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발의한 근로기준법 일부 개정안이 있습니다. 근무시간 외 시간에 업무지시를 반복적·지속적으로 한 경우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내용을 골자로 합니다.

하지만 '반복적이고 지속적인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의 기준이 모호하고, 업종·직종별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괄 적용할 경우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이 따랐습니다.

앞서 발의된 유사한 법안들도 현실적으로 집행될 가능성이 낮고, 과잉 규제라는 이유로 대개 상임위에 머물다 폐기됐습니다.


그런 가운데 정부가 처음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6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에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내용이 담겼는데, 올해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연결되지 않을 권리 논의 TF'를 운영해 본격적으로 논의에 착수할 계획입니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데엔 공감대가 이루어졌지만, 그 방식에 대해선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합니다. 정당한 사유가 없는 근무시간 외 업무지시를 어떻게 규율할 것이가에 대한 논의가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인포그래픽: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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