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언니가 좋아할 장례를 치르고 싶었어요”…친언니 장례식에서 춤을 춘 사연

입력 2023.04.23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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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에서 춤을 췄다고요?

엄숙하기만 한 우리 장례 문화와 다르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고인이 좋아하던 물건을 두고 공연을 하는 등 특별한 장례식으로 친언니를 떠나보낸 가수 이랑 씨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 "저 남자인데요?"

영화감독이자 가수인 이랑(37) 씨는 2021년 12월에 세 살 터울의 친언니를 떠나보내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조문객들이 봤을 때 본인이 상주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기 바란 이 씨. 하지만 상조회사 직원은 "여자는 상주 완장을 착용할 수는 없고, 머리 리본을 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 남자니까 그냥 그거 주세요"라고 이 씨가 대답하자 상주 완장을 내어줬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경황이 없던 것도 잠시, '원래 그런 것들'에 이 씨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원래'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원래'는 '지금'과 또 다른 시간이니까요."


"장례식장 기본 세팅이 언니답지 않은 거예요."

이 씨는 언니를 '사랑이 너무 많은 공주 같은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상주 역할을 맡으며 장례식장을 둘러본 이 씨는 빈소가 언니답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언니를 잘 떠올릴 수 있게 바꾸고 싶었습니다.

언니가 평소에 좋아하는 인형, 액세서리 등을 가지고 와서 장례식장을 꾸미기 시작했고 이 소식을 들은 지인들도 선물을 사 들고 왔다고 합니다.

고인의 유품과 선물로 가득 찬 빈소고인의 유품과 선물로 가득 찬 빈소

장례식장의 댄스 공연

원래 언니는 그해 크리스마스에 댄스 공연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언니는 준비에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잘 알았던 이 씨는 언니의 댄스팀 친구들에게 "하기로 했던 공연을 여기서 보여주자"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몇 번의 연습 끝에 시작된 단 한 번의 공연. 언니가 영안실에 있는 지금, 같은 공간에 있을 때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노라고 이 씨는 말합니다.

"'무슨 장례를 치르는데 저러고 있어'라는 비판도 있겠지만, 한 번쯤 새로운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빈소에서 공연을 해도 되나 보네'라는 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기회이지 않았나 싶어요."


'언니다운' 장례식을 치른 이 씨는 모두가 '자기다운' 장례에 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을 후회 없이 맞이하고 싶기에 이 씨에게 장례식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어색하지 않습니다.

"장례식은 그 사람한테 딱 한 번만 있는 행사이고 다음은 없잖아요. 슬픈 날이니까 이야기하지 말자는 식으로 계속 넘어가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이 되게 후회가 많이 남는 것 같아요."

■ 내가 꿈꾸는 나의 장례식은?

여의도공원에서 "내가 꿈꾸는 나의 장례식은 무엇입니까?"라고 여러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박다솜 씨는 본인의 그림들을 장례식장에 전시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윤현주 씨는 '슬프기만 한 것보다는 고인이 즐겁게 살다 갔다고 느낄 수 있는 장례식'을, 유재윤 씨는 '살아있는 가족들 본인들 방식으로 하는 장례식'을 원했습니다.

추모식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승욱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 추모플래너는 "유족들과 고인의 유품을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면 다 같이 웃기도 한다"며 "죽음을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를

당시 이랑 씨는 언니의 장례식 모습을 SNS에 올렸습니다. 많은 공감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이 씨는 "본인은 작은 변화를 준 것뿐"이라며 "사실 모두가 새로운 생각을 기다렸던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논의가 앞으로 계속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를 이 씨는 바라고 있습니다.

"평생 봐왔던 똑같은 모습의 장례식보다는 좀 더 자기다운 장례가 치러지고 있을 때 기쁘지 않을까요?"

'지하가 아니고 햇빛이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따뜻한 분위기'. 이랑 씨가 상상하는 본인 장례식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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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4-23 10:04:18
    주말엔

장례식장에서 춤을 췄다고요?

엄숙하기만 한 우리 장례 문화와 다르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고인이 좋아하던 물건을 두고 공연을 하는 등 특별한 장례식으로 친언니를 떠나보낸 가수 이랑 씨의 사연을 들어봤습니다.

■ "저 남자인데요?"

영화감독이자 가수인 이랑(37) 씨는 2021년 12월에 세 살 터울의 친언니를 떠나보내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조문객들이 봤을 때 본인이 상주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기 바란 이 씨. 하지만 상조회사 직원은 "여자는 상주 완장을 착용할 수는 없고, 머리 리본을 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 남자니까 그냥 그거 주세요"라고 이 씨가 대답하자 상주 완장을 내어줬다고 합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에 경황이 없던 것도 잠시, '원래 그런 것들'에 이 씨는 의문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원래'라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원래'는 '지금'과 또 다른 시간이니까요."


"장례식장 기본 세팅이 언니답지 않은 거예요."

이 씨는 언니를 '사랑이 너무 많은 공주 같은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상주 역할을 맡으며 장례식장을 둘러본 이 씨는 빈소가 언니답지 않았다고 느꼈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언니를 잘 떠올릴 수 있게 바꾸고 싶었습니다.

언니가 평소에 좋아하는 인형, 액세서리 등을 가지고 와서 장례식장을 꾸미기 시작했고 이 소식을 들은 지인들도 선물을 사 들고 왔다고 합니다.

고인의 유품과 선물로 가득 찬 빈소
장례식장의 댄스 공연

원래 언니는 그해 크리스마스에 댄스 공연을 할 예정이었습니다. 언니는 준비에 열심이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잘 알았던 이 씨는 언니의 댄스팀 친구들에게 "하기로 했던 공연을 여기서 보여주자"라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몇 번의 연습 끝에 시작된 단 한 번의 공연. 언니가 영안실에 있는 지금, 같은 공간에 있을 때 공연을 보여주고 싶었노라고 이 씨는 말합니다.

"'무슨 장례를 치르는데 저러고 있어'라는 비판도 있겠지만, 한 번쯤 새로운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빈소에서 공연을 해도 되나 보네'라는 식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기회이지 않았나 싶어요."


'언니다운' 장례식을 치른 이 씨는 모두가 '자기다운' 장례에 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을 후회 없이 맞이하고 싶기에 이 씨에게 장례식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어색하지 않습니다.

"장례식은 그 사람한테 딱 한 번만 있는 행사이고 다음은 없잖아요. 슬픈 날이니까 이야기하지 말자는 식으로 계속 넘어가기만 하면 주변 사람들이 되게 후회가 많이 남는 것 같아요."

■ 내가 꿈꾸는 나의 장례식은?

여의도공원에서 "내가 꿈꾸는 나의 장례식은 무엇입니까?"라고 여러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박다솜 씨는 본인의 그림들을 장례식장에 전시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윤현주 씨는 '슬프기만 한 것보다는 고인이 즐겁게 살다 갔다고 느낄 수 있는 장례식'을, 유재윤 씨는 '살아있는 가족들 본인들 방식으로 하는 장례식'을 원했습니다.

추모식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승욱 한겨레두레협동조합연합회 추모플래너는 "유족들과 고인의 유품을 가지고 이야기하다 보면 다 같이 웃기도 한다"며 "죽음을 무겁게만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를

당시 이랑 씨는 언니의 장례식 모습을 SNS에 올렸습니다. 많은 공감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사람들이 온라인상에서 각자의 생각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이 씨는 "본인은 작은 변화를 준 것뿐"이라며 "사실 모두가 새로운 생각을 기다렸던 것 같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논의가 앞으로 계속되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기를 이 씨는 바라고 있습니다.

"평생 봐왔던 똑같은 모습의 장례식보다는 좀 더 자기다운 장례가 치러지고 있을 때 기쁘지 않을까요?"

'지하가 아니고 햇빛이 자연스럽게 들어오는, 따뜻한 분위기'. 이랑 씨가 상상하는 본인 장례식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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