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렷한 기억”…‘예비 검속’ 그날의 목격자들

입력 2023.04.05 (19:15) 수정 2023.04.05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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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 당시 불법으로 자행된 예비검속을 조명해보는 순섭니다.

앞서 전해드린 섯알오름 학살 사건은 주민들에게 발각되면서 그나마 실체가 드러났는데요.

바다나 공항에서의 학살은 여전히 수면 아래 있습니다.

KBS는 학살의 참상을 목격한 주민들의 생생한 녹취를 입수했습니다.

안서연, 고진현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바다 한가운데서 울리는 총소리, 머지않아 누군가 물에 빠지는 소리도 납니다.

1950년 8월 제주항에서 떠난 500명에 이르는 예비검속자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군경의 기록은 없지만, 당시 경비 근무를 하던 국민방위군의 증언이 있습니다.

KBS는 29년 전 이 목격자를 직접 만난 채록자로부터 녹취록을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장시용/1994년 : "9시가 조금 지났어. 차가 오데. 배가 딱 데 있었어. 나는 확실히 본 거지. 여자고 남자고 옷 입은 사람이 없어. 이만한 줄로 두 손 묶어서 큰 줄에 전부 다 맸어. 한 시간쯤 작업하데. 차가 10대가 들어왔어. 차 안에 딱 50명이라. 바다에 하여튼 500명 들어간 것만은 이것만은 틀림없어."]

그날로부터 44년이나 지났지만 기억은 또렷했습니다.

[장시용/1994년 : "그 배가 들어올 적에 새벽 두 시에서 두 시 반경이라. 딱 그 사이라. 그 나이에도 참 처량해 보이데. 이 사람이 죄가 있어 죽었느냐…. 그게 하도 어마어마한 일이라 엊그제 본 것 같아."]

유족들은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참혹했던 그 날의 실상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강창옥/제주경찰서 예비검속자 유족 : "배가 그때 열 몇 척인데 (선주들이) 다 각서 썼데. 절대 이 사실을 죽을 때까지 얘기 안 한다고 했는데. 그 배 선주, 그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장되는 과정까지 전부 얘기해준 거야. 세 사람씩 네 사람씩 철사로 묶고, 먼바다에 가서 1차 사살하고 혹시나 살아날까 봐서 다리에 돌을 다 묶어서 나오지 못하게."]

끔찍한 학살은 제주공항에서도 이어졌습니다.

KBS가 입수한 녹취록에는 공항 주변에 살던 주민의 생생한 기억이 담겨 있었습니다.

[김의협/2005년 : "열 사람씩 탁탁 세워. 그럼 이제 군인들은 총을 둘러메고. 죽이는 사람은 따로 있고, 데려다 세우는 사람 따로 있고. 안 가려고 발버둥 치면 막 구둣발로 이렇게 해서 세워. 3~4분 간격으로 쏘고 나면 또 쏘고 한 거야."]

약 60년이 지난 2007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서북쪽에서 암매장된 유해 128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서귀포와 모슬포경찰서에 끌려간 예비검속자 40명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고창남/서귀포경찰서 예비검속자 유족 : "그렇게 그립던 아버지 시신이 앞에 있는데 손이 떨리고 마음이 떨려서 가까운데 갈수록 쓰러질 것만 같았어요. 평소 곱던 아버지가 60년 만에 이런 유골이 돼서."]

그런데 제주경찰서 예비검속자 유해는 단 한 구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강창옥/제주경찰서 예비검속자 유족 : "우리만은 한 사람도 안 나와서 몇 년 전에도 다시 2차로 했는데도 우린 아직까지 못 찾아서. 아마 영원히 못 찾을 것 같아요."]

아직도 암흑 속에 있는 예비검속의 실체를 밝히고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진현/그래픽:방진석·서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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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또렷한 기억”…‘예비 검속’ 그날의 목격자들
    • 입력 2023-04-05 19:15:04
    • 수정2023-04-05 20:35:11
    뉴스7(제주)
[앵커]

4·3 당시 불법으로 자행된 예비검속을 조명해보는 순섭니다.

앞서 전해드린 섯알오름 학살 사건은 주민들에게 발각되면서 그나마 실체가 드러났는데요.

바다나 공항에서의 학살은 여전히 수면 아래 있습니다.

KBS는 학살의 참상을 목격한 주민들의 생생한 녹취를 입수했습니다.

안서연, 고진현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바다 한가운데서 울리는 총소리, 머지않아 누군가 물에 빠지는 소리도 납니다.

1950년 8월 제주항에서 떠난 500명에 이르는 예비검속자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군경의 기록은 없지만, 당시 경비 근무를 하던 국민방위군의 증언이 있습니다.

KBS는 29년 전 이 목격자를 직접 만난 채록자로부터 녹취록을 입수할 수 있었습니다.

[장시용/1994년 : "9시가 조금 지났어. 차가 오데. 배가 딱 데 있었어. 나는 확실히 본 거지. 여자고 남자고 옷 입은 사람이 없어. 이만한 줄로 두 손 묶어서 큰 줄에 전부 다 맸어. 한 시간쯤 작업하데. 차가 10대가 들어왔어. 차 안에 딱 50명이라. 바다에 하여튼 500명 들어간 것만은 이것만은 틀림없어."]

그날로부터 44년이나 지났지만 기억은 또렷했습니다.

[장시용/1994년 : "그 배가 들어올 적에 새벽 두 시에서 두 시 반경이라. 딱 그 사이라. 그 나이에도 참 처량해 보이데. 이 사람이 죄가 있어 죽었느냐…. 그게 하도 어마어마한 일이라 엊그제 본 것 같아."]

유족들은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에야 참혹했던 그 날의 실상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강창옥/제주경찰서 예비검속자 유족 : "배가 그때 열 몇 척인데 (선주들이) 다 각서 썼데. 절대 이 사실을 죽을 때까지 얘기 안 한다고 했는데. 그 배 선주, 그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수장되는 과정까지 전부 얘기해준 거야. 세 사람씩 네 사람씩 철사로 묶고, 먼바다에 가서 1차 사살하고 혹시나 살아날까 봐서 다리에 돌을 다 묶어서 나오지 못하게."]

끔찍한 학살은 제주공항에서도 이어졌습니다.

KBS가 입수한 녹취록에는 공항 주변에 살던 주민의 생생한 기억이 담겨 있었습니다.

[김의협/2005년 : "열 사람씩 탁탁 세워. 그럼 이제 군인들은 총을 둘러메고. 죽이는 사람은 따로 있고, 데려다 세우는 사람 따로 있고. 안 가려고 발버둥 치면 막 구둣발로 이렇게 해서 세워. 3~4분 간격으로 쏘고 나면 또 쏘고 한 거야."]

약 60년이 지난 2007년 제주공항 남북활주로 서북쪽에서 암매장된 유해 128구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유전자 분석을 통해 서귀포와 모슬포경찰서에 끌려간 예비검속자 40명의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고창남/서귀포경찰서 예비검속자 유족 : "그렇게 그립던 아버지 시신이 앞에 있는데 손이 떨리고 마음이 떨려서 가까운데 갈수록 쓰러질 것만 같았어요. 평소 곱던 아버지가 60년 만에 이런 유골이 돼서."]

그런데 제주경찰서 예비검속자 유해는 단 한 구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강창옥/제주경찰서 예비검속자 유족 : "우리만은 한 사람도 안 나와서 몇 년 전에도 다시 2차로 했는데도 우린 아직까지 못 찾아서. 아마 영원히 못 찾을 것 같아요."]

아직도 암흑 속에 있는 예비검속의 실체를 밝히고 진상을 규명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KBS 뉴스 안서연입니다.

촬영기자:고진현/그래픽:방진석·서경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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