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년 만에 나온 총…‘백 경사 피살사건’ 범인 잡히나?

입력 2023.04.0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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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살인사건 현장에서 사라진 총이, 21년 만에 떡하니 나타났습니다. '백 경사 피살 사건' 때 사라진 그 총입니다. 뜻밖의 실마리를 부여잡고, 경찰은 오래 묵힌 실타래를 꽤 속도감 있게 풀어헤치고 있습니다. "거의 다 잡았다" 자신할 정도입니다. 총이 발견되고 지금까지, 그간 수사로써 드러난 것들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취재된 이야기를, '키워드'를 주욱 늘어놓는 식으로 정리해봤습니다.


■ 사라진 총

2002년 9월 20일. 54살 백선기 경사가 전주 금암파출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날입니다. 이제 막 자정을 지나 추석 연휴 첫날이 됐을 때였습니다. 백 경사는 다른 직원들이 순찰 나간 사이 혼자 일하다 누군가 휘두른 흉기에 당했습니다.

CCTV는 먹통이었습니다. 당시 파출소에 달린 CCTV 대부분은 비디오 캠코더 수준의 장치여서 말썽이 많았습니다. 저장 용량이 꽉 차면 자꾸 멈췄고, 그래서 그냥 꺼둔 채로 버려두기도 했습니다.

범인은 CCTV에 모습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이때 범인과 함께 사라진 게 있습니다. 백 경사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38구경 권총입니다. 실탄 4발·공포탄 1발이 장전된 채였습니다.

■ 편지

사건은 21년째 미궁 속을 헤맸습니다. 그러다 지난 2월 13일, 전북경찰청에 편지 한 통이 날아듭니다. "백 경사를 죽이고 총을 빼앗은 범인을 알고 있다." 내용도 놀라운데, 이 편지를 쓴 사람이 더 뜻밖입니다.

제보자는 백 경사 사건보다 9개월 먼저 있었던, '대전 은행강도 살인사건' 피고인 이승만이었습니다. 그는 "함께 강도질을 벌였던 이정학이 바로 범인"이라고 썼습니다. 이승만이 알려준 대로 울산 어느 여관 천장에선 진짜 총이 나왔습니다. 각인된 총기 번호 '4280', 사라진 백선기 경사의 권총 맞습니다.

경찰은 이때부터 이승만과 이정학,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백 경사를 살해한 범인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국민은행 강도살인' 뒤 또 다른 강도질을 벌이려, 백 경사 총을 노리고 계획 살인을 벌였다는 겁니다.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 이승만과 이정학이 2001년 12월 은행 출납 과장을 총으로 쏴 살해하고 현금 수송차에서 3억 원을 훔쳐 달아난 사건으로, 순찰하던 경찰관을 차로 들이받은 뒤 빼앗은 총을 범행에 썼다.

■ 실탄 4발

사라진 백 경사 총은 실탄 4발이 장전된 채였다고, 앞서 썼지요. 그런데 21년 만에 찾은 총은 비어있었습니다. 이승만은 총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이정학이 강도질에 쓸 권총을 구해왔다며 내게 맡겼다." 그러니까 자신이 총을 숨겨 보관해온 건 맞는다는 겁니다.

다만 이 총을 쓴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백 경사 사건이 나고 넉 달 뒤, 이승만과 이정학은 대전 쇼핑몰에서 4억 7천만 원이 실린 현금 수송차를 통째로 훔쳐 달아났습니다. 이때도 총은 들고 가지 않았다고, 이승만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총알은 어디로 갔을까? 경찰은 혹시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미제 사건이 있는지 뒤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총을 쏘며 벌인 숨겨진 범죄가 또 있을 수 있다는 의심입니다.

21년 만에 찾은 백 경사 총은 비어있었습니다.21년 만에 찾은 백 경사 총은 비어있었습니다.

■ 발자국

2002년 백 경사 사건으로 돌아갑니다. 당시 수사 기록을 보면, 범인은 백 경사를 살해한 뒤 파출소 뒷문으로 나가 담을 넘습니다. 그리고 발자국 두 개를 남깁니다. 경찰 말로는 밑바닥에 갈매기 무늬(∧)가 죽 새겨진 신발입니다.

용의 선상에 올린 자가 너무 많아 당시엔 이 '족적흔'이 큰 의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승만과 이정학, 적어도 둘 중 하나로 범인이 좁혀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현장에 남은 발자국 크기는 둘 중 하나의 발 사이즈와 일치합니다. 경찰 입장에선 매우 중요한 증거입니다.

■ 불법 테이프

왜 전북 전주였나, 이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승만과 이정학은 어릴 적 대구에서 살다가 어른이 되고서는 대전으로 건너왔습니다. 이때 이들은 함께 '불법 음반 장사'를 했습니다.

지금 30~40대, 혹은 더 나이 있는 분들은 리어카에 늘어놓고 팔던 'X세대 최신가요' 테이프 따위를 기억하실 겁니다. 90년대 후반, 짜깁기한 유행가를 불법으로 복사해다가 길거리서 마구 팔았습니다. 이승만과 이정학이 했던 불법 장사가 바로 이겁니다.

대전·충남 논산·전북 전주를 오가며 장사했습니다. 이때 전주에 드나들며 '지리감'을 익혔을 거란 게 경찰 분석입니다. 이정학은 그러나 전주를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비교적 최근 가족들과 '한옥마을'에 놀러 가봤던 게 유일한 전주 방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회칼

여기 또 다른 사건이 있습니다. 2004년 7월, 이정학은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차를 버리고 달아납니다. 경찰이 출동해 빈 차를 뒤지니, 트렁크에서 회칼과 밧줄이 나왔습니다. 나중에 이정학을 붙잡아 캐묻자 "어느 유흥업소 사장을 상대로 강도질을 하려 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경찰이 주목하는 건, 이 회칼과 백 경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흉기의 유사성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백 경사 시신 부검 결과로 "상처 모양과 깊이 등을 볼 때, 식칼이나 과도보다는 길이가 긴 흉기가 쓰였을 가능성"을 내놓은 적 있습니다.

이정학은 이 '강도예비죄'로 징역 5년을 받았고, 사건은 종결됐습니다. 이때 회칼은 폐기됐습니다. 만약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DNA 감식을 벌여 백 경사 사건과의 연관성을 더 따져볼 수 있었을 거란 게, 경찰이 한숨으로 말한 아쉬움입니다.

‘국민은행 강도살인’ 1심 판결문, ‘회칼’을 들어 이정학의 폭력 성향을 지적했습니다.‘국민은행 강도살인’ 1심 판결문, ‘회칼’을 들어 이정학의 폭력 성향을 지적했습니다.

이승만과 이정학이승만과 이정학

■ 이정학

경찰은 "어떤 형태로든 최소한 이정학은 범행과 연관돼 있다."고 힘줘 말했습니다. 유력 용의자로 일단 이승만이 아닌 이정학을 꼽은 겁니다. 앞서 나열한 것 말고도 경찰이 캔 여러 정황 증거와 진술이 있다고 합니다. 다만, 대질 신문을 앞두고 있어 공개하진 못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이승만

이쯤 되면 이승만은 왜, 교도소에서 편지까지 써가며 이정학을 범인으로 지목했을까 궁금해집니다. 경찰은 이 부분도 해석을 마쳤습니다. 이승만과 이정학은 지난 2월 있었던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1심 재판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 내내 둘은 "총을 쏜 건 저놈"이라며 범행을 떠넘겼습니다. 재판부가 내린 결론은 '이승만이 총을 쏜 주범, 이정학은 조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은 무기징역을 이정학은 그보단 약한 처벌을 받은 겁니다.

판결 뒤 이승만은 매우 분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바로 항소했는데, 다음 달 10일 시작될 2심에서 이정학이 '경찰을 죽이고 총을 빼앗을 정도로 흉악한 자'라는 걸 부각시키려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은행강도 사건에서 총을 쏜 건 자신이 아닌 이정학이란 걸 강조하려 백 경사 사건을 제보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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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년 만에 나온 총…‘백 경사 피살사건’ 범인 잡히나?
    • 입력 2023-04-05 06:00:12
    취재K
살인사건 현장에서 사라진 총이, 21년 만에 떡하니 나타났습니다. '백 경사 피살 사건' 때 사라진 그 총입니다. 뜻밖의 실마리를 부여잡고, 경찰은 오래 묵힌 실타래를 꽤 속도감 있게 풀어헤치고 있습니다. "거의 다 잡았다" 자신할 정도입니다. 총이 발견되고 지금까지, 그간 수사로써 드러난 것들이 많습니다. 이 가운데 취재된 이야기를, '키워드'를 주욱 늘어놓는 식으로 정리해봤습니다.<br />

■ 사라진 총

2002년 9월 20일. 54살 백선기 경사가 전주 금암파출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날입니다. 이제 막 자정을 지나 추석 연휴 첫날이 됐을 때였습니다. 백 경사는 다른 직원들이 순찰 나간 사이 혼자 일하다 누군가 휘두른 흉기에 당했습니다.

CCTV는 먹통이었습니다. 당시 파출소에 달린 CCTV 대부분은 비디오 캠코더 수준의 장치여서 말썽이 많았습니다. 저장 용량이 꽉 차면 자꾸 멈췄고, 그래서 그냥 꺼둔 채로 버려두기도 했습니다.

범인은 CCTV에 모습을 남기지 않고 사라졌습니다. 이때 범인과 함께 사라진 게 있습니다. 백 경사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38구경 권총입니다. 실탄 4발·공포탄 1발이 장전된 채였습니다.

■ 편지

사건은 21년째 미궁 속을 헤맸습니다. 그러다 지난 2월 13일, 전북경찰청에 편지 한 통이 날아듭니다. "백 경사를 죽이고 총을 빼앗은 범인을 알고 있다." 내용도 놀라운데, 이 편지를 쓴 사람이 더 뜻밖입니다.

제보자는 백 경사 사건보다 9개월 먼저 있었던, '대전 은행강도 살인사건' 피고인 이승만이었습니다. 그는 "함께 강도질을 벌였던 이정학이 바로 범인"이라고 썼습니다. 이승만이 알려준 대로 울산 어느 여관 천장에선 진짜 총이 나왔습니다. 각인된 총기 번호 '4280', 사라진 백선기 경사의 권총 맞습니다.

경찰은 이때부터 이승만과 이정학, 적어도 둘 중 하나는 백 경사를 살해한 범인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국민은행 강도살인' 뒤 또 다른 강도질을 벌이려, 백 경사 총을 노리고 계획 살인을 벌였다는 겁니다.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 이승만과 이정학이 2001년 12월 은행 출납 과장을 총으로 쏴 살해하고 현금 수송차에서 3억 원을 훔쳐 달아난 사건으로, 순찰하던 경찰관을 차로 들이받은 뒤 빼앗은 총을 범행에 썼다.

■ 실탄 4발

사라진 백 경사 총은 실탄 4발이 장전된 채였다고, 앞서 썼지요. 그런데 21년 만에 찾은 총은 비어있었습니다. 이승만은 총에 대해 이렇게 털어놨습니다. "이정학이 강도질에 쓸 권총을 구해왔다며 내게 맡겼다." 그러니까 자신이 총을 숨겨 보관해온 건 맞는다는 겁니다.

다만 이 총을 쓴 적은 없다고 했습니다. 백 경사 사건이 나고 넉 달 뒤, 이승만과 이정학은 대전 쇼핑몰에서 4억 7천만 원이 실린 현금 수송차를 통째로 훔쳐 달아났습니다. 이때도 총은 들고 가지 않았다고, 이승만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총알은 어디로 갔을까? 경찰은 혹시 우리가 모르는 또 다른 미제 사건이 있는지 뒤지고 있습니다. 이들이 총을 쏘며 벌인 숨겨진 범죄가 또 있을 수 있다는 의심입니다.

21년 만에 찾은 백 경사 총은 비어있었습니다.
■ 발자국

2002년 백 경사 사건으로 돌아갑니다. 당시 수사 기록을 보면, 범인은 백 경사를 살해한 뒤 파출소 뒷문으로 나가 담을 넘습니다. 그리고 발자국 두 개를 남깁니다. 경찰 말로는 밑바닥에 갈매기 무늬(∧)가 죽 새겨진 신발입니다.

용의 선상에 올린 자가 너무 많아 당시엔 이 '족적흔'이 큰 의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승만과 이정학, 적어도 둘 중 하나로 범인이 좁혀졌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사건 현장에 남은 발자국 크기는 둘 중 하나의 발 사이즈와 일치합니다. 경찰 입장에선 매우 중요한 증거입니다.

■ 불법 테이프

왜 전북 전주였나, 이 점도 매우 중요합니다. 이승만과 이정학은 어릴 적 대구에서 살다가 어른이 되고서는 대전으로 건너왔습니다. 이때 이들은 함께 '불법 음반 장사'를 했습니다.

지금 30~40대, 혹은 더 나이 있는 분들은 리어카에 늘어놓고 팔던 'X세대 최신가요' 테이프 따위를 기억하실 겁니다. 90년대 후반, 짜깁기한 유행가를 불법으로 복사해다가 길거리서 마구 팔았습니다. 이승만과 이정학이 했던 불법 장사가 바로 이겁니다.

대전·충남 논산·전북 전주를 오가며 장사했습니다. 이때 전주에 드나들며 '지리감'을 익혔을 거란 게 경찰 분석입니다. 이정학은 그러나 전주를 모른다고 부인합니다. 비교적 최근 가족들과 '한옥마을'에 놀러 가봤던 게 유일한 전주 방문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회칼

여기 또 다른 사건이 있습니다. 2004년 7월, 이정학은 고속도로 요금소에서 교통사고를 낸 뒤, 차를 버리고 달아납니다. 경찰이 출동해 빈 차를 뒤지니, 트렁크에서 회칼과 밧줄이 나왔습니다. 나중에 이정학을 붙잡아 캐묻자 "어느 유흥업소 사장을 상대로 강도질을 하려 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경찰이 주목하는 건, 이 회칼과 백 경사를 죽음에 이르게 한 흉기의 유사성입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백 경사 시신 부검 결과로 "상처 모양과 깊이 등을 볼 때, 식칼이나 과도보다는 길이가 긴 흉기가 쓰였을 가능성"을 내놓은 적 있습니다.

이정학은 이 '강도예비죄'로 징역 5년을 받았고, 사건은 종결됐습니다. 이때 회칼은 폐기됐습니다. 만약 지금까지 남아있었다면 DNA 감식을 벌여 백 경사 사건과의 연관성을 더 따져볼 수 있었을 거란 게, 경찰이 한숨으로 말한 아쉬움입니다.

‘국민은행 강도살인’ 1심 판결문, ‘회칼’을 들어 이정학의 폭력 성향을 지적했습니다.
이승만과 이정학
■ 이정학

경찰은 "어떤 형태로든 최소한 이정학은 범행과 연관돼 있다."고 힘줘 말했습니다. 유력 용의자로 일단 이승만이 아닌 이정학을 꼽은 겁니다. 앞서 나열한 것 말고도 경찰이 캔 여러 정황 증거와 진술이 있다고 합니다. 다만, 대질 신문을 앞두고 있어 공개하진 못한다고 덧붙였습니다.

■ 이승만

이쯤 되면 이승만은 왜, 교도소에서 편지까지 써가며 이정학을 범인으로 지목했을까 궁금해집니다. 경찰은 이 부분도 해석을 마쳤습니다. 이승만과 이정학은 지난 2월 있었던 대전 '국민은행 강도살인 사건' 1심 재판에서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재판 내내 둘은 "총을 쏜 건 저놈"이라며 범행을 떠넘겼습니다. 재판부가 내린 결론은 '이승만이 총을 쏜 주범, 이정학은 조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승만은 무기징역을 이정학은 그보단 약한 처벌을 받은 겁니다.

판결 뒤 이승만은 매우 분개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바로 항소했는데, 다음 달 10일 시작될 2심에서 이정학이 '경찰을 죽이고 총을 빼앗을 정도로 흉악한 자'라는 걸 부각시키려 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은행강도 사건에서 총을 쏜 건 자신이 아닌 이정학이란 걸 강조하려 백 경사 사건을 제보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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