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소방공시생으로”…88년생 국회의원, 불출마 선언한 이유는?

입력 2023.04.1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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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떠올린다.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 손 내밀어 주는 사람. 그 든든하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내 삶도 충분히 가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 하나로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 달음질 끝에서, 절망해야 하는 순간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 오영환, <어느 소방관의 기도> 中

제22대 총선을 꼭 1년 앞둔 오늘(10일),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변인 오영환 의원(경기 의정부갑)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앞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21대 현역 의원은, 우상호 의원(4선, 서울 서대문갑), 김진표 의원(5선, 경기 수원시무) 등 중진 의원들뿐이었습니다. 1988년생의 젊은 초선 의원인 그는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꽤 오랜 기간 고민을 거듭해왔다고 털어놨습니다.

소방관 출신인 그는 이제 다시 소방공무원 수험생 신분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결국 '국민 곁의 소방관'이라고 했습니다. 오 의원은 "요즘도 소방관 때 일이 꿈에 나온다. 어서 돌아가고 싶다"며 후련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 잇따른 동료 소방관 순직에…"더 이상 버텨낼 여력 없어"

불출마를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소방관들의 잇따른 순직이었습니다. 오 의원은 지난해 소방관 3명이 순직했을 때를 언급하며 "저는 그들의 영결식이 끝난 뒤 많은 노력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발 늦어버린 현실의 한계 앞에 절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9일, 전북 김제 화재 현장에서 인명 구조 작업 중 순직한 故 성공일 소방교의 영결식에 다녀온 그는 "만 29세, 또 한 명의 젊은 소방관의 유골을 현충원에 묻어야 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더 이상 버텨낼 여력이 없는 저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였다"고 밝혔습니다.

오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꿨다고 합니다. ▲대형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한 소방시설법 전부개정과 화재예방법·화재조사법 제정, ▲소방관들이 각종 질병과 부상을 당했을 때 국가가 앞장서 보호토록 하는 소방관공상추정법 개정, ▲반복되는 대형화재의 주된 원인인 가연성 건축 자재를 더 이상 사용치 못하게 하는 건축법 개정 등을 자신의 성과로 꼽았습니다.

또, 지난해 10월 29일 159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땐 국정조사 특위 위원으로 참여하며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힘썼고, 지난해 11월 경북 봉화에서 '광산사고'가 발생했을 땐 누구보다 빠르게 현장에 달려가 적극적인 구조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지난 3월 9일, 전북 김제 화재 구조 현장에서 순직한 故 성공일 소방교의 영결식 현장.지난 3월 9일, 전북 김제 화재 구조 현장에서 순직한 故 성공일 소방교의 영결식 현장.

오 의원은 순직한 동료 소방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제 마음속에 비석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국회에 묶여 있는 동안 각종 재난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들을 언급하며 "얼굴이 가슴에 맺혀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소방관 재직 때는 국민의 주검을 마주할 때조차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이겨낼 수 있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어 '내려놓을 용기'를 냈다고도 밝혔습니다.

"이제 저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던 제가 있던 곳이자 제가 있어야 할 곳, 저의 소망, 저의 사명, 국민 곁의 소방관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합니다. 소방관 출신으로 처음 국회에 입성했던 만큼 맡겨 주신 역할에 충실한 뒤 본인의 소명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정치에 대한 무너진 신뢰 회복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기를 감히 소망합니다."
- 오영환, 오늘(10일)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 中

■ "尹, 손에 든 칼 내려놓아라"…진영 대립에 아쉬움 토로

오 의원은 자신이 겪은 정치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정치는 상대 진영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오염시키는지를 승패의 잣대로 삼으려 하고 있다"며 "현 정부 실정을 지적하는 것조차 방탄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고 모든 문제가 전 정부 탓이냐, 현 정부 무능 탓이냐의 극한 대립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작은 양보와 타협조차 쉽게 이루지 못하고 있다. 대화를 거부하고 오로지 수사와 감사의 칼부터 들이대는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 고집이 가장 큰 문제"라며 " 윤석열 대통령께 한 말씀 고하고 싶다. 진정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이제 그만 손에 든 칼을 내려놓으시기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오 의원은 "오로지 진영 논리에 기대어 상대를 악마화하기에 바쁜, 국민들께서 외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해 책임 있는 한 명의 정치인으로서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며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극단의 갈등 속에서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조정해 낼 정치적 역량을 제 안에서 찾지 못했다. 겸허히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민주당 역시 "집권 전후의 시간 동안 갈등 치유와 국민 통합에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반성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당 오영환 의원이 오늘(10일)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국민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민주당 오영환 의원이 오늘(10일)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국민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 다시 '소방공시생'으로

오 의원은 이제 다시 소방관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2019년 12월 이미 소방관을 퇴직한 상태인 만큼, 시험을 다시 치러야만 '현장'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오 의원은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올 마음이 전혀 없느냐는 질문엔 "제 사명은 대한민국 소방관이고, 평생 그렇게 살고자 10대부터 결심했다"며 " 소방관 출신으로서 국회 정치에서의 역할을 요청받아 거기에 최선을 다해 시간을 감당한 것이고, 이 이상을 감당하기 어려워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다시금 정치로의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남은 1년의 임기 동안 맡겨진 소명을 다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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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시 소방공시생으로”…88년생 국회의원, 불출마 선언한 이유는?
    • 입력 2023-04-10 16:59:49
    취재K

소방관이 되고 싶었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떠올린다. 감당할 수 없는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 손 내밀어 주는 사람. 그 든든하던 뒷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내 삶도 충분히 가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믿음 하나로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 달음질 끝에서, 절망해야 하는 순간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었다.
- 오영환, <어느 소방관의 기도> 中

제22대 총선을 꼭 1년 앞둔 오늘(10일), 더불어민주당의 원내대변인 오영환 의원(경기 의정부갑)이 내년 총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앞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던 21대 현역 의원은, 우상호 의원(4선, 서울 서대문갑), 김진표 의원(5선, 경기 수원시무) 등 중진 의원들뿐이었습니다. 1988년생의 젊은 초선 의원인 그는 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꽤 오랜 기간 고민을 거듭해왔다고 털어놨습니다.

소방관 출신인 그는 이제 다시 소방공무원 수험생 신분으로 돌아가겠다고 합니다.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결국 '국민 곁의 소방관'이라고 했습니다. 오 의원은 "요즘도 소방관 때 일이 꿈에 나온다. 어서 돌아가고 싶다"며 후련한 웃음을 지었습니다.

■ 잇따른 동료 소방관 순직에…"더 이상 버텨낼 여력 없어"

불출마를 결심한 결정적 계기는 소방관들의 잇따른 순직이었습니다. 오 의원은 지난해 소방관 3명이 순직했을 때를 언급하며 "저는 그들의 영결식이 끝난 뒤 많은 노력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한발 늦어버린 현실의 한계 앞에 절망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난달 9일, 전북 김제 화재 현장에서 인명 구조 작업 중 순직한 故 성공일 소방교의 영결식에 다녀온 그는 "만 29세, 또 한 명의 젊은 소방관의 유골을 현충원에 묻어야 했다. 그 자리에서 저는 더 이상 버텨낼 여력이 없는 저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였다"고 밝혔습니다.

오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더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꿈을 꿨다고 합니다. ▲대형 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한 소방시설법 전부개정과 화재예방법·화재조사법 제정, ▲소방관들이 각종 질병과 부상을 당했을 때 국가가 앞장서 보호토록 하는 소방관공상추정법 개정, ▲반복되는 대형화재의 주된 원인인 가연성 건축 자재를 더 이상 사용치 못하게 하는 건축법 개정 등을 자신의 성과로 꼽았습니다.

또, 지난해 10월 29일 159명의 생명을 앗아간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을 땐 국정조사 특위 위원으로 참여하며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는 데 힘썼고, 지난해 11월 경북 봉화에서 '광산사고'가 발생했을 땐 누구보다 빠르게 현장에 달려가 적극적인 구조를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마음의 짐을 다 내려놓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지난 3월 9일, 전북 김제 화재 구조 현장에서 순직한 故 성공일 소방교의 영결식 현장.
오 의원은 순직한 동료 소방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며 "제 마음속에 비석을 세웠다"고 했습니다. 국회에 묶여 있는 동안 각종 재난 현장에서 유명을 달리한 희생자들을 언급하며 "얼굴이 가슴에 맺혀있다"고 털어놨습니다. 소방관 재직 때는 국민의 주검을 마주할 때조차 또 다른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이겨낼 수 있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어 '내려놓을 용기'를 냈다고도 밝혔습니다.

"이제 저는 국민을 위해 헌신하던 제가 있던 곳이자 제가 있어야 할 곳, 저의 소망, 저의 사명, 국민 곁의 소방관으로 다시 돌아가고자 합니다. 소방관 출신으로 처음 국회에 입성했던 만큼 맡겨 주신 역할에 충실한 뒤 본인의 소명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정치에 대한 무너진 신뢰 회복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 수 있기를 감히 소망합니다."
- 오영환, 오늘(10일) 총선 불출마 기자회견 中

■ "尹, 손에 든 칼 내려놓아라"…진영 대립에 아쉬움 토로

오 의원은 자신이 겪은 정치 현실에 대한 아쉬움도 토로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정치는 상대 진영을 누가 더 효과적으로 오염시키는지를 승패의 잣대로 삼으려 하고 있다"며 "현 정부 실정을 지적하는 것조차 방탄이라는 이름으로 매도하고 모든 문제가 전 정부 탓이냐, 현 정부 무능 탓이냐의 극한 대립에서 단 한치도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그러면서 "작은 양보와 타협조차 쉽게 이루지 못하고 있다. 대화를 거부하고 오로지 수사와 감사의 칼부터 들이대는 윤석열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 고집이 가장 큰 문제"라며 " 윤석열 대통령께 한 말씀 고하고 싶다. 진정 국민의 삶과 국가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이제 그만 손에 든 칼을 내려놓으시기 바란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오 의원은 "오로지 진영 논리에 기대어 상대를 악마화하기에 바쁜, 국민들께서 외면하는 정치 현실에 대해 책임 있는 한 명의 정치인으로서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며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극단의 갈등 속에서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이들을 설득하고 조정해 낼 정치적 역량을 제 안에서 찾지 못했다. 겸허히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겁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민주당 역시 "집권 전후의 시간 동안 갈등 치유와 국민 통합에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반성해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민주당 오영환 의원이 오늘(10일)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국민들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 다시 '소방공시생'으로

오 의원은 이제 다시 소방관으로 돌아갈 준비를 합니다. 2019년 12월 이미 소방관을 퇴직한 상태인 만큼, 시험을 다시 치러야만 '현장'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오 의원은 다시 정치권으로 돌아올 마음이 전혀 없느냐는 질문엔 "제 사명은 대한민국 소방관이고, 평생 그렇게 살고자 10대부터 결심했다"며 " 소방관 출신으로서 국회 정치에서의 역할을 요청받아 거기에 최선을 다해 시간을 감당한 것이고, 이 이상을 감당하기 어려워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이기에 다시금 정치로의 생각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남은 1년의 임기 동안 맡겨진 소명을 다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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