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됐는데 자진 퇴사라니…구두 통보에 속수무책 [작은 일터의 눈물]②

입력 2023.05.09 (07:00) 수정 2023.05.09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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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인간 존엄성을 위한 최소한의 근로 기준이라는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70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노동자 5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아, 여전히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KBS는 작은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어떤 차별을 당하고 있는지, 다양한 피해 사례자들을 직접 만나 어려움을 들어봤습니다. 그 이야기를 3편에 걸쳐 소개합니다.


■ '실업급여 못 받나' 불안감에 수면제까지

30대 여성 김 모 씨는 직원 4명인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다 지난해 갑자기 해고당했다. 해고는 '구두 통보'가 전부였다. 사장은 "너 같은 애랑 일을 못 하겠다"고 했다.

김 씨는 "'자꾸 일이 없다'고 하니까 직원 중 누군가 이유 없이 잘리겠구나 생각은 했었다"고 말한다. 근무 기간 2년을 채우면 내일채움공제에서 받을 수 있는 목돈도 수령하지 못하게 됐다.

김 씨는 생활비가 급해 '실업급여'를 신청했다가 또 한 번 좌절해야 했다. 김 씨의 퇴직 사유가 해고가 아니라 '자진 퇴사'로 신고돼 있어 급여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

고용보험법상 사업주는 직원이 퇴사하면 근로복지공단에 '피보험자격상실신고'를 해야 한다. 신고서엔 퇴직 사유도 적게 돼 있다. '자발적 사유'로 적힌 경우 실업급여 대상이 안 된다.


김 씨는 해고도 억울한 상황에서 해고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비자발적 사유로 사직함"이라고 적은 '권고사직서'를 써 사장에게 보냈지만, 사장은 협조해주지 않았다. 전화도 회피했다. 실업급여를 받지 못 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들곤 했다.

■ 해고 '구두 통보', 대응도 어렵다

근로자 5명 미만인 작은 사업장에선 하루아침에 '구두'로 해고되는 일이 빈번하다. 서면으로 된 해고통지서조차 받지 못 하다 보니, 사업주가 퇴직 사유를 허위로 기재하면 실업급여도 받기 어렵다.

근로기준법 27조는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 사유와 해고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고 돼 있다. 또 서면으로 통지해야 효력이 있다고도 해놨다. 해고에 대한 절차적 제한이다. 왜 이런 조항을 뒀을까?

대법원은 서면 통지를 통해 "① 사용자가 해고 여부를 더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하고 ② 해고의 존부 및 시기와 사유를 명확히 하여 사후에 이를 둘러싼 분쟁이 적정하고 용이하게 해결되고 ③ 근로자도 해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취지"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엔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업주가 '퇴직 사유'를 허위로 신고한 경우, 고용노동부에 정정을 요청하는 절차가 있긴 하다.
'피보험자격 확인 청구' 제도다.

고용보험법 17조는 "피보험자 또는 피보험자였던 사람은 언제든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피보험자격의 취득 또는 상실에 관한 확인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피보험자격 확인 청구는 2016년부터 5년간 한 해 평균 2만 6천여 건에 이른다.(직장갑질119가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

청구가 이뤄지면 근로복지공단 관할 지사가 사업주에게 사실관계를 물어본다. 그러나 퇴직 사유를 정확히 규명할 수 있는 강제력 있는 수단이 없다. 사업주가 부인하면 퇴직 사유를 정정하기 쉽지 않다. '공단이 사업주 말만 듣고 대충 처리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 법 적용 피하려 '5인 미만' 쪼개기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려고 하나의 사업장을 '5인 미만'으로 쪼개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부당해고 구제신청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이를 악용하는 것이다.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사건 판정례를 보면, 한 학원 사업주는 학원을 2개로 나눠 각각 사업자등록을 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위는 " 위 학원들은 동일인에게 경영을 위탁하여 동일인이 위 학원들을 운영한 점, 동일한 주소지의 2층, 3층에서 동일한 학원 명칭으로 운영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위 학원들을 하나의 사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근로자 수를 합산하면 5인 이상 사업장"이라고 판단했다.

해고 직전 '근로자 수'를 일부러 줄이기도 한다. 상시 근로자 수를 산정할 때 해고 직전 1개월 동안 고용된 인원이 기준이다. 이 기간에만 5인 미만을 유지하면 법 적용을 피할 수 있다. 직장갑질119 신하나 변호사는 "해고를 위한 편법"이라며 "그러나 근로자 입장에선 사업주의 고의를 입증하기 너무 어려워 사실상 다투기 어렵다"고 말한다.

■ 해고 제한 조항, 비용 부담은 얼마나?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과 관련해 '해고 제한 조항'은 특히 민감한 이슈다.

경영계는 해고 사유와 절차가 제한되면 작은 사업장이 경영 악화에 대응하긴 어렵다고 주장한다. 또 대부분 인사관리자가 별도로 없어 부당해고 구제절차에 사업주가 직접 대응하는 것도 부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임금을 좌우하는 조항과 달리, 해고 제한 조항은 경제적 부담이 덜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2016년 고용노동부 연구용역보고서 '4인 이하 사업장 실태조사'를 보면 해고 제한 조항을 이미 적용하고 있거나 적용이 가능하단 응답이 62.9%에 이른다. 사업장의 법 준수 능력에 비하여 과도한 부담 전가는 아니라는 얘기다. 해고 시 서면 통보의 경우엔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조항이란 의견도 있다.


신하나 변호사는 "상담을 해보면 해고 제한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 해고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생존권 문제인데, 매출이나 업종 등을 안 따지고 단지 근로자 수만으로 보호에서 배제하는 건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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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고됐는데 자진 퇴사라니…구두 통보에 속수무책 [작은 일터의 눈물]②
    • 입력 2023-05-09 07:00:26
    • 수정2023-05-09 19:0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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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존엄성을 위한 최소한의 근로 기준이라는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지 올해로 70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노동자 5인 미만'의 작은 사업장에는 이 법이 적용되지 않아, 여전히 기본적인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일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br /><br />KBS는 작은 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어떤 차별을 당하고 있는지, 다양한 피해 사례자들을 직접 만나 어려움을 들어봤습니다. 그 이야기를 3편에 걸쳐 소개합니다.<br />

■ '실업급여 못 받나' 불안감에 수면제까지

30대 여성 김 모 씨는 직원 4명인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다 지난해 갑자기 해고당했다. 해고는 '구두 통보'가 전부였다. 사장은 "너 같은 애랑 일을 못 하겠다"고 했다.

김 씨는 "'자꾸 일이 없다'고 하니까 직원 중 누군가 이유 없이 잘리겠구나 생각은 했었다"고 말한다. 근무 기간 2년을 채우면 내일채움공제에서 받을 수 있는 목돈도 수령하지 못하게 됐다.

김 씨는 생활비가 급해 '실업급여'를 신청했다가 또 한 번 좌절해야 했다. 김 씨의 퇴직 사유가 해고가 아니라 '자진 퇴사'로 신고돼 있어 급여 지급 대상이 아니라는 답변을 들었다.

고용보험법상 사업주는 직원이 퇴사하면 근로복지공단에 '피보험자격상실신고'를 해야 한다. 신고서엔 퇴직 사유도 적게 돼 있다. '자발적 사유'로 적힌 경우 실업급여 대상이 안 된다.


김 씨는 해고도 억울한 상황에서 해고 사실을 스스로 입증해야 했다. "비자발적 사유로 사직함"이라고 적은 '권고사직서'를 써 사장에게 보냈지만, 사장은 협조해주지 않았다. 전화도 회피했다. 실업급여를 받지 못 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잠이 오지 않았다. 수면제를 먹고서야 잠들곤 했다.

■ 해고 '구두 통보', 대응도 어렵다

근로자 5명 미만인 작은 사업장에선 하루아침에 '구두'로 해고되는 일이 빈번하다. 서면으로 된 해고통지서조차 받지 못 하다 보니, 사업주가 퇴직 사유를 허위로 기재하면 실업급여도 받기 어렵다.

근로기준법 27조는 "사용자는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 사유와 해고 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한다"고 돼 있다. 또 서면으로 통지해야 효력이 있다고도 해놨다. 해고에 대한 절차적 제한이다. 왜 이런 조항을 뒀을까?

대법원은 서면 통지를 통해 "① 사용자가 해고 여부를 더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하고 ② 해고의 존부 및 시기와 사유를 명확히 하여 사후에 이를 둘러싼 분쟁이 적정하고 용이하게 해결되고 ③ 근로자도 해고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게 하기 위한 취지"라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5인 미만 사업장엔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업주가 '퇴직 사유'를 허위로 신고한 경우, 고용노동부에 정정을 요청하는 절차가 있긴 하다.
'피보험자격 확인 청구' 제도다.

고용보험법 17조는 "피보험자 또는 피보험자였던 사람은 언제든지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피보험자격의 취득 또는 상실에 관한 확인을 청구할 수 있다"고 돼 있다. 피보험자격 확인 청구는 2016년부터 5년간 한 해 평균 2만 6천여 건에 이른다.(직장갑질119가 고용노동부에서 받은 자료)

청구가 이뤄지면 근로복지공단 관할 지사가 사업주에게 사실관계를 물어본다. 그러나 퇴직 사유를 정확히 규명할 수 있는 강제력 있는 수단이 없다. 사업주가 부인하면 퇴직 사유를 정정하기 쉽지 않다. '공단이 사업주 말만 듣고 대충 처리한다'는 불만이 나오는 이유다.

■ 법 적용 피하려 '5인 미만' 쪼개기

근로기준법 적용을 회피하려고 하나의 사업장을 '5인 미만'으로 쪼개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은 부당해고 구제신청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이를 악용하는 것이다.

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사건 판정례를 보면, 한 학원 사업주는 학원을 2개로 나눠 각각 사업자등록을 하고, 5인 미만 사업장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노동위는 " 위 학원들은 동일인에게 경영을 위탁하여 동일인이 위 학원들을 운영한 점, 동일한 주소지의 2층, 3층에서 동일한 학원 명칭으로 운영되는 점 등에 비추어 볼 때, 위 학원들을 하나의 사업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고, 근로자 수를 합산하면 5인 이상 사업장"이라고 판단했다.

해고 직전 '근로자 수'를 일부러 줄이기도 한다. 상시 근로자 수를 산정할 때 해고 직전 1개월 동안 고용된 인원이 기준이다. 이 기간에만 5인 미만을 유지하면 법 적용을 피할 수 있다. 직장갑질119 신하나 변호사는 "해고를 위한 편법"이라며 "그러나 근로자 입장에선 사업주의 고의를 입증하기 너무 어려워 사실상 다투기 어렵다"고 말한다.

■ 해고 제한 조항, 비용 부담은 얼마나?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근로기준법 적용과 관련해 '해고 제한 조항'은 특히 민감한 이슈다.

경영계는 해고 사유와 절차가 제한되면 작은 사업장이 경영 악화에 대응하긴 어렵다고 주장한다. 또 대부분 인사관리자가 별도로 없어 부당해고 구제절차에 사업주가 직접 대응하는 것도 부담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임금을 좌우하는 조항과 달리, 해고 제한 조항은 경제적 부담이 덜할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2016년 고용노동부 연구용역보고서 '4인 이하 사업장 실태조사'를 보면 해고 제한 조항을 이미 적용하고 있거나 적용이 가능하단 응답이 62.9%에 이른다. 사업장의 법 준수 능력에 비하여 과도한 부담 전가는 아니라는 얘기다. 해고 시 서면 통보의 경우엔 추가 비용이 들지 않는 조항이란 의견도 있다.


신하나 변호사는 "상담을 해보면 해고 제한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 해고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생존권 문제인데, 매출이나 업종 등을 안 따지고 단지 근로자 수만으로 보호에서 배제하는 건 부당하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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