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쓰지마” 외치고 사라진 그들…경찰청장 “늑장 보고 확인할 것”

입력 2023.04.11 (07:00) 수정 2023.04.12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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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40대 여성이 납치돼 숨진 사건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에 연루된 7명을 입건하고 주요 피의자인 이경우, 황대한, 연지호 세 사람을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겼습니다.

경찰은 어제(9일) 이 사건 관련 브리핑을 열고, 사실상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요 피의자들의 신병, 범행 증거와 진술 등을 확보한 점을 열거하며, 총력을 모아 수사에 집중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수사 성과 뒤엔, 사건 발생 직후 경찰 지휘부의 아쉬운 초동 대응이 남아 있습니다. KBS는 당시의 수사 기록 등을 토대로, 그날의 타임라인을 짚어 봤습니다.

■ "신경쓰지 말고 가라"…급박했던 추적 순간들

지난달 29일 밤 11시 46분, 주범 이경우를 비롯한 피의자 3명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아파트 앞 도로에서 피해자인 40대 여성을 납치했습니다.

당시 인근에 있던 목격자는 즉각 112에 자신이 본 내용을 신고했습니다. 상황보고서에 남은 신고 기록은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남성 두 분이 / 한 명이 여성을 때리고 / 한 명은 차에 있었고 / 잡아간 거 같다고 / 여성이 살려 달라고 소리 지르고/ 신고자가 소리 지르니 끌고 도망갔다고 / 때리던 사람은 신고자에게 신경쓰지 말고 가라 하고 / 가는척 하니까 같이 차량 타고 간 것 같다고 / 차량번호 불상 / 차를 아예 못 봤다고 / 검정색 같고 K7 같은 세단차량
(자료 제공 :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실)

경찰이 밝힌 조사 내용 등을 종합하면, 당시 피해자를 때린 남성 두 명은 공범 황대한과 연지호로 추정됩니다. 신고자는 이들이 자신을 향해 " 신경쓰지 말고 가라"고 했다며 비교적 상세히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같은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사건 발생 3분 만인 11시 49분, 출동 최고 수준 단계인 '코드제로'를 발동하고 8명의 인력을 현장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피의자들의 차량은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자정을 넘긴 30일 0시 무렵, 경찰은 인근 CCTV에서 피의자들이 피해자를 폭행하고 현장을 떠나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새벽 1시, 경찰은 서울청 관내에 일제히 수배 지령을 내렸고 3시에는 대전 둔산경찰서에 공조요청을 넣었습니다.

이후 서울과 경기, 대전, 충북 등 동원된 현장 인력만 172명. 경찰은 결국 30일 오전 8시, 대전에서 피의자의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경찰은 납치 이틀 뒤인 31일 오전 10시 45분과, 오후 1시 15분, 오후 5시 40분 피의자 3명을 각각 붙잡았습니다.

지난 6일 해외 출장에서 귀국한 윤희근 경찰청장이 KBS 취재진의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지난 6일 해외 출장에서 귀국한 윤희근 경찰청장이 KBS 취재진의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

■ "보고 지연 아쉬움"…감찰은 언제쯤?

숨가빴던 현장, 하지만 지휘부의 시계는 조금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사건 관할서인 수서경찰서 백남익 서장은 지난달 30일 아침 7시, 상황 팀장에게서 카카오톡으로 사건 관련 첫 보고를 받았습니다. 피의자가 암매장 된 것으로 추정되는 새벽 6시보다 1시간이 지난 시각입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같은 날인 30일 오전 6시 55분, 문자로 첫 보고를 받았고, 이후 3시간 뒤인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수서경찰서장의 유선 보고가 이뤄졌습니다.

최고 지휘부까지의 보고는 더 늦었습니다. 당시 해외 출장 중이던 윤희근 경찰청장을 대신해 청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던 조지호 경찰청 차장은 30일 오전 11시 14분에서야 사건 보고를 받았습니다.

종합해보면 사건 관련 경찰 지휘부는 모두 피의자들이 범행을 끝내고, 서울과 성남 등으로 도주한 이후에서야 첫 보고를 받았습니다. 112 신고 접수가 사건 발생 즉시 이뤄졌고, 신고 접수 3분 만에 일선 경찰이 출동하는 등 긴박했던 현장 상황과는 대조됩니다.

현장 대응과 상응하는 지휘부 보고가 이뤄졌다면, 전국적으로 보다 신속한 공조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이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지난 3일,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기자간담회에서 "보고가 늦은 것은 사실"이라며 감찰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 6일,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경찰 최고 책임자, 윤희근 청장을 직접 만나 '강남 납치 사건 관련 지휘부 보고가 늦어진 점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윤 청장은 "제가 해외에 있으면서 진행 상황을 다 체크를 하긴 했는데 보고가 지연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다시 확인을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오늘(10일) 오후 현재까지, 경찰은 감찰 관련 지시나 의사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수사를 이번주 안에 마무리하고, 사건에 연루된 재력가 부부를 조만간 검찰로 넘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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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경쓰지마” 외치고 사라진 그들…경찰청장 “늑장 보고 확인할 것”
    • 입력 2023-04-11 07:00:52
    • 수정2023-04-12 15:13:38
    취재K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40대 여성이 납치돼 숨진 사건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 사건에 연루된 7명을 입건하고 주요 피의자인 이경우, 황대한, 연지호 세 사람을 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겼습니다.

경찰은 어제(9일) 이 사건 관련 브리핑을 열고, 사실상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주요 피의자들의 신병, 범행 증거와 진술 등을 확보한 점을 열거하며, 총력을 모아 수사에 집중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수사 성과 뒤엔, 사건 발생 직후 경찰 지휘부의 아쉬운 초동 대응이 남아 있습니다. KBS는 당시의 수사 기록 등을 토대로, 그날의 타임라인을 짚어 봤습니다.

■ "신경쓰지 말고 가라"…급박했던 추적 순간들

지난달 29일 밤 11시 46분, 주범 이경우를 비롯한 피의자 3명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아파트 앞 도로에서 피해자인 40대 여성을 납치했습니다.

당시 인근에 있던 목격자는 즉각 112에 자신이 본 내용을 신고했습니다. 상황보고서에 남은 신고 기록은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남성 두 분이 / 한 명이 여성을 때리고 / 한 명은 차에 있었고 / 잡아간 거 같다고 / 여성이 살려 달라고 소리 지르고/ 신고자가 소리 지르니 끌고 도망갔다고 / 때리던 사람은 신고자에게 신경쓰지 말고 가라 하고 / 가는척 하니까 같이 차량 타고 간 것 같다고 / 차량번호 불상 / 차를 아예 못 봤다고 / 검정색 같고 K7 같은 세단차량
(자료 제공 : 더불어민주당 이성만 의원실)

경찰이 밝힌 조사 내용 등을 종합하면, 당시 피해자를 때린 남성 두 명은 공범 황대한과 연지호로 추정됩니다. 신고자는 이들이 자신을 향해 " 신경쓰지 말고 가라"고 했다며 비교적 상세히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같은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사건 발생 3분 만인 11시 49분, 출동 최고 수준 단계인 '코드제로'를 발동하고 8명의 인력을 현장에 보냈습니다. 하지만 피의자들의 차량은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자정을 넘긴 30일 0시 무렵, 경찰은 인근 CCTV에서 피의자들이 피해자를 폭행하고 현장을 떠나는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새벽 1시, 경찰은 서울청 관내에 일제히 수배 지령을 내렸고 3시에는 대전 둔산경찰서에 공조요청을 넣었습니다.

이후 서울과 경기, 대전, 충북 등 동원된 현장 인력만 172명. 경찰은 결국 30일 오전 8시, 대전에서 피의자의 차량을 발견했습니다. 경찰은 납치 이틀 뒤인 31일 오전 10시 45분과, 오후 1시 15분, 오후 5시 40분 피의자 3명을 각각 붙잡았습니다.

지난 6일 해외 출장에서 귀국한 윤희근 경찰청장이 KBS 취재진의 질의에 대답하고 있다.
■ "보고 지연 아쉬움"…감찰은 언제쯤?

숨가빴던 현장, 하지만 지휘부의 시계는 조금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사건 관할서인 수서경찰서 백남익 서장은 지난달 30일 아침 7시, 상황 팀장에게서 카카오톡으로 사건 관련 첫 보고를 받았습니다. 피의자가 암매장 된 것으로 추정되는 새벽 6시보다 1시간이 지난 시각입니다.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은 같은 날인 30일 오전 6시 55분, 문자로 첫 보고를 받았고, 이후 3시간 뒤인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수서경찰서장의 유선 보고가 이뤄졌습니다.

최고 지휘부까지의 보고는 더 늦었습니다. 당시 해외 출장 중이던 윤희근 경찰청장을 대신해 청장 직무대리를 맡고 있던 조지호 경찰청 차장은 30일 오전 11시 14분에서야 사건 보고를 받았습니다.

종합해보면 사건 관련 경찰 지휘부는 모두 피의자들이 범행을 끝내고, 서울과 성남 등으로 도주한 이후에서야 첫 보고를 받았습니다. 112 신고 접수가 사건 발생 즉시 이뤄졌고, 신고 접수 3분 만에 일선 경찰이 출동하는 등 긴박했던 현장 상황과는 대조됩니다.

현장 대응과 상응하는 지휘부 보고가 이뤄졌다면, 전국적으로 보다 신속한 공조가 이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입니다. 이같은 여론을 의식한 듯 지난 3일, 국가수사본부 관계자는 기자간담회에서 "보고가 늦은 것은 사실"이라며 감찰을 암시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은 지난 6일,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경찰 최고 책임자, 윤희근 청장을 직접 만나 '강남 납치 사건 관련 지휘부 보고가 늦어진 점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습니다.

윤 청장은 "제가 해외에 있으면서 진행 상황을 다 체크를 하긴 했는데 보고가 지연된 부분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다시 확인을 해볼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오늘(10일) 오후 현재까지, 경찰은 감찰 관련 지시나 의사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된 수사를 이번주 안에 마무리하고, 사건에 연루된 재력가 부부를 조만간 검찰로 넘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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