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미·중 대결’에 서서히 빨려 들어가나

입력 2023.04.2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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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T, 백악관이 한국에 미·중 분쟁 격화 시 미국 편 들어달라 요구

파이낸셜타임스(FT)가 미국이 한국에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될 경우 미국의 요청을 들어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의 제목은 <US urges South Korea not to fill China shortfalls if Beijing bans Micron chips : 미국은 한국에 '만약 중국이 마이크론 반도체 금지령을 내릴경우 중국의 부족분을 메워주지 말 것'을 촉구했다>이다.

구체적으로는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판매에 대한 요구다. '중국이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을 제재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중국은 모자라는 메모리 반도체를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통해 더 수입하려 할 텐데, 이 경우 '더 수출하지는 말아줄 수 있겠니?'하는 요구다.

FT는 기사에서 백악관과 용산 대통령실에 가까운 네 명의 확인을 거쳤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직접 오늘(월요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떠날 윤석열 대통령 측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요구가 사실이라면 미국이 중국과의 대결 국면에 한국의 직접적인 참전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을 제재하면, 중국의 요구를 거절하라는 요청이고, 이는 분쟁이 일어날 경우 한국은 미국 편이라는 선언을 하라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가진 특허를 이용한 장비를 중국 공장에 들일 때는 미국의 허락을 받으라'거나, 또는 '미국에 공장 지으면서 세제 혜택을 받으면, 중국에 최신공정을 들이지 말라'는 식의 간접적인 요구였다. 미국의 기술, 혹은 금전 혜택을 받으려거든, 미국의 요구사항도 들어달라는 형태였다. 이런 형태라면 중국이 반발할 경우에도 사업상 불가피하다고 호소해 볼 여지가 있다.


■ 중국, 마이크론에 대한 국가 안보 평가에 착수…수입 금지 등 조치 가능성

실제로 중국 정부는 이달 미국의 마이크론에 대한 국가안보 평가에 들어갔다. 중국의 사이버정보실 CAC은 이 평가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제재조치에 들어갈 수 있다. CAC는 틱톡을 만든 바이트 댄스 등 미국 증시에 상장했거나 하려는 중국 테크 기업들에 압력을 넣어 상장을 포기하거나 철회하게 한 것으로 알려진 기관이다.

미국이 중국의 화웨이나 YMTC를 제재한 것처럼 같은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FT는 최근 베이징을 방문했다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의 보복적 조치에 대한 중국 당국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며 보복이 임박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조처가 내려진다면 마이크론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삼성, 하이닉스와 함께 메모리 반도체 세계 빅3인 마이크론은 지난해 매출의 4분의 1을 중국과 홍콩에서 거뒀기 때문이다. 미국의 요청에 어떻게 답하는지에 따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 반도체 수출의 대략 절반은 중국과 홍콩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의 수출은 물론 장기적인 전망에도 먹구름이 낀다.

다만 FT는 이번 요청이 '중국이 마이크론 제재를 미국 정책에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렛대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한국에 요청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의 참여를 요청하는 그 자체보다는, '감히 마이크론 보복을 선택하지 말라'고 중국에 보내는 메시지 측면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한국 정부나 삼성전자 측은 FT의 사실관계 확인 요청에 답하지 않았고, 하이닉스는 '그런 요청이 온 적 없다'고 답했다.


■ 이번 정상회담에서 CHIPS나 IRA에서 양보 얻어내야 하는데...

사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 정부는 미국이 발효한 반도체 법(CHIPS) 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우리 주력 산업인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경제 의제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한국에 불똥이 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반도체 법과 관련해서는 미국은 미국의 세제 혜택을 받는 기업이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 5% 이상 확장 못 하게' 하는데, 이 부문에서 요건을 완화할 수 있다면 성과로 볼 수 있다. 이재용, 최태원 회장이 이번 방미 사절단에 포함된 것도 관련 요청과 닿아있다.

IRA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현대차가 제외된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지금은 북미 생산 조건에다 부품과 광물에서도 중국 비율을 낮춰야 하는 조건이 동시에 부과되어 있다. 소매 판매에서는 보조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자동차 업계는 준비할 시간 만이라도 좀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또 배터리 업계는 광물 조달 국가를 FTA 체결 국가에서 동맹국으로 완화하는 유연한 규제를 요청하고 있다.

안그래도 경기 상황은 좋지 않다.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인해 우리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경영 사정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무역수지는 연일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고금리로 인한 경영 위축과 경기 사이클 악화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선 상황 관리를 위해서라도 미·중 분쟁으로 인한 수출 환경 악화를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간 요구를 하고 있다. 수출에 의지해 국가 경제를 꾸려가는 한국과 삼성전자, 그리고 SK하이닉스의 상황이 점점 더 양자택일의 순간으로 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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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성전자, ‘미·중 대결’에 서서히 빨려 들어가나
    • 입력 2023-04-24 11:10:54
    취재K

■ FT, 백악관이 한국에 미·중 분쟁 격화 시 미국 편 들어달라 요구

파이낸셜타임스(FT)가 미국이 한국에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될 경우 미국의 요청을 들어달라'는 요구를 했다고 보도했다. 기사의 제목은 <US urges South Korea not to fill China shortfalls if Beijing bans Micron chips : 미국은 한국에 '만약 중국이 마이크론 반도체 금지령을 내릴경우 중국의 부족분을 메워주지 말 것'을 촉구했다>이다.

구체적으로는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판매에 대한 요구다. '중국이 미국의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을 제재하는 상황'이 발생할 경우, 중국은 모자라는 메모리 반도체를 한국의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통해 더 수입하려 할 텐데, 이 경우 '더 수출하지는 말아줄 수 있겠니?'하는 요구다.

FT는 기사에서 백악관과 용산 대통령실에 가까운 네 명의 확인을 거쳤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직접 오늘(월요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을 떠날 윤석열 대통령 측에 요청했다는 것이다.

요구가 사실이라면 미국이 중국과의 대결 국면에 한국의 직접적인 참전을 요구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중국이 미국을 제재하면, 중국의 요구를 거절하라는 요청이고, 이는 분쟁이 일어날 경우 한국은 미국 편이라는 선언을 하라는 요구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미국이 가진 특허를 이용한 장비를 중국 공장에 들일 때는 미국의 허락을 받으라'거나, 또는 '미국에 공장 지으면서 세제 혜택을 받으면, 중국에 최신공정을 들이지 말라'는 식의 간접적인 요구였다. 미국의 기술, 혹은 금전 혜택을 받으려거든, 미국의 요구사항도 들어달라는 형태였다. 이런 형태라면 중국이 반발할 경우에도 사업상 불가피하다고 호소해 볼 여지가 있다.


■ 중국, 마이크론에 대한 국가 안보 평가에 착수…수입 금지 등 조치 가능성

실제로 중국 정부는 이달 미국의 마이크론에 대한 국가안보 평가에 들어갔다. 중국의 사이버정보실 CAC은 이 평가를 기반으로 실질적인 제재조치에 들어갈 수 있다. CAC는 틱톡을 만든 바이트 댄스 등 미국 증시에 상장했거나 하려는 중국 테크 기업들에 압력을 넣어 상장을 포기하거나 철회하게 한 것으로 알려진 기관이다.

미국이 중국의 화웨이나 YMTC를 제재한 것처럼 같은 제재에 나설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FT는 최근 베이징을 방문했다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미국의 보복적 조치에 대한 중국 당국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다'며 보복이 임박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조처가 내려진다면 마이크론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 삼성, 하이닉스와 함께 메모리 반도체 세계 빅3인 마이크론은 지난해 매출의 4분의 1을 중국과 홍콩에서 거뒀기 때문이다. 미국의 요청에 어떻게 답하는지에 따라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우리 반도체 수출의 대략 절반은 중국과 홍콩으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장의 수출은 물론 장기적인 전망에도 먹구름이 낀다.

다만 FT는 이번 요청이 '중국이 마이크론 제재를 미국 정책에 영향을 미치거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렛대로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로 한국에 요청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한국의 참여를 요청하는 그 자체보다는, '감히 마이크론 보복을 선택하지 말라'고 중국에 보내는 메시지 측면이 강하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한국 정부나 삼성전자 측은 FT의 사실관계 확인 요청에 답하지 않았고, 하이닉스는 '그런 요청이 온 적 없다'고 답했다.


■ 이번 정상회담에서 CHIPS나 IRA에서 양보 얻어내야 하는데...

사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 정부는 미국이 발효한 반도체 법(CHIPS) 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우리 주력 산업인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부문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 경제 의제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첨단 기술 분야에서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시도가 한국에 불똥이 튀지 않게 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반도체 법과 관련해서는 미국은 미국의 세제 혜택을 받는 기업이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 능력 5% 이상 확장 못 하게' 하는데, 이 부문에서 요건을 완화할 수 있다면 성과로 볼 수 있다. 이재용, 최태원 회장이 이번 방미 사절단에 포함된 것도 관련 요청과 닿아있다.

IRA와 관련해서는 미국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현대차가 제외된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 지금은 북미 생산 조건에다 부품과 광물에서도 중국 비율을 낮춰야 하는 조건이 동시에 부과되어 있다. 소매 판매에서는 보조금을 한 푼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자동차 업계는 준비할 시간 만이라도 좀 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또 배터리 업계는 광물 조달 국가를 FTA 체결 국가에서 동맹국으로 완화하는 유연한 규제를 요청하고 있다.

안그래도 경기 상황은 좋지 않다.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인해 우리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의 경영 사정은 급격히 악화되었고, 무역수지는 연일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고금리로 인한 경영 위축과 경기 사이클 악화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번 정상회담에선 상황 관리를 위해서라도 미·중 분쟁으로 인한 수출 환경 악화를 조금이라도 해소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미국은 한발 더 나아간 요구를 하고 있다. 수출에 의지해 국가 경제를 꾸려가는 한국과 삼성전자, 그리고 SK하이닉스의 상황이 점점 더 양자택일의 순간으로 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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