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불거진 ‘美 도청’ 의혹…“40여 년간 120개국 엿들었다”

입력 2023.04.10 (17:36) 수정 2023.04.10 (18:4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미국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맹국들을 도청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트위터 등 SNS에 유출돼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와 정보당국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건에는 우크라이나 전황이 주로 담겼는데, 특히 여기엔 대한민국 외교·안보 콘트롤 타워인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의 대화 내용도 그대로 포함돼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일 포탄을 미국에 제공할지를 놓고 고심한 대목이 고스란히 담긴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달 하순 미국 방문을 앞두고 파문이 확산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과거 미국 정보당국의 도청 사례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 스노든 "수백만 명 개인정보 수집…우방국 정상도 감시"

2013년 미국 중앙정보국 CIA 전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무차별적 정보 수집을 폭로해 전 세계적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국가안보국(NSA)가 '프리즘(PRISM)'이라는 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수백만 명의 민간인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프랑스와 독일 등 우방국 정상들도 감시하고 있다고 폭로한 겁니다. 특히 독일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의 휴대전화까지 도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 오바마 美 대통령 "도청 중단"…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스노든 폭로 이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 정상을 상대로 한 도청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21년 5월, 덴마크 공영방송(DR)은 미 NSA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덴마크 해저 통신 케이블을 통해
메르켈 총리 등 유럽 고위 정ㆍ관계 인사들을 도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와의 화상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했습니다. "동맹국 사이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고, 피해 당사자 격인 메르켈 총리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 최근에만 도청?... WP "미 CIA, 40년간 120개국 기밀 엿들었다"

2020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CIA가 1970년부터 2018년까지 40여 년 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20여 개국을 상대로 첩보 작전을 펼쳐왔다고 폭로했습니다.

WP 보도에 따르면, CIA는 독일 연방정보부(BND)와 공조해 암호장비업체 '크립토 AG'를 실질적으로 운영했는데, 크립토 AG가 '전 세계 정부들에 판매한 암호 장비를 통해' 각국에서 오가는 기밀정보를 해제하고 가로챘다는 것입니다.

크립토 AG의 고객 국가 중엔 이란과 라틴 아메리카군부 정권, 핵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심지어 교황이 다스리는 바티칸까지 포함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회사를 통한 기밀 확보 작전은 '루비콘'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미 국가안보국(NSA)도 첩보 활동에 가담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WP는 첩보작전이 동맹국과 적국을 가리지 않았다며 미국은 "동맹이든 적이든 구분하지 않고 장비를 사게 해야 한다", "첩보의 세계에 친구란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습니다.


■ 1976년 '코리아게이트'로 불거진 청와대 도청 의혹

워싱턴포스트(WP)의 '도청' 보도는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6년 10월 24일, 무려 10면에 걸쳐 일명 '코리아게이트'를 보도한 겁니다. 주한미군철수 움직임 속에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재미 한국인 사업가 박동선이 미국 상·하원의원 및 공직자 20여 명에게 매년 50만~100만 달러에 이르는 불법 로비 자금을 줬고, 미 사법당국이 조사를 시작했다는 거였습니다.

특히 WP는 '극도로 민감한 정보장치'를 한국 정부의 최고위층과 주미한국대사관에 설치해 이같은 '매수' 정보를 입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여기서 '한국 정부의 최고위층'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있던 청와대를 의미했고, 따라서 미 당국이 청와대를 도청해 불법 로비 혐의를 포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1977년 6월 뉴욕타임스는 CIA가 도청을 통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관여 정황을 포착했다는 보도까지 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코리아게이트'는 1978년, 돈을 받은 현직의원 1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7명이 의회 징계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혈맹인 미국이 한국의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를 도청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한미 관계가 크게 악화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또 불거진 ‘美 도청’ 의혹…“40여 년간 120개국 엿들었다”
    • 입력 2023-04-10 17:36:39
    • 수정2023-04-10 18:43:17
    세계는 지금

미국이 우리나라를 포함한 동맹국들을 도청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트위터 등 SNS에 유출돼 파문이 일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와 정보당국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건에는 우크라이나 전황이 주로 담겼는데, 특히 여기엔 대한민국 외교·안보 콘트롤 타워인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의 대화 내용도 그대로 포함돼 있습니다. 다른 나라에 살상 무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우크라이나 전쟁에 쓰일 포탄을 미국에 제공할지를 놓고 고심한 대목이 고스란히 담긴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이달 하순 미국 방문을 앞두고 파문이 확산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과거 미국 정보당국의 도청 사례도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 스노든 "수백만 명 개인정보 수집…우방국 정상도 감시"

2013년 미국 중앙정보국 CIA 전 요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이 무차별적 정보 수집을 폭로해 전 세계적 파장을 불러왔습니다. 국가안보국(NSA)가 '프리즘(PRISM)'이라는 감시 프로그램을 통해 수백만 명의 민간인 뿐만 아니라 한국과 일본, 프랑스와 독일 등 우방국 정상들도 감시하고 있다고 폭로한 겁니다. 특히 독일 앙겔라 메르켈 당시 총리의 휴대전화까지 도청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 오바마 美 대통령 "도청 중단"…그러나 이후에도 계속

스노든 폭로 이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동맹국 정상을 상대로 한 도청을 중단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21년 5월, 덴마크 공영방송(DR)은 미 NSA가 2012년부터 2014년까지 덴마크 해저 통신 케이블을 통해
메르켈 총리 등 유럽 고위 정ㆍ관계 인사들을 도청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메르켈 총리와의 화상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사건의 진실을 밝히라고 요구했습니다. "동맹국 사이에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고, 피해 당사자 격인 메르켈 총리도 이에 동의했습니다.


■ 최근에만 도청?... WP "미 CIA, 40년간 120개국 기밀 엿들었다"

2020년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CIA가 1970년부터 2018년까지 40여 년 간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120여 개국을 상대로 첩보 작전을 펼쳐왔다고 폭로했습니다.

WP 보도에 따르면, CIA는 독일 연방정보부(BND)와 공조해 암호장비업체 '크립토 AG'를 실질적으로 운영했는데, 크립토 AG가 '전 세계 정부들에 판매한 암호 장비를 통해' 각국에서 오가는 기밀정보를 해제하고 가로챘다는 것입니다.

크립토 AG의 고객 국가 중엔 이란과 라틴 아메리카군부 정권, 핵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심지어 교황이 다스리는 바티칸까지 포함됐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회사를 통한 기밀 확보 작전은 '루비콘'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미 국가안보국(NSA)도 첩보 활동에 가담했던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WP는 첩보작전이 동맹국과 적국을 가리지 않았다며 미국은 "동맹이든 적이든 구분하지 않고 장비를 사게 해야 한다", "첩보의 세계에 친구란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전했습니다.


■ 1976년 '코리아게이트'로 불거진 청와대 도청 의혹

워싱턴포스트(WP)의 '도청' 보도는 4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76년 10월 24일, 무려 10면에 걸쳐 일명 '코리아게이트'를 보도한 겁니다. 주한미군철수 움직임 속에 한국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재미 한국인 사업가 박동선이 미국 상·하원의원 및 공직자 20여 명에게 매년 50만~100만 달러에 이르는 불법 로비 자금을 줬고, 미 사법당국이 조사를 시작했다는 거였습니다.

특히 WP는 '극도로 민감한 정보장치'를 한국 정부의 최고위층과 주미한국대사관에 설치해 이같은 '매수' 정보를 입수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여기서 '한국 정부의 최고위층'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있던 청와대를 의미했고, 따라서 미 당국이 청와대를 도청해 불법 로비 혐의를 포착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1977년 6월 뉴욕타임스는 CIA가 도청을 통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관여 정황을 포착했다는 보도까지 내놓기에 이르렀습니다.

'코리아게이트'는 1978년, 돈을 받은 현직의원 1명이 유죄판결을 받고 7명이 의회 징계를 받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혈맹인 미국이 한국의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를 도청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며 한미 관계가 크게 악화 되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