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소를 그린 최초의 조선 화가는 누구일까요?

입력 2023.03.2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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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 〈야우한와(野牛閒臥)〉, 16세기, 비단에 엷은 채색, 14.0×19.0cm, 간송미술관김시 〈야우한와(野牛閒臥)〉, 16세기, 비단에 엷은 채색, 14.0×19.0cm, 간송미술관

여기, 소 그림이 있습니다. 제목을 풀어쓰면 '들판에서 소가 한가롭게 누워 있다.' 화가는 16세기 조선의 문인화가 김시(金禔, 1524~1593). 이분이 얼마나 소 그림에 진심이었던지, 당대 최고의 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조차 "천 년 전 도연명의 뜻이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감탄하게 하는구나"라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합니다. 그러니 한국 미술사에서 소 그림의 선구자로 꼽아도 좋겠죠.

그런데 한 가지가 걸립니다. 아무리 양보하고 또 양보한대도 그림 속의 저 소는 우리 소가 아닙니다. 중국 강남 지방의 물소입니다. 아니, 조선에도 소가 셀 수 없이 많았을 텐데, 도대체 왜 화가는 우리나라 소가 아닌 남의 나라 소를 그린 걸까? 의외로 답은 간단합니다. 들판에 나가 소를 직접 관찰하고 사생한 그림이 아니라, 중국에서 만든 그림 교본에 실린 중국 화가의 그림을 기준으로 따라 그렸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화가가 소를 그리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럼 가장 먼저 할 일은? 중국 교본을 열어보는 겁니다. 그걸 토대로 소를 그리겠죠. 그렇게 근사한 소 그림을 완성하면 끝. 애초에 화가에게는 소를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 그 소의 국적은 아무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겁니다. 오히려 중국 강남 지방에서 온 소가 화가에게는 더 이국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죠. 실제로 중국 강남 지방 물소가 일본을 거쳐 조선에 들어온 일이 제법 있었다고 하니, 화가도 실제로 중국 물소를 직접 봤을 수 있습니다.

겸재가 66살에 그린 〈사문탈사(寺門脫蓑)〉. 간송미술관.겸재가 66살에 그린 〈사문탈사(寺門脫蓑)〉. 간송미술관.

겸재가 80살에 그린 〈사문탈사(寺門脫蓑)〉. 간송미술관.겸재가 80살에 그린 〈사문탈사(寺門脫蓑)〉.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 연구원을 지낸 미술사학자 탁현규 교수가 최근에 낸 『조선미술관』(블랙피쉬, 2023)을 읽다가 아무 흥미로운 대목을 만났습니다. 조선 최고의 화가로 꼽히는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사문탈사(寺門脫蓑)>라는 그림입니다. 같은 제목의 그림이 석 점 남아 있는데, 두 점은 간송미술관에, 한 점은 겸재정선미술관에 있습니다. 책에 소개된 그림은 겸재가 66살(1741년)과 80살(1755년)에 그린 간송미술관 소장품입니다.


제목은 '절 문에서 도롱이를 벗는다'는 뜻으로, 조선 성리학의 거두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의 일화를 보여줍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율곡이 타고온 소의 생김새입니다. 왼쪽은 중국 물소, 오른쪽은 조선의 황소입니다. 천하의 겸재조차 조선 사람의 일화를 그리면서 소는 중국 물소로 그렸으니, 이 관습이란 것이 참 무섭습니다. 하지만 겸재는 역시 겸재였죠.

66세 때 그림과 80세 때 그림을 비교해보면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채찍 잡은 아이를 봇짐 진 아이로 바꾸어놓은 것이고 이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율곡이 탄 소가 66세 때 그림에서는 중국 물소였는데 80세 때 그림에서는 조선 황소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율곡이 절을 찾을 때 탄 소는 황소였을 것이다. 하지만 관습대로 중국 물소를 그리는 것에 익숙했던 정선이 66세 때는 중국 소를 그렸다가 80세에 가서는 마침내 황소로 바꾸어 조선 고유색 화풍을 완성하였다.

- 탁현규 <조선 미술관>(블랙피쉬, 2023)에서 인용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참 책을 읽다 보면 소에 관한 중요한 대목이 또 나오는데요. 조선 숙종 임금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일을 기념하는 『기해기사첩』이란 화첩이 있습니다. 여기에 실린 그림에 소 한 마리가 등장하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조선의 황소입니다.

『기해기사첩』중 〈어첩봉안도〉 부분, 국립중앙박물관『기해기사첩』중 〈어첩봉안도〉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저 소는 다름 아닌 황소다. 지금까지 전하는 조선 그림 속 소 가운데 가장 이르게 나타난 황소로 숙종 시대에 이미 그림 속 소가 황소로 바뀐 것이다. 이는 앞서 본 정신의 <사문탈사> 속 황소보다 36년이 빠른 것으로 중국 물소를 조선 황소로 바꾸는 혁신은 도화서 화원들이 먼저 이루어냈다.

- 탁현규 <조선 미술관>(블랙피쉬, 2023)에서 인용

자, 이제 답을 얻었습니다.

[문] 조선의 소를 그린 최초의 조선 화가는 누구일까요?
[답] 『기해기사첩』 제작에 참여한 도화서 화원.

그림을 아주 꼼꼼하게 들여다봤기 때문에 찾아낼 수 있었던 사실이죠.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사실들을 찾아내 퍼즐 맞추듯 연결하는 저자의 분석력에 절로 박수가 나옵니다. 치밀한 그림 분석과 스토리텔링의 절묘한 조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옛 그림을 향한 깊은 애정. 근래 보기 드문 이 뛰어난 책이 널리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김홍도 〈기우부신 騎牛負薪〉, 비단, 25.5×35.7cm, 간송미술관김홍도 〈기우부신 騎牛負薪〉, 비단, 25.5×35.7cm, 간송미술관

마지막으로 김홍도의 소 그림을 봅니다. 제목이 <기우부신(騎牛負薪)>, '소 타고 나뭇짐 진다'는 뜻입니다. 이 그림의 소 역시 뿔이 조금 휘었어도 틀림없는 조선의 황소. 이제 조선의 화가들은 더는 중국의 물소를 그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맞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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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의 소를 그린 최초의 조선 화가는 누구일까요?
    • 입력 2023-03-27 07:00:16
    취재K
김시 〈야우한와(野牛閒臥)〉, 16세기, 비단에 엷은 채색, 14.0×19.0cm, 간송미술관
여기, 소 그림이 있습니다. 제목을 풀어쓰면 '들판에서 소가 한가롭게 누워 있다.' 화가는 16세기 조선의 문인화가 김시(金禔, 1524~1593). 이분이 얼마나 소 그림에 진심이었던지, 당대 최고의 유학자 퇴계 이황 선생조차 "천 년 전 도연명의 뜻이 사람들로 하여금 오래도록 감탄하게 하는구나"라며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합니다. 그러니 한국 미술사에서 소 그림의 선구자로 꼽아도 좋겠죠.

그런데 한 가지가 걸립니다. 아무리 양보하고 또 양보한대도 그림 속의 저 소는 우리 소가 아닙니다. 중국 강남 지방의 물소입니다. 아니, 조선에도 소가 셀 수 없이 많았을 텐데, 도대체 왜 화가는 우리나라 소가 아닌 남의 나라 소를 그린 걸까? 의외로 답은 간단합니다. 들판에 나가 소를 직접 관찰하고 사생한 그림이 아니라, 중국에서 만든 그림 교본에 실린 중국 화가의 그림을 기준으로 따라 그렸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화가가 소를 그리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럼 가장 먼저 할 일은? 중국 교본을 열어보는 겁니다. 그걸 토대로 소를 그리겠죠. 그렇게 근사한 소 그림을 완성하면 끝. 애초에 화가에게는 소를 그리는 것이 중요하지, 그 소의 국적은 아무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겁니다. 오히려 중국 강남 지방에서 온 소가 화가에게는 더 이국적으로 보였을 수도 있죠. 실제로 중국 강남 지방 물소가 일본을 거쳐 조선에 들어온 일이 제법 있었다고 하니, 화가도 실제로 중국 물소를 직접 봤을 수 있습니다.

겸재가 66살에 그린 〈사문탈사(寺門脫蓑)〉. 간송미술관.
겸재가 80살에 그린 〈사문탈사(寺門脫蓑)〉.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 연구원을 지낸 미술사학자 탁현규 교수가 최근에 낸 『조선미술관』(블랙피쉬, 2023)을 읽다가 아무 흥미로운 대목을 만났습니다. 조선 최고의 화가로 꼽히는 겸재 정선(鄭敾, 1676~1759)의 <사문탈사(寺門脫蓑)>라는 그림입니다. 같은 제목의 그림이 석 점 남아 있는데, 두 점은 간송미술관에, 한 점은 겸재정선미술관에 있습니다. 책에 소개된 그림은 겸재가 66살(1741년)과 80살(1755년)에 그린 간송미술관 소장품입니다.


제목은 '절 문에서 도롱이를 벗는다'는 뜻으로, 조선 성리학의 거두 율곡 이이(李珥, 1536~1584)의 일화를 보여줍니다. 중요한 건 여기서 율곡이 타고온 소의 생김새입니다. 왼쪽은 중국 물소, 오른쪽은 조선의 황소입니다. 천하의 겸재조차 조선 사람의 일화를 그리면서 소는 중국 물소로 그렸으니, 이 관습이란 것이 참 무섭습니다. 하지만 겸재는 역시 겸재였죠.

66세 때 그림과 80세 때 그림을 비교해보면 다른 점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채찍 잡은 아이를 봇짐 진 아이로 바꾸어놓은 것이고 이보다 더 중요한 차이는 율곡이 탄 소가 66세 때 그림에서는 중국 물소였는데 80세 때 그림에서는 조선 황소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당연히 율곡이 절을 찾을 때 탄 소는 황소였을 것이다. 하지만 관습대로 중국 물소를 그리는 것에 익숙했던 정선이 66세 때는 중국 소를 그렸다가 80세에 가서는 마침내 황소로 바꾸어 조선 고유색 화풍을 완성하였다.

- 탁현규 <조선 미술관>(블랙피쉬, 2023)에서 인용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참 책을 읽다 보면 소에 관한 중요한 대목이 또 나오는데요. 조선 숙종 임금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간 일을 기념하는 『기해기사첩』이란 화첩이 있습니다. 여기에 실린 그림에 소 한 마리가 등장하는데, 그 모습이 영락없는 조선의 황소입니다.

『기해기사첩』중 〈어첩봉안도〉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저 소는 다름 아닌 황소다. 지금까지 전하는 조선 그림 속 소 가운데 가장 이르게 나타난 황소로 숙종 시대에 이미 그림 속 소가 황소로 바뀐 것이다. 이는 앞서 본 정신의 <사문탈사> 속 황소보다 36년이 빠른 것으로 중국 물소를 조선 황소로 바꾸는 혁신은 도화서 화원들이 먼저 이루어냈다.

- 탁현규 <조선 미술관>(블랙피쉬, 2023)에서 인용

자, 이제 답을 얻었습니다.

[문] 조선의 소를 그린 최초의 조선 화가는 누구일까요?
[답] 『기해기사첩』 제작에 참여한 도화서 화원.

그림을 아주 꼼꼼하게 들여다봤기 때문에 찾아낼 수 있었던 사실이죠.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사실들을 찾아내 퍼즐 맞추듯 연결하는 저자의 분석력에 절로 박수가 나옵니다. 치밀한 그림 분석과 스토리텔링의 절묘한 조화.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옛 그림을 향한 깊은 애정. 근래 보기 드문 이 뛰어난 책이 널리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김홍도 〈기우부신 騎牛負薪〉, 비단, 25.5×35.7cm, 간송미술관
마지막으로 김홍도의 소 그림을 봅니다. 제목이 <기우부신(騎牛負薪)>, '소 타고 나뭇짐 진다'는 뜻입니다. 이 그림의 소 역시 뿔이 조금 휘었어도 틀림없는 조선의 황소. 이제 조선의 화가들은 더는 중국의 물소를 그리지 않아도 되는 시대를 맞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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