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돌아온 대동여지도…“목판본 한계 보완한 첫 사례”

입력 2023.03.30 (09:00) 수정 2023.03.30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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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일본에서 환수된 ‘대동여지도’의 전체 펼친 모습. 문화재청 제공.2023년 3월 일본에서 환수된 ‘대동여지도’의 전체 펼친 모습. 문화재청 제공.

조선의 지리학자 김정호(1804 추정∼1866 추정) 선생의 '대동여지도' 목판본이 일본에서 환수돼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1864년 재간된 갑자본에 색을 칠하고 나무판 위에 다 새기지 못한 수많은 지리 정보까지 붓글씨로 하나하나 담아냈는데, 목판본인 '대동여지도'에 '동여도'의 주기 내용을 필사해 한계를 보완한 최초의 사례로 확인됩니다.

문화재청은 오늘(30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지난해 7월 일본의 한 고서점이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자료 검토와 전문가 평가 등을 거쳐 복권기금으로 구매한 건데요.
22첩의 병풍식 지도첩을 모두 펼치면 대략 가로 4m, 세로 6.7m 규모로, ‘대동(大東)’인 우리나라가 ‘수레[輿]에 땅을 담듯' 한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이번에 환수된 지도는 국내에 소장된 기존 '대동여지도'와는 구성과 내용이 다르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1861년 처음 만들어진 '대동여지도'가 점차 보급되며 변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2023년 3월 일본에서 환수된 ‘대동여지도’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2023년 3월 일본에서 환수된 ‘대동여지도’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우선, 김정호 선생이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전 제작했던 '동여도(東輿圖)' 속 정보를 필사해 상세한 지리 정보를 담은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대동여지도'의 초고(草稿) 격에 해당하는 필사본 채색지도 '동여도'에는 조선 시대의 교통로와 군사시설 같은 지리 정보는 물론, 18,000여 개에 달하는 지명이 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판본인 '대동여지도'는 나무 조각을 쉽게 하려고 이런 지명과 주기(註記·지도 여백에 영토의 역사, 지도제작법, 지도사용법 등을 적어놓은 것)를 상당량 생략했는데, 이를 필사로 보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환수된 '대동여지도'에는 백두산 일대를 묘사한 제2첩에 '백두산정계비'( 1712년 백두산에 세운 비석으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선을 표시한 경계비)와 군사시설 간 거리가 필사돼 있습니다. 또 울릉도 일대를 묘사한 제14첩에는 울릉도로 가는 배편 출발지를 삼척 근해에 표시하고, 거기서부터 울릉도까지 가는 데 걸리는 날짜 등을 적었습니다. 모두 다른 '대동여지도'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구성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목록이 따로 없는 일반 '대동여지도'와 달리, 22첩 지도첩 외에 따로 목록 1첩을 두어 내용을 찾아보기 쉽게 했습니다. 2면에 걸쳐 인쇄돼 있던 강원도 삼척부와 울릉도 일대가 1면으로 축소되어 배치된 점은 '동여도'의 배치 형식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또 지도의 제작 목적과 중요성 등을 담은 글로, 일종의 서문에 해당하는 '지도유설'을 제1첩이 아니라 빈 곳에 필사한 점도 특징입니다.

30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기혁 부산대 명예교수가 환수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30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기혁 부산대 명예교수가 환수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김기혁 부산대 명예교수는 "몸은 '대동여지도'이고, 머리는 '동여도'"라는 비유로 이번 환수본을 설명했습니다. '동여도'는 국내에 단 4점이 남아 있는데, 이 '동여도'를 접할 수 있을 만큼 수준 높은 지식인이 내용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김정호 선생과의 필체와는 달라 김 선생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관아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무역을 원하는 상인 등이 썼으리라는 자문 의견이 나온 상태입니다.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진 19세기 후반 조선은 바람 앞에 놓인 등불처럼 굉장히 힘든 시기였습니다. 당시 이 환수본을 만든 사람은 '동여도'의 지리 정보를 지도 위에 옮기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대동여지도'가 중요한 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국토의 온전한 모습을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환수된 '대동여지도'가 조선의 지도 제작·활용을 살피는 연구자료일 뿐 아니라, 조선 시대 지리 정보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동여도를 안은 대동여지도' 판본인 만큼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정확한 지리 지식 보급을 위한 김정호 선생의 노력이 깃든 이번 '대동여지도'는 문화재청에서 소장처를 정한 뒤, 별도의 전시 계획 등을 세워 일반에 공개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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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에서 돌아온 대동여지도…“목판본 한계 보완한 첫 사례”
    • 입력 2023-03-30 09:00:23
    • 수정2023-03-30 15:53:39
    취재K
2023년 3월 일본에서 환수된 ‘대동여지도’의 전체 펼친 모습. 문화재청 제공.
조선의 지리학자 김정호(1804 추정∼1866 추정) 선생의 '대동여지도' 목판본이 일본에서 환수돼 국내에 들어왔습니다. 1864년 재간된 갑자본에 색을 칠하고 나무판 위에 다 새기지 못한 수많은 지리 정보까지 붓글씨로 하나하나 담아냈는데, 목판본인 '대동여지도'에 '동여도'의 주기 내용을 필사해 한계를 보완한 최초의 사례로 확인됩니다.

문화재청은 오늘(30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을 통해 일본에서 환수한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를 언론에 공개했습니다. 지난해 7월 일본의 한 고서점이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자료 검토와 전문가 평가 등을 거쳐 복권기금으로 구매한 건데요.
22첩의 병풍식 지도첩을 모두 펼치면 대략 가로 4m, 세로 6.7m 규모로, ‘대동(大東)’인 우리나라가 ‘수레[輿]에 땅을 담듯' 한눈에 들어옵니다.

특히 이번에 환수된 지도는 국내에 소장된 기존 '대동여지도'와는 구성과 내용이 다르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습니다. 1861년 처음 만들어진 '대동여지도'가 점차 보급되며 변용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2023년 3월 일본에서 환수된 ‘대동여지도’의 모습. 문화재청 제공.
우선, 김정호 선생이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전 제작했던 '동여도(東輿圖)' 속 정보를 필사해 상세한 지리 정보를 담은 것이 가장 큰 특징입니다.

'대동여지도'의 초고(草稿) 격에 해당하는 필사본 채색지도 '동여도'에는 조선 시대의 교통로와 군사시설 같은 지리 정보는 물론, 18,000여 개에 달하는 지명이 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목판본인 '대동여지도'는 나무 조각을 쉽게 하려고 이런 지명과 주기(註記·지도 여백에 영토의 역사, 지도제작법, 지도사용법 등을 적어놓은 것)를 상당량 생략했는데, 이를 필사로 보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이번에 환수된 '대동여지도'에는 백두산 일대를 묘사한 제2첩에 '백두산정계비'( 1712년 백두산에 세운 비석으로 조선과 청나라의 국경선을 표시한 경계비)와 군사시설 간 거리가 필사돼 있습니다. 또 울릉도 일대를 묘사한 제14첩에는 울릉도로 가는 배편 출발지를 삼척 근해에 표시하고, 거기서부터 울릉도까지 가는 데 걸리는 날짜 등을 적었습니다. 모두 다른 '대동여지도'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구성에서도 차이가 있습니다. 목록이 따로 없는 일반 '대동여지도'와 달리, 22첩 지도첩 외에 따로 목록 1첩을 두어 내용을 찾아보기 쉽게 했습니다. 2면에 걸쳐 인쇄돼 있던 강원도 삼척부와 울릉도 일대가 1면으로 축소되어 배치된 점은 '동여도'의 배치 형식을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또 지도의 제작 목적과 중요성 등을 담은 글로, 일종의 서문에 해당하는 '지도유설'을 제1첩이 아니라 빈 곳에 필사한 점도 특징입니다.

30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김기혁 부산대 명예교수가 환수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기자 간담회에 참석한 김기혁 부산대 명예교수는 "몸은 '대동여지도'이고, 머리는 '동여도'"라는 비유로 이번 환수본을 설명했습니다. '동여도'는 국내에 단 4점이 남아 있는데, 이 '동여도'를 접할 수 있을 만큼 수준 높은 지식인이 내용을 옮긴 것으로 보인다는 설명입니다. 다만 김정호 선생과의 필체와는 달라 김 선생이 직접 쓴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관아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무역을 원하는 상인 등이 썼으리라는 자문 의견이 나온 상태입니다.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진 19세기 후반 조선은 바람 앞에 놓인 등불처럼 굉장히 힘든 시기였습니다. 당시 이 환수본을 만든 사람은 '동여도'의 지리 정보를 지도 위에 옮기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대동여지도'가 중요한 건 우리가 지향해야 할 국토의 온전한 모습을 담아냈기 때문입니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환수된 '대동여지도'가 조선의 지도 제작·활용을 살피는 연구자료일 뿐 아니라, 조선 시대 지리 정보 연구의 범위를 확장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최초로 확인된 '동여도를 안은 대동여지도' 판본인 만큼 큰 의미가 있다는 평가입니다.

정확한 지리 지식 보급을 위한 김정호 선생의 노력이 깃든 이번 '대동여지도'는 문화재청에서 소장처를 정한 뒤, 별도의 전시 계획 등을 세워 일반에 공개될 전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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