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검찰 ‘압수수색 영장’ 두고 충돌…“기본권 침해” vs. “수색 통제”

입력 2023.05.0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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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업의 사내 변호사 A씨는 대주주의 뇌물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 대상이 됐습니다.

해당 범죄는 A씨가 입사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다른 직원들과 함께 변호사인 A씨도 역시 압수수색 대상이 됐습니다.

당시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압수할 물건'의 범위는 '본건과 관련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의 파일(이메일 포함), 내부 메신저 및 이메일 송수신 자료, 원격지 서버 저장 전자정보' 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수백만 건의 파일을 선별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수사기관이 일단 전체를 가져가고 다음 날 A씨가 수사기관에 출석해 선별 작업을 하기로 했지만, 막상 A 씨가 출석해 보니 선별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웬만하면 협조하는 것이 회사 차원에서 유리하다'는 변호인의 조언도 있어 이 절차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범죄에 관여한 적이 없는 A 변호사는 사건과 무관한 친구와 나눈 비공개 대화까지 모두 수사기관에 넘겨주게 됐습니다.

범죄에 직접 연루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다양한 수사 진행 상황을 미디어를 통해 쉽게 접하다 보니 '압수수색 영장'이라는 단어는 이제 시민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말이 됐습니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진술을 뒷받침할 주요 증거물을 찾아야 하는 과정이지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주는 법원 입장에서는 '시민의 방어권'을 넘어서는 과한 수사가 이뤄지지는 않는지 세세하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는 절차기도 합니다.


법원 "압수수색 과정에서 사적 대화까지 압수…기본권 침해"

지난 1일 법원에서는 '압수수색 영장'을 두고 흥미로운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압수수색 영장 실무 관련 논의를 위한 영장전담법관 온라인 간담회'로, 이 자리엔 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하는 전국 영장전담판사들이 화상으로 참석했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영장전담 판사들은 현재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등에 담긴 전자정보를 압수수색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영장전담판사들이 특히 주목한 건 이메일과 카카오톡 대화를 비롯해 사실상 모든 전자정보를 압수할 수 있는 영장 남발로 인한 국민 기본권의 침해 가능성이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이야기는 간담회에서 발제를 맡은 법원행정처 형사지원심의관 정재우 판사(사법연수원 39기)가 제시한 실제 사례입니다.

정 판사는 이러한 사례를 들며 "영장 상 '본건과 관련성' 문구만으로는 압수 범위 제한이 불가하고 철저한 선별도 어려워 사실상 '모든 것'을 압수할 수 있는 영장이 발부되고 있다"며 "수사기관이 입수한 정보가 어떠한 방식으로 보관되는지, 무관 정보가 제대로 폐기되는지 알기도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압수수색 한 번 당한 사람은 평생 불안함에 떨며 살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며 "나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만으로는 사생활 침해를 정당화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다른 영장 판사들 역시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대상에 '휴대전화'만을 기재해 영장을 청구하는 방식을 문제 삼았습니다.

현재 수사기관은 금융계좌 영장 등은 기간을 지정해서 해당 기간의 기록에 대해서만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지만, 휴대전화는 통화 기간이나 내용을 지정하지 않고 휴대전화 단말기 자체를 압수수색 대상으로 영장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앞선 A 씨 같은 사례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영장 판사들은 휴대전화 통화 내용·문자 기록 등 전자정보 압수수색에 대해 법원 통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모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검찰 "법원, 수색 자체를 통제하겠다는 것" 반발

영장판사들의 이러한 간담회 결과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검찰은 곧바로 반발했습니다.

대검찰청은 어제(2일) 입장문을 통해 "법원의 입장은 압수의 전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수색(탐색)을 압수와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고 수색 자체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전통적인 주거지 압수수색도 압수할 물건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옷장, 서랍, 금고 등을 열어볼 수밖에 없었다"며 "전자정보가 저장된 위치와 방식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저장장치에 대한 탐색을 막는다면 범죄와 관련된 증거에 대한 압수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압수 전 전자정보의 탐색 과정에서 범죄사실과 무관한 정보가 압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미 피압수자의 참여권이 보장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범죄사실과 무관한 정보가 압수되는 경우, 피압수자는 준항고를 통해 법원의 심사를 받을 수 있다"며 "만약 준항고를 하지 않더라도 이후 재판 절차에서 증거능력을 부여받을 수 없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이를 압수할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 갈등…"수사 밀행성 해치지 않아" VS "수사 지연·증거 인멸 우려"

대법원이 형사소송규칙(대법원 규칙) 개정을 통해 추진하는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 제도를 두고도 법원과 검찰은 맞붙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 심문 제도는 판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수사기관이나 사건 관계자를 불러 대면 심문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앞서 대법원이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자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들은 수사 상황이 피의자에게 실시간으로 노출될 염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간담회 발제를 맡았던 정 판사는 영장 사전심문 제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판사의 서면 심리 중 대상·범위·방법 등에 대한 의문점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소하거나 추가 심리를 할 방법이 없다. 담당 법관은 수사를 발목 잡는 부담감에 발부를 우선으로 고려하게 되고, 과도한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정 판사는 특히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강제수사 정보가 사전에 유출돼 수사의 밀행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의 반발은 제도를 오해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전심문 대상은 '피의자'가 아닌 영장을 청구한 '수사기관'이 될 것이고, 절차도 비공개로 진행되기에 수사 밀행성을 확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의 대면 심리 절차에 대해서도 "절차 진행에 관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절차가 길어질수록 수사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은 커진다"며 "증거가 인멸될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검찰은 "압수영장 발부 단계에서 판사가 수사기관이든 참고인이든 불러서 대면해 심리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압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정을 미리 예측할 수 없다"며 "대면 심리 제를 도입하는 경우 마치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전자정보 압수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과거 영장 없이 수집했던 증거도 현재는 영장을 발부받아야 압수할 수 있게 되어 영장 발부 건수가 증가하게 된 것"이라며 "수사기관의 활동에 대한 법원의 통제는 오히려 강화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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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검찰 ‘압수수색 영장’ 두고 충돌…“기본권 침해” vs. “수색 통제”
    • 입력 2023-05-03 07:00:16
    취재K

한 기업의 사내 변호사 A씨는 대주주의 뇌물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 대상이 됐습니다.

해당 범죄는 A씨가 입사하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다른 직원들과 함께 변호사인 A씨도 역시 압수수색 대상이 됐습니다.

당시 검찰이 압수수색 영장에 기재된 '압수할 물건'의 범위는 '본건과 관련성이 인정되는 범위 내의 파일(이메일 포함), 내부 메신저 및 이메일 송수신 자료, 원격지 서버 저장 전자정보' 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수백만 건의 파일을 선별하기가 불가능했습니다.

결국, 수사기관이 일단 전체를 가져가고 다음 날 A씨가 수사기관에 출석해 선별 작업을 하기로 했지만, 막상 A 씨가 출석해 보니 선별하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고 '웬만하면 협조하는 것이 회사 차원에서 유리하다'는 변호인의 조언도 있어 이 절차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범죄에 관여한 적이 없는 A 변호사는 사건과 무관한 친구와 나눈 비공개 대화까지 모두 수사기관에 넘겨주게 됐습니다.

범죄에 직접 연루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다양한 수사 진행 상황을 미디어를 통해 쉽게 접하다 보니 '압수수색 영장'이라는 단어는 이제 시민들에게 그리 낯설지 않은 말이 됐습니다.

수사기관 입장에서는 진술을 뒷받침할 주요 증거물을 찾아야 하는 과정이지만,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해주는 법원 입장에서는 '시민의 방어권'을 넘어서는 과한 수사가 이뤄지지는 않는지 세세하게 살펴야 할 필요가 있는 절차기도 합니다.


법원 "압수수색 과정에서 사적 대화까지 압수…기본권 침해"

지난 1일 법원에서는 '압수수색 영장'을 두고 흥미로운 간담회가 열렸습니다.

'압수수색 영장 실무 관련 논의를 위한 영장전담법관 온라인 간담회'로, 이 자리엔 영장 발부 여부를 판단하는 전국 영장전담판사들이 화상으로 참석했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영장전담 판사들은 현재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이 휴대전화 등에 담긴 전자정보를 압수수색할 때 발생하는 문제점과 해결 방안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영장전담판사들이 특히 주목한 건 이메일과 카카오톡 대화를 비롯해 사실상 모든 전자정보를 압수할 수 있는 영장 남발로 인한 국민 기본권의 침해 가능성이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이야기는 간담회에서 발제를 맡은 법원행정처 형사지원심의관 정재우 판사(사법연수원 39기)가 제시한 실제 사례입니다.

정 판사는 이러한 사례를 들며 "영장 상 '본건과 관련성' 문구만으로는 압수 범위 제한이 불가하고 철저한 선별도 어려워 사실상 '모든 것'을 압수할 수 있는 영장이 발부되고 있다"며 "수사기관이 입수한 정보가 어떠한 방식으로 보관되는지, 무관 정보가 제대로 폐기되는지 알기도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압수수색 한 번 당한 사람은 평생 불안함에 떨며 살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며 "나쁜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어쩔 수 없다는 논리만으로는 사생활 침해를 정당화하는 것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있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간담회에 참석한 다른 영장 판사들 역시 수사기관이 압수수색 대상에 '휴대전화'만을 기재해 영장을 청구하는 방식을 문제 삼았습니다.

현재 수사기관은 금융계좌 영장 등은 기간을 지정해서 해당 기간의 기록에 대해서만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지만, 휴대전화는 통화 기간이나 내용을 지정하지 않고 휴대전화 단말기 자체를 압수수색 대상으로 영장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결국 앞선 A 씨 같은 사례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영장 판사들은 휴대전화 통화 내용·문자 기록 등 전자정보 압수수색에 대해 법원 통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를 모은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검찰 "법원, 수색 자체를 통제하겠다는 것" 반발

영장판사들의 이러한 간담회 결과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검찰은 곧바로 반발했습니다.

대검찰청은 어제(2일) 입장문을 통해 "법원의 입장은 압수의 전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수색(탐색)을 압수와 동일한 것으로 오해하고 수색 자체를 통제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전통적인 주거지 압수수색도 압수할 물건이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옷장, 서랍, 금고 등을 열어볼 수밖에 없었다"며 "전자정보가 저장된 위치와 방식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저장장치에 대한 탐색을 막는다면 범죄와 관련된 증거에 대한 압수 자체를 할 수 없게 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또 "압수 전 전자정보의 탐색 과정에서 범죄사실과 무관한 정보가 압수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미 피압수자의 참여권이 보장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범죄사실과 무관한 정보가 압수되는 경우, 피압수자는 준항고를 통해 법원의 심사를 받을 수 있다"며 "만약 준항고를 하지 않더라도 이후 재판 절차에서 증거능력을 부여받을 수 없기 때문에 수사기관이 이를 압수할 이유도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 갈등…"수사 밀행성 해치지 않아" VS "수사 지연·증거 인멸 우려"

대법원이 형사소송규칙(대법원 규칙) 개정을 통해 추진하는 압수수색 영장 사전심문 제도를 두고도 법원과 검찰은 맞붙었습니다.

압수수색 영장 심문 제도는 판사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하기 전 수사기관이나 사건 관계자를 불러 대면 심문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앞서 대법원이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자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들은 수사 상황이 피의자에게 실시간으로 노출될 염려가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습니다.

간담회 발제를 맡았던 정 판사는 영장 사전심문 제도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판사의 서면 심리 중 대상·범위·방법 등에 대한 의문점이 발생할 경우 이를 해소하거나 추가 심리를 할 방법이 없다. 담당 법관은 수사를 발목 잡는 부담감에 발부를 우선으로 고려하게 되고, 과도한 압수수색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습니다.

정 판사는 특히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강제수사 정보가 사전에 유출돼 수사의 밀행성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검찰·경찰·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등의 반발은 제도를 오해했기 때문이라고 일축했습니다.

개정안에 따르면 사전심문 대상은 '피의자'가 아닌 영장을 청구한 '수사기관'이 될 것이고, 절차도 비공개로 진행되기에 수사 밀행성을 확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의 대면 심리 절차에 대해서도 "절차 진행에 관여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절차가 길어질수록 수사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은 커진다"며 "증거가 인멸될 가능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검찰은 "압수영장 발부 단계에서 판사가 수사기관이든 참고인이든 불러서 대면해 심리한다고 하더라도 실제 압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정을 미리 예측할 수 없다"며 "대면 심리 제를 도입하는 경우 마치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전자정보 압수를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어 "과거 영장 없이 수집했던 증거도 현재는 영장을 발부받아야 압수할 수 있게 되어 영장 발부 건수가 증가하게 된 것"이라며 "수사기관의 활동에 대한 법원의 통제는 오히려 강화된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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