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러 밀착 속 한국어도 중국어에 밀리나? 러시아에선 지금… [특파원 리포트]

입력 2023.05.05 (10:35) 수정 2023.05.05 (11:1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사진출처 : 게티이미지)

"지금도 계속 팬데믹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학생들은 '당장 한국에 갈 수 없으니 한국어 배울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중국어 인기가 상당히 높아요."

러시아는 세계에서 4번째로 한국어·한국학 강좌를 운영하는 대학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세르게이 쿠르바노프 러시아 대학 한국어 교수협의회 회장이 현재 상황을 이렇게 진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러시아 각 지역에서 한국어와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모임인 '러시아 대학 한국어 교수 협의회' 총회가 지난달 28일~29일 모스크바에서 열렸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교수들과 만나 러시아에서 한국어·한국학 교육의 '현재'를 들어봤습니다.

한국어 인기 식고 중국어가 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한국학과장인 쿠르바노프 교수는 30년간 한국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2000년대 초반, 특히 2010년경부터라고 했습니다.

'한류' 붐이 일었던 시기, 스마트폰을 통해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을 쉽게 접하게 되면서 대학에서 한국을 배우려는 학생도 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학에서 전공으로 택하면 한국으로 유학할 기회도 있기 때문입니다. 몰려드는 학생에 정원을 늘린 대학도 있었고 교수진 부족 현상까지 빚어졌습니다. 일본어나 중국어 전공의 인기를 넘어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팬데믹으로 한국 유학이 어려워고, 이제 코로나로 인한 빗장은 풀렸지만, 여전히 한국행은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팬데믹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학생들은 '당장 한국에 가기도 힘들기 때문에 한국어 배울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는 항공도 다시 복원됐고 일자리도 많습니다. 사업가들이 러시아에 들어오고요. 유학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어 인기가 상당히 높습니다.
한국어 전공 지원자 수는 떨어질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비관적입니다. 그런데 쿠르바노프 교수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회의에 참석한 교수와 강사들, 주로 3~40대입니다. 젊습니다. 열정적입니다. 한국어를 좋아하고 가르치고 싶어합니다. (학생이 너무 많았을 때보다) 깊이 있고 내실 있게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10차 러시아 대학 한국어 교수 협의회 총회’에는 30여 개 대학의 교수 70여 명이 참여했다 (사진제공: 한국국제교류재단)‘제10차 러시아 대학 한국어 교수 협의회 총회’에는 30여 개 대학의 교수 70여 명이 참여했다 (사진제공: 한국국제교류재단)

■러시아에서 한국어 교육 126년 역사

러시아는 유럽 최초로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189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 한국어 과정이 개설된 것입니다. 1896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축하사절단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민영환 단장의 통역관 김병옥 선생이 러시아에 남아 한국어를 가르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2010년대 한국어와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상승하면서 강의를 개설하는 대학도 늘었고 신진 교육자들도 배출됐습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 통계를 보면 현재 한국학 강의를 개설한 러시아 대학은 37곳으로 일본 (377곳), 중국(276곳), 미국(131곳)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많습니다.

모스크바 국립대 정인순 교수는 " 대부분 한국어 중심의 단순한 언어교육을 하는 유럽과 달리 러시아의 한국학은 한국어학, 한국문학, 한국역사학, 한국정치학, 한국경제학 등 깊이 있게 이뤄지고 있고 대규모 대학들의 경우 석사, 박사과정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BTS는 왜 성공했나? 다양하게 연구되는 한국학

올해로 126년째, 이제 러시아에서 한국어·한국학 교육은 전문화되고 범위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시립대는 2021년부터 한국어 전공을 개설했습니다. 2년만에 학생 수가 100명이 됐는데, 2009년 개설한 일본어 전공 1~2학년생이 205명인 것에 비하면 한국어의 인기가 상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모스크바시립대학교 한국어 전공 학생들 (사진제공: 세르게이 레툰 모스크바시립대 교수)모스크바시립대학교 한국어 전공 학생들 (사진제공: 세르게이 레툰 모스크바시립대 교수)

이 대학에는 '한국어 교수법' , '한국의 기술 개발 문화' , '한국의 지리'등 다른 대학에는 없는 독특한 과목이 개설돼 있습니다.

세르게이 레툰 교수는 BTS같은 K팝 그룹의 성공 사례 등을 통해 한국의 혁신 모델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기도 한다고 소개했습니다.

특히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한 교수법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러시아연방은 100개 이상의 다양한 민족이 있고 많은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다양한 교수법이 일찍부터 발달했습니다. 한국의 IT 기술, 인공지능(AI)기술과 융합하면 새로운 교육기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 '찍먹'이 무슨 뜻? '외국에 사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 필요

러시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들은 어려운 점으로 '만족할 만한' 교재가 없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쿠르바노프 교수는 "교수들이 직접 개발하거나 한국에서 만든 교재를 쓰고 있는데 한국에 가보지 못한 외국인을 위한, 현지 실정에 맞는 교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러시아어는 푸시킨의 언어 와(19세기 초)와 현재가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는 아닙니다. 독립선언문을 지금 읽을 수 있을까요? '찍먹'(찍어먹기), '엉따'(엉덩이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차량 장치)라는 말도 생겼지요.
한국어는 계속 변하고 있어서 교재를 10년마다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에 살고 있다면 쉽게 배울 수 있는 말도 외국에서는 일일이 설명해줘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시베리아 지역에서 한국어 교육을 시작한 알타이대는 모스크바 국립대에 한국어 교육과정과 교안 개발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정인순 교수는 "한국어 교원 연수프로그램이 마련되면 한국학과를 새로 개설할 다른 대학들에도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러시아에서 한국어 교육의 질을 높이게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중-러 밀착 속 한국어도 중국어에 밀리나? 러시아에선 지금… [특파원 리포트]
    • 입력 2023-05-05 10:35:58
    • 수정2023-05-05 11:10:40
    글로벌K
(사진출처 : 게티이미지)
"지금도 계속 팬데믹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학생들은 '당장 한국에 갈 수 없으니 한국어 배울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중국어 인기가 상당히 높아요."

러시아는 세계에서 4번째로 한국어·한국학 강좌를 운영하는 대학이 많은 나라입니다. 그런데 세르게이 쿠르바노프 러시아 대학 한국어 교수협의회 회장이 현재 상황을 이렇게 진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러시아 각 지역에서 한국어와 한국학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모임인 '러시아 대학 한국어 교수 협의회' 총회가 지난달 28일~29일 모스크바에서 열렸습니다. 회의에 참석한 교수들과 만나 러시아에서 한국어·한국학 교육의 '현재'를 들어봤습니다.

한국어 인기 식고 중국어가 뜬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한국학과장인 쿠르바노프 교수는 30년간 한국 역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한 젊은 세대의 관심이 높아진 것은 2000년대 초반, 특히 2010년경부터라고 했습니다.

'한류' 붐이 일었던 시기, 스마트폰을 통해 한국의 드라마와 음악을 쉽게 접하게 되면서 대학에서 한국을 배우려는 학생도 늘었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학에서 전공으로 택하면 한국으로 유학할 기회도 있기 때문입니다. 몰려드는 학생에 정원을 늘린 대학도 있었고 교수진 부족 현상까지 빚어졌습니다. 일본어나 중국어 전공의 인기를 넘어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코로나팬데믹으로 한국 유학이 어려워고, 이제 코로나로 인한 빗장은 풀렸지만, 여전히 한국행은 쉽지 않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팬데믹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유는 다르지만….
학생들은 '당장 한국에 가기도 힘들기 때문에 한국어 배울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는 항공도 다시 복원됐고 일자리도 많습니다. 사업가들이 러시아에 들어오고요. 유학도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어 인기가 상당히 높습니다.
한국어 전공 지원자 수는 떨어질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비관적입니다. 그런데 쿠르바노프 교수는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회의에 참석한 교수와 강사들, 주로 3~40대입니다. 젊습니다. 열정적입니다. 한국어를 좋아하고 가르치고 싶어합니다. (학생이 너무 많았을 때보다) 깊이 있고 내실 있게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10차 러시아 대학 한국어 교수 협의회 총회’에는 30여 개 대학의 교수 70여 명이 참여했다 (사진제공: 한국국제교류재단)
■러시아에서 한국어 교육 126년 역사

러시아는 유럽 최초로 대학에서 한국어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1897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에 한국어 과정이 개설된 것입니다. 1896년 니콜라이 2세 대관식에 축하사절단으로 러시아를 방문한 민영환 단장의 통역관 김병옥 선생이 러시아에 남아 한국어를 가르친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2010년대 한국어와 한국학에 대한 관심이 상승하면서 강의를 개설하는 대학도 늘었고 신진 교육자들도 배출됐습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 통계를 보면 현재 한국학 강의를 개설한 러시아 대학은 37곳으로 일본 (377곳), 중국(276곳), 미국(131곳)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많습니다.

모스크바 국립대 정인순 교수는 " 대부분 한국어 중심의 단순한 언어교육을 하는 유럽과 달리 러시아의 한국학은 한국어학, 한국문학, 한국역사학, 한국정치학, 한국경제학 등 깊이 있게 이뤄지고 있고 대규모 대학들의 경우 석사, 박사과정도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BTS는 왜 성공했나? 다양하게 연구되는 한국학

올해로 126년째, 이제 러시아에서 한국어·한국학 교육은 전문화되고 범위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모스크바시립대는 2021년부터 한국어 전공을 개설했습니다. 2년만에 학생 수가 100명이 됐는데, 2009년 개설한 일본어 전공 1~2학년생이 205명인 것에 비하면 한국어의 인기가 상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모스크바시립대학교 한국어 전공 학생들 (사진제공: 세르게이 레툰 모스크바시립대 교수)
이 대학에는 '한국어 교수법' , '한국의 기술 개발 문화' , '한국의 지리'등 다른 대학에는 없는 독특한 과목이 개설돼 있습니다.

세르게이 레툰 교수는 BTS같은 K팝 그룹의 성공 사례 등을 통해 한국의 혁신 모델을 종합적으로 연구하고 분석하기도 한다고 소개했습니다.

특히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효과적으로 가르치기 위한 교수법을 발전시키기 위해선 한국과 러시아의 협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러시아연방은 100개 이상의 다양한 민족이 있고 많은 국가와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외국어를 가르치기 위한 다양한 교수법이 일찍부터 발달했습니다. 한국의 IT 기술, 인공지능(AI)기술과 융합하면 새로운 교육기술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 '찍먹'이 무슨 뜻? '외국에 사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재 필요

러시아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들은 어려운 점으로 '만족할 만한' 교재가 없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쿠르바노프 교수는 "교수들이 직접 개발하거나 한국에서 만든 교재를 쓰고 있는데 한국에 가보지 못한 외국인을 위한, 현지 실정에 맞는 교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러시아어는 푸시킨의 언어 와(19세기 초)와 현재가 그렇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어는 아닙니다. 독립선언문을 지금 읽을 수 있을까요? '찍먹'(찍어먹기), '엉따'(엉덩이를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차량 장치)라는 말도 생겼지요.
한국어는 계속 변하고 있어서 교재를 10년마다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한국에 살고 있다면 쉽게 배울 수 있는 말도 외국에서는 일일이 설명해줘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시베리아 지역에서 한국어 교육을 시작한 알타이대는 모스크바 국립대에 한국어 교육과정과 교안 개발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정인순 교수는 "한국어 교원 연수프로그램이 마련되면 한국학과를 새로 개설할 다른 대학들에도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고, 러시아에서 한국어 교육의 질을 높이게 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