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지옥’에서 태어난 나, 그래도 사람이 좋아요” [취재후]

입력 2023.05.09 (10:15) 수정 2023.05.0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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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좁은 철장에 꾸깃꾸깃…개 130여 마리 구조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어느 건물. “불법 개 번식장이 운영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동물보호단체가 현장을 찾은 건 지난 2일 오전 10시쯤입니다. 평범한 농가처럼 보이지만, 개들이 찢어지게 우는 소리가 건물 밖까지 울립니다.

불법 개 번식장 운영자인 30대 남성 A 씨는 번식장 운영에 “청춘을 바쳤다”며 저항합니다. 2시간이 지난 뒤에야 경찰과 진안군청 관계자,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이 번식장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컨테이너 등을 개조해 만들어진 번식장 문을 열자 악취가 코를 찌릅니다. 배설물과 털, 정체를 알 수 없는 까만 덩어리 등 각종 오물이 뒤섞인 채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개 번식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뜬장’은 배설물 처리가 쉽도록 만든 것인데, 철망 사이에 낀 채로 굳은 배설물이 철창 바닥을 만들었습니다.

전라북도 진안에서 적발된 불법 개 번식장 모습전라북도 진안에서 적발된 불법 개 번식장 모습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철창 안에 서너 마리씩 갇힌 개들은 사람을 보자 반가운 듯 꼬리를 흔듭니다. 하얀 털은 이물질로 오염돼있고, 엉켜 뭉쳐있습니다.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이는 미니 비숑 한 마리. 늘어진 배를 바늘로 얼기설기 꼬맸는데, 그 사이가 벌어져 진물이 나옵니다. 이 어미 개의 무게는 2~3kg 정도로 추정됩니다.

건물 한쪽에 있는 냉동고에서는 죽은 개가 발견됐고, 건물 바로 앞에는 태우다 만 개 사체가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장은 ‘개 지옥’입니다.

현장에서는 수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 의약품이나 주사기도 발견됐습니다. A 씨는 취재진에게 “내가 미니 비숑을 국내 시장에 퍼뜨렸고, 종을 개량해 유전병을 제거하는 데에 특화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번식장에서는 미니 비숑, 포메라니안 등 130마리가 넘는 개가 구조됐습니다. 번식장에서 발견된 개 대부분은 작은 크기에 예쁜 외모로 인기가 있는 미니 비숑입니다.

불법 번식장에서 태어난 새끼 미니 비숑과 모견불법 번식장에서 태어난 새끼 미니 비숑과 모견

■ ‘합법’ 개 번식장 국내 2천여 곳…문제는 느슨한 관리 규정

진안에서 적발된 개 번식장은 불법이지만, 국내 모든 번식장이 불법은 아닙니다. 동물보호법은 ‘반려동물을 번식시켜 판매하는 영업’을 ‘동물생산업’이라고 규정하고 관할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 영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살아있는 동물에 ‘생산’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부적절하다고 지적합니다.)

‘2021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물생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2021년 기준 2,647명입니다. 업체는 전국에 2,019개가 있습니다. 2017년 종사자 수 788명, 업체 수 545명과 비교하면 3~4배 정도 증가한 겁니다.

문제는 영업 허가의 기준이 너무 부실하다는 점입니다. 사람 1명이 번식이 가능한 개나 고양이 50마리를 돌볼 수 있게 했습니다. 출산한 생명이 제대로 돌봄을 받기에 어려운 구조입니다. 전문인력이 없어도 영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의사가 없는 산부인과입니다.

담당 공무원들은 관리·감독 인력이 턱없이 모자란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담당자 1명이 32개의 번식장을 관리·감독해야 하는데, 그 업무뿐 아니라 동물복지 관련해 거의 모든 업무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관리·감독이 어려우니, 있는 기준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아래 ‘움직이는 사진’을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지난해 12월, 동물보호단체가 경기도 연천에서 적발한 ‘합법 번식장’ 모습입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연천에서 운영 중이던 합법 번식장 모습 / 동물행동권 카라 제공.지난해 12월, 경기도 연천에서 운영 중이던 합법 번식장 모습 / 동물행동권 카라 제공.
좁은 철망에 갇혀 제대로 허리를 펴지 못하는 개. 좁은 뜬장에서 정형행동을 보이는 개. 오물이 묻어 엉킨 털. 털이 항문을 막아 괴사한 개. 장기가 튀어나온 채로 방치된 개 ….

합법 번식장이지만, 앞서 보여드린 진안의 불법 번식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동물보호단체는 이곳에서 80여 마리의 개를 구조했습니다.

■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결국은 수요와 공급의 문제입니다. 번식장에서 ‘생산’된 개를 찾는 사람이 있으니, 썩은 내 나는 좁은 철창에서 개가 ‘생산’됩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부품을 하나씩 조립하듯, 약품을 주사하고 기구로 교배를 강제하며 살아있는 생명을 ‘출산 기계’로 만드는 겁니다.

전진경 동물행동권 카라 대표는 “번식장에서 태어난 동물들은 보통 경매장으로 갔다가 펫숍으로 흘러간다. 펫숍에서 동물을 사는 걸 하지 않아야 이런 참상이 사라질 것”이라며 “보호소에서 입양을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 한국판 ‘루시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판 루시법’ 제정을 촉구하며 진행 중인 서명 캠페인‘한국판 루시법’ 제정을 촉구하며 진행 중인 서명 캠페인

루시법은 새끼 동물들의 판매를 제한하고 전문 번식업자(breeder)를 통해서 반려동물을 입양할 수 있도록 하는 영국의 법입니다. 영국 번식장에서 구조된 개 ‘루시’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습니다.

국내에서는 지난달 27일부터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시행됐습니다. 동물생산업과 관련해서는 무허가 영업장에 최대 징역 2년 혹은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매길 수 있게 하는 등 처벌이 강화됐습니다. 하지만 개정된 동물보호법으로 무분별하고 불법적인 반려동물의 생산과 판매를 막기에는 어려워 보입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루시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입니다.

■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싶다면 ‘여기’로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https://www.animal.go.kr)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 4월 30일까지. 4개월 동안 등록된 동물만 8,000마리가 넘습니다. 같은 기간, 자연사나 안락사 등으로 보호가 종료된 동물은 2만 마리를 넘습니다.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 올라온 보호 동물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 올라온 보호 동물

이달 초에 강원도 철원에서 발견된 수컷 믹스견의 소개란에는 “순하고 사람을 좋아함(애교가 많음)”이라고 적혀있네요.

일정한 보호 기간이 끝나면 유기견의 소유권은 지방정부로 넘어가고, 주인을 찾지 못한 유기견은 안락사 대상이 됩니다. 지난해 구조·보호된 동물 11만 8,273마리 중 15.1%는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유기견센터에서 보호하는 개나 고양이, 보호소에서 태어난 새끼들, 도로에서 발견된 유기동물이 새 반려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불에 탄 사체까지’…불법 개 농장 또 적발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6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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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 지옥’에서 태어난 나, 그래도 사람이 좋아요” [취재후]
    • 입력 2023-05-09 10:15:08
    • 수정2023-05-09 10:35:28
    취재후·사건후

■ 좁은 철장에 꾸깃꾸깃…개 130여 마리 구조

전라북도 진안군에 있는 어느 건물. “불법 개 번식장이 운영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동물보호단체가 현장을 찾은 건 지난 2일 오전 10시쯤입니다. 평범한 농가처럼 보이지만, 개들이 찢어지게 우는 소리가 건물 밖까지 울립니다.

불법 개 번식장 운영자인 30대 남성 A 씨는 번식장 운영에 “청춘을 바쳤다”며 저항합니다. 2시간이 지난 뒤에야 경찰과 진안군청 관계자, 동물보호단체 활동가들이 번식장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습니다.

컨테이너 등을 개조해 만들어진 번식장 문을 열자 악취가 코를 찌릅니다. 배설물과 털, 정체를 알 수 없는 까만 덩어리 등 각종 오물이 뒤섞인 채 산처럼 쌓여있습니다. 개 번식장에서 흔히 발견되는 ‘뜬장’은 배설물 처리가 쉽도록 만든 것인데, 철망 사이에 낀 채로 굳은 배설물이 철창 바닥을 만들었습니다.

전라북도 진안에서 적발된 불법 개 번식장 모습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든 철창 안에 서너 마리씩 갇힌 개들은 사람을 보자 반가운 듯 꼬리를 흔듭니다. 하얀 털은 이물질로 오염돼있고, 엉켜 뭉쳐있습니다. 새끼를 낳은 지 얼마 안 된 것처럼 보이는 미니 비숑 한 마리. 늘어진 배를 바늘로 얼기설기 꼬맸는데, 그 사이가 벌어져 진물이 나옵니다. 이 어미 개의 무게는 2~3kg 정도로 추정됩니다.

건물 한쪽에 있는 냉동고에서는 죽은 개가 발견됐고, 건물 바로 앞에는 태우다 만 개 사체가 작은 언덕을 이루고 있습니다. 현장은 ‘개 지옥’입니다.

현장에서는 수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 의약품이나 주사기도 발견됐습니다. A 씨는 취재진에게 “내가 미니 비숑을 국내 시장에 퍼뜨렸고, 종을 개량해 유전병을 제거하는 데에 특화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번식장에서는 미니 비숑, 포메라니안 등 130마리가 넘는 개가 구조됐습니다. 번식장에서 발견된 개 대부분은 작은 크기에 예쁜 외모로 인기가 있는 미니 비숑입니다.

불법 번식장에서 태어난 새끼 미니 비숑과 모견
■ ‘합법’ 개 번식장 국내 2천여 곳…문제는 느슨한 관리 규정

진안에서 적발된 개 번식장은 불법이지만, 국내 모든 번식장이 불법은 아닙니다. 동물보호법은 ‘반려동물을 번식시켜 판매하는 영업’을 ‘동물생산업’이라고 규정하고 관할 지자체의 허가를 받아 영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살아있는 동물에 ‘생산’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게 부적절하다고 지적합니다.)

‘2021년 반려동물 보호·복지 실태조사’에 따르면 동물생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2021년 기준 2,647명입니다. 업체는 전국에 2,019개가 있습니다. 2017년 종사자 수 788명, 업체 수 545명과 비교하면 3~4배 정도 증가한 겁니다.

문제는 영업 허가의 기준이 너무 부실하다는 점입니다. 사람 1명이 번식이 가능한 개나 고양이 50마리를 돌볼 수 있게 했습니다. 출산한 생명이 제대로 돌봄을 받기에 어려운 구조입니다. 전문인력이 없어도 영업 허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의사가 없는 산부인과입니다.

담당 공무원들은 관리·감독 인력이 턱없이 모자란다고 입을 모읍니다. 한 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은 “담당자 1명이 32개의 번식장을 관리·감독해야 하는데, 그 업무뿐 아니라 동물복지 관련해 거의 모든 업무를 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습니다. 관리·감독이 어려우니, 있는 기준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아래 ‘움직이는 사진’을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지난해 12월, 동물보호단체가 경기도 연천에서 적발한 ‘합법 번식장’ 모습입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 연천에서 운영 중이던 합법 번식장 모습 / 동물행동권 카라 제공.좁은 철망에 갇혀 제대로 허리를 펴지 못하는 개. 좁은 뜬장에서 정형행동을 보이는 개. 오물이 묻어 엉킨 털. 털이 항문을 막아 괴사한 개. 장기가 튀어나온 채로 방치된 개 ….

합법 번식장이지만, 앞서 보여드린 진안의 불법 번식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입니다. 동물보호단체는 이곳에서 80여 마리의 개를 구조했습니다.

■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

결국은 수요와 공급의 문제입니다. 번식장에서 ‘생산’된 개를 찾는 사람이 있으니, 썩은 내 나는 좁은 철창에서 개가 ‘생산’됩니다. 컨베이어 벨트에서 부품을 하나씩 조립하듯, 약품을 주사하고 기구로 교배를 강제하며 살아있는 생명을 ‘출산 기계’로 만드는 겁니다.

전진경 동물행동권 카라 대표는 “번식장에서 태어난 동물들은 보통 경매장으로 갔다가 펫숍으로 흘러간다. 펫숍에서 동물을 사는 걸 하지 않아야 이런 참상이 사라질 것”이라며 “보호소에서 입양을 해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 한국판 ‘루시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한국판 루시법’ 제정을 촉구하며 진행 중인 서명 캠페인
루시법은 새끼 동물들의 판매를 제한하고 전문 번식업자(breeder)를 통해서 반려동물을 입양할 수 있도록 하는 영국의 법입니다. 영국 번식장에서 구조된 개 ‘루시’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졌습니다.

국내에서는 지난달 27일부터 개정된 동물보호법이 시행됐습니다. 동물생산업과 관련해서는 무허가 영업장에 최대 징역 2년 혹은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매길 수 있게 하는 등 처벌이 강화됐습니다. 하지만 개정된 동물보호법으로 무분별하고 불법적인 반려동물의 생산과 판매를 막기에는 어려워 보입니다. 동물보호단체에서 루시법 제정을 촉구하는 이유입니다.

■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싶다면 ‘여기’로

반려동물을 입양하고 싶은데, 어디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농림축산식품부에서는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https://www.animal.go.kr)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올해 1월 1일부터 지난 4월 30일까지. 4개월 동안 등록된 동물만 8,000마리가 넘습니다. 같은 기간, 자연사나 안락사 등으로 보호가 종료된 동물은 2만 마리를 넘습니다.

국가동물보호정보시스템에 올라온 보호 동물
이달 초에 강원도 철원에서 발견된 수컷 믹스견의 소개란에는 “순하고 사람을 좋아함(애교가 많음)”이라고 적혀있네요.

일정한 보호 기간이 끝나면 유기견의 소유권은 지방정부로 넘어가고, 주인을 찾지 못한 유기견은 안락사 대상이 됩니다. 지난해 구조·보호된 동물 11만 8,273마리 중 15.1%는 안락사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유기견센터에서 보호하는 개나 고양이, 보호소에서 태어난 새끼들, 도로에서 발견된 유기동물이 새 반려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관련 기사]
‘불에 탄 사체까지’…불법 개 농장 또 적발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66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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