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야, 나 지금 되게 신나’…쿠데타 잦은 태국 총선 관전법 [세계엔]
입력 2023.05.13 (08:00)
수정 2023.05.13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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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여년 동안 '탁신 가문'은 태국 총선에서 패배한 적이 없다. 늘 군부 정당과 겨뤄 승리하고 집권했다. 하지만 탁신 전 총리는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쫓겨났다. 그의 여동생 잉락이 총선을 통해 다시 집권했지만 2014년 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지난 총선에서 다시 이겼지만 군부가 만든 '이상한' 헌법 규정 때문에 또 집권에는 실패했다.
그 태국에서 이번엔 탁신의 막내딸 패통탄이 총선에 출마한다. 여론조사만 보면 패통탄의 프아타이당은 제 1당이 유력하다. 다시 한 편의 복수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까. "군부야, 나 지금 되게 신나"
복잡해 보이는 태국 총선의 주요 등장인물은 딱 4명이다.
1. '탁신 친나왓'
탁신 친나왓 (Thaksin Shinawatra) 총리, 2006년 UN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는데, 그 틈을 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는 그의 이런저런 부패 혐의를 계속 터뜨렸고, 결국 탁신 전 총리는 두바이 망명길에 올랐다(살생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 불교 국가는 쿠데타에 성공해도 정적을 죽이지 않고, 쿠데타에 실패해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5년 뒤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44세의 나이로 '프아타이당(For the THAI라는 뜻이다)을 창당하고 총선에서 승리했다. 큰오빠 탁신을 복권시키려고 했지만, 오히려 권력남용으로 탄핵됐고, 군부가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다.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19번째 쿠데타였다.
2. '쁘라윳 찬오차'
19번째 쿠데타의 주인공 '쁘라윳 찬오차' 당시 육군참모총장. 태국에서 대부분의 쿠데타가 그랬듯 사회가 안정되면 총선을 치러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국왕의 승인을 받아) 본인이 총리에 올랐다. 그리고 이웃 미얀마 군부로부터 신의 한수를 배웠다. 군부 정권은 2017년 '상원의원 250명 모두를 군부가 지명'하는 내용이 담긴 개헌안을 만들었다. 반복되는 쿠데타에 지친 태국 국민들은 61%의 지지로 이 '위험한' 헌법을 통과시켜줬다.
이제 군부는 선거로 뽑는 하원 500석 중 126석만 확보해도 (상원 250석이 자동으로 더해져, 상하원 합쳐 750석의 과반이 된다) 재집권이 가능하다. 하지만 야당이 집권하기 위해선 하원 500석 중 376석을 확보해야한다. 야당이 압승을 거두지 않고서는 정권 교체는 불가능해졌다. 실제 2019년에 열린 총선에서 쁘라윳 총리의 여당은 친탁신계의 프아타이당보다 적은 의석을 얻고도 가뿐하게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일(14일) 다시 총선이 다가왔다. 군부가 주축이된 집권 여당의 지지율은 또 바닥이다. 그래도 군부에게는 '250명의 의원을 무조건 우리편으로 보장하는 헌법'이 있다.
쿠데타 직후 푸미폰 아둔야뎃(라마 9세)국왕을 알현하는 쁘라윳 당시 육군 참모총장. 국민의 총애를 받던 푸미폰 국왕으로부터 사실상 쿠데타 승인을 재가 받고 집권한 뒤, 개헌을 통해 권력기반을 다쳤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 워낙 낮은 지지율로 고전이 예상된다.
3. '패통탄 친나왓'
탁신 전 총리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 Paetongtarn Shinawatra, 36살). 탁신계 정당 프아타이당의 총리 후보다. 푸아타이당은 사실상 태국의 유일한 전국 정당이다. 통신재벌이였던 탁신 전 총리의 정당인 만큼 자금력도 탄탄하다. 실제 20여년 동안 군부와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했다. 지금도 여전히 정부 여당보다 지지율이 높다. 문제는 헌법이다.
단독으로 과반인 376석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보니 다른 야당과 연정이 불가피하다. 심지어 패통탄과 군부와의 연정설이 퍼진다. 패통탄은 며칠전 "군부와는 손잡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지만, 그만큼 친 탁신계 프아타이당의 개혁 성향이 약해졌음을 보여준다.
탁신 전 총리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 최근 총선을 앞두고 둘째아들을 낳았다. 패통탄이 이끄는 프아타이당은 군부 정당을 제치고 제 1당이 유력하지만 과반을 확보하기 힘들어 사실상 총리가 되긴 어려운 구도다. 결국 개혁성향의 전진당(MFP)과의 연정 가능성이 높지만 군부 정당과의 연대도 배제할 수 없다. 사진 로이터
4. '피타 림짜른낫'
탁신계 프아타이당의 개혁 색깔이 연해지자, 지난 총선에서 젊은이들은 선명한 개혁성향의 퓨처포워드당(FFP)에 몰표를 몰아줬다. 퓨처포워드당은 단번에 76석을 확보해 제2야당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거액의 후원금을 문제삼아 퓨처포워드당을 해산시켰다. 그렇게 이번 총선도 다시 '군부 대 탁신가'의 대결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난 3일 나온 여론조사(국립개발행정연구원 조사)에서 퓨처포워드당(FFP)의 명맥을 이어받은 전진당(MFP)의 인기가 다시 치솟는다. 당 대표 '피타 림짜른낫'(Pita Limjaroenrat, 42살)은 35.44%의 지지를 받으며, 29.2%를 보인 패통탄마저 앞질렀다.
개혁성향의 전진당(MFP)을 이끌고 있는 피타 림짜른낫 대표. 태국 민주화를 상징하는 탐마삿대학과 하버드 대 케네디 경영대학원을 졸업했다. 군주제 개혁 등 예민한 공약도 피하지 않는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1등을 달리고 있다.
전진당(MFP)은 특히 태국에서 가장 조심스런 이슈인 '군주제 개혁'이슈도 피해가지 않는다. 국왕을 비판하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형법 112조 '왕실모독죄'를 개정하겠다고 공약했다. 태국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금기의 선을 넘어선다. 여당에선 " 100년 넘게 군주제 아래에서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왔는데 왜 바꾸려 하는가"라는 입장이 나왔다. 프아타이당의 패통탄도 '의회에서 논의가 이뤄져야한다'며 말을 아꼈다.
(방콕 '방 본' 지역구에 출마한 '루차녹 시리녹 (28)' 전진당 후보와 인터뷰를 하다 '왕실모독죄'와 관련한 질문을 했다. 그는 당사에 전화를 걸어 답변 내용을 받아 적은 뒤에야 인터뷰에 응했다. 그렇게 태국에서 '군주제 개혁'은 조심스런 이슈다)
결국, 패통탄의 프아타이당과 피타의 전진당(MFP)이 연정을 통해 집권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376석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설령 과반을 확보해 집권한다고 해도 탁신의 딸이 또 총리가 되면 쿠데타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쿠데타는 또 거대한 민주화 시위로 번질 수 있다. 군부를 향한 탁신가문의 복수드라마는 결말을 예측하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심지어 탁신가와 번번이 탁신가를 쫓아냈던 군부의 연대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나.
태국은 10여 년 세계 10번째 자동차 수출국으로 동남아 최대 경제 대국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도네시아에 밀리고 수년 내 베트남에도 따라잡힐 가능성이 커졌다. 가계부채는 급증하고 청년들은 결혼을 꺼린다. 후진적인 정치가 경제와 사회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결국, 선택은 태국 국민들의 몫이다.
실각 이후에 15년째 두바이에 머물고 있는 탁신 전 총리는 SNS에 '오는 7월 손자를 보기 위해 태국에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딸의 집권을 확신하는 승부수다. 하지만 위사누 크르어응암 부총리는 "(이미 실형을 선고받은 ) 탁신 전 총리가 귀국하면 교도소로 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지금으로서는 탁신의 화려한 귀환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더 지켜봐야 한다. 태국은 쿠데타가 전통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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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5-13 08:00:40
- 수정2023-05-13 09:09:47
지난 20여년 동안 '탁신 가문'은 태국 총선에서 패배한 적이 없다. 늘 군부 정당과 겨뤄 승리하고 집권했다. 하지만 탁신 전 총리는 2006년 군부 쿠데타로 쫓겨났다. 그의 여동생 잉락이 총선을 통해 다시 집권했지만 2014년 또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지난 총선에서 다시 이겼지만 군부가 만든 '이상한' 헌법 규정 때문에 또 집권에는 실패했다.
그 태국에서 이번엔 탁신의 막내딸 패통탄이 총선에 출마한다. 여론조사만 보면 패통탄의 프아타이당은 제 1당이 유력하다. 다시 한 편의 복수 드라마가 나올 수 있을까. "군부야, 나 지금 되게 신나"
복잡해 보이는 태국 총선의 주요 등장인물은 딱 4명이다.
1. '탁신 친나왓'
탁신 친나왓 (Thaksin Shinawatra) 총리, 2006년 UN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는데, 그 틈을 타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군부는 그의 이런저런 부패 혐의를 계속 터뜨렸고, 결국 탁신 전 총리는 두바이 망명길에 올랐다(살생을 극도로 싫어하는 이 불교 국가는 쿠데타에 성공해도 정적을 죽이지 않고, 쿠데타에 실패해도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
5년 뒤 탁신 전 총리의 여동생 '잉락 친나왓'이 44세의 나이로 '프아타이당(For the THAI라는 뜻이다)을 창당하고 총선에서 승리했다. 큰오빠 탁신을 복권시키려고 했지만, 오히려 권력남용으로 탄핵됐고, 군부가 또다시 쿠데타를 일으켰다. 1932년 입헌군주제 도입 이후 19번째 쿠데타였다.
2. '쁘라윳 찬오차'
19번째 쿠데타의 주인공 '쁘라윳 찬오차' 당시 육군참모총장. 태국에서 대부분의 쿠데타가 그랬듯 사회가 안정되면 총선을 치러 권력을 이양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국왕의 승인을 받아) 본인이 총리에 올랐다. 그리고 이웃 미얀마 군부로부터 신의 한수를 배웠다. 군부 정권은 2017년 '상원의원 250명 모두를 군부가 지명'하는 내용이 담긴 개헌안을 만들었다. 반복되는 쿠데타에 지친 태국 국민들은 61%의 지지로 이 '위험한' 헌법을 통과시켜줬다.
이제 군부는 선거로 뽑는 하원 500석 중 126석만 확보해도 (상원 250석이 자동으로 더해져, 상하원 합쳐 750석의 과반이 된다) 재집권이 가능하다. 하지만 야당이 집권하기 위해선 하원 500석 중 376석을 확보해야한다. 야당이 압승을 거두지 않고서는 정권 교체는 불가능해졌다. 실제 2019년에 열린 총선에서 쁘라윳 총리의 여당은 친탁신계의 프아타이당보다 적은 의석을 얻고도 가뿐하게 재집권에 성공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내일(14일) 다시 총선이 다가왔다. 군부가 주축이된 집권 여당의 지지율은 또 바닥이다. 그래도 군부에게는 '250명의 의원을 무조건 우리편으로 보장하는 헌법'이 있다.
3. '패통탄 친나왓'
탁신 전 총리의 막내딸 '패통탄 친나왓'( Paetongtarn Shinawatra, 36살). 탁신계 정당 프아타이당의 총리 후보다. 푸아타이당은 사실상 태국의 유일한 전국 정당이다. 통신재벌이였던 탁신 전 총리의 정당인 만큼 자금력도 탄탄하다. 실제 20여년 동안 군부와의 대결에서 모두 승리했다. 지금도 여전히 정부 여당보다 지지율이 높다. 문제는 헌법이다.
단독으로 과반인 376석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보니 다른 야당과 연정이 불가피하다. 심지어 패통탄과 군부와의 연정설이 퍼진다. 패통탄은 며칠전 "군부와는 손잡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지만, 그만큼 친 탁신계 프아타이당의 개혁 성향이 약해졌음을 보여준다.
4. '피타 림짜른낫'
탁신계 프아타이당의 개혁 색깔이 연해지자, 지난 총선에서 젊은이들은 선명한 개혁성향의 퓨처포워드당(FFP)에 몰표를 몰아줬다. 퓨처포워드당은 단번에 76석을 확보해 제2야당으로 뛰어올랐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거액의 후원금을 문제삼아 퓨처포워드당을 해산시켰다. 그렇게 이번 총선도 다시 '군부 대 탁신가'의 대결로 굳어지는 분위기였다.
그런데 지난 3일 나온 여론조사(국립개발행정연구원 조사)에서 퓨처포워드당(FFP)의 명맥을 이어받은 전진당(MFP)의 인기가 다시 치솟는다. 당 대표 '피타 림짜른낫'(Pita Limjaroenrat, 42살)은 35.44%의 지지를 받으며, 29.2%를 보인 패통탄마저 앞질렀다.
전진당(MFP)은 특히 태국에서 가장 조심스런 이슈인 '군주제 개혁'이슈도 피해가지 않는다. 국왕을 비판하면, 형사처벌이 가능하도록 규정한 형법 112조 '왕실모독죄'를 개정하겠다고 공약했다. 태국 사회에서 가장 위험한 금기의 선을 넘어선다. 여당에선 " 100년 넘게 군주제 아래에서 모두가 행복하고 평화롭게 살아왔는데 왜 바꾸려 하는가"라는 입장이 나왔다. 프아타이당의 패통탄도 '의회에서 논의가 이뤄져야한다'며 말을 아꼈다.
(방콕 '방 본' 지역구에 출마한 '루차녹 시리녹 (28)' 전진당 후보와 인터뷰를 하다 '왕실모독죄'와 관련한 질문을 했다. 그는 당사에 전화를 걸어 답변 내용을 받아 적은 뒤에야 인터뷰에 응했다. 그렇게 태국에서 '군주제 개혁'은 조심스런 이슈다)
결국, 패통탄의 프아타이당과 피타의 전진당(MFP)이 연정을 통해 집권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그래도 376석을 확보하기는 쉽지 않다. 설령 과반을 확보해 집권한다고 해도 탁신의 딸이 또 총리가 되면 쿠데타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쿠데타는 또 거대한 민주화 시위로 번질 수 있다. 군부를 향한 탁신가문의 복수드라마는 결말을 예측하기가 매우 힘들어졌다. 심지어 탁신가와 번번이 탁신가를 쫓아냈던 군부의 연대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정치는 생물이라고 하지 않나.
태국은 10여 년 세계 10번째 자동차 수출국으로 동남아 최대 경제 대국이다. 하지만 이제는 인도네시아에 밀리고 수년 내 베트남에도 따라잡힐 가능성이 커졌다. 가계부채는 급증하고 청년들은 결혼을 꺼린다. 후진적인 정치가 경제와 사회의 발목을 잡는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결국, 선택은 태국 국민들의 몫이다.
실각 이후에 15년째 두바이에 머물고 있는 탁신 전 총리는 SNS에 '오는 7월 손자를 보기 위해 태국에 돌아가겠다'고 선언했다. 딸의 집권을 확신하는 승부수다. 하지만 위사누 크르어응암 부총리는 "(이미 실형을 선고받은 ) 탁신 전 총리가 귀국하면 교도소로 가야 한다"라고 밝혔다. 지금으로서는 탁신의 화려한 귀환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더 지켜봐야 한다. 태국은 쿠데타가 전통인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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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 기자 kim9@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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