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최대 69시간'을 허용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의 입법예고 기간이 내일(17일)로 끝난다. 그러나 당장 국회 법안 제출을 위한 후속 절차가 진행되진 않을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 이후 고용노동부가 부리나케 의견 수렴에 나섰지만, 아직 수정안을 만들지 못했다.
정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개편안이 언제, 어떻게 수정될지 모두 안갯속이다. 정부는 곧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그 결과에 따라 개편 동력이 다시 생길 수도, 상실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 '오해'는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한 게 지난달 14일이다. 이후 고용부는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현장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했다.
3월에 주로 만난 건 20~30대 노동자들이었다.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10개 노조의 협의체인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하고만 간담회를 두 번 했다. IT, 정보통신, 디스플레이 업체 현장 간담회도 참석자는 주로 청년 노동자들이었다. 청년위원 40명으로 구성된 '노동의미래' 포럼, 고용부 2030 자문단과도 만났다. 이달 들어선 제조업을 주로 방문하고 있다.
간담회에선 '개편안이 악용될 가능성'뿐 아니라 '개편안 자체'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그간 고용부는 개편 명분으로 '젊은 세대가 원한다'고 강조해왔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부인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유준환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 의장은 지난달 16일 국회 토론회에서 '주 52시간보다 더 일하고 싶어하는 수요가 있다'는 고용부 설명에 대해 "적어도 노동자 쪽의 주장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52시간을 초과해 일하고 싶다는 노동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예외적 상황을 이유로,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입법을 하는 것이라 우려가 크다"고 했다.
'노동자 선택권을 확대했다'는 설명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유 의장은 "보통 유연하게 쓴다는 것은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떠올리지 연장근로를 유연하게 쓰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통상적인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초과근로를 몰아 쓰게 하는 것이 노동자에게 좋을 게 없다는 의미다.
그 밖에도 '주 69시간을 일하면 나중엔 덜 일해야 하지만, 대체인력 없는 영세 사업장에선 불가능하다', '노조가 없으면 중간 관리자가 근로자 대표를 맡아 사측이 원하는 대로 합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또 "근로감독을 철저히 하겠다"는 말보다 악용 가능성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달라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 홍보 실패? 달라진 당·정 분위기
지난달만 해도 정부·여당에선 개편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란 태도였다. 개편안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그 취지와 내용이 정확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홍보 실패'라는 뜻이다.
지난달 14일 윤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 당일, 고용부는 "제도 개편 방안과 관련하여 일부 비현실적 가정을 토대로 잘못된 오해가 있다"며 개편안 '수정'보다 '설명'에 방점을 찍었다. 이틀 뒤에 열린 국회 토론회에선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가짜뉴스와 소통 부족으로 장시간 근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엔 '오해'란 말이 더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원점에서 개편 자체를 고민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1일 한 현장 간담회에서 "근로자 의사에 반해서는 어떤 개편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근로시간을 조정하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쏠리는 것은 어렵다, 총량이 더 늘지 모른다는 우려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근로시간 개편에 앞서 개편 취지대로 제도가 작동할 수 있을 거라는 신뢰 확보가 먼저라는 얘기다. 당정은 자유로운 휴가 사용을 보장하고,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방안 등을 근로시간 개편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
■ 여론조사가 '분수령'
당초 당정은 입법예고가 끝나는 대로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심의 등 후속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지만 모두 보류됐다. 이에 따라 6월에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당정은 의견 수렴의 하나로 곧 대국민 여론조사과 심층면접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고용부는 현재 여론조사 질문지 문항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항이 편향될 경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신뢰성'을 두고 또다시 논란이 일 수 있는 탓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문항에는 '주당 근로시간 상한'으로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에 관한 질문이 포함될 수도 있다. 기존 개편안은 현재 1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를 특정 기간에 몰아 쓸 수 있게 하되, 나중에 그만큼 덜 일하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주 최대근로시간은 현재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어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주 최대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사실상 주 최대 '상한'을 정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근로시간 개편은 동력을 잃을 수도, 살아날 수도 있다. 지난 8일부터 이틀간 SBS가 '넥스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근로시간 개편 반대가 58.2%로 절반을 넘었고, '찬성'은 36.8%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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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터엔] ‘주 최대 69시간’ 입법예고 종료…여론조사가 ‘분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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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4-16 08:00:09
'주 최대 69시간'을 허용하는 근로시간 개편안의 입법예고 기간이 내일(17일)로 끝난다. 그러나 당장 국회 법안 제출을 위한 후속 절차가 진행되진 않을 예정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 이후 고용노동부가 부리나케 의견 수렴에 나섰지만, 아직 수정안을 만들지 못했다.
정부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 개편안이 언제, 어떻게 수정될지 모두 안갯속이다. 정부는 곧 국민 여론조사를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그 결과에 따라 개편 동력이 다시 생길 수도, 상실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 '오해'는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한 게 지난달 14일이다. 이후 고용부는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현장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했다.
3월에 주로 만난 건 20~30대 노동자들이었다.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10개 노조의 협의체인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하고만 간담회를 두 번 했다. IT, 정보통신, 디스플레이 업체 현장 간담회도 참석자는 주로 청년 노동자들이었다. 청년위원 40명으로 구성된 '노동의미래' 포럼, 고용부 2030 자문단과도 만났다. 이달 들어선 제조업을 주로 방문하고 있다.
간담회에선 '개편안이 악용될 가능성'뿐 아니라 '개편안 자체'에 대한 우려가 쏟아졌다. 그간 고용부는 개편 명분으로 '젊은 세대가 원한다'고 강조해왔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부인하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유준환 새로고침노동자협의회 의장은 지난달 16일 국회 토론회에서 '주 52시간보다 더 일하고 싶어하는 수요가 있다'는 고용부 설명에 대해 "적어도 노동자 쪽의 주장은 아니"라고 반박했다. "52시간을 초과해 일하고 싶다는 노동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예외적 상황을 이유로, 일반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입법을 하는 것이라 우려가 크다"고 했다.
'노동자 선택권을 확대했다'는 설명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유 의장은 "보통 유연하게 쓴다는 것은 주 40시간을 기준으로 떠올리지 연장근로를 유연하게 쓰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통상적인 근무시간을 유연하게 쓰는 것이 아니라, 초과근로를 몰아 쓰게 하는 것이 노동자에게 좋을 게 없다는 의미다.
그 밖에도 '주 69시간을 일하면 나중엔 덜 일해야 하지만, 대체인력 없는 영세 사업장에선 불가능하다', '노조가 없으면 중간 관리자가 근로자 대표를 맡아 사측이 원하는 대로 합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또 "근로감독을 철저히 하겠다"는 말보다 악용 가능성을 막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달라는 목소리도 있었다고 한다.
■ 홍보 실패? 달라진 당·정 분위기
지난달만 해도 정부·여당에선 개편안에 대한 반대 여론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란 태도였다. 개편안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그 취지와 내용이 정확히 설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른바 '홍보 실패'라는 뜻이다.
지난달 14일 윤 대통령의 재검토 지시 당일, 고용부는 "제도 개편 방안과 관련하여 일부 비현실적 가정을 토대로 잘못된 오해가 있다"며 개편안 '수정'보다 '설명'에 방점을 찍었다. 이틀 뒤에 열린 국회 토론회에선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가짜뉴스와 소통 부족으로 장시간 근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그러나 최근엔 '오해'란 말이 더는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원점에서 개편 자체를 고민하는 분위기도 읽힌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난 11일 한 현장 간담회에서 "근로자 의사에 반해서는 어떤 개편도 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근로시간을 조정하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너무 쏠리는 것은 어렵다, 총량이 더 늘지 모른다는 우려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근로시간 개편에 앞서 개편 취지대로 제도가 작동할 수 있을 거라는 신뢰 확보가 먼저라는 얘기다. 당정은 자유로운 휴가 사용을 보장하고, 포괄임금제를 금지하는 방안 등을 근로시간 개편과 함께 논의하고 있다.
■ 여론조사가 '분수령'
당초 당정은 입법예고가 끝나는 대로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심의 등 후속 절차를 밟을 예정이었지만 모두 보류됐다. 이에 따라 6월에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는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당정은 의견 수렴의 하나로 곧 대국민 여론조사과 심층면접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이다. 고용부는 현재 여론조사 질문지 문항을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참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문항이 편향될 경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신뢰성'을 두고 또다시 논란이 일 수 있는 탓에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다.
문항에는 '주당 근로시간 상한'으로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에 관한 질문이 포함될 수도 있다. 기존 개편안은 현재 1주 12시간으로 제한된 연장근로를 특정 기간에 몰아 쓸 수 있게 하되, 나중에 그만큼 덜 일하도록 하고 있다. 이 경우 주 최대근로시간은 현재 52시간에서 69시간으로 늘어난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주 최대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사실상 주 최대 '상한'을 정했다는 해석도 나왔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근로시간 개편은 동력을 잃을 수도, 살아날 수도 있다. 지난 8일부터 이틀간 SBS가 '넥스트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근로시간 개편 반대가 58.2%로 절반을 넘었고, '찬성'은 36.8%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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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희 기자 bombo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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