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배상’이 모순? 65년 청와대 수석은 달랐다

입력 2023.04.06 (09:01) 수정 2023.04.06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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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 대통령 "2018년 대법원 판결, 그동안 정부 입장과 다르다"

"2018년에 그동안 정부의 입장, 정부의 65년 협정 해석과 다른 내용의 판결이 선고가 됐습니다"
-윤 대통령 (3.16 한일 정상 공동기자회견 中)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직접 밝힌 내용입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배경을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는 "양국과 그 국민의 재산·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2018년 한국 대법원은 이 협정으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없어진 건 아니라고 보고 전범 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된다고 판결했다.
△ 그러므로 이 판결은 한국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

윤 대통령이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에 모순이나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인식을 근거로 합니다. 과연 우리 정부는 1965년 협정으로 모든 배상 문제가 끝났다는 입장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30여년 전 외교문서가 공개됐습니다. 이 문서가 작성된 30여 년 전 일본 도쿄로 가봅니다.

■ 민충식 전 수석 "청구권 협정, 개인 권리 해결 아니라는데 한일 암묵적 일치"

1991년 8월 당시 주일대사관에서 작성한 대외비 문서. 외교부 공개1991년 8월 당시 주일대사관에서 작성한 대외비 문서. 외교부 공개

1991년 8월 일본 도쿄에선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후 보상 국제 포럼'이 열렸는데 이 행사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 대통령 정무수석 비서관이었던 민충식 전 수석도 참석했습니다.

당시 주일 대사관은 포럼 참석자들의 발언을 대외비 문서로 만들어 정부에 보고했습니다. 민 전 수석은 이 자리에서 "1965년 소위 청구권 협정에 대해 한일 양국 정부 간 및 국민 간 인식의 차가 크고, 개인의 청구권이 정부 간에 해결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고 발언했습니다.

1991년 8월 주일대사관이 작성한 문서. 외교부 공개1991년 8월 주일대사관이 작성한 문서. 외교부 공개

더 나아가 민 전 수석은 "당시 교섭 대표 간에도 이 협정은 정부 간 해결을 의미하며 개인의 권리(개인의 청구권 문제)는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데 (한일 간) 암묵적인 인식의 일치가 있었고, 당시 일본 외무장관 시이나 에쓰사부로도 같은 견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1991년 8월 주일 대사관이 작서한 문서. 외교부 공개1991년 8월 주일 대사관이 작서한 문서. 외교부 공개

민 전 수석의 발언은 한일 협정과 대법원 판결에 '모순'이 있다는 윤 대통령 인식과는 다르고, 오히려 2018년 우리 대법원 판결과 일맥상통합니다.

2018년 우리 대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피해를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고, 핵심 근거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없어진 건 아니라는 점을 들었습니다. 즉, 한일 청구권 협정은 양국의 채권 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일 뿐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일본 정부는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 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2018. 10.30)

1944년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 제4기숙사. 강제동원된 학생들이 행진하고 있다. (출처: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1944년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 제4기숙사. 강제동원된 학생들이 행진하고 있다. (출처: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배상 문제' 종결?…"굴욕외교" 비판의 이유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배상 문제가 해소됐다는 건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해온 주장입니다. 정부가 전범 기업이 아닌 우리 기업 돈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하고, 윤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구상권 청구도 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은 의도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일본 주장을 우리가 인정한 셈이 됐기 때문입니다.

강제동원 해법 발표, 한일 정상회담 여파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우리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고 한 윤 대통령 발언은 과거 일부 보수 정부의 입장을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고 잘못 말한,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삼권분립을 국가 운영의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법의 해석은 사법부의 판단을 따라야 한다. 그것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픽: 김재은, 장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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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제동원 배상’이 모순? 65년 청와대 수석은 달랐다
    • 입력 2023-04-06 09:01:45
    • 수정2023-04-06 10:16:34
    취재K

■ 윤 대통령 "2018년 대법원 판결, 그동안 정부 입장과 다르다"

"2018년에 그동안 정부의 입장, 정부의 65년 협정 해석과 다른 내용의 판결이 선고가 됐습니다"
-윤 대통령 (3.16 한일 정상 공동기자회견 中)

지난달 한일 정상회담이 끝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이 직접 밝힌 내용입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배경을 짚어보면 이렇습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는 "양국과 그 국민의 재산·권리 및 이익과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을 확인한다"고 돼 있다.
△그런데 2018년 한국 대법원은 이 협정으로 개인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없어진 건 아니라고 보고 전범 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된다고 판결했다.
△ 그러므로 이 판결은 한국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

윤 대통령이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2018년 한국 대법원 판결에 모순이나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인식을 근거로 합니다. 과연 우리 정부는 1965년 협정으로 모든 배상 문제가 끝났다는 입장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30여년 전 외교문서가 공개됐습니다. 이 문서가 작성된 30여 년 전 일본 도쿄로 가봅니다.

■ 민충식 전 수석 "청구권 협정, 개인 권리 해결 아니라는데 한일 암묵적 일치"

1991년 8월 당시 주일대사관에서 작성한 대외비 문서. 외교부 공개
1991년 8월 일본 도쿄에선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후 보상 국제 포럼'이 열렸는데 이 행사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 당시 대통령 정무수석 비서관이었던 민충식 전 수석도 참석했습니다.

당시 주일 대사관은 포럼 참석자들의 발언을 대외비 문서로 만들어 정부에 보고했습니다. 민 전 수석은 이 자리에서 "1965년 소위 청구권 협정에 대해 한일 양국 정부 간 및 국민 간 인식의 차가 크고, 개인의 청구권이 정부 간에 해결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도 의문이 남는다"고 발언했습니다.

1991년 8월 주일대사관이 작성한 문서. 외교부 공개
더 나아가 민 전 수석은 "당시 교섭 대표 간에도 이 협정은 정부 간 해결을 의미하며 개인의 권리(개인의 청구권 문제)는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데 (한일 간) 암묵적인 인식의 일치가 있었고, 당시 일본 외무장관 시이나 에쓰사부로도 같은 견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증언했습니다.

1991년 8월 주일 대사관이 작서한 문서. 외교부 공개
민 전 수석의 발언은 한일 협정과 대법원 판결에 '모순'이 있다는 윤 대통령 인식과는 다르고, 오히려 2018년 우리 대법원 판결과 일맥상통합니다.

2018년 우리 대법원은 일본 전범 기업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개별적으로 피해를 배상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고, 핵심 근거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원고들의 손해배상 청구권까지 없어진 건 아니라는 점을 들었습니다. 즉, 한일 청구권 협정은 양국의 채권 채무 관계를 정치적 합의에 의해 해결하기 위한 것일 뿐 식민 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협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일본 정부는 식민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강제 동원 피해의 법적 배상을 원천적으로 부인하였고, 이에 따라 한일 양국의 정부는 일제의 한반도 지배의 성격에 관해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김명수 대법원장 (2018. 10.30)

1944년 일본 나고야 미쓰비시중공업 제4기숙사. 강제동원된 학생들이 행진하고 있다. (출처: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배상 문제' 종결?…"굴욕외교" 비판의 이유

1965년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배상 문제가 해소됐다는 건 일본 정부가 지속적으로 해온 주장입니다. 정부가 전범 기업이 아닌 우리 기업 돈으로 피해자들에게 배상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하고, 윤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구상권 청구도 하지 않겠다"고 밝히자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쏟아진 것은 의도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일본 주장을 우리가 인정한 셈이 됐기 때문입니다.

강제동원 해법 발표, 한일 정상회담 여파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기획실장은 "2018년 대법원 판결은 우리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고 한 윤 대통령 발언은 과거 일부 보수 정부의 입장을 우리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었다고 잘못 말한, 자의적인 해석"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와 함께 “대한민국은 민주주의의 기반인 삼권분립을 국가 운영의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법의 해석은 사법부의 판단을 따라야 한다. 그것은 헌법에 명시된 대통령의 당연한 의무이기도 하다”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래픽: 김재은, 장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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