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2만 원만 보내줄 수 있어?”…전세 사기에 바스러진 청춘의 삶

입력 2023.04.19 (10:09) 수정 2023.04.19 (10:12)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전세사기 피해자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전세사기 피해자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

지난 14일, 위에 보이는 건물에서 한 20대 남성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투잡, 쓰리잡을 해 가며 열심히 살아왔던 이 푸른 청춘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삶의 의지를 한순간에 내려놓게 된 걸까요.

■ "공단에서 모은 월급으로 마련한 첫 전셋집"…따뜻했던 가족들의 격려

20대 남성 A 씨는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인천의 공단에 들어갔습니다.

공단에서 일하며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2019년 인천시 미출홀구의 한 아파트에 전세보증금 9천만 원을 내고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됩니다.

A 씨가 혼자 힘으로 마련한 첫 전셋집이었습니다. 노력 끝에 얻은 소중한 집이었습니다.

가족들 역시 "잘했다, 고생했다"는 격려를 보냈다고 합니다.

■ 뒤늦게 알게 된 '건축왕'의 사기 행각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A 씨가 살았던 아파트는 이른바 '인천 건축왕'으로 알려진 남 씨 일당이 소유했던 건물로, 전세 사기 행각이 드러나면서 지난해 6월 경매에 넘어간 겁니다.

전세자금을 몽땅 날려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덜컥 A씨를 덮쳤습니다.

경매에 넘어간 아파트가 낙찰되더라도 받을 수 있는 돈은 최우선변제금 3,400만 원뿐이었습니다.

해당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A 씨는 가족들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A 씨의 가족들은 "전세사기 문제로 친구들과 의논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면서 "알지 못했던 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A 씨의 집 앞에 쌓여 있는 생수와 택배A 씨의 집 앞에 쌓여 있는 생수와 택배

■ "엄마, 2만 원이면 되는데 왜 10만 원이나 보냈어"

숨지기 며칠 전, A 씨는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A 씨가 어머니에게 부탁한 돈은 2만 원이었습니다. 2만 원만 보내달라는 부탁이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10만 원을 보내준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A 씨는 "2만 원만 있으면 되는데 왜 돈을 많이 넣었어. 나는 2만 원만 있으면 되는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2만 원을 빌릴 정도로 A 씨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셋집을 얻으며 받았던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지난해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뒀습니다.

A 씨의 가족들은 "이자를 못 내니까 퇴직금으로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A 씨의 친구 역시 "한 달에 감당해야 할 이자 금액을 얼핏 들었는데 매우 많았다"면서 "공장을 그만두고 난 뒤에도 투잡, 쓰리잡까지 하며 뛰어다녔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3주 전쯤부터 급속도로 어두워졌고, 친구들이 찾아와도 밖을 나가지 않았다"면서 "일부러 정을 떼려 했나 싶기도 했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A 씨가 발견된 아파트 우편함에는 찾아가지 않은 고지서들도 쌓여 있었습니다.


A 씨의 우편함.  찾아가지 않은 고지서들이 쌓여 있었던 모습.A 씨의 우편함. 찾아가지 않은 고지서들이 쌓여 있었던 모습.

■ "어른스럽고 착한 친구였던 A 씨"…그에겐 아무 잘못도 없었다

전셋집에 들어온 후 2년 동안이 가장 행복했다던 A 씨. 그는 착한 이웃이었고, 어른스러운 친구였습니다.

A 씨와 앞집에 살던 이웃 최은선 씨는 "전세사기와 관련해 대책위원회 활동을 함께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했다"면서 "음료수와 빵을 전달해줄 정도로 착했던 사람이다"고 말했습니다.

A 씨의 친구 역시 "동네친구 중에서 가장 어른스럽고 모난 곳이 없었던 친구였다"고 전했습니다.

A 씨는 전세사기와 대출 이자로 힘든 상황에서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필요한 거 없나' 묻고 챙기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 "이대로 가면 사망자가 계속 나올 것"

전세사기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피해자가 잇따르는 가운데, 참여연대 등 65개 시민·사회단체는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피해 구제를 촉구했습니다.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대로 가면 사망자가 계속 나올 것이다"면서 "임차인을 구제할 제도와 함께 임대인이 우위인 전세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재난이 아니면 뭐냐. 지금도 가해자 인권만 보호하고 있다"면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때까지 경·공매 중단이 시급한 상황"이다고 말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엄마, 2만 원만 보내줄 수 있어?”…전세 사기에 바스러진 청춘의 삶
    • 입력 2023-04-19 10:09:25
    • 수정2023-04-19 10:12:09
    취재K
전세사기 피해자 A씨가 숨진 채 발견된 인천시 미추홀구의 한 아파트
지난 14일, 위에 보이는 건물에서 한 20대 남성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투잡, 쓰리잡을 해 가며 열심히 살아왔던 이 푸른 청춘은, 도대체 무슨 일을 겪었기에 삶의 의지를 한순간에 내려놓게 된 걸까요.

■ "공단에서 모은 월급으로 마련한 첫 전셋집"…따뜻했던 가족들의 격려

20대 남성 A 씨는 특성화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 인천의 공단에 들어갔습니다.

공단에서 일하며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2019년 인천시 미출홀구의 한 아파트에 전세보증금 9천만 원을 내고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됩니다.

A 씨가 혼자 힘으로 마련한 첫 전셋집이었습니다. 노력 끝에 얻은 소중한 집이었습니다.

가족들 역시 "잘했다, 고생했다"는 격려를 보냈다고 합니다.

■ 뒤늦게 알게 된 '건축왕'의 사기 행각

하지만 행복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A 씨가 살았던 아파트는 이른바 '인천 건축왕'으로 알려진 남 씨 일당이 소유했던 건물로, 전세 사기 행각이 드러나면서 지난해 6월 경매에 넘어간 겁니다.

전세자금을 몽땅 날려버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덜컥 A씨를 덮쳤습니다.

경매에 넘어간 아파트가 낙찰되더라도 받을 수 있는 돈은 최우선변제금 3,400만 원뿐이었습니다.

해당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도 A 씨는 가족들에게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A 씨의 가족들은 "전세사기 문제로 친구들과 의논하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심각한 줄은 몰랐다"면서 "알지 못했던 게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A 씨의 집 앞에 쌓여 있는 생수와 택배
■ "엄마, 2만 원이면 되는데 왜 10만 원이나 보냈어"

숨지기 며칠 전, A 씨는 어머니에게 돈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A 씨가 어머니에게 부탁한 돈은 2만 원이었습니다. 2만 원만 보내달라는 부탁이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10만 원을 보내준 어머니와의 통화에서 A 씨는 "2만 원만 있으면 되는데 왜 돈을 많이 넣었어. 나는 2만 원만 있으면 되는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2만 원을 빌릴 정도로 A 씨는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전셋집을 얻으며 받았던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했고, 결국 지난해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뒀습니다.

A 씨의 가족들은 "이자를 못 내니까 퇴직금으로 갚아야 하는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힘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A 씨의 친구 역시 "한 달에 감당해야 할 이자 금액을 얼핏 들었는데 매우 많았다"면서 "공장을 그만두고 난 뒤에도 투잡, 쓰리잡까지 하며 뛰어다녔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3주 전쯤부터 급속도로 어두워졌고, 친구들이 찾아와도 밖을 나가지 않았다"면서 "일부러 정을 떼려 했나 싶기도 했다"며 당시 기억을 떠올렸습니다.

A 씨가 발견된 아파트 우편함에는 찾아가지 않은 고지서들도 쌓여 있었습니다.


A 씨의 우편함.  찾아가지 않은 고지서들이 쌓여 있었던 모습.
■ "어른스럽고 착한 친구였던 A 씨"…그에겐 아무 잘못도 없었다

전셋집에 들어온 후 2년 동안이 가장 행복했다던 A 씨. 그는 착한 이웃이었고, 어른스러운 친구였습니다.

A 씨와 앞집에 살던 이웃 최은선 씨는 "전세사기와 관련해 대책위원회 활동을 함께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해했다"면서 "음료수와 빵을 전달해줄 정도로 착했던 사람이다"고 말했습니다.

A 씨의 친구 역시 "동네친구 중에서 가장 어른스럽고 모난 곳이 없었던 친구였다"고 전했습니다.

A 씨는 전세사기와 대출 이자로 힘든 상황에서도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필요한 거 없나' 묻고 챙기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 "이대로 가면 사망자가 계속 나올 것"

전세사기로 극단적 선택을 하는 피해자가 잇따르는 가운데, 참여연대 등 65개 시민·사회단체는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피해 구제를 촉구했습니다.

안상미 미추홀구 전세사기 피해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이대로 가면 사망자가 계속 나올 것이다"면서 "임차인을 구제할 제도와 함께 임대인이 우위인 전세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이것이 재난이 아니면 뭐냐. 지금도 가해자 인권만 보호하고 있다"면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 때까지 경·공매 중단이 시급한 상황"이다고 말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KBS는 올바른 여론 형성을 위해 자유로운 댓글 작성을 지지합니다.
다만 이 기사는 일부 댓글에 모욕・명예훼손 등 현행법에 저촉될 우려가 발견돼 건전한 댓글 문화 정착을 위해 댓글 사용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양해를 바랍니다.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