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 제자 뽑으려 하나?”…대구 공기업 채용 ‘특정학과 제한’ 논란

입력 2023.03.28 (10:3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공기업 채용은 특히 공정해야 한다. 대부분 공기업이 채용 시 지원자에게 나이와 학력 등을 묻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대구시 산하의 대형 공기업이 이에 역행하는 채용을 진행해 논란이다.

특정 학과 출신만 지원할 수 있도록 직종을 새롭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현직 사장은 지역 유일의 그 특정 학과 교수 출신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 "사장님 제자 뽑으려는 거 아닙니까?"

'대구교통공사'는 대구 최대 지방공기업이다. 대구경북에는 대기업이 드물어서, 지역 취준생 사이에서는 가장 선호되는 직장 가운데 하나다.

그런 대구교통공사가 다음 주 신입사원을 뽑는다. 행정직과 기술직 등 9급 일반직 42명이 그 대상이다. 기다렸던 수많은 취준생은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이번 채용을 두고 공정성 시비가 불거졌다.

'교통전문인력'이라는 직종을 새롭게 만들었는데, 지원 자격을 제한한 것이다. 교통공학과와 도시공학과 등 '교통관련학과 출신'으로서, 교통기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교통관련학과 출신 + 교통기사 자격증)

즉 교통기사 자격증이 있더라도, 관련학과 출신이 아니면 지원조차 할 수 없다.

논란이 되는 ‘학과 자격 제한’ 부분논란이 되는 ‘학과 자격 제한’ 부분

그런데, 대구경북에서 '교통공학과'가 있는 대학은 계명대학교가 유일하다. 문제는 지난해 취임한 대구교통공사 김기혁 사장이 계명대학교 교통공학과 교수 출신이라는 점이다.

김기혁 사장은 지난해 9월,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 재임 중 대구교통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김기혁 사장은 지난해 9월,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 재임 중 대구교통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당연히 채용 공정성을 놓고 공사 안팎에서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사장이 자기 제자를 뽑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 전문직 뽑으려고 한다면서... 영어 성적도 안

대구교통공사는 오해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대구도시철도공사가 대구'교통'공사로 확대 출범하면서, 교통 분야 전문가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인사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박정필/대구교통공사 총무인사부 부장

"확률적으로 봤을 때 교통공학을 전공했고, 거기에 자격증이 있으면 양질의 인력을 뽑을 수 있어서 자격 제한을 뒀습니다. 일종의 연구원을 뽑는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지점에서 몇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1. 학사 출신에게 전문성을 바란다? : 교통 분야 연구원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석·박사를 뽑는 것이 적합하다. 9급 일반직을 뽑으면서 연구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2. 연구원이라면서 영어 성적은 안 본다? : 연구원은 여러 능력과 마찬가지로 영어 실력도 우수해야 한다. 해외의 다양한 논문을 참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구교통공사는 그 흔한 토익 성적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반면 다른 직종에는 요구했다.)

제한경쟁인 ‘교통전문인력’은 공인 영어시험 성적도 필요 없다.제한경쟁인 ‘교통전문인력’은 공인 영어시험 성적도 필요 없다.

3. 다른 학과 출신 자격증 소지자는 전문성이 없다? : 가장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대구교통공사는 '교통기사' 자격증을 소지했음에도, 교통관련학과 출신이 아니면 지원할 수 없도록 막았다. 국가기술자격인 교통기사 자격증 소지 자체가, 나름의 전문성 확보를 보장하는 일인데 말이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채용 지원 희망자가 가장 억울하다.)

■ 단순한 오비이락인가?

그렇다면 다른 전국 광역시도의 교통공사 채용은 어떨까.

KBS 취재 결과, 서울교통공사와 부산교통공사 등 모든 교통공사가 9급 일반직 공채에 학력·학과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것이 공정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행정안전부가 <지방공기업 인사조직 운영 기준>을 만들어서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학력을 제한 두지 말라고도 지침을 내렸다.


이 때문에 굳이 지원자에게 교통 분야 전문성을 요구하고 싶은 공기업은, 전공 시험 과목 중 '교통전공' 을 따로 둬서 시험을 치게 했다.

그런데! 대구교통공사 역시, 지난 해까지 그런 방식으로 전공 시험을 쳐서 전공자를 뽑았다.

지난해 대구교통공사가 대구도시철도공사 시설 진행한 채용 공고표. 교통공학 전공 시험을 따로 준비해 뽑았다.지난해 대구교통공사가 대구도시철도공사 시설 진행한 채용 공고표. 교통공학 전공 시험을 따로 준비해 뽑았다.

즉 대구경북 지역 유일의 교통공학과 교수 출신인 김기혁 사장이, 대구교통공사 사장으로 취임하고 처음 진행하는 공채에서 이러한 학과 제한이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오비이락인가?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공기업 채용은 정말 조심해야 해요.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 하잖아요. 그런데 이건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채용이죠. 연구원 뽑는다면서 영어 성적도 안 보고 말이죠."

대구교통공사는 취재가 시작되자, 채용 공고문 속 '교통관련학과'에는 토목과 운송 등 다양한 학과들이 포함되어 있다며 이 점을 상세히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교통기사 자격증을 소지했지만, 관련 학과가 아닌 사람이 채용에 지원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좋은 인재를 구하려는 의도라면 차라리 더 많은 사람이 시험에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대구교통공사의 채용은 다음주 4월 3일부터 시작된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사장 제자 뽑으려 하나?”…대구 공기업 채용 ‘특정학과 제한’ 논란
    • 입력 2023-03-28 10:32:44
    취재K

공기업 채용은 특히 공정해야 한다. 대부분 공기업이 채용 시 지원자에게 나이와 학력 등을 묻지 않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런데 대구시 산하의 대형 공기업이 이에 역행하는 채용을 진행해 논란이다.

특정 학과 출신만 지원할 수 있도록 직종을 새롭게 만든 것이다.

게다가 현직 사장은 지역 유일의 그 특정 학과 교수 출신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 "사장님 제자 뽑으려는 거 아닙니까?"

'대구교통공사'는 대구 최대 지방공기업이다. 대구경북에는 대기업이 드물어서, 지역 취준생 사이에서는 가장 선호되는 직장 가운데 하나다.

그런 대구교통공사가 다음 주 신입사원을 뽑는다. 행정직과 기술직 등 9급 일반직 42명이 그 대상이다. 기다렸던 수많은 취준생은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이번 채용을 두고 공정성 시비가 불거졌다.

'교통전문인력'이라는 직종을 새롭게 만들었는데, 지원 자격을 제한한 것이다. 교통공학과와 도시공학과 등 '교통관련학과 출신'으로서, 교통기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만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교통관련학과 출신 + 교통기사 자격증)

즉 교통기사 자격증이 있더라도, 관련학과 출신이 아니면 지원조차 할 수 없다.

논란이 되는 ‘학과 자격 제한’ 부분
그런데, 대구경북에서 '교통공학과'가 있는 대학은 계명대학교가 유일하다. 문제는 지난해 취임한 대구교통공사 김기혁 사장이 계명대학교 교통공학과 교수 출신이라는 점이다.

김기혁 사장은 지난해 9월, 계명대 교통공학과 교수 재임 중 대구교통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당연히 채용 공정성을 놓고 공사 안팎에서 잡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사장이 자기 제자를 뽑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 전문직 뽑으려고 한다면서... 영어 성적도 안

대구교통공사는 오해라고 해명했다.

지난해 대구도시철도공사가 대구'교통'공사로 확대 출범하면서, 교통 분야 전문가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인사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박정필/대구교통공사 총무인사부 부장

"확률적으로 봤을 때 교통공학을 전공했고, 거기에 자격증이 있으면 양질의 인력을 뽑을 수 있어서 자격 제한을 뒀습니다. 일종의 연구원을 뽑는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이 지점에서 몇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생긴다.

1. 학사 출신에게 전문성을 바란다? : 교통 분야 연구원이 필요하다면 당연히 석·박사를 뽑는 것이 적합하다. 9급 일반직을 뽑으면서 연구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다.

2. 연구원이라면서 영어 성적은 안 본다? : 연구원은 여러 능력과 마찬가지로 영어 실력도 우수해야 한다. 해외의 다양한 논문을 참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구교통공사는 그 흔한 토익 성적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반면 다른 직종에는 요구했다.)

제한경쟁인 ‘교통전문인력’은 공인 영어시험 성적도 필요 없다.
3. 다른 학과 출신 자격증 소지자는 전문성이 없다? : 가장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대구교통공사는 '교통기사' 자격증을 소지했음에도, 교통관련학과 출신이 아니면 지원할 수 없도록 막았다. 국가기술자격인 교통기사 자격증 소지 자체가, 나름의 전문성 확보를 보장하는 일인데 말이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채용 지원 희망자가 가장 억울하다.)

■ 단순한 오비이락인가?

그렇다면 다른 전국 광역시도의 교통공사 채용은 어떨까.

KBS 취재 결과, 서울교통공사와 부산교통공사 등 모든 교통공사가 9급 일반직 공채에 학력·학과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것이 공정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행정안전부가 <지방공기업 인사조직 운영 기준>을 만들어서 '균등한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학력을 제한 두지 말라고도 지침을 내렸다.


이 때문에 굳이 지원자에게 교통 분야 전문성을 요구하고 싶은 공기업은, 전공 시험 과목 중 '교통전공' 을 따로 둬서 시험을 치게 했다.

그런데! 대구교통공사 역시, 지난 해까지 그런 방식으로 전공 시험을 쳐서 전공자를 뽑았다.

지난해 대구교통공사가 대구도시철도공사 시설 진행한 채용 공고표. 교통공학 전공 시험을 따로 준비해 뽑았다.
즉 대구경북 지역 유일의 교통공학과 교수 출신인 김기혁 사장이, 대구교통공사 사장으로 취임하고 처음 진행하는 공채에서 이러한 학과 제한이 처음 만들어진 것이다. 오비이락인가?

은재식/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공기업 채용은 정말 조심해야 해요.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 고쳐 매지 말라 하잖아요. 그런데 이건 누가 봐도 의심스러운 채용이죠. 연구원 뽑는다면서 영어 성적도 안 보고 말이죠."

대구교통공사는 취재가 시작되자, 채용 공고문 속 '교통관련학과'에는 토목과 운송 등 다양한 학과들이 포함되어 있다며 이 점을 상세히 안내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여전히... 교통기사 자격증을 소지했지만, 관련 학과가 아닌 사람이 채용에 지원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좋은 인재를 구하려는 의도라면 차라리 더 많은 사람이 시험에 지원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대구교통공사의 채용은 다음주 4월 3일부터 시작된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