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밀한 권도형은 왜 ‘위조여권’에 본명을 썼나?

입력 2023.03.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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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진도 놀란 '포드고리차 공항' 규모 … 감시망 피해 선택한 듯

세계적 가상화폐 사기극의 주인공 권도형은 도주 11개월 만에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붙잡혔다. 세르비아에 숨어 있던 그는 좁혀오는 수사망을 피해 몬테네그로로 밀입국했다. 인터폴 적색 수배에 한국 여권까지 무효화 됐기에 권도형에게 몬테네그로 국경을 넘는 건 사실 '위험한 도박'이었다.

그가 위험을 감수하고 몬테네그로에 온 이유는 세르비아가 더 이상 안전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서 였을 것이다. 실제 한국 법무부와 검찰이 세르비아를 직접 방문해 권도형의 신병 확보를 요청했다. 그는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공항을 통해 두바이로 간 뒤, 이곳에서 또 제3국으로 이동하려 했을 것이다.

도망자 권도형은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다시 한번 '위험한 도박'에 나섰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전세기를 포드고리차 공항으로 불러 탑승을 시도한 것이다. 이 전세기는 권도형이 도착하기 이미 이틀 전 공항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가 이곳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세르비아 바로 옆 나라라 밀입국이 편한 것도 있었겠지만, 공항 규모가 작아 감시의 눈길이 상대적으로 적은 걸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포드고리차 공항은 수도에 있는 국제공항이지만 규모가 매우 작다. 취재진도 포드고리차 공항이 작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착해보니 너무도 아담한 규모에 놀랐다. 더구나 몬테네그로에는 한국 대사관도 없다.

하지만 그의 도박은 이번엔 실패했다. 그가 출국 수속을 위해 공항 직원에게 여권을 건넸을 때, 그의 수배 사실이 발각됐고 몬테네그로 경찰에 체포됐다.


■ 코스타리카 여권 '본명' 사용해 덜미 … 생년월일도 진짜

외신과 국내 언론 모두 그가 출국 과정에서 '코스타리카' 위조 여권을 사용했고, 가방엔 '벨기에 '위조 여권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KBS 취재진이 몬테네그로 경찰 관계자를 만나 취재해보니 두 여권엔 차이가 있었다. 벨기에 여권은 가명이었지만, 그가 사용한 코스타리카 여권은 본명이고 생년월일도 일치했다. 그리고 이 코스타리카 여권에 적힌 본명에 그는 덜미를 붙잡혔다.

몬테네그로 경찰 관계자는 "출국 심사를 담당하는 직원이 권도형에게서 여권을 받아 전자기기에 입력하자, 인터폴 적색 수배 명단에 이름이 등록되어 있어 바로 경고 표시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국적과 상관없이 이름 등 개인 정보가 수배 명단과 일치하면 공항에서 이를 일단 감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되어 있다고 전했다.


변호사 "위조 여권 아니야" …이중국적 가능성?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코스타리카 여권이 위조 여권이라면 그는 왜 본명을 사용했을까? 일부 언론은 그가 본명이 적힌 어설픈 여권을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11개월이 넘는 도주 경력에 몬테네그로 밀입국에 성공하고, 카이로에서 전세기를 이틀 먼저 불러 대기시킬 정도로 치밀한 권도형이 위험을 무릅쓰고 출국하면서 '어설픈' 위조 여권을 사용한 점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KBS 취재진은 어렵게 권도형의 현지 변호인을 접촉할 수 있었다. 그는 권도형을 둘러싼 혐의 가운데 딱 하나, 몬테네그로 안에서 벌어진 '공문서 위조' 혐의만 맡고 있다. 권도형의 현지 변호인은 우선 공문서 위조 사용 혐의를 부인했다. 취재진에게 "인터폴이 권도형의 코스타리카 여권이 위조된 것이라 말했다고 들었지만 내 생각으론 잘못된 정보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중 국적이냐고 다시 물으니 "아마도(maybe) 이중국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국적은 한국이다. 하지만 이중국적 가능성도 남아있다. 다른 국가에서 국적을 취득한 뒤 한국에 신고하지 않으면 한국에서는 그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현지 수사당국 관계자는 권도형의 여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현재 검찰이 진행 중인 수사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고 전했다. 만약 '코스타리카' 여권이 진짜라면 해당 혐의에선 벗어날 수 있다.


몬테네그로에서 처벌 피하기 힘들어…위조 여권 사건 끝나야 송환 절차 개시

하지만 '코스타리카' 여권이 진짜여도 그는 쉽게 몬테네그로 법망을 빠져나갈 수 없다. 바로 가명으로 된 벨기에 여권 때문이다. 몬테네그로는 위조된 공문서를 사용하지 않고 가지고만 있어도, 향후 사용 가능성을 고려해 처벌한다. 최대 징역 5년까지 가능하다. 다만 현지 법조인은 판사가 일종의 집행유예나 봉사활동을 선고하고 실형은 면제해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여권 위조 여부는 쉽게 가려진다. 여권을 발행한 코스타리카 정부가 위조 여부를 확인해 회신해주면 끝난다. 권도형이 아무도 모르게 '코스타리카' 국적을 취득했는지, 그저 시간 끌기 차원에서 위조 여권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는지 곧 드러날 것이다. 권도형의 변호인은 '위조 공문서 사건' 처리 기간을 20~30일 정도로 전망했다. 몬테네그로에서 벌어진 '위조 공문서 사건'이 빨리 마무리되면 그제야 한국과 미국 중 그가 어디로 송환될지 절차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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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밀한 권도형은 왜 ‘위조여권’에 본명을 썼나?
    • 입력 2023-03-29 06:00:10
    취재K


■ 취재진도 놀란 '포드고리차 공항' 규모 … 감시망 피해 선택한 듯

세계적 가상화폐 사기극의 주인공 권도형은 도주 11개월 만에 몬테네그로 수도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붙잡혔다. 세르비아에 숨어 있던 그는 좁혀오는 수사망을 피해 몬테네그로로 밀입국했다. 인터폴 적색 수배에 한국 여권까지 무효화 됐기에 권도형에게 몬테네그로 국경을 넘는 건 사실 '위험한 도박'이었다.

그가 위험을 감수하고 몬테네그로에 온 이유는 세르비아가 더 이상 안전하다고 생각되지 않아서 였을 것이다. 실제 한국 법무부와 검찰이 세르비아를 직접 방문해 권도형의 신병 확보를 요청했다. 그는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 공항을 통해 두바이로 간 뒤, 이곳에서 또 제3국으로 이동하려 했을 것이다.

도망자 권도형은 포드고리차 공항에서 다시 한번 '위험한 도박'에 나섰다. 이집트 카이로에서 전세기를 포드고리차 공항으로 불러 탑승을 시도한 것이다. 이 전세기는 권도형이 도착하기 이미 이틀 전 공항에서 대기 중이었다.

그가 이곳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세르비아 바로 옆 나라라 밀입국이 편한 것도 있었겠지만, 공항 규모가 작아 감시의 눈길이 상대적으로 적은 걸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포드고리차 공항은 수도에 있는 국제공항이지만 규모가 매우 작다. 취재진도 포드고리차 공항이 작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도착해보니 너무도 아담한 규모에 놀랐다. 더구나 몬테네그로에는 한국 대사관도 없다.

하지만 그의 도박은 이번엔 실패했다. 그가 출국 수속을 위해 공항 직원에게 여권을 건넸을 때, 그의 수배 사실이 발각됐고 몬테네그로 경찰에 체포됐다.


■ 코스타리카 여권 '본명' 사용해 덜미 … 생년월일도 진짜

외신과 국내 언론 모두 그가 출국 과정에서 '코스타리카' 위조 여권을 사용했고, 가방엔 '벨기에 '위조 여권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KBS 취재진이 몬테네그로 경찰 관계자를 만나 취재해보니 두 여권엔 차이가 있었다. 벨기에 여권은 가명이었지만, 그가 사용한 코스타리카 여권은 본명이고 생년월일도 일치했다. 그리고 이 코스타리카 여권에 적힌 본명에 그는 덜미를 붙잡혔다.

몬테네그로 경찰 관계자는 "출국 심사를 담당하는 직원이 권도형에게서 여권을 받아 전자기기에 입력하자, 인터폴 적색 수배 명단에 이름이 등록되어 있어 바로 경고 표시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국적과 상관없이 이름 등 개인 정보가 수배 명단과 일치하면 공항에서 이를 일단 감지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되어 있다고 전했다.


변호사 "위조 여권 아니야" …이중국적 가능성?

여기서 의문이 남는다. 코스타리카 여권이 위조 여권이라면 그는 왜 본명을 사용했을까? 일부 언론은 그가 본명이 적힌 어설픈 여권을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11개월이 넘는 도주 경력에 몬테네그로 밀입국에 성공하고, 카이로에서 전세기를 이틀 먼저 불러 대기시킬 정도로 치밀한 권도형이 위험을 무릅쓰고 출국하면서 '어설픈' 위조 여권을 사용한 점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KBS 취재진은 어렵게 권도형의 현지 변호인을 접촉할 수 있었다. 그는 권도형을 둘러싼 혐의 가운데 딱 하나, 몬테네그로 안에서 벌어진 '공문서 위조' 혐의만 맡고 있다. 권도형의 현지 변호인은 우선 공문서 위조 사용 혐의를 부인했다. 취재진에게 "인터폴이 권도형의 코스타리카 여권이 위조된 것이라 말했다고 들었지만 내 생각으론 잘못된 정보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중 국적이냐고 다시 물으니 "아마도(maybe) 이중국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국적은 한국이다. 하지만 이중국적 가능성도 남아있다. 다른 국가에서 국적을 취득한 뒤 한국에 신고하지 않으면 한국에서는 그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현지 수사당국 관계자는 권도형의 여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현재 검찰이 진행 중인 수사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고 전했다. 만약 '코스타리카' 여권이 진짜라면 해당 혐의에선 벗어날 수 있다.


몬테네그로에서 처벌 피하기 힘들어…위조 여권 사건 끝나야 송환 절차 개시

하지만 '코스타리카' 여권이 진짜여도 그는 쉽게 몬테네그로 법망을 빠져나갈 수 없다. 바로 가명으로 된 벨기에 여권 때문이다. 몬테네그로는 위조된 공문서를 사용하지 않고 가지고만 있어도, 향후 사용 가능성을 고려해 처벌한다. 최대 징역 5년까지 가능하다. 다만 현지 법조인은 판사가 일종의 집행유예나 봉사활동을 선고하고 실형은 면제해줄 수도 있다고 전했다.

여권 위조 여부는 쉽게 가려진다. 여권을 발행한 코스타리카 정부가 위조 여부를 확인해 회신해주면 끝난다. 권도형이 아무도 모르게 '코스타리카' 국적을 취득했는지, 그저 시간 끌기 차원에서 위조 여권이 아니라고 거짓말을 했는지 곧 드러날 것이다. 권도형의 변호인은 '위조 공문서 사건' 처리 기간을 20~30일 정도로 전망했다. 몬테네그로에서 벌어진 '위조 공문서 사건'이 빨리 마무리되면 그제야 한국과 미국 중 그가 어디로 송환될지 절차가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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