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마진국] 1인 가구부터 대안가족까지, 색다른 가족영화 3편

입력 2023.05.0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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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당신의 부탁’의 한 장면. 명필름 제공.영화 ‘당신의 부탁’의 한 장면. 명필름 제공.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에 관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가구는 1인 가구라는 걸 아시나요?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전체의 31.2%를 차지합니다. 2050년이 되면 1~2인 가구의 비율은 75% 이상 치솟고, 부부와 자녀 등으로 구성된 4인 가구의 비율은 한 자릿수까지 떨어질 거라는 게 통계청의 계산입니다. 이미 2년 전 정부는 “전형적인 가족으로 생각해 온 ‘부부+미혼 자녀’ 형태가 대폭 감소하고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가족 아닌 친구나 애인끼리 같이 사는 비(非)친족 가구원은 같은 해 100만 명을 넘겼고요. 이처럼 전통적 가족상은 옛말이 되고, 새로운 가구 형태가 늘어나면서 최근 국회에는 생활동반자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는데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각종 기념일이 많아 ‘가정의 달’로 꼽히는 5월 첫 주 일요일, 오늘은 이렇게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담은 영화 3편을 골랐습니다. 모두 OTT 서비스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사별한 남편의 아들이 찾아왔다…‘당신의 부탁’(2017)

2년 전 사고로 남편을 잃은 효진(임수정)은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며 혼자 살던 중, 죽은 남편의 아들 종욱(윤찬영)을 맡게 됩니다. 효진을 만나기 전 낳은 자식이라 지금껏 시댁에서 돌봐 왔는데, 갑자기 시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은 거죠. 엄마도 친구도, 32살 효진이 16살 중학생을 기르는 건 안 될 말이라고 반대하지만, 고집 센 효진은 종욱에게 방 하나를 내주고 어색한 동거를 시작합니다.

접점이라곤 없어 보이지만, 영화의 잔잔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두 사람이 꽤나 닮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둘 다 곁에 없는 사람의 애정을 그리워해요. 충동적인 효진의 결정 뒤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깔려 있습니다. 종욱이 망자와의 연결고리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한 거죠. 숫기 없는 종욱에게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효진은 그게 종욱의 친모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영화엔 작은 반전이 있습니다.

영어 제목이 ‘Mothers(엄마들)’일 만큼, 영화엔 다양한 엄마들이 등장합니다. 효진의 친구와 종욱의 친구가 각각 아이를 낳고, 두 주인공의 엄마도 비중을 나눠 가집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모성은 다 다르지만, 영화는 이 중 하나만 정답이라고 외치는 대신 담담한 톤으로 관객들에게 생각할 공간을 열어 줍니다.

■ 대안 가족 영화의 고전, ‘가족의 탄생’(2006

영화 ‘가족의 탄생’ 속 한 장면.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영화 ‘가족의 탄생’ 속 한 장면.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헤픈 게 나쁜 거야?’라는, 아직도 회자 되는 희대의 명대사로 남자친구 경석(봉태규)의 할 말을 잃게 하는 채현(정유미)은 이타주의의 화신입니다. 연애 상대로서 관계의 특수를 누리고 싶은 경석은 그게 불만이지만, 채현의 본가를 찾았다가 여자친구의 성격엔 나름의 배경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요.

채현에게는 아빠는 없고 엄마가 둘 있습니다. 고두심과 문소리가 연기하는 무신과 미라예요. 세 사람은 다정하기 그지없지만, 처음 만났을 땐 어색하고 불편한 사이였습니다. 미라의 남동생 형철(엄태웅)이 어느 날 결혼했다며 불쑥 데려온 여자가 무신인데, 캐스팅만 봐도 알겠지만 거의 어머니뻘이죠. 미라는 안 그래도 나이가 곱절은 많은 올케가 맘에 안 드는데, 무신의 ‘전 남편의 전 부인의 딸’인 채현까지 집을 찾아오며 집안은 폭발합니다.

어린 채현네와 다 큰 채현, 그리고 채현의 애인 경석의 어린 시절 가족사까지, 3가지 에피소드가 모인 ‘가족의 탄생’은 전통적인 가족 개념에서 벗어나 있지만 서로 아끼며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이런 가족도 가능하구나’라는 놀라움 말고도, ‘가족 영화’에서 우리가 으레 기대하는 다정함과 따뜻함이 있어요.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볼 수 있다’. 2020년 정부 조사에서 응답자의 70% 가량은 이 문장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14년 전 세상에 나온 ‘가족의 탄생’은 전통적 가족 관념이 강했던 한국 사회에 이 같은 화두를 정통으로 던진 작품이었습니다. 이제는 관련 주제를 언급할 때마다 여전히 소환되는, 소위 ‘대안 가족’ 영화의 고전이 되었고요.

■ 시대의 초상, ‘혼자 사는 사람들’(2021)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한 장면. 더쿱 제공.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한 장면. 더쿱 제공.

카드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진아(공승연)는 혼자가 편합니다. 먹고 자고 일하는 모든 것들에서요. 엄마는 최근에 죽었고, 아빠랑은 사이가 나쁘고, 세상만사 다 똑같다며 심드렁하죠. 전화기 너머 폭언을 쏟는 고객들한테 무심할 수 있는 것도 아무 관심이 없어서예요.

그런데 진아는 조금 이상합니다. 고독사한 옆집 남자의 귀신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분명 죽은 엄마한테서 휴대전화 문자도 받아요. 부모님 집 거실에 설치한 홈 캠 화면을 수시로 확인하며 아빠를 염탐하는 걸 보면, 엄마가 살해된 건 아닌가 의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독립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젊은 작가가 쓴 단편 소설집 같은 작품입니다. 시대의 삭막한 풍경을 반영한 여러 아이디어가 담겨 있어, 하나에 집중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하지만 1인 청년 가구가 겪는 불안과 외로움을 다룬 신예 감독의 시도는 2020년대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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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네마진국] 1인 가구부터 대안가족까지, 색다른 가족영화 3편
    • 입력 2023-05-07 10:12:26
    씨네마진국
영화 ‘당신의 부탁’의 한 장면. 명필름 제공.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에 관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가구는 1인 가구라는 걸 아시나요? 지난해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1인 가구는 전체의 31.2%를 차지합니다. 2050년이 되면 1~2인 가구의 비율은 75% 이상 치솟고, 부부와 자녀 등으로 구성된 4인 가구의 비율은 한 자릿수까지 떨어질 거라는 게 통계청의 계산입니다. 이미 2년 전 정부는 “전형적인 가족으로 생각해 온 ‘부부+미혼 자녀’ 형태가 대폭 감소하고 있다”고 인정했습니다. 가족 아닌 친구나 애인끼리 같이 사는 비(非)친족 가구원은 같은 해 100만 명을 넘겼고요. 이처럼 전통적 가족상은 옛말이 되고, 새로운 가구 형태가 늘어나면서 최근 국회에는 생활동반자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는데요. 어린이날, 어버이날, 부부의 날 등 각종 기념일이 많아 ‘가정의 달’로 꼽히는 5월 첫 주 일요일, 오늘은 이렇게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담은 영화 3편을 골랐습니다. 모두 OTT 서비스 등으로 볼 수 있습니다.

■ 사별한 남편의 아들이 찾아왔다…‘당신의 부탁’(2017)

2년 전 사고로 남편을 잃은 효진(임수정)은 작은 공부방을 운영하며 혼자 살던 중, 죽은 남편의 아들 종욱(윤찬영)을 맡게 됩니다. 효진을 만나기 전 낳은 자식이라 지금껏 시댁에서 돌봐 왔는데, 갑자기 시어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은 거죠. 엄마도 친구도, 32살 효진이 16살 중학생을 기르는 건 안 될 말이라고 반대하지만, 고집 센 효진은 종욱에게 방 하나를 내주고 어색한 동거를 시작합니다.

접점이라곤 없어 보이지만, 영화의 잔잔한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두 사람이 꽤나 닮았다는 걸 알게 됩니다. 둘 다 곁에 없는 사람의 애정을 그리워해요. 충동적인 효진의 결정 뒤엔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깔려 있습니다. 종욱이 망자와의 연결고리가 되어줄 거라고 생각한 거죠. 숫기 없는 종욱에게도 보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효진은 그게 종욱의 친모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영화엔 작은 반전이 있습니다.

영어 제목이 ‘Mothers(엄마들)’일 만큼, 영화엔 다양한 엄마들이 등장합니다. 효진의 친구와 종욱의 친구가 각각 아이를 낳고, 두 주인공의 엄마도 비중을 나눠 가집니다. 이들이 보여주는 모성은 다 다르지만, 영화는 이 중 하나만 정답이라고 외치는 대신 담담한 톤으로 관객들에게 생각할 공간을 열어 줍니다.

■ 대안 가족 영화의 고전, ‘가족의 탄생’(2006

영화 ‘가족의 탄생’ 속 한 장면. 롯데쇼핑(주)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헤픈 게 나쁜 거야?’라는, 아직도 회자 되는 희대의 명대사로 남자친구 경석(봉태규)의 할 말을 잃게 하는 채현(정유미)은 이타주의의 화신입니다. 연애 상대로서 관계의 특수를 누리고 싶은 경석은 그게 불만이지만, 채현의 본가를 찾았다가 여자친구의 성격엔 나름의 배경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지요.

채현에게는 아빠는 없고 엄마가 둘 있습니다. 고두심과 문소리가 연기하는 무신과 미라예요. 세 사람은 다정하기 그지없지만, 처음 만났을 땐 어색하고 불편한 사이였습니다. 미라의 남동생 형철(엄태웅)이 어느 날 결혼했다며 불쑥 데려온 여자가 무신인데, 캐스팅만 봐도 알겠지만 거의 어머니뻘이죠. 미라는 안 그래도 나이가 곱절은 많은 올케가 맘에 안 드는데, 무신의 ‘전 남편의 전 부인의 딸’인 채현까지 집을 찾아오며 집안은 폭발합니다.

어린 채현네와 다 큰 채현, 그리고 채현의 애인 경석의 어린 시절 가족사까지, 3가지 에피소드가 모인 ‘가족의 탄생’은 전통적인 가족 개념에서 벗어나 있지만 서로 아끼며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이런 가족도 가능하구나’라는 놀라움 말고도, ‘가족 영화’에서 우리가 으레 기대하는 다정함과 따뜻함이 있어요.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볼 수 있다’. 2020년 정부 조사에서 응답자의 70% 가량은 이 문장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14년 전 세상에 나온 ‘가족의 탄생’은 전통적 가족 관념이 강했던 한국 사회에 이 같은 화두를 정통으로 던진 작품이었습니다. 이제는 관련 주제를 언급할 때마다 여전히 소환되는, 소위 ‘대안 가족’ 영화의 고전이 되었고요.

■ 시대의 초상, ‘혼자 사는 사람들’(2021)

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의 한 장면. 더쿱 제공.
카드사 콜센터에서 일하는 진아(공승연)는 혼자가 편합니다. 먹고 자고 일하는 모든 것들에서요. 엄마는 최근에 죽었고, 아빠랑은 사이가 나쁘고, 세상만사 다 똑같다며 심드렁하죠. 전화기 너머 폭언을 쏟는 고객들한테 무심할 수 있는 것도 아무 관심이 없어서예요.

그런데 진아는 조금 이상합니다. 고독사한 옆집 남자의 귀신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분명 죽은 엄마한테서 휴대전화 문자도 받아요. 부모님 집 거실에 설치한 홈 캠 화면을 수시로 확인하며 아빠를 염탐하는 걸 보면, 엄마가 살해된 건 아닌가 의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독립영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젊은 작가가 쓴 단편 소설집 같은 작품입니다. 시대의 삭막한 풍경을 반영한 여러 아이디어가 담겨 있어, 하나에 집중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하지만 1인 청년 가구가 겪는 불안과 외로움을 다룬 신예 감독의 시도는 2020년대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을 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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