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후루룩-.
낮 12시, 대구시 신천동의 한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온통 컵라면 먹는 소리만 들린다. 실내는 얼큰한 냄새로 가득하다.
앳된 얼굴의 학생 열 댓명이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다.
'새우탕, 불닭볶음면, 김치라면...'
저마다 먹는 컵라면도 다양하다. 삼각김밥과 소시지도 곁들이는 아이들도 있다.
즐거운 점심 시간이지만 어쩐지 아이들의 얼굴이 밝지만 않다.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은 지가 벌써 40일째이기 때문이다.
■ 배 고파 서러운 아이들
'일반고 특화훈련'이라는 제도가 있다.
인문계 고3 학생 중, 대학 진학보다 취업을 희망하는 친구를 모아 직업 훈련을 시켜주는 것이다.
미용과 요리, 자동차 정비 등 전공도 다양하다.
학생들은 1년 간 직업학교에서 위탁 교육을 받은 뒤 취업에 나선다.
직업 학교에 간 친구들은 1년 동안 직업 훈련을 받고 취업에 나선다.
지난 달, 19살 민수(가명)도 그런 이유로 대구의 한 직업학교에 입학했다.
자동차 정비 일을 하는 민수의 아버지가 이 일을 추천했다. 대학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민수는 취업을 택했다.
그런데 입학 첫 날, 예상치 못한 일에 맞닥뜨렸다. 학교에서 점심 식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직업학교가 원래 일반인 대상으로 운영되던 곳이라 급식 시설 자체가 없었다.
민수는 난감했다.
"그동안 학교에서 급식이 있어서 점심을 안 준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직업 학교에선 급식 대신 하루 식대 3,300원을 줄거라고 했다.
제도를 운영하는 고용노동부에서 '훈련장려금' 명목으로, 학생 한 명당 하루 식대 3,300원과 교통비 2, 500원을 지급하고 있었다.
같은 건물 구내 식당에 가보니, 밥값이 7천 원이었다. 바깥 식당 밥값은 더 비쌌다.
'매일 7천 원 주고 밥을 따로 사먹어야 하다니...'
민수와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매일 컵라면 먹는 아이들.
컵라면 하나에 1,800원. 삼각김밥 하나에 1,500원. 하루 식대 3,300원을 다 썼다.
그렇게 입학 두 달 째, 아이들은 매일 편의점 컵라면을 먹으며 직업 훈련을 받고 있다.
■ '직업 훈련 받으면 학생이 아닌가요?'
민수 엄마 고영희(가명) 씨는 이런 일이 믿기지 않았다.
"원래는 따뜻한 급식밥 먹을 애들인데... 직업 훈련을 받으면 학생이 아닌 건가요?"
자식을 직업학교에 보낸 학부모. 훈련장려금 식대비가 낮은 현실을 안타까워 했다.
당장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줬다. 그러나 정성들여 만든 도시락은 점심 시간 즈음 식었다.
매일 도시락 싸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민수도 엄마의 수고스러움에 미안해했다. 결국, 영희 씨는 도시락 싸는 일을 포기했다.
민수는 다시 편의점으로 향했다. 5천 원 짜리 도시락정식도 맛있어 보였다.
그러나 매일 용돈 헐어서 점심 값에 보태기가, 19살 학생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19살... 한창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였다. 소설을 좋아하는 민수는 책을 사야 했고, 헤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수진이는 돈을 모아 미용 도구를 사고 싶었다.
용돈 받는 친구들은 사정이 나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삼각김밥 하나 더 사먹으려고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직업훈련을 받는 아이들. 식대비를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 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 아르바이트를 안 하면 저는 점심을 굶어야 해요."
직업학교 청소년들의 서러운 점심 식사가 매일 이어지고 있다.
■ 뒷순위로 밀려난 훈련장려금 인상안
고영희 씨가 고용노동부에 따져물었다.
"키가 크는 성장기 아이들인데, 어떻게 밥 값을 3천 원만 주나요. 애들이 매일 컵라면만 먹고 있어요."
고용노동부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정책과의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고 했다. 그래서 인상을 장담 못 한다고 했다.
매달 아이들에게 지급되는 훈련장려금은 11만 6천 원이다.
(하루 급식비 3,300원 + 교통비 2,500원/ 매달 20일 치)
이 금액은 제도가 생긴 2015년 이후로 9년째 동결이다.
이와 비교해 시도별 무상급식 단가는 매년 물가인상에 따라 조금씩 오르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의 올해 고등학교 무상급식 단가는 4,880원이다.
게다가 고용노동부는 훈련장려금을 두 달 뒤에 지급한다. 지급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1. 한 달간 훈련을 모두 끝내고
2. 그 훈련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했는지 출석 등을 체크한 뒤 지급. (출석률 80%)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민수와 친구들은 직업학교에 입학한 지 40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자기 돈으로 밥을 사먹고 있다는 것이다.
"저 이제 계좌에 천 원이 남았어요"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희수(가명)는 당장 오늘 편의점에서 컵라면 사 먹을 돈이 없다고 했다.
■ "직업 학교에 보낸 것이 마음 아파요"
영희 씨는 아들을 직업학교에 보낸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차라리 남들 다 가는 대학 보낼 걸 괜히 직업학교에 보내 밥도 못 먹게 한 것 같다는 것이다.
"힘들고 질려요. 저는 밥을 먹고 싶은데 자꾸 인스턴트만 먹으니까 속도 더부룩해지고." "공부하면서 배가 고파서 힘들어하는 애들도 있고 그럴 때가 많아요."
아이들도 저마다 힘겨움을 토로했다.
이런 친구들은 전국 직업학교 191곳에 모두 6,815 명이다.
<자율·창의적 직업능력개발 지원> 고용노동부의 제도 소개 글이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능력 개발도 아이들 밥을 잘 챙겨준 다음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고용노동부는 식대를 언제 올릴 수 있냐는 KBS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하여 훈련장려금 증액을 위한 예산 당국과의 협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 협의는 학생들이 따뜻한 밥을 먹고 직업 훈련에 매진할 수 있도록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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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 밥값 3,300원…“급식이라도 먹을 수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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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4-13 08:00:17
후루룩-. 후루룩-.
낮 12시, 대구시 신천동의 한 편의점.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온통 컵라면 먹는 소리만 들린다. 실내는 얼큰한 냄새로 가득하다.
앳된 얼굴의 학생 열 댓명이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을 먹고 있다.
'새우탕, 불닭볶음면, 김치라면...'
저마다 먹는 컵라면도 다양하다. 삼각김밥과 소시지도 곁들이는 아이들도 있다.
즐거운 점심 시간이지만 어쩐지 아이들의 얼굴이 밝지만 않다.
컵라면으로 점심을 먹은 지가 벌써 40일째이기 때문이다.
■ 배 고파 서러운 아이들
'일반고 특화훈련'이라는 제도가 있다.
인문계 고3 학생 중, 대학 진학보다 취업을 희망하는 친구를 모아 직업 훈련을 시켜주는 것이다.
미용과 요리, 자동차 정비 등 전공도 다양하다.
학생들은 1년 간 직업학교에서 위탁 교육을 받은 뒤 취업에 나선다.
지난 달, 19살 민수(가명)도 그런 이유로 대구의 한 직업학교에 입학했다.
자동차 정비 일을 하는 민수의 아버지가 이 일을 추천했다. 대학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민수는 취업을 택했다.
그런데 입학 첫 날, 예상치 못한 일에 맞닥뜨렸다. 학교에서 점심 식사가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직업학교가 원래 일반인 대상으로 운영되던 곳이라 급식 시설 자체가 없었다.
민수는 난감했다.
"그동안 학교에서 급식이 있어서 점심을 안 준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어요."
직업 학교에선 급식 대신 하루 식대 3,300원을 줄거라고 했다.
제도를 운영하는 고용노동부에서 '훈련장려금' 명목으로, 학생 한 명당 하루 식대 3,300원과 교통비 2, 500원을 지급하고 있었다.
같은 건물 구내 식당에 가보니, 밥값이 7천 원이었다. 바깥 식당 밥값은 더 비쌌다.
'매일 7천 원 주고 밥을 따로 사먹어야 하다니...'
민수와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컵라면 하나에 1,800원. 삼각김밥 하나에 1,500원. 하루 식대 3,300원을 다 썼다.
그렇게 입학 두 달 째, 아이들은 매일 편의점 컵라면을 먹으며 직업 훈련을 받고 있다.
■ '직업 훈련 받으면 학생이 아닌가요?'
민수 엄마 고영희(가명) 씨는 이런 일이 믿기지 않았다.
"원래는 따뜻한 급식밥 먹을 애들인데... 직업 훈련을 받으면 학생이 아닌 건가요?"
당장 아침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싸줬다. 그러나 정성들여 만든 도시락은 점심 시간 즈음 식었다.
매일 도시락 싸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민수도 엄마의 수고스러움에 미안해했다. 결국, 영희 씨는 도시락 싸는 일을 포기했다.
민수는 다시 편의점으로 향했다. 5천 원 짜리 도시락정식도 맛있어 보였다.
그러나 매일 용돈 헐어서 점심 값에 보태기가, 19살 학생의 주머니 사정으로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19살... 한창 하고 싶은 것이 많은 나이였다. 소설을 좋아하는 민수는 책을 사야 했고, 헤어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수진이는 돈을 모아 미용 도구를 사고 싶었다.
용돈 받는 친구들은 사정이 나았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삼각김밥 하나 더 사먹으려고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지금 아르바이트를 안 하면 저는 점심을 굶어야 해요."
직업학교 청소년들의 서러운 점심 식사가 매일 이어지고 있다.
■ 뒷순위로 밀려난 훈련장려금 인상안
고영희 씨가 고용노동부에 따져물었다.
"키가 크는 성장기 아이들인데, 어떻게 밥 값을 3천 원만 주나요. 애들이 매일 컵라면만 먹고 있어요."
고용노동부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인상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정책과의 우선 순위에서 밀린다 고 했다. 그래서 인상을 장담 못 한다고 했다.
매달 아이들에게 지급되는 훈련장려금은 11만 6천 원이다.
(하루 급식비 3,300원 + 교통비 2,500원/ 매달 20일 치)
이 금액은 제도가 생긴 2015년 이후로 9년째 동결이다.
이와 비교해 시도별 무상급식 단가는 매년 물가인상에 따라 조금씩 오르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의 올해 고등학교 무상급식 단가는 4,880원이다.
게다가 고용노동부는 훈련장려금을 두 달 뒤에 지급한다. 지급 조건이 있기 때문이다.
1. 한 달간 훈련을 모두 끝내고
2. 그 훈련을 얼마나 성실히 수행했는지 출석 등을 체크한 뒤 지급. (출석률 80%)
이 말이 무슨 말이냐면, 민수와 친구들은 직업학교에 입학한 지 40일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자기 돈으로 밥을 사먹고 있다는 것이다.
"저 이제 계좌에 천 원이 남았어요"
헤어 디자이너를 꿈꾸는 희수(가명)는 당장 오늘 편의점에서 컵라면 사 먹을 돈이 없다고 했다.
■ "직업 학교에 보낸 것이 마음 아파요"
영희 씨는 아들을 직업학교에 보낸 것이 미안하다고 했다.
차라리 남들 다 가는 대학 보낼 걸 괜히 직업학교에 보내 밥도 못 먹게 한 것 같다는 것이다.
"힘들고 질려요. 저는 밥을 먹고 싶은데 자꾸 인스턴트만 먹으니까 속도 더부룩해지고." "공부하면서 배가 고파서 힘들어하는 애들도 있고 그럴 때가 많아요."
아이들도 저마다 힘겨움을 토로했다.
이런 친구들은 전국 직업학교 191곳에 모두 6,815 명이다.
<자율·창의적 직업능력개발 지원> 고용노동부의 제도 소개 글이다.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능력 개발도 아이들 밥을 잘 챙겨준 다음에야 가능하지 않을까?
고용노동부는 식대를 언제 올릴 수 있냐는 KBS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물가 상승을 고려하여 훈련장려금 증액을 위한 예산 당국과의 협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 협의는 학생들이 따뜻한 밥을 먹고 직업 훈련에 매진할 수 있도록 마무리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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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영 기자 jyp@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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