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절망의 제3세계를 살리는 건 중국? IMF?

입력 2023.04.22 (10:02) 수정 2023.04.22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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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 어렵다

무역적자가 벌써(20일까지) 누적 265억 달러에 달했다. 4월이 다 지나간 것도 아닌데, 벌써 지난해 적자(472억 달러)의 56%까지 차 올랐다. 수입은 늘고 수출은 줄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 물가는 치솟았고, 내다 파는 반도체 수출 실적은 곤두박질 쳤다.

IMF는 내수도 지적했다. 한국은 주택시장 조정과 소비 둔화, 그리고 긴축 정책 등의 영향을 겪고 있다. 성장률은 1.5%까지 낮췄다. 경제가 잿빛이다.

이유를 꼽자면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거대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이 인플레를 잡으려고 세계가 함께한 고금리 정책'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가 겪는 이 무역적자와 성장의 둔화는 사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약한 증상'에 속한다.

■더 어려운 나라는 차고 넘친다

자기 위안이 아니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후폭풍 때문에 국가 단위의 '채무 불이행'이나 '구조조정' 위기를 겪는 나라가 21개다. (이코노미스트지) 21개국 총 인구는 7억 명 이상, 빚은 1조 3천억 달러 이상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20년 이후 실제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나라만 14개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1997년에 맞았던 외환위기 같은 위기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스리랑카다. 이미 지난해 4월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코로나19로 관광산업이 마비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원자재 값이 치솟자 버티지 못했다. 물가 상승률은 60%에 달했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해외 도피했다. 잠비아는 2020년에 이미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레바논도, 가나도 IMF를 찾고 있다.


문제는 구제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소 7개 나라가 1년 이상 IMF와의 협상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에티오피아는 2년 넘게 기다리고 있다. 수리남과 잠비아는 IMF 자금을 확보하기는 했는데, 아직 받아 시장에 풀지는 못하고 있다.

스리랑카도 그랬다. IMF가 자금을 지원한다는 소식은 국가 부도 직후부터 계속됐다. 구체적인 지원 금액 보도도 이미 반년 전에 나왔다. 하지만 실제 자금은 거의 1년 만인 지난달(3월) 겨우, 그것도 일부만 지원됐다.

이렇게 위기 국가 구제가 늦어지면, 위기는 전염된다. 외신들은 파키스탄이나 라오스, 미얀마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한다. IMF도 '부채 위기를 방치하면 스리랑카 사태가 전 세계로 퍼진다'고 걱정한다.

그런데 자타공인 해결사, IMF가 너무나도 굼뜨다.

■ IMF가 굼뜬 이유, 중국이다

스리랑카가 위기로 걸어 들어간 과정을 보자. 2005년 대통령이 된 라자팍사는 족벌 정치를 했다. 초반에는 내전 상대인 타밀 반군을 잔혹하게 진압해 인기도 얻었다. 2010년 재선 뒤, 각종 항만과 공항 등 SOC 투자에 나섰다. 한때 성장률은 거의 두 자릿수에 달했다. 돈은 외채로 조달했다. 중국이 도와줬다. 친구가 되자고 했다. '일대일로'( BRI, Belt and Road Initiative)라고 했다.

그러나 신기루는 금방 꺼졌다. 빚으로 지은 국제공항 이용객은 하루 10명에 그쳤다. 포브스지는 '세계에서 가장 텅 빈 공항'으로 선정했다. 다른 SOC도 장사가 별로였다. 빚을 갚을 수 없었다. 그러자 2017년, 중국 자본으로 지은 '함반토타' 항구 운영권을 '중국항만공사'가 가져갔다. 99년간 중국이 운영해 수익을 가져간다.


중국 정부의 돈을 빌려간 나라들 대부분이 빚을 못갚는다. 채무 상환이 늦어지고, 다들 채무 재조정을 원한다. 그러다 결국 사업을 접고 중국을 비난한다. 이 상황이 무슨 유행처럼 나라를 바꿔가며 되풀이된다.

파키스탄도 중국에서 5조 원 정도를 빌렸다가 못 갚았다. 총리는 해임됐고, 그 돈으로 건설한 항구는 중국이 운영한다. 라오스도 중국과 연결하는 철도를 중국 돈 6조 원 정도(국가 GDP의 30% 육박)를 빌려 지었다. 사실상의 디폴트 상태인 몬테네그로도 중국 돈 빌려 고속도로 짓는다. 중국 정부는 미얀마 천연가스도 파이프라인으로 직접 가져간다.
-(2022.04.24) [특파원 리포트] 중국 돈 빌려 썼더니 공항·항구가 넘어갔다.

■ IMF "빚 구조조정 뒤 자금 지원하자"

중국이 빌려준 돈은 쉽게 '부실채권'이 된다. 필요 없는 SOC를 짓는 데 썼거나, 권력자의 통치 자금으로 썼거나, 부정부패의 원천이 된 자금이 많으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빌려줄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이 부실 채권, '빚잔치'를 해야 한다. IMF는 이 분야의 전문가다. IMF는 구제금융에 앞서 채권국에 요구한다. '빚 다 받을 생각 말고 탕감부터 좀 하고 시작합시다'. 채무 구조조정이다.

문제는 중국이 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의 채권 금액만 깎는 협상은 못 한다'고 버틴다. 구제금융 사전 협상이 무한정 길어지는 이유다.

그 결과 최근 IMF의 자금 집행실적은 초라하다. 2020년 코로나 위기가 발발하자마자 '1조 달러의 비상 자금을 마련했다'면서 위기 극복을 위해 쓰겠다 선언만 했다. 실제 집행은 5% 수준인 510억 달러 밖에 못했다. (이코노미스트지) 없어서 못 준게 아니고 '빚잔치가 안 끝나 못 준 것'이다.

IMF 입장은 이렇다. 만약 빚 탕감을 안 하면, IMF가 빌려준 돈은 고스란히 중국 빚 갚는 데 쓰게 된다. 장사 하루 이틀 하나. 중국만 좋은 일 된다. 부도 난 국가의 경제에는 도움도, 교훈도 안된다. 교훈을 얻지 못한 저개발국의 독재자들은 IMF가 요구하는 개혁조치도 잘 이행하지 않게 된다. 계속 개혁을 요구하면, IMF는 쳐다보지 않고 다시 중국으로 가서 손을 벌린다. 돈을 빌린다. 그리고 악순환이다. 그러니 중국 채권을 줄이는 '빚 재구조화'는 필수다.


■ 사실 중국도 진퇴양난이다

중국은 이때마다 '중국 채권이 봉이냐'고 소리 높인다. 중국 돈 깎으려면 IMF나 세계은행이 빌려준 돈도 깎으라고 요구한다. 심술 가득한 채권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만, 중국 입장을 살펴보면 진퇴양난이기도 하다.

일대일로(BRI)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올 하반기, 대대적인 10주년 선전이 예정되어 있다. FT는 중국이 지금껏 BRI에 1조 달러 정도를 부었고, 이 가운데 지난 3년 동안 재협상 ·탕감한 돈이 785억 달러, 8%에 가깝다고 했다.

150개 가까운 참여국가들의 경제가 '인플레와 고금리' 상황 때문에 동시다발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상당수에 대해서는 추가 '구제금융'까지 내줬다. FT는 OECD가 분석한 117개 BRI 참여국가들의 신용 위험도를 살펴봤더니 절반에 가까운 56개 국가가 최하위 등급이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친구가 된 나라들은 이렇게 큰 타격을 받았다.


이게 중국이 내몰린 상황이다. 부실한 나라들에 조건 없이 돈 빌려준 결과다. 중국은 이미 IMF를 제치고, 세계에서 부도 위기에 처한 국가에 구제금융을 가장 많이 제공하는 주체가 되었다. 최소 65개 나라가 외채의 10% 이상을 중국에 빚지고 있다.

그러니 빌려준 돈 깎는 협상(Common Framework)에 한 번 응하면, 똑같은 협상을 열 번, 백 번 해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빚 탕감이 싫을 수밖에.

그러니 깎더라도 IMF나 세계은행 채권도 함께 깎자고 '물귀신 작전'을 벌이지만, IMF는 난색이다. IMF는 부실 국가 구조조정 자금을 낮은 이율에 조달해야 한다. 기관 신용도가 높아야 한다. 빌려준 돈은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그러니 중국 요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합의가 안된다. IMF 기능이 멈춘다.

■ IMF와 중국의 양보할 수 없는 싸움

IMF와 중국이 싸운다. 이상한 풍경이지만, 올해 봄 연례 IMF 총회에서 가장 뜨거운 현안이었다. 중국은 '우리도 빚 구조조정에 응하겠다'고 말은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별로 없다.

그 사이 IMF의 자리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역할을 할 수 없는 '불능의 상태'다. 위기 국가의 위기는 장기화되고, 전이 가능성도 커진다.

사실 IMF가 출범 때부터 지금 같은 '국가 구조조정 전문기구'였던 것은 아니다. 2차 대전 뒤 출범 당시에는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환율 안정성을 지키고, 국제무역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돌보는 역할을 했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진 뒤에야, 부도 국가에 단기금융자금을 주는 대신 개혁을 요구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그 개혁의 방향은 언제나 지분의 17%를 가진, 그래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 '미국'의 의지와 일치했다. 1997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당시, 우리는 IMF라고 쓰고 미국의 요구라고 읽었다.

이제 그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면서, 경제는 성장시키고 싶고, 동시에 정치적 참견은 받고 싶지 않은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IMF 대신 중국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빌려줄 때 너그럽다. 개혁이나 민주화, 인권을 들먹이지 않고 돈을 내어준다. 담보만 확실히 하면 된다.

그러니까 중국은 지금 BRI로 IMF를 대체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미·중 경쟁시대의 한 단면이다.

다만, 앞서 살폈듯 BRI는 위태롭다. 중국은 진퇴양난에 처해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돈으로 친구를 살 수 있을지는 모른다. 또 '친구가 되자'는 BRI의 진짜 속내는 '돈을 갚지 못하게 되었을 때' 드러날지도 모른다.

물론 그때는 깨달아도 늦다. 국빈들은 화를 내고, 국가 발전은 저만치 멀어지고, IMF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싸우는 미·중 경쟁시대의 중국과 IMF,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라는 절망의 늪에 빠진 제3세계를 구하는 건 과연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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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말엔] 절망의 제3세계를 살리는 건 중국? IMF?
    • 입력 2023-04-22 10:02:37
    • 수정2023-04-22 16:50:54
    주말엔

■한국 경제, 어렵다

무역적자가 벌써(20일까지) 누적 265억 달러에 달했다. 4월이 다 지나간 것도 아닌데, 벌써 지난해 적자(472억 달러)의 56%까지 차 올랐다. 수입은 늘고 수출은 줄었으니 당연한 결과다. 에너지와 원자재 수입 물가는 치솟았고, 내다 파는 반도체 수출 실적은 곤두박질 쳤다.

IMF는 내수도 지적했다. 한국은 주택시장 조정과 소비 둔화, 그리고 긴축 정책 등의 영향을 겪고 있다. 성장률은 1.5%까지 낮췄다. 경제가 잿빛이다.

이유를 꼽자면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큰 이유는 '거대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이 인플레를 잡으려고 세계가 함께한 고금리 정책'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우리가 겪는 이 무역적자와 성장의 둔화는 사실 다른 나라들과 비교하면 '약한 증상'에 속한다.

■더 어려운 나라는 차고 넘친다

자기 위안이 아니다. 인플레이션과 고금리 후폭풍 때문에 국가 단위의 '채무 불이행'이나 '구조조정' 위기를 겪는 나라가 21개다. (이코노미스트지) 21개국 총 인구는 7억 명 이상, 빚은 1조 3천억 달러 이상이다. (파이낸셜타임스는 2020년 이후 실제 채무불이행을 선언한 나라만 14개라고 했다.) 우리나라가 1997년에 맞았던 외환위기 같은 위기다.

가장 잘 알려진 사례는 스리랑카다. 이미 지난해 4월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코로나19로 관광산업이 마비되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원자재 값이 치솟자 버티지 못했다. 물가 상승률은 60%에 달했다. 라자팍사 전 대통령은 해외 도피했다. 잠비아는 2020년에 이미 채무불이행을 선언했다. 레바논도, 가나도 IMF를 찾고 있다.


문제는 구제가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소 7개 나라가 1년 이상 IMF와의 협상을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에티오피아는 2년 넘게 기다리고 있다. 수리남과 잠비아는 IMF 자금을 확보하기는 했는데, 아직 받아 시장에 풀지는 못하고 있다.

스리랑카도 그랬다. IMF가 자금을 지원한다는 소식은 국가 부도 직후부터 계속됐다. 구체적인 지원 금액 보도도 이미 반년 전에 나왔다. 하지만 실제 자금은 거의 1년 만인 지난달(3월) 겨우, 그것도 일부만 지원됐다.

이렇게 위기 국가 구제가 늦어지면, 위기는 전염된다. 외신들은 파키스탄이나 라오스, 미얀마로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한다. IMF도 '부채 위기를 방치하면 스리랑카 사태가 전 세계로 퍼진다'고 걱정한다.

그런데 자타공인 해결사, IMF가 너무나도 굼뜨다.

■ IMF가 굼뜬 이유, 중국이다

스리랑카가 위기로 걸어 들어간 과정을 보자. 2005년 대통령이 된 라자팍사는 족벌 정치를 했다. 초반에는 내전 상대인 타밀 반군을 잔혹하게 진압해 인기도 얻었다. 2010년 재선 뒤, 각종 항만과 공항 등 SOC 투자에 나섰다. 한때 성장률은 거의 두 자릿수에 달했다. 돈은 외채로 조달했다. 중국이 도와줬다. 친구가 되자고 했다. '일대일로'( BRI, Belt and Road Initiative)라고 했다.

그러나 신기루는 금방 꺼졌다. 빚으로 지은 국제공항 이용객은 하루 10명에 그쳤다. 포브스지는 '세계에서 가장 텅 빈 공항'으로 선정했다. 다른 SOC도 장사가 별로였다. 빚을 갚을 수 없었다. 그러자 2017년, 중국 자본으로 지은 '함반토타' 항구 운영권을 '중국항만공사'가 가져갔다. 99년간 중국이 운영해 수익을 가져간다.


중국 정부의 돈을 빌려간 나라들 대부분이 빚을 못갚는다. 채무 상환이 늦어지고, 다들 채무 재조정을 원한다. 그러다 결국 사업을 접고 중국을 비난한다. 이 상황이 무슨 유행처럼 나라를 바꿔가며 되풀이된다.

파키스탄도 중국에서 5조 원 정도를 빌렸다가 못 갚았다. 총리는 해임됐고, 그 돈으로 건설한 항구는 중국이 운영한다. 라오스도 중국과 연결하는 철도를 중국 돈 6조 원 정도(국가 GDP의 30% 육박)를 빌려 지었다. 사실상의 디폴트 상태인 몬테네그로도 중국 돈 빌려 고속도로 짓는다. 중국 정부는 미얀마 천연가스도 파이프라인으로 직접 가져간다.
-(2022.04.24) [특파원 리포트] 중국 돈 빌려 썼더니 공항·항구가 넘어갔다.

■ IMF "빚 구조조정 뒤 자금 지원하자"

중국이 빌려준 돈은 쉽게 '부실채권'이 된다. 필요 없는 SOC를 짓는 데 썼거나, 권력자의 통치 자금으로 썼거나, 부정부패의 원천이 된 자금이 많으니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빌려줄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

이 부실 채권, '빚잔치'를 해야 한다. IMF는 이 분야의 전문가다. IMF는 구제금융에 앞서 채권국에 요구한다. '빚 다 받을 생각 말고 탕감부터 좀 하고 시작합시다'. 채무 구조조정이다.

문제는 중국이 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의 채권 금액만 깎는 협상은 못 한다'고 버틴다. 구제금융 사전 협상이 무한정 길어지는 이유다.

그 결과 최근 IMF의 자금 집행실적은 초라하다. 2020년 코로나 위기가 발발하자마자 '1조 달러의 비상 자금을 마련했다'면서 위기 극복을 위해 쓰겠다 선언만 했다. 실제 집행은 5% 수준인 510억 달러 밖에 못했다. (이코노미스트지) 없어서 못 준게 아니고 '빚잔치가 안 끝나 못 준 것'이다.

IMF 입장은 이렇다. 만약 빚 탕감을 안 하면, IMF가 빌려준 돈은 고스란히 중국 빚 갚는 데 쓰게 된다. 장사 하루 이틀 하나. 중국만 좋은 일 된다. 부도 난 국가의 경제에는 도움도, 교훈도 안된다. 교훈을 얻지 못한 저개발국의 독재자들은 IMF가 요구하는 개혁조치도 잘 이행하지 않게 된다. 계속 개혁을 요구하면, IMF는 쳐다보지 않고 다시 중국으로 가서 손을 벌린다. 돈을 빌린다. 그리고 악순환이다. 그러니 중국 채권을 줄이는 '빚 재구조화'는 필수다.


■ 사실 중국도 진퇴양난이다

중국은 이때마다 '중국 채권이 봉이냐'고 소리 높인다. 중국 돈 깎으려면 IMF나 세계은행이 빌려준 돈도 깎으라고 요구한다. 심술 가득한 채권자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지만, 중국 입장을 살펴보면 진퇴양난이기도 하다.

일대일로(BRI)가 올해로 10년을 맞았다. 올 하반기, 대대적인 10주년 선전이 예정되어 있다. FT는 중국이 지금껏 BRI에 1조 달러 정도를 부었고, 이 가운데 지난 3년 동안 재협상 ·탕감한 돈이 785억 달러, 8%에 가깝다고 했다.

150개 가까운 참여국가들의 경제가 '인플레와 고금리' 상황 때문에 동시다발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상당수에 대해서는 추가 '구제금융'까지 내줬다. FT는 OECD가 분석한 117개 BRI 참여국가들의 신용 위험도를 살펴봤더니 절반에 가까운 56개 국가가 최하위 등급이었다고 보도했다. 중국의 친구가 된 나라들은 이렇게 큰 타격을 받았다.


이게 중국이 내몰린 상황이다. 부실한 나라들에 조건 없이 돈 빌려준 결과다. 중국은 이미 IMF를 제치고, 세계에서 부도 위기에 처한 국가에 구제금융을 가장 많이 제공하는 주체가 되었다. 최소 65개 나라가 외채의 10% 이상을 중국에 빚지고 있다.

그러니 빌려준 돈 깎는 협상(Common Framework)에 한 번 응하면, 똑같은 협상을 열 번, 백 번 해야 하게 될지도 모른다. 빚 탕감이 싫을 수밖에.

그러니 깎더라도 IMF나 세계은행 채권도 함께 깎자고 '물귀신 작전'을 벌이지만, IMF는 난색이다. IMF는 부실 국가 구조조정 자금을 낮은 이율에 조달해야 한다. 기관 신용도가 높아야 한다. 빌려준 돈은 반드시 회수해야 한다. 그러니 중국 요구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합의가 안된다. IMF 기능이 멈춘다.

■ IMF와 중국의 양보할 수 없는 싸움

IMF와 중국이 싸운다. 이상한 풍경이지만, 올해 봄 연례 IMF 총회에서 가장 뜨거운 현안이었다. 중국은 '우리도 빚 구조조정에 응하겠다'고 말은 했다. 하지만 실질적인 진전은 별로 없다.

그 사이 IMF의 자리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역할을 할 수 없는 '불능의 상태'다. 위기 국가의 위기는 장기화되고, 전이 가능성도 커진다.

사실 IMF가 출범 때부터 지금 같은 '국가 구조조정 전문기구'였던 것은 아니다. 2차 대전 뒤 출범 당시에는 '브레턴우즈 체제'에서 환율 안정성을 지키고, 국제무역이 안정적으로 성장하게 돌보는 역할을 했다. 브레턴우즈 체제가 무너진 뒤에야, 부도 국가에 단기금융자금을 주는 대신 개혁을 요구하는 역할을 떠맡았다. 그 개혁의 방향은 언제나 지분의 17%를 가진, 그래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국가 '미국'의 의지와 일치했다. 1997년 우리나라의 외환위기 당시, 우리는 IMF라고 쓰고 미국의 요구라고 읽었다.

이제 그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면서, 경제는 성장시키고 싶고, 동시에 정치적 참견은 받고 싶지 않은 수많은 제3세계 국가들이 IMF 대신 중국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빌려줄 때 너그럽다. 개혁이나 민주화, 인권을 들먹이지 않고 돈을 내어준다. 담보만 확실히 하면 된다.

그러니까 중국은 지금 BRI로 IMF를 대체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미·중 경쟁시대의 한 단면이다.

다만, 앞서 살폈듯 BRI는 위태롭다. 중국은 진퇴양난에 처해있다. 언제까지 이렇게 돈으로 친구를 살 수 있을지는 모른다. 또 '친구가 되자'는 BRI의 진짜 속내는 '돈을 갚지 못하게 되었을 때' 드러날지도 모른다.

물론 그때는 깨달아도 늦다. 국빈들은 화를 내고, 국가 발전은 저만치 멀어지고, IMF는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싸우는 미·중 경쟁시대의 중국과 IMF, 인플레이션과 고금리라는 절망의 늪에 빠진 제3세계를 구하는 건 과연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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