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K] 빨라지는 봄의 전령, ‘벚꽃’의 경고

입력 2023.03.29 (07:00) 수정 2023.03.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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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 봄꽃 물결입니다. 봄꽃의 향연 덕에 올봄은 사뭇 빨리 찾아온 느낌입니다.

지난 토요일(25일)에는 서울에서도 성미 급한 벚꽃이 공식 개화했습니다.

지난해(4월 4일)보다는 10일, 평년(4월 8일)보다는 14일이나 빨리 벚꽃이 피었습니다. 역대 가장 빨리 피었던 2021년(3월 24일)보다는 단 하루 늦은 개화로, 역대 두 번째로 빠른 기록입니다.

그런데 일찍 찾아온 봄꽃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조기 등판한 봄꽃의 아름다움 뒤에 섬뜩한 경고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 KTX만큼 빨라진 '부산→서울' 벚꽃 개화 시기

봄의 전령, 벚꽃. 올봄에는 얼마나 빨리 피었을까요?

기상청 자료를 보면, 이전 평년(1981~2010년)과 비교해 최근 평년(1991~2020년)의 벚꽃 개화 시기는 하루 빨라졌습니다.

문제는 북상 속도입니다.

올해 부산의 공식 벚꽃 개화일은 3월 19일입니다. 평년(3월 28일)보다 9일 빨랐는데, 102년 관측 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6일 뒤, 서울에서도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보통 부산에서 벚꽃이 핀 뒤 11일 정도가 지나야 서울 벚꽃이 개화했는데, 북상 시기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평년과 비교하면 2배 정도 빠른 속도입니다.

1922~2023년 서울과 부산의 벚꽃 개화일 차이 (자료: 기상청)1922~2023년 서울과 부산의 벚꽃 개화일 차이 (자료: 기상청)

봄꽃의 북상 속도가 빨라졌다는 건 위 그래프를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100년 전, 1920년대만 해도 서울과 부산의 벚꽃 개화 시기 차이는 평균 15.5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10년(2013~2022년) 평균을 보면 6일 정도가 됐고, 역대 가장 빠른 벚꽃이 핀 2021년에는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는 시기는 빨라지고, 지역 간 차이가 줄어든 봄꽃, 이유가 뭘까요?

■ '성미 급한' 벚꽃이 탄생한 이유

자꾸 벚꽃을 성질 급하게 만드는 핵심 원인, 바로 '높은 기온'과 '긴 일조 시간'입니다.

실제로 올해 벚꽃 개화 전 기온과 일조 시간을 봤더니, 2월과 3월의 전국 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각각 1.3도, 3.6도 정도 높았습니다. 맑은 날씨에 햇빛이 땅에 닿는 일조 시간 역시 두 달 동안 약 30시간 더 길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문제입니다.

"도시화와 기후 변화 등으로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 서로 생존할 수 있는 속도가 틀어지게 됩니다. 전국적으로 개화 시기가 비슷해진다는 건 결국 수천, 수만 년 동안 이어 온 꽃과 곤충의 관계가 깨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것이죠."

- 정종국 강원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 인터뷰 中

땅 속 온도는 땅 위 온도보다 느리게 올라갑니다. 이 때문에 땅 속에서 겨울을 버티고 있는 곤충의 경우 바깥이 따뜻해졌다는 걸 더 느리게 감지하게 되겠죠. 이렇게 되면 곤충은 꽃이 다 피어버린 뒤에나 지상으로 올라가 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이걸 학자들은 '공진화'가 어렵다고 하는데요.

공진화는 서로 다른 두 개체가 서로 영향을 주며 함께 진화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자면, '벚꽃'이랑 '곤충'이란 학생이 늘 함께 등교했는데, 어느 순간 벚꽃이 혼자 일찍 등교하면서, 곤충을 만날 수 없게 된 거죠.

사실 식물과 곤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식물이 꽃을 피우고, 다시 열매를 맺기 위해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줘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이 과정에 차질이 생길 경우, 결국 종 보전의 문제까지 발생하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 일찍 핀 벚꽃의 '나비 효과'

꽃과 곤충의 공진화 말고도 문제는 또 있습니다.

꽃이 일찍 핀다는 것은 그만큼 식물의 생장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식물의 생장 기간이 늘어난 만큼,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해 지구 온난화를 완화 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주장, 최근 힘을 잃고 있습니다. 이른 성장이 냉해 등 각종 피해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식물의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고, 이는 다시 생물 성장을 방해하게 된다는 분석이 나온 겁니다.


"탄소를 잘 흡수하고 잘 자라는 것은 여름에 기온이 적절하고, 비가 적당히 잘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죠. 강수량은 줄고 기온은 크게 올라 가뭄과 같은 패턴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식물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결국 생물 성장에 영향을 미치게 돼 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인터뷰 中

여기에 꽃의 이른 개화가 땅 속의 물을 빨리 사용해 땅을 더 건조하게 하는 것도 식물 스스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시 말해, 여름에 식물이 잎을 달고 있지만, 광합성을 제대로 못 해 탄소 흡수량이 적어진다는 건데요.

결국, 꽃의 이른 개화가 식물 생육에 문제를 일으키고, 식물 생장의 약화는 다시 탄소 흡수를 못 해 지구 온난화를 가중시키는데, 이 지구 온난화가 다시 꽃의 더 빠른 개화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 '봄의 전령'이 보내는 '경고'


전문가들은 단순히 '꽃이 빨리 폈다'에서 그치면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현상 뒤에 숨은 경고를 봐야 한다는 건데요.

온난화가 다시 온난화를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온난화가 꽃의 개화를 당기고, 이는 다시 탄소와 물의 순환을 바꿔 놓고 있습니다. 비단 곤충의 문제가 아니라 나아가 동물 생태계 지도도 바뀔 가능성이 커진 거죠. 결국 "조기 개화 = 생태계 위협"이라는 공식이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빨리 찾아와 준 이 아름다운 벚꽃은 생태계의 찬란한 위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전국을 수놓은 이 봄꽃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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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K] 빨라지는 봄의 전령, ‘벚꽃’의 경고
    • 입력 2023-03-29 07:00:02
    • 수정2023-03-29 11:24:11
    취재K

전국에 봄꽃 물결입니다. 봄꽃의 향연 덕에 올봄은 사뭇 빨리 찾아온 느낌입니다.

지난 토요일(25일)에는 서울에서도 성미 급한 벚꽃이 공식 개화했습니다.

지난해(4월 4일)보다는 10일, 평년(4월 8일)보다는 14일이나 빨리 벚꽃이 피었습니다. 역대 가장 빨리 피었던 2021년(3월 24일)보다는 단 하루 늦은 개화로, 역대 두 번째로 빠른 기록입니다.

그런데 일찍 찾아온 봄꽃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습니다. 조기 등판한 봄꽃의 아름다움 뒤에 섬뜩한 경고가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 KTX만큼 빨라진 '부산→서울' 벚꽃 개화 시기

봄의 전령, 벚꽃. 올봄에는 얼마나 빨리 피었을까요?

기상청 자료를 보면, 이전 평년(1981~2010년)과 비교해 최근 평년(1991~2020년)의 벚꽃 개화 시기는 하루 빨라졌습니다.

문제는 북상 속도입니다.

올해 부산의 공식 벚꽃 개화일은 3월 19일입니다. 평년(3월 28일)보다 9일 빨랐는데, 102년 관측 사상 가장 빠른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6일 뒤, 서울에서도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렸습니다.

보통 부산에서 벚꽃이 핀 뒤 11일 정도가 지나야 서울 벚꽃이 개화했는데, 북상 시기가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습니다. 이는 평년과 비교하면 2배 정도 빠른 속도입니다.

1922~2023년 서울과 부산의 벚꽃 개화일 차이 (자료: 기상청)
봄꽃의 북상 속도가 빨라졌다는 건 위 그래프를 보면 더 명확해집니다.

100년 전, 1920년대만 해도 서울과 부산의 벚꽃 개화 시기 차이는 평균 15.5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10년(2013~2022년) 평균을 보면 6일 정도가 됐고, 역대 가장 빠른 벚꽃이 핀 2021년에는 이틀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는 시기는 빨라지고, 지역 간 차이가 줄어든 봄꽃, 이유가 뭘까요?

■ '성미 급한' 벚꽃이 탄생한 이유

자꾸 벚꽃을 성질 급하게 만드는 핵심 원인, 바로 '높은 기온'과 '긴 일조 시간'입니다.

실제로 올해 벚꽃 개화 전 기온과 일조 시간을 봤더니, 2월과 3월의 전국 평균 기온이 평년보다 각각 1.3도, 3.6도 정도 높았습니다. 맑은 날씨에 햇빛이 땅에 닿는 일조 시간 역시 두 달 동안 약 30시간 더 길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가 문제입니다.

"도시화와 기후 변화 등으로 온난화가 빠르게 진행되면 서로 생존할 수 있는 속도가 틀어지게 됩니다. 전국적으로 개화 시기가 비슷해진다는 건 결국 수천, 수만 년 동안 이어 온 꽃과 곤충의 관계가 깨질 수 있는 위험성이 있는 것이죠."

- 정종국 강원대학교 산림과학부 교수 인터뷰 中

땅 속 온도는 땅 위 온도보다 느리게 올라갑니다. 이 때문에 땅 속에서 겨울을 버티고 있는 곤충의 경우 바깥이 따뜻해졌다는 걸 더 느리게 감지하게 되겠죠. 이렇게 되면 곤충은 꽃이 다 피어버린 뒤에나 지상으로 올라가 활동을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이걸 학자들은 '공진화'가 어렵다고 하는데요.

공진화는 서로 다른 두 개체가 서로 영향을 주며 함께 진화하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 들자면, '벚꽃'이랑 '곤충'이란 학생이 늘 함께 등교했는데, 어느 순간 벚꽃이 혼자 일찍 등교하면서, 곤충을 만날 수 없게 된 거죠.

사실 식물과 곤충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죠. 식물이 꽃을 피우고, 다시 열매를 맺기 위해 곤충이 꽃가루를 옮겨줘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 시간이 맞지 않아 이 과정에 차질이 생길 경우, 결국 종 보전의 문제까지 발생하게 될 수 있다는 겁니다.

■ 일찍 핀 벚꽃의 '나비 효과'

꽃과 곤충의 공진화 말고도 문제는 또 있습니다.

꽃이 일찍 핀다는 것은 그만큼 식물의 생장 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때문에 예전에는 식물의 생장 기간이 늘어난 만큼, 탄소를 더 많이 흡수해 지구 온난화를 완화 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 주장, 최근 힘을 잃고 있습니다. 이른 성장이 냉해 등 각종 피해에 더 많이 노출되기 때문에 식물의 생산성이 떨어지게 되고, 이는 다시 생물 성장을 방해하게 된다는 분석이 나온 겁니다.


"탄소를 잘 흡수하고 잘 자라는 것은 여름에 기온이 적절하고, 비가 적당히 잘 왔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게 아니죠. 강수량은 줄고 기온은 크게 올라 가뭄과 같은 패턴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식물은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결국 생물 성장에 영향을 미치게 돼 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지게 됩니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교수 인터뷰 中

여기에 꽃의 이른 개화가 땅 속의 물을 빨리 사용해 땅을 더 건조하게 하는 것도 식물 스스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다시 말해, 여름에 식물이 잎을 달고 있지만, 광합성을 제대로 못 해 탄소 흡수량이 적어진다는 건데요.

결국, 꽃의 이른 개화가 식물 생육에 문제를 일으키고, 식물 생장의 약화는 다시 탄소 흡수를 못 해 지구 온난화를 가중시키는데, 이 지구 온난화가 다시 꽃의 더 빠른 개화를 부추기는 원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 '봄의 전령'이 보내는 '경고'


전문가들은 단순히 '꽃이 빨리 폈다'에서 그치면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현상 뒤에 숨은 경고를 봐야 한다는 건데요.

온난화가 다시 온난화를 낳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온난화가 꽃의 개화를 당기고, 이는 다시 탄소와 물의 순환을 바꿔 놓고 있습니다. 비단 곤충의 문제가 아니라 나아가 동물 생태계 지도도 바뀔 가능성이 커진 거죠. 결국 "조기 개화 = 생태계 위협"이라는 공식이 맞아 떨어지고 있습니다.

어쩌면 빨리 찾아와 준 이 아름다운 벚꽃은 생태계의 찬란한 위험 신호일 수 있습니다. 전국을 수놓은 이 봄꽃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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