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남편이 전국 10여 개 건설현장 품질관리자라고?

입력 2023.05.03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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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A 씨는 지난 1월 말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구 건설사 직원으로 일하던 남편 B 씨가 갑자기 공사 현장에서 쓰러진 뒤 숨을 거뒀다는 청천벽력같은 내용이었습니다. 평소 지병도 없이 건강했던 터라 A 씨의 충격은 더 컸습니다.

A 씨는 얼마 뒤 남편이 생전에 꼼꼼히 기록해두었던 업무 수첩과 서류들을 정리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B 씨가 일하던 곳은 대구 수성구의 한 공사 현장뿐인데, 전국 10여 개 건설 현장에 '품질관리자'로 등록돼있었던 겁니다.

'품질관리자'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 현장에는 꼭 배치해야 하는 필수 전문 인력입니다. 건설 현장에서 시공이나 자재 사용이 적합한지 확인해 부실 공사와 안전 사고를 예방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품질관리자를 여러 곳에 중복 배치하는 건 불법입니다. 건설 현장에 상주하며 공사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품질관리자 1명이 건설 현장 1곳만 맡도록 하고 있습니다. 인접한 현장에 한해 발주처나 인허가 기관이 승인을 할 경우에만 중복 배치할 수 있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관련 기관의 설명입니다.

국토안전관리원 관계자
"실질적으로는 인허가 기관에서 대부분 승인을 안 해줍니다. 왜냐하면 품질관리자는 현장 상주가 원칙이거든요. 국토부 점검 등을 받았을 때 현장에 없다는 사실이 적발됐을 때는 벌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품질관리자가 동시에 두 개 현장에 가 있을 수는 없잖아요. "

그런데 B 씨가 서류상 배치된 공사 현장은 확인된 곳만 10여 개. 대구는 물론 부산, 경남, 전남까지 전국에 걸쳐 있었습니다. 실제 근무했던 대구 수성구 한 교회 건설 현장을 제외하면, 다른 현장의 품질관리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심지어 B 씨가 숨지고 나서 두 달이 넘도록 품질관리자가 바뀌지 않은 현장도 있었습니다.


B 씨가 숨진 뒤, 해당 건설사 직원들이 모여 있는 단체대화방에서는 B 씨가 서류상 중복 배치된 현장에 불시 점검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대화가 오고 가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건설사가 불법 행위를 저질러도 인허가 기관이 걸러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러 현장에 같은 품질관리자를 두고 허가 신청을 하는데도, 자치단체에서는 서류만 검토한 뒤 허가를 내주고 있습니다.

대구 모 구청 관계자(음성변조)
"품질관리자 같은 경우는 1개 현장밖에 근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하게 1곳만 배치했을 거라고 인정을 하고. (품질관리자) 선임계하고, 기술자격, 경력 증명이라든지 이런 부분만 확인을 하는 거죠."

경찰은 현재 해당 건설사 대표 등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고, 대구시는 결과에 따라 행정처분을 내릴 계획입니다.

자치단체의 안이한 행정 탓에 안전 사고를 막기 위한 품질관리가 허술하게 방치되고 있습니다.

(촬영기자:전민재, CG 그래픽:이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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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숨진 남편이 전국 10여 개 건설현장 품질관리자라고?
    • 입력 2023-05-03 16:51:56
    취재K

60대 A 씨는 지난 1월 말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대구 건설사 직원으로 일하던 남편 B 씨가 갑자기 공사 현장에서 쓰러진 뒤 숨을 거뒀다는 청천벽력같은 내용이었습니다. 평소 지병도 없이 건강했던 터라 A 씨의 충격은 더 컸습니다.

A 씨는 얼마 뒤 남편이 생전에 꼼꼼히 기록해두었던 업무 수첩과 서류들을 정리하던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당시 B 씨가 일하던 곳은 대구 수성구의 한 공사 현장뿐인데, 전국 10여 개 건설 현장에 '품질관리자'로 등록돼있었던 겁니다.

'품질관리자'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단어지만, 일정 규모 이상의 건설 현장에는 꼭 배치해야 하는 필수 전문 인력입니다. 건설 현장에서 시공이나 자재 사용이 적합한지 확인해 부실 공사와 안전 사고를 예방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품질관리자를 여러 곳에 중복 배치하는 건 불법입니다. 건설 현장에 상주하며 공사를 지켜봐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품질관리자 1명이 건설 현장 1곳만 맡도록 하고 있습니다. 인접한 현장에 한해 발주처나 인허가 기관이 승인을 할 경우에만 중복 배치할 수 있지만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관련 기관의 설명입니다.

국토안전관리원 관계자
"실질적으로는 인허가 기관에서 대부분 승인을 안 해줍니다. 왜냐하면 품질관리자는 현장 상주가 원칙이거든요. 국토부 점검 등을 받았을 때 현장에 없다는 사실이 적발됐을 때는 벌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품질관리자가 동시에 두 개 현장에 가 있을 수는 없잖아요. "

그런데 B 씨가 서류상 배치된 공사 현장은 확인된 곳만 10여 개. 대구는 물론 부산, 경남, 전남까지 전국에 걸쳐 있었습니다. 실제 근무했던 대구 수성구 한 교회 건설 현장을 제외하면, 다른 현장의 품질관리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심지어 B 씨가 숨지고 나서 두 달이 넘도록 품질관리자가 바뀌지 않은 현장도 있었습니다.


B 씨가 숨진 뒤, 해당 건설사 직원들이 모여 있는 단체대화방에서는 B 씨가 서류상 중복 배치된 현장에 불시 점검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대화가 오고 가기도 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처럼 건설사가 불법 행위를 저질러도 인허가 기관이 걸러내지 못한다는 겁니다. 여러 현장에 같은 품질관리자를 두고 허가 신청을 하는데도, 자치단체에서는 서류만 검토한 뒤 허가를 내주고 있습니다.

대구 모 구청 관계자(음성변조)
"품질관리자 같은 경우는 1개 현장밖에 근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당연하게 1곳만 배치했을 거라고 인정을 하고. (품질관리자) 선임계하고, 기술자격, 경력 증명이라든지 이런 부분만 확인을 하는 거죠."

경찰은 현재 해당 건설사 대표 등에 대해 수사를 하고 있고, 대구시는 결과에 따라 행정처분을 내릴 계획입니다.

자치단체의 안이한 행정 탓에 안전 사고를 막기 위한 품질관리가 허술하게 방치되고 있습니다.

(촬영기자:전민재, CG 그래픽:이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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