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은 엄마들…“임신했다” 말하자 연락 ‘뚝’

입력 2023.04.0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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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피노, 라이따이한, 인코...

조금은 생소할 이 용어, 모두 한국인 아빠에게 버림받은 혼혈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코피노는 필리핀, 라이따이한은 베트남, 인코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아이들입니다.

한국 남성들인 이 아이들의 아빠는 모두 외국에 가서 현지 여성과 교제하다가, 아이가 생기자 책임지지 않고 한국으로 도망치듯 귀국해버렸습니다.

2015년엔 '코피노 아빠 찾기' 사이트가 개설되면서, 이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 엄마는 비자 만료, 아이는 무국적

이렇게 한국인 아빠로부터 버려진 혼혈 아이들은 한국에도 있습니다.

5년 전 한국어를 배우려 유학을 온 24살의 베트남 여성 B 씨.

사진기자가 꿈인 B 씨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평범한 20대 대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 남성을 만나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채팅 앱을 통해 만난 남자는 '얼굴을 보고 싶다', '주말에 꽃을 보러 가자'며 다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만나서 자신의 집으로 가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렇게 두 번의 만남 이후 연락이 끊겼습니다.

B 씨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그 후.

아이 아빠에게 연락을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고, 친구의 휴대전화로 연락해봤지만, 그마저도 차단당했습니다.

결국, B 씨는 출산 비용을 모으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고, 대학도 그만뒀습니다.

자연히 유학 비자는 만료됐고, 그렇게 '불법 체류자'가 됐습니다.

본국의 가족들에겐 아직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아직도 B 씨가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임신했어요” 말했더니 연락 뚝…또 다른 ‘코피노’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44110

■ 아이 아빠 "할 말 없다"

B 씨가 아는 건 아이 아빠의 SNS 계정과 이름, 나이, 직업뿐.

취재진은 남성의 SNS 계정을 통해 지난해 베트남 여성과 교제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 남성은 "살면서 베트남 여자와 교제해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B 씨의 휴대전화에는 다정한 대화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취재진이 B 씨의 이름을 대며 '아이가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묻자, '할 말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휴대전화를 바꿔가며 물었지만, 번번이 차단당했습니다.

B 씨가 집에 가보긴 했지만, 기억하는 건 잠실새내역 근처라는 것과 '검은색 빌라'였다는 것.

기억을 더듬어 비슷한 동네라도 찾아가 봤지만, 근처에 빌라가 100여 채나 돼 주소를 특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 KBS가 만난 엄마들 6명...사연 제각각

KBS는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시민단체와 여성단체 등을 통해 이런 엄마 6명과 아이 7명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의 엄마는 불법 체류자.

모두 한국 남성과 교제하다가 임신했단 사실을 알리자, 아이 아빠가 연락을 끊고 사라져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 6명 중 4명은 필리핀, 1명은 베트남, 1명은 몽골 국적입니다.

엄마의 국적은 다르지만, 아이들은 모두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친부 맞다” 판결에도 버틴다…호칭도 없는 이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45188

■ 실태 파악 전무...의료비 지원 시급

이런 엄마와 아이들이 국내에 얼마나 있는지, 그 실태 파악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아예 이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통일된 이름조차 없습니다.

실태 파악이 안 되니 당연히 필요한 지원도 받지 못합니다.

한국인 미혼모라면 받게 되는 출산 전후 기본 검사는 물론 출산비용 지원 대상도 아닙니다.

건강보험 혜택도 받지 못해, 아이가 아프면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엄마들의 희망은 언제 끝날지 모를 인지 소송뿐입니다.

R 씨/필리핀 미혼모

결혼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아이의 존재라도 인정해주고, 국적이 있으면 편하게 살 수 있으니까 그것만이라도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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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버림받은 엄마들…“임신했다” 말하자 연락 ‘뚝’
    • 입력 2023-04-09 12:00:17
    취재K

코피노, 라이따이한, 인코...

조금은 생소할 이 용어, 모두 한국인 아빠에게 버림받은 혼혈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코피노는 필리핀, 라이따이한은 베트남, 인코는 인도네시아에 있는 아이들입니다.

한국 남성들인 이 아이들의 아빠는 모두 외국에 가서 현지 여성과 교제하다가, 아이가 생기자 책임지지 않고 한국으로 도망치듯 귀국해버렸습니다.

2015년엔 '코피노 아빠 찾기' 사이트가 개설되면서, 이 아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기도 했습니다.


■ 엄마는 비자 만료, 아이는 무국적

이렇게 한국인 아빠로부터 버려진 혼혈 아이들은 한국에도 있습니다.

5년 전 한국어를 배우려 유학을 온 24살의 베트남 여성 B 씨.

사진기자가 꿈인 B 씨는 아이돌을 좋아하는 평범한 20대 대학생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 남성을 만나게 되면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채팅 앱을 통해 만난 남자는 '얼굴을 보고 싶다', '주말에 꽃을 보러 가자'며 다정하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만나서 자신의 집으로 가자는 제안을 했는데, 그렇게 두 번의 만남 이후 연락이 끊겼습니다.

B 씨가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건 그 후.

아이 아빠에게 연락을 보냈지만, 답장이 없었고, 친구의 휴대전화로 연락해봤지만, 그마저도 차단당했습니다.

결국, B 씨는 출산 비용을 모으기 위해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고, 대학도 그만뒀습니다.

자연히 유학 비자는 만료됐고, 그렇게 '불법 체류자'가 됐습니다.

본국의 가족들에겐 아직 털어놓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은 아직도 B 씨가 한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는 줄 알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임신했어요” 말했더니 연락 뚝…또 다른 ‘코피노’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44110

■ 아이 아빠 "할 말 없다"

B 씨가 아는 건 아이 아빠의 SNS 계정과 이름, 나이, 직업뿐.

취재진은 남성의 SNS 계정을 통해 지난해 베트남 여성과 교제한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이 남성은 "살면서 베트남 여자와 교제해 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B 씨의 휴대전화에는 다정한 대화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취재진이 B 씨의 이름을 대며 '아이가 있는 것을 아느냐'고 묻자, '할 말이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휴대전화를 바꿔가며 물었지만, 번번이 차단당했습니다.

B 씨가 집에 가보긴 했지만, 기억하는 건 잠실새내역 근처라는 것과 '검은색 빌라'였다는 것.

기억을 더듬어 비슷한 동네라도 찾아가 봤지만, 근처에 빌라가 100여 채나 돼 주소를 특정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 KBS가 만난 엄마들 6명...사연 제각각

KBS는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시민단체와 여성단체 등을 통해 이런 엄마 6명과 아이 7명을 만났습니다.

아이들의 엄마는 불법 체류자.

모두 한국 남성과 교제하다가 임신했단 사실을 알리자, 아이 아빠가 연락을 끊고 사라져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엄마 6명 중 4명은 필리핀, 1명은 베트남, 1명은 몽골 국적입니다.

엄마의 국적은 다르지만, 아이들은 모두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친부 맞다” 판결에도 버틴다…호칭도 없는 이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45188

■ 실태 파악 전무...의료비 지원 시급

이런 엄마와 아이들이 국내에 얼마나 있는지, 그 실태 파악은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아예 이들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통일된 이름조차 없습니다.

실태 파악이 안 되니 당연히 필요한 지원도 받지 못합니다.

한국인 미혼모라면 받게 되는 출산 전후 기본 검사는 물론 출산비용 지원 대상도 아닙니다.

건강보험 혜택도 받지 못해, 아이가 아프면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엄마들의 희망은 언제 끝날지 모를 인지 소송뿐입니다.

R 씨/필리핀 미혼모

결혼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아이의 존재라도 인정해주고, 국적이 있으면 편하게 살 수 있으니까 그것만이라도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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