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벨 원’을 아십니까?…우리가 몰랐던 응급실의 세계

입력 2023.04.0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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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사진: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운동하다 다리 인대를 다쳐서, 걷다가 넘어져 이마가 찢어져서, 멀쩡했던 배가 갑자기 너무 아파서,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은 다들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 내원객의 공통점이 있다면 응급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모두가 급합니다. 급히 진료받고, 빨리 치료받아야 해서 응급실에 가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막상 응급실에 갔더니, 바로 진료를 안 해줄 때가 있습니다. '급'해서 갔는데, '응'해주지를 않으니 응급의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몸도 아픈데 마냥 기다리려니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는 하는 것일까요? 응급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와 같은 물음에 나름의 답을 해주는 책이 나왔습니다. 현직 간호사가 쓴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입니다.

책은 간호사를 비롯해 여러 의료진의 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며 응급실의 다양한 풍경을 전하고 있습니다. 책을 쓴 이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이강용 간호사입니다.

이 간호사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던 2020년 문경 생활치료센터로 파견을 나갔습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책임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의 일상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사진기를 들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근무하는 병원에서 공식 임명장을 받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게 됐습니다. 일하는 의료진에게 폐를 끼치지 않은 채 개인정보를 피해 가면서 순간을 기록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한 장, 두 장, 사진이 쌓여갔습니다. 그렇게 이들 사진을 모아 사진집이자 산문집인 책을 내게 된 겁니다.

사진: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사진: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이강용 간호사는 책에서 먼저, 응급실을 찾은 많은 환자가 곧바로 진료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현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하면서도, 사정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병원 진료는 예약 순이지만, 응급실은 도착한 순서가 아니라 급한 순서라는 사실을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들 자신이 급한 환자라고 생각하겠지만, 더 급한 환자가 있을 때가 많다는 겁니다.

응급실에 침상이 나더라도 상태가 더 안 좋은 환자들, 이를테면 숨이 많이 차거나 피를 토하거나 혈압이 떨어지는 분들이 우선순위입니다. 도착한 순서가 아니라 급한 순서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오래 기다린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불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네요.
침상 수를 늘리고 공간을 넓혀도, 기다리는 환자들로 넘쳐나는 이곳은 응급실입니다.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p11

그렇다면, 정말로 급한 환자들은 어떤 분들일까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위급한 사람들은 소생실로 옮겨집니다. '소생', '거의 죽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처럼,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곳입니다.

이강용 간호사는 응급실 소생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호흡을 제대로 못 해서 숨이 차는 사람들'과 '순환이 안 돼서 혈압이 떨어진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촌각을 다퉈가며 치료해야 할 환자들이 도착하면 응급실에는 비상이 걸립니다. '레벨 원' 상황이 되는 겁니다.

지난 30일 비번 시간을 이용해 KBS 취재진을 만난 이강용 간호사는 레벨 원 상황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총 5개의 개념으로 환자 분류를 하고 있는데요. 말 그대로 '레벨 원'이라고 하면, 심정지 환자나 중증외상 환자, 기도 확보가 안 되거나 당장 의료진의 도움이 절실한 환자분들, 그런 환자분들을 얘기하는 거고요."

누가 봐도 생사의 고비에 선 사람들입니다. 그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레벨 원 응급 환자들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제 심정지 환자가 왔을 때나, 중증외상 환자가 왔을 때, 또는 숨이 너무 차서 기도 확보가 안 되는 환자가 왔을 때, 아니면 혈압이 너무 낮은 환자가 왔을 때를 뜻합니다. 혈압이 낮은 경우도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것은, 혈압이 낮은 상태가 지속하다 보면 나중에는 심정지까지 이어질 수가 있거든요. 또 출혈이 너무 심한 환자, 그래서 즉각적인 소생 절차가 필요한 환자들도 이제 레벨 원 환자로 분류됩니다. 이분들은 응급실 일반 침상이 아니라 전문적인 의료 소생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소생실로 보내지게 됩니다. 거기서 초기 소생 절차를 거친 다음에 환자를 경과 관찰할 수 있는 일반 침상 구역으로 옮기게 되는 것이죠."

심정지 환자가 왔습니다. 소생실에 들어가자마자 여러 손이 한꺼번에 달려듭니다. 기관 삽관 튜브를 건네는 간호사의 손, 흉부압박기계(LUCAS)를 적용하는 응급구조사의 손, 삽관을 하는 응급의학과 주치의의 손, 앰부 백을 짜는 응급실 인턴의 손.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p60

이강용 간호사가 얘기한 소생실은 보통 응급실의 안쪽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생실까지 갈 필요가 없는 일반 응급실 환자들은 소생실의 존재 여부를 자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이와 같은 레벨 원 환자들은 얼마나 자주 보게 될까요?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운 심각한 상황을 뜻하기에 어쩌다 한 번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간호사의 말입니다.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보통 두세 건은 된다고 합니다.

"어제도, 제가 이제 밤 근무였는데, 어젯밤에도 레벨 원 상황이 두 건 있었고요. 제가 일하는 병원의 경우, 적을 때는 없을 때도 있지만, 평균 두세 건은 되는 것 같아요. 많으면 네다섯 건까지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레벨 원 상황이 일어납니다. 하루 24시간 기준이 아니라,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니 대형병원 응급실에서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환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이송돼 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사진: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사진: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이강용 간호사는 취재진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응급실의 성격상, 환자나 보호자가 굉장히 격앙돼 있고, 짜증이 나 있고는 합니다. 불안해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다들 나를 먼저 봐 달라고 원하시거든요. 그렇지만,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는 괜찮으니까 다른 사람 먼저 봐주세요', '선생님, 저는 괜찮으니까 저분 먼저 치료해 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런 얘기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말 들을 때면 정말 너무 감사해요. 그런 말 듣게 되면, 내가 응급실에서 조금 더 오래 일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이강용 간호사는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이 응급실의 체제나 체계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응급실에는 모든 과 의료진들이 다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응급의학과 의사와 소속 간호사 등 응급의학과 의료진이 있는 곳인데, 적지 않은 분들이 응급실에만 오면 안과나 정형외과, 성형외과 진료도 바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강용 간호사는 얼굴에 상처가 생겨 봉합해야 할 때를 예로 들었습니다. 이런 경우 응급실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성형외과 의사를 불러야 하고 그래서 일정 시간이 필요한데, 왜 지금 당장 치료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드는 환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럴 때면 환자의 답답함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응급이라는 말에 내포된 응급실의 성격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생과 사가 갈리는 응급실, 그는 힘든 순간에 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응급실에서 환자가 사망하면, 환자 보호자들한테도 충분히 애도할 시간을 드리고 싶고 마지막으로 같이 보내드릴 시간을 좀 드리고 싶죠. 하지만 누워 계시는, 사망하신, 그 환자분이 나와주셔야, 다시 말해 자리를 비켜주셔야, 다른 소생 가능성이 있는 분을 우리가 또 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호자 분한테 저희가 '장례식장 어디로 결정하셨습니까?', 물어봐야 해요."

소생실의 자리를 기다리고 있는 다음 환자를 위한 일이지만, 그게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걸 물어보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 일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진짜 너무 힘들어요. 그러면 보호자 분이 '지금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냐'고 저한테 화를 내시는 일도 있고요. 대답을 못 하시는 분도 있고요. 쓰러지시는 분도 있고요. 아예 체념했다는 듯이 '네, 알아서 갈게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어요."

이강용 간호사가 말을 이었습니다.

"심폐소생, 환자 수혈, 거기에다 때로는 술 취한 사람들도 상대해야 하고, 응급실에는 힘든 일이 많죠. 그런데 누군가가 죽었는데, 누군가의 가족이 죽었는데, 그 가족에게 '장례식장 어디로 정하셨어요?', '그만 나오셔야 합니다', 이런 얘기를 꺼내야 하는 게 지금도 힘듭니다. 그래도 그게 또한 제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이강용 간호사는 힘들고 어려운 점이 많아도, 사람을 살리는 일에 동참할 수 있어 보람도 크다고 얘기합니다. 자신도 그렇고 다른 응급실 간호사들도 모두 사명감으로 버티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사진: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또 잘 모르고 있는 응급실의 세계를 담아낸 책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간호사인 이강용 저자는 책을 낸 의미에 관해 아래와 같이 밝혔습니다.

"응급실 소생실은 안쪽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거든요.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가족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드리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책을 냈으니까, 그 점을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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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이강용 지음 / 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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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벨 원’을 아십니까?…우리가 몰랐던 응급실의 세계
    • 입력 2023-04-01 08:00:23
    취재K
사진: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토요일, 책을 소개합니다.

운동하다 다리 인대를 다쳐서, 걷다가 넘어져 이마가 찢어져서, 멀쩡했던 배가 갑자기 너무 아파서, 응급실을 찾는 사람들은 다들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 내원객의 공통점이 있다면 응급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모두가 급합니다. 급히 진료받고, 빨리 치료받아야 해서 응급실에 가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막상 응급실에 갔더니, 바로 진료를 안 해줄 때가 있습니다. '급'해서 갔는데, '응'해주지를 않으니 응급의 의미가 없는 것 같고, 몸도 아픈데 마냥 기다리려니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는 하는 것일까요? 응급실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이와 같은 물음에 나름의 답을 해주는 책이 나왔습니다. 현직 간호사가 쓴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입니다.

책은 간호사를 비롯해 여러 의료진의 일하는 모습을 사진으로 담아내며 응급실의 다양한 풍경을 전하고 있습니다. 책을 쓴 이는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7년째 일하고 있는 이강용 간호사입니다.

이 간호사는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던 2020년 문경 생활치료센터로 파견을 나갔습니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책임을 다하고 있는 의료진의 일상을 알려야겠다는 생각에서 사진기를 들기 시작했고, 이후에는 근무하는 병원에서 공식 임명장을 받고 본격적으로 사진을 찍게 됐습니다. 일하는 의료진에게 폐를 끼치지 않은 채 개인정보를 피해 가면서 순간을 기록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한 장, 두 장, 사진이 쌓여갔습니다. 그렇게 이들 사진을 모아 사진집이자 산문집인 책을 내게 된 겁니다.

사진: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이강용 간호사는 책에서 먼저, 응급실을 찾은 많은 환자가 곧바로 진료와 치료를 받지 못하고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현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말하면서도, 사정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는 일반적으로 병원 진료는 예약 순이지만, 응급실은 도착한 순서가 아니라 급한 순서라는 사실을 염두에 뒀으면 좋겠다고 밝혔습니다. 다들 자신이 급한 환자라고 생각하겠지만, 더 급한 환자가 있을 때가 많다는 겁니다.

응급실에 침상이 나더라도 상태가 더 안 좋은 환자들, 이를테면 숨이 많이 차거나 피를 토하거나 혈압이 떨어지는 분들이 우선순위입니다. 도착한 순서가 아니라 급한 순서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설명을 드려도 오래 기다린 환자들과 보호자들의 불만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네요.
침상 수를 늘리고 공간을 넓혀도, 기다리는 환자들로 넘쳐나는 이곳은 응급실입니다.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p11

그렇다면, 정말로 급한 환자들은 어떤 분들일까요?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위급한 사람들은 소생실로 옮겨집니다. '소생', '거의 죽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뜻처럼,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사람들을 살려내는 곳입니다.

이강용 간호사는 응급실 소생실에 들어오는 환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말합니다. '호흡을 제대로 못 해서 숨이 차는 사람들'과 '순환이 안 돼서 혈압이 떨어진 사람들'입니다. 이처럼 촌각을 다퉈가며 치료해야 할 환자들이 도착하면 응급실에는 비상이 걸립니다. '레벨 원' 상황이 되는 겁니다.

지난 30일 비번 시간을 이용해 KBS 취재진을 만난 이강용 간호사는 레벨 원 상황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총 5개의 개념으로 환자 분류를 하고 있는데요. 말 그대로 '레벨 원'이라고 하면, 심정지 환자나 중증외상 환자, 기도 확보가 안 되거나 당장 의료진의 도움이 절실한 환자분들, 그런 환자분들을 얘기하는 거고요."

누가 봐도 생사의 고비에 선 사람들입니다. 그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레벨 원 응급 환자들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면 이제 심정지 환자가 왔을 때나, 중증외상 환자가 왔을 때, 또는 숨이 너무 차서 기도 확보가 안 되는 환자가 왔을 때, 아니면 혈압이 너무 낮은 환자가 왔을 때를 뜻합니다. 혈압이 낮은 경우도 주의 깊게 봐야 하는 것은, 혈압이 낮은 상태가 지속하다 보면 나중에는 심정지까지 이어질 수가 있거든요. 또 출혈이 너무 심한 환자, 그래서 즉각적인 소생 절차가 필요한 환자들도 이제 레벨 원 환자로 분류됩니다. 이분들은 응급실 일반 침상이 아니라 전문적인 의료 소생 시스템이 갖춰져 있는 소생실로 보내지게 됩니다. 거기서 초기 소생 절차를 거친 다음에 환자를 경과 관찰할 수 있는 일반 침상 구역으로 옮기게 되는 것이죠."

심정지 환자가 왔습니다. 소생실에 들어가자마자 여러 손이 한꺼번에 달려듭니다. 기관 삽관 튜브를 건네는 간호사의 손, 흉부압박기계(LUCAS)를 적용하는 응급구조사의 손, 삽관을 하는 응급의학과 주치의의 손, 앰부 백을 짜는 응급실 인턴의 손.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p60

이강용 간호사가 얘기한 소생실은 보통 응급실의 안쪽에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생실까지 갈 필요가 없는 일반 응급실 환자들은 소생실의 존재 여부를 자각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형병원 응급실에서 이와 같은 레벨 원 환자들은 얼마나 자주 보게 될까요?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운 심각한 상황을 뜻하기에 어쩌다 한 번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간호사의 말입니다.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보통 두세 건은 된다고 합니다.

"어제도, 제가 이제 밤 근무였는데, 어젯밤에도 레벨 원 상황이 두 건 있었고요. 제가 일하는 병원의 경우, 적을 때는 없을 때도 있지만, 평균 두세 건은 되는 것 같아요. 많으면 네다섯 건까지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레벨 원 상황이 일어납니다. 하루 24시간 기준이 아니라, 8시간 근무를 기준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니 대형병원 응급실에서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 있는 환자가 하루에도 몇 번씩 이송돼 오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사진: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이강용 간호사는 취재진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에 대해서도 말했습니다.

"응급실의 성격상, 환자나 보호자가 굉장히 격앙돼 있고, 짜증이 나 있고는 합니다. 불안해하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다들 나를 먼저 봐 달라고 원하시거든요. 그렇지만, 모두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는 괜찮으니까 다른 사람 먼저 봐주세요', '선생님, 저는 괜찮으니까 저분 먼저 치료해 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이런 얘기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 말 들을 때면 정말 너무 감사해요. 그런 말 듣게 되면, 내가 응급실에서 조금 더 오래 일할 수 있겠다, 생각이 들고는 합니다."

이강용 간호사는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이 응급실의 체제나 체계에 대해 오해하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응급실에는 모든 과 의료진들이 다 있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응급의학과 의사와 소속 간호사 등 응급의학과 의료진이 있는 곳인데, 적지 않은 분들이 응급실에만 오면 안과나 정형외과, 성형외과 진료도 바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면서, 오해를 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이강용 간호사는 얼굴에 상처가 생겨 봉합해야 할 때를 예로 들었습니다. 이런 경우 응급실에서 당직을 서고 있는 성형외과 의사를 불러야 하고 그래서 일정 시간이 필요한데, 왜 지금 당장 치료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드는 환자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럴 때면 환자의 답답함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지만, 응급이라는 말에 내포된 응급실의 성격을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생과 사가 갈리는 응급실, 그는 힘든 순간에 관해서도 얘기했습니다.

"응급실에서 환자가 사망하면, 환자 보호자들한테도 충분히 애도할 시간을 드리고 싶고 마지막으로 같이 보내드릴 시간을 좀 드리고 싶죠. 하지만 누워 계시는, 사망하신, 그 환자분이 나와주셔야, 다시 말해 자리를 비켜주셔야, 다른 소생 가능성이 있는 분을 우리가 또 살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호자 분한테 저희가 '장례식장 어디로 결정하셨습니까?', 물어봐야 해요."

소생실의 자리를 기다리고 있는 다음 환자를 위한 일이지만, 그게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이걸 물어보는 게 너무 힘들어요. 그 일이 가장 힘든 것 같아요. 진짜 너무 힘들어요. 그러면 보호자 분이 '지금 어떻게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냐'고 저한테 화를 내시는 일도 있고요. 대답을 못 하시는 분도 있고요. 쓰러지시는 분도 있고요. 아예 체념했다는 듯이 '네, 알아서 갈게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어요."

이강용 간호사가 말을 이었습니다.

"심폐소생, 환자 수혈, 거기에다 때로는 술 취한 사람들도 상대해야 하고, 응급실에는 힘든 일이 많죠. 그런데 누군가가 죽었는데, 누군가의 가족이 죽었는데, 그 가족에게 '장례식장 어디로 정하셨어요?', '그만 나오셔야 합니다', 이런 얘기를 꺼내야 하는 게 지금도 힘듭니다. 그래도 그게 또한 제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고요."

이강용 간호사는 힘들고 어려운 점이 많아도, 사람을 살리는 일에 동참할 수 있어 보람도 크다고 얘기합니다. 자신도 그렇고 다른 응급실 간호사들도 모두 사명감으로 버티는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진: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사람들이 잘 알고 있는 듯하면서도, 또 잘 모르고 있는 응급실의 세계를 담아낸 책 <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간호사인 이강용 저자는 책을 낸 의미에 관해 아래와 같이 밝혔습니다.

"응급실 소생실은 안쪽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있거든요. 그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의 가족을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 드리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기 위해 책을 냈으니까, 그 점을 좋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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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급실 소생실 레벨 원입니다
이강용 지음 / 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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