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약물 과다 투여로 영아 숨졌지만…유기치사는 ‘무죄’

입력 2023.05.15 (10:21) 수정 2023.05.15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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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11일 KBS 뉴스 7 제주2023년 5월 11일 KBS 뉴스 7 제주

지난 11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지난해 3월, 제주대병원에서 13개월 영아 '유림이'에게 약물을 과다 투약해 숨지게 하고, 이 같은 의료사고 기록을 삭제해 조직적으로 은폐한 혐의를 받는 간호사 3명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렸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쌍둥이 큰딸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지 1년 2개월 만의 판결. 재판부가 판결문을 낭독하는 동안 유족 측은 상기된 표정으로 여러 차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어깨를 들썩이며 수차례 울음을 꿀꺽 삼켰습니다. 1년 넘게 눈물이 마르지 않은 부모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일부 혐의에 대해서 재판부의 무죄 판단이 나오자, 방청석의 한숨 소리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20여 분간의 긴 선고가 끝나고, 유족들은 검찰 구형에 크게 못 미치는 판결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법정에서 강하게 반발하며 오열하던 이들은 법원 관계자들에 의해 법정 밖으로 이끌려 나왔습니다.

"우리는 아이 마지막 얼굴도 못 봤단 말이에요. 그 돈(공탁금) 줄 테니까, 우리 아이를 살려올 수만 있다면…."

■ 수간호사 '징역 1년'…약물 오투약 '징역 1년 2월', 의료기록 삭제 '징역 1년 6월'

영아 오투약 사망사고를 내고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혐의를 받는 제주대학교병원 간호사들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2023년 5월 11일 KBS 뉴스 7 제주 2023년 5월 11일 KBS 뉴스 7 제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진재경)는 지난 11일, 업무상 과실과 유기치사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간호사 A 씨와 B 씨에 대해 각각 징역 1년 2개월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또,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수간호사 C 씨에게는 징역 1년을 선고했습니다.

앞서 검찰은 수간호사에게 징역 4년, 다른 간호사 2명에게 징역 5년을 각각 구형한 바 있습니다.

■ '흡입기'로 줘야 할 약물, '주사기'로 50배 일시 주입하는 의료사고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지난해 3월 11일, 코로나로 입원 치료 중이던 13개월 영아 강유림 양이 호흡 곤란 증상을 보이자 담당 의사는 '에피네프린'이란 약물 5㎎을 희석한 후 네뷸라이저(연무식 흡입기)를 통해 투여하라고 처방했습니다.

하지만 간호사 A 씨는 처방과 달리, 이 약물 5㎎을 정맥주사로 놓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려 적정 용량의 50배에 달하는 약물이 일시에 주입된 겁니다. 에피네프린은 기관지 확장과 심정지 등 심장 기능이 멈췄을 때 심장 박동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약물입니다.

2023년 5월 11일 KBS 뉴스 7 제주2023년 5월 11일 KBS 뉴스 7 제주

A 씨와 같은 팀의 선임인 B 씨는 약물 투여 후 피해 영아의 상태가 악화해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오류를 인지하고도, 이를 담당 의사 등에게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수간호사인 C 씨 역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것을 알고도 담당 의사 등에게 보고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은폐하기 위해 A 씨, B 씨에게 사고 보고서 작성 등을 하지 않도록 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또 이들은 공모해 이번 사건과 관련한 약물 처방 내용과 처치 과정 등 의료사고와 관련한 기록을 여러 차례에 걸쳐 삭제한 것으로 수사 결과 확인됐습니다.

결국, 유림이는 상태가 급격히 악화했고, 약물 과다 투여 이튿날인 지난해 3월 12일 숨졌습니다. 사망 원인은 급성 심근염으로, 에피네프린 과다 투여 시 나타나는 부작용 가운데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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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림이는 입원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였기 때문에, 사망 직후 중환자실에서 시신이 밀폐 처리돼 곧장 관으로 옮겨졌습니다. 부모는 영문도 모른 채, 유림이를 화장하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제주도 방역 당국도 유림이를 '입원 치료 중 사망'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같은 의료 기록 삭제 행위는 뒤늦게 병원 내부적으로 파악되며, 은폐 시도 사실이 들통났습니다. 이미 사건이 발생한 지 나흘이 지난 데다, 유림이의 장례 절차도 끝난 뒤였습니다.

■ 재판부 "약물 과다 투여로 영아 사망…'업무상과실치사' 유죄"

재판부는 약이 잘못 투여돼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망하게 된 원인은 최초 오투약 사고가 원인이고, 피고인들이 의사에게 보고하지 않은 건 명백한 업무상 과실"이라며 약물을 과다 투여하고 의료 기록을 삭제한 간호사 A 씨와 B 씨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이어 "사고를 은폐하려고 했던 시도는 우리 사회의 의사·간호사에 대한 깊은 신뢰를 크게 훼손하는 일"이라며 "대학병원에서 공적으로 작성된 기록이 수정·삭제됐다는 건 일반 시민으로선 상상하기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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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피고인의 업무상 과실로 인한 오투약사고, 즉 에피네프린을 네뷸라이저가 아닌 정맥주사 방식으로 놓는 업무상 과실이 피해자를 숨지게 한 원인이었냐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오투약 사고 발생 후, 이를 인지했음에도 의사에게 알리지 않은 업무상 과실로 피해자가 사망했느냐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수간호사 C 씨에 대해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C 씨는 다른 간호사들이 (의료사고 사실을) 보고할지를 망설이고 있던 차에 수간호사로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자'는 취지로 말해 사실상 은폐를 주도했다. 명백한 주의 의무 위반으로, 오투약 사고 이후 업무상 과실이 인정돼 죄질이 매우 나쁘다"면서도 "피해자 사망과의 인과관계는 증명되지 않아, 형사법적 책임을 묻긴 어렵다"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와 관련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약물 투약 이후 돌이키기 어려워…'유기치사'는 무죄"

유기치사 혐의에 대해선 피해자가 사망하게 된 원인이 이런 유기행위나, 오투약 사고 이후 보고하지 않은 업무상 과실 행위로 인한 것이냐는 쟁점을 놓고 그간 검찰과 피고인 측이 다퉜습니다.

재판부는 간호사 3명이 의료 사고를 은폐하고 환자를 방치한 사실은 유죄로 판단했지만, 이들의 '유기 행위'와 유림이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유기치사'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간호사로서 오투약 사고를 있는 그대로 의사에게 보고해 피해자가 그에 맞는 치료를 받게 했어야 하나 사고를 은폐했고, 피해자가 처치를 못 받도록 유기했다"고 판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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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몸무게가 11㎏에 불과한 만 1살짜리 영아에 에피네프린이 적정량보다 50배 이상 잘못 투여되면 곧바로 심장에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며 "피고인들이 사건을 인지한 시점은 1시간 후로, 이때는 이미 영아 심장이 심각하게 손상돼 의료기술상 돌이키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 측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의료진이 매우 어려운 근무 환경이었던데다, 당시 밀려드는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며 "잘못을 뉘우치고 있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었던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습니다.

■ 유족 "의료사고 은폐 행위에 면죄부 주는 판례로 남지 않길"

유족 측은 제주대병원 의료진의 의료사고 은폐 행위로 인해 딸이 적절한 처치를 받을 기회를 박탈당했는데도, 이 같은 유기치사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다며 1심 결과에 대해 크게 낙담했습니다.

유림 양의 부친 강승철 씨는 KBS와 만나 "의료진이 실수로라도 위험한 의료행위를 한 뒤 이를 은폐했다가 추후에 사실이 드러나도 '보고가 늦어졌다',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는 식으로 진술한다면, 유기치사에 대해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인가"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강 씨는 "의료진이 아이의 후속 치료를 위해 최선의 조치를 논할 기회를 박탈당했고,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음압시설을 갖춘 전원 수단이 없고, 소아 에크모 장비가 없고, 또 생존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의료 사고를) 은폐하고 환자를 유기하더라도 유기치사죄를 물을 수 없다는 건, 제주지역 의료 실태를 법원에서 선언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의료인이) 실수를 덮으려고 잠깐의 잘못된 생각으로 은폐하더라도, '이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판례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고 바랐습니다.

한편 사고 이후 한 차례 기자회견 외에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던 제주대병원은 1심 선고 이후 KBS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유족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과 유감을 표한다"면서, "유가족들을 만나 공식적인 사과를 직접 드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구속기소 된 피고인 간호사 3명은 휴직 중으로, 최종심 판결에 따라 인사 조치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병원 측은 또 이번 투약 사고 이후 의료진 교육을 강화하고, 투약 전 PDA 확인 절차를 도입하는 등 의료 시스템을 개선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재판부의 일부 무죄 판단과 관련해, 유족 의사를 반영해 항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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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3-05-15 12:5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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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오전 제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지난해 3월, 제주대병원에서 13개월 영아 '유림이'에게 약물을 과다 투약해 숨지게 하고, 이 같은 의료사고 기록을 삭제해 조직적으로 은폐한 혐의를 받는 간호사 3명에 대한 1심 선고 공판이 열렸습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쌍둥이 큰딸이 황망하게 세상을 떠난 지 1년 2개월 만의 판결. 재판부가 판결문을 낭독하는 동안 유족 측은 상기된 표정으로 여러 차례 깊은 한숨을 내쉬고, 어깨를 들썩이며 수차례 울음을 꿀꺽 삼켰습니다. 1년 넘게 눈물이 마르지 않은 부모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일부 혐의에 대해서 재판부의 무죄 판단이 나오자, 방청석의 한숨 소리가 더욱 깊어졌습니다. 20여 분간의 긴 선고가 끝나고, 유족들은 검찰 구형에 크게 못 미치는 판결에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법정에서 강하게 반발하며 오열하던 이들은 법원 관계자들에 의해 법정 밖으로 이끌려 나왔습니다.

"우리는 아이 마지막 얼굴도 못 봤단 말이에요. 그 돈(공탁금) 줄 테니까, 우리 아이를 살려올 수만 있다면…."

■ 수간호사 '징역 1년'…약물 오투약 '징역 1년 2월', 의료기록 삭제 '징역 1년 6월'

영아 오투약 사망사고를 내고 이를 조직적으로 은폐한 혐의를 받는 제주대학교병원 간호사들에게 법원이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2023년 5월 11일 KBS 뉴스 7 제주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재판장 진재경)는 지난 11일, 업무상 과실과 유기치사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간호사 A 씨와 B 씨에 대해 각각 징역 1년 2개월과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또, 같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수간호사 C 씨에게는 징역 1년을 선고했습니다.

앞서 검찰은 수간호사에게 징역 4년, 다른 간호사 2명에게 징역 5년을 각각 구형한 바 있습니다.

■ '흡입기'로 줘야 할 약물, '주사기'로 50배 일시 주입하는 의료사고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지난해 3월 11일, 코로나로 입원 치료 중이던 13개월 영아 강유림 양이 호흡 곤란 증상을 보이자 담당 의사는 '에피네프린'이란 약물 5㎎을 희석한 후 네뷸라이저(연무식 흡입기)를 통해 투여하라고 처방했습니다.

하지만 간호사 A 씨는 처방과 달리, 이 약물 5㎎을 정맥주사로 놓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무려 적정 용량의 50배에 달하는 약물이 일시에 주입된 겁니다. 에피네프린은 기관지 확장과 심정지 등 심장 기능이 멈췄을 때 심장 박동수를 증가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약물입니다.

2023년 5월 11일 KBS 뉴스 7 제주
A 씨와 같은 팀의 선임인 B 씨는 약물 투여 후 피해 영아의 상태가 악화해 중환자실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오류를 인지하고도, 이를 담당 의사 등에게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수간호사인 C 씨 역시 의료사고가 발생한 것을 알고도 담당 의사 등에게 보고하지 않고 오히려 이를 은폐하기 위해 A 씨, B 씨에게 사고 보고서 작성 등을 하지 않도록 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또 이들은 공모해 이번 사건과 관련한 약물 처방 내용과 처치 과정 등 의료사고와 관련한 기록을 여러 차례에 걸쳐 삭제한 것으로 수사 결과 확인됐습니다.

결국, 유림이는 상태가 급격히 악화했고, 약물 과다 투여 이튿날인 지난해 3월 12일 숨졌습니다. 사망 원인은 급성 심근염으로, 에피네프린 과다 투여 시 나타나는 부작용 가운데 하나입니다.

2023년 5월 11일 KBS 뉴스 7 제주
유림이는 입원 당시 '코로나19 확진자'였기 때문에, 사망 직후 중환자실에서 시신이 밀폐 처리돼 곧장 관으로 옮겨졌습니다. 부모는 영문도 모른 채, 유림이를 화장하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제주도 방역 당국도 유림이를 '입원 치료 중 사망'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같은 의료 기록 삭제 행위는 뒤늦게 병원 내부적으로 파악되며, 은폐 시도 사실이 들통났습니다. 이미 사건이 발생한 지 나흘이 지난 데다, 유림이의 장례 절차도 끝난 뒤였습니다.

■ 재판부 "약물 과다 투여로 영아 사망…'업무상과실치사' 유죄"

재판부는 약이 잘못 투여돼 피해자가 사망한 사실은 인정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사망하게 된 원인은 최초 오투약 사고가 원인이고, 피고인들이 의사에게 보고하지 않은 건 명백한 업무상 과실"이라며 약물을 과다 투여하고 의료 기록을 삭제한 간호사 A 씨와 B 씨에 대해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이어 "사고를 은폐하려고 했던 시도는 우리 사회의 의사·간호사에 대한 깊은 신뢰를 크게 훼손하는 일"이라며 "대학병원에서 공적으로 작성된 기록이 수정·삭제됐다는 건 일반 시민으로선 상상하기 어렵다"고 강조했습니다.

2023년 5월 11일 KBS 뉴스 7 제주
이번 사건 '업무상과실치사' 혐의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피고인의 업무상 과실로 인한 오투약사고, 즉 에피네프린을 네뷸라이저가 아닌 정맥주사 방식으로 놓는 업무상 과실이 피해자를 숨지게 한 원인이었냐는 것, 그리고 △이와 같은 오투약 사고 발생 후, 이를 인지했음에도 의사에게 알리지 않은 업무상 과실로 피해자가 사망했느냐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재판부는 수간호사 C 씨에 대해선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C 씨는 다른 간호사들이 (의료사고 사실을) 보고할지를 망설이고 있던 차에 수간호사로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자'는 취지로 말해 사실상 은폐를 주도했다. 명백한 주의 의무 위반으로, 오투약 사고 이후 업무상 과실이 인정돼 죄질이 매우 나쁘다"면서도 "피해자 사망과의 인과관계는 증명되지 않아, 형사법적 책임을 묻긴 어렵다"며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와 관련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 "약물 투약 이후 돌이키기 어려워…'유기치사'는 무죄"

유기치사 혐의에 대해선 피해자가 사망하게 된 원인이 이런 유기행위나, 오투약 사고 이후 보고하지 않은 업무상 과실 행위로 인한 것이냐는 쟁점을 놓고 그간 검찰과 피고인 측이 다퉜습니다.

재판부는 간호사 3명이 의료 사고를 은폐하고 환자를 방치한 사실은 유죄로 판단했지만, 이들의 '유기 행위'와 유림이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유기치사'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재판부는 "간호사로서 오투약 사고를 있는 그대로 의사에게 보고해 피해자가 그에 맞는 치료를 받게 했어야 하나 사고를 은폐했고, 피해자가 처치를 못 받도록 유기했다"고 판시했습니다.

2023년 5월 11일 KBS 뉴스 7 제주
다만 "몸무게가 11㎏에 불과한 만 1살짜리 영아에 에피네프린이 적정량보다 50배 이상 잘못 투여되면 곧바로 심장에 타격이 올 수밖에 없다"며 "피고인들이 사건을 인지한 시점은 1시간 후로, 이때는 이미 영아 심장이 심각하게 손상돼 의료기술상 돌이키기 힘들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 측 주장을 받아들였습니다.

이어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의료진이 매우 어려운 근무 환경이었던데다, 당시 밀려드는 환자를 돌보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수칙을 지키지 않은 것"이라며 "잘못을 뉘우치고 있고 형사처벌 전력이 없었던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사유를 밝혔습니다.

■ 유족 "의료사고 은폐 행위에 면죄부 주는 판례로 남지 않길"

유족 측은 제주대병원 의료진의 의료사고 은폐 행위로 인해 딸이 적절한 처치를 받을 기회를 박탈당했는데도, 이 같은 유기치사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다며 1심 결과에 대해 크게 낙담했습니다.

유림 양의 부친 강승철 씨는 KBS와 만나 "의료진이 실수로라도 위험한 의료행위를 한 뒤 이를 은폐했다가 추후에 사실이 드러나도 '보고가 늦어졌다', '상황이 여의치 못했다'는 식으로 진술한다면, 유기치사에 대해 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인가"라며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강 씨는 "의료진이 아이의 후속 치료를 위해 최선의 조치를 논할 기회를 박탈당했고, 그 부분에 대한 책임을 묻고 싶었다"면서 "그러나 '음압시설을 갖춘 전원 수단이 없고, 소아 에크모 장비가 없고, 또 생존할 가능성이 없으므로' (의료 사고를) 은폐하고 환자를 유기하더라도 유기치사죄를 물을 수 없다는 건, 제주지역 의료 실태를 법원에서 선언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의료인이) 실수를 덮으려고 잠깐의 잘못된 생각으로 은폐하더라도, '이에 대해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판례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고 바랐습니다.

한편 사고 이후 한 차례 기자회견 외에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았던 제주대병원은 1심 선고 이후 KBS에 보낸 서면 답변에서 "유족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과 유감을 표한다"면서, "유가족들을 만나 공식적인 사과를 직접 드리려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또 "구속기소 된 피고인 간호사 3명은 휴직 중으로, 최종심 판결에 따라 인사 조치가 이뤄질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병원 측은 또 이번 투약 사고 이후 의료진 교육을 강화하고, 투약 전 PDA 확인 절차를 도입하는 등 의료 시스템을 개선했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은 재판부의 일부 무죄 판단과 관련해, 유족 의사를 반영해 항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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