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중국에 163년만 ‘통 큰 선물’…블라디보스토크 개방 이유는?

입력 2023.05.17 (07:00) 수정 2023.05.17 (17:39)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통 큰 선물을 하나 받았습니다. 뭐 하나 부족할 것 없을 듯한 광활한 국토를 자랑하는 중국이 딱 하나 아쉬운 소리를 해야했던 '바닷길'입니다. 러시아가 중국 동북지방의 해상 화물 운송 용도로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사용권을 제공하기로 한 건데요. 이를 두고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국'에 바닷길을 열어준 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러시아, 163년만에 중국에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개방

블라디보스토크 항구가 어떤 곳인지 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중국 지린성에 인접한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는 겨울에도 얼지않는 부동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극동지역 제 1항구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원래는 중국의 영토였지만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러시아 영토가 됐는데, 이후 중국이 163년간 계속해서 아쉬움을 삼켜야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중국 동북지방에는 항구가 없습니다. 헤이룽장성과 지린성에서 물자가 풍부하게 나고 있지만, 정작 이 물자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 활용하기는 어려운 지리적 조건입니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보통 육로를 통해 랴오닝성의 다롄항으로 물자를 이동시킨 뒤 다시 해로를 통해 남방 지역으로 운송해왔습니다.

이렇게 다롄항으로 물자를 옮기기 위한 육상 운송 거리는 1천 Km에 달합니다. 많은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이용하게 되면 육상 운송로가 200km로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물류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게 되는겁니다.

지금은 낙후됐지만 잠재력은 큰 지역으로 꼽히는 동북지방 발전을 위해서도 의미있는 성과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바닷길 빌리는 중국...북한 대신 러시아?

중국은 2000년대 들어 다른 나라의 항구를 빌려서 바다로 나선다는 뜻의 '차항출해(借港出海
)' 전략을 폈습니다. 그 파트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이 나진항을 중국에 개방하면서 석탄 등 물자가 이 항로를 이용해 중국 남방으로 운송됐습니다. 중국이 장기 사용권을 확보할 정도로 공을 들였던 사업이었습니다.

문제는 북한 핵실험에 따라 북중 관계가 소원해지고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며 북중 경제 협력 프로젝트가 중단된데다, 이후 코로나19가 확산한 뒤에는 북중 국경까지 폐쇄되며 나진항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는데 있습니다. 중국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데, 러시아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사용권을 제공받으며 이런 아쉬움을 덜게 된 겁니다.

중국은 나진항의 물동량을 300만 톤 정도로 보고 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의 물동량이 1천만 톤으로 훨씬 큰 것을 감안하면 손해볼 부분이 없습니다. 중국과의 경협으로 활로를 모색했던 북한 입장에서는 이번 조치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러시아, 왜 지금 통 큰 선물?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동해, 더 나아가 태평양으로 바로 통하는 극동지역 부동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런 전략적 요충지를 중국에 개방했을까요?

러시아와 중국은 최근들어 밀월 관계를 한층 강화하는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서방 국가들이 일제히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시작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과 달리, 중국은 오히려 에너지분야 등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해왔습니다. 중국은 러시아가 의존하고 있는 자금줄이자 시장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전을 둘러싼 전황이 러시아에 유리하게만 돌아가지도 않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대반격'까지 예고된 것을 고려하면,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이 놓칠 수 없는 우방인 셈입니다. 지난 3월에는 양국 정상이 공동성명을 통해 '원활한 물류시스템을 발전시켜나가자'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가 중국과의 밀착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통 큰 선물을 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사실상 중국의 속국이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중국에 대해 굴종하는 모습"..."중요한 발트해에 대한 접근권도 상실, 이미 지정학적으로 패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중국, "러시아가 중국에 종속?...악의적 이간질"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이번 블라디보스토크 개방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무역 협력 발전의 결과물이라고 평가하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중국 종속론'을 경계하고 나섰습니다.

"외신, 기회 틈타 '러시아가 중국에 종속된다'는 논조로 러시아 사회의 중국에 대한 우려 부추기고 '중국 위협론' 소재 삼아…러시아에 대한 고의적 폄훼이자 중국-러시아 신형 대국 관계에 대한 악의적 이간질"

중국 관영 환구시보 16일자 사설

러시아 내부에서 중국에 대한 반감 내지는 경계심이 고개를 들까 우려하는 모양새입니다. 중러 양국이 이번 조치 등으로 포괄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면 중러 양국은 물론이고 전세계 공급 사슬의 안정과 경제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와 국가 사이에 오가는 선물에 설마 정말로 그런 대승적 의미만 있을까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이래로 중러 양국이 계속해서 밀착 행보를 과시하고 있는 요즘, 중국이 말하는 '중러 신형 대국 관계'가 국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러, 중국에 163년만 ‘통 큰 선물’…블라디보스토크 개방 이유는?
    • 입력 2023-05-17 07:00:10
    • 수정2023-05-17 17:39:34
    글로벌K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통 큰 선물을 하나 받았습니다. 뭐 하나 부족할 것 없을 듯한 광활한 국토를 자랑하는 중국이 딱 하나 아쉬운 소리를 해야했던 '바닷길'입니다. 러시아가 중국 동북지방의 해상 화물 운송 용도로 블라디보스토크 항구의 사용권을 제공하기로 한 건데요. 이를 두고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지금 '이 시국'에 바닷길을 열어준 건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러시아, 163년만에 중국에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개방

블라디보스토크 항구가 어떤 곳인지 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중국 지린성에 인접한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는 겨울에도 얼지않는 부동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러시아에서는 극동지역 제 1항구로도 불린다고 합니다. 원래는 중국의 영토였지만 1860년 베이징조약으로 러시아 영토가 됐는데, 이후 중국이 163년간 계속해서 아쉬움을 삼켜야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중국 동북지방에는 항구가 없습니다. 헤이룽장성과 지린성에서 물자가 풍부하게 나고 있지만, 정작 이 물자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 활용하기는 어려운 지리적 조건입니다. 그래서 아쉬운대로 보통 육로를 통해 랴오닝성의 다롄항으로 물자를 이동시킨 뒤 다시 해로를 통해 남방 지역으로 운송해왔습니다.

이렇게 다롄항으로 물자를 옮기기 위한 육상 운송 거리는 1천 Km에 달합니다. 많은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블라디보스토크항을 이용하게 되면 육상 운송로가 200km로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물류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게 되는겁니다.

지금은 낙후됐지만 잠재력은 큰 지역으로 꼽히는 동북지방 발전을 위해서도 의미있는 성과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바닷길 빌리는 중국...북한 대신 러시아?

중국은 2000년대 들어 다른 나라의 항구를 빌려서 바다로 나선다는 뜻의 '차항출해(借港出海
)' 전략을 폈습니다. 그 파트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북한입니다. 북한이 나진항을 중국에 개방하면서 석탄 등 물자가 이 항로를 이용해 중국 남방으로 운송됐습니다. 중국이 장기 사용권을 확보할 정도로 공을 들였던 사업이었습니다.

문제는 북한 핵실험에 따라 북중 관계가 소원해지고 국제사회의 제재가 강화되며 북중 경제 협력 프로젝트가 중단된데다, 이후 코로나19가 확산한 뒤에는 북중 국경까지 폐쇄되며 나진항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는데 있습니다. 중국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인데, 러시아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 항구 사용권을 제공받으며 이런 아쉬움을 덜게 된 겁니다.

중국은 나진항의 물동량을 300만 톤 정도로 보고 있는데, 블라디보스토크의 물동량이 1천만 톤으로 훨씬 큰 것을 감안하면 손해볼 부분이 없습니다. 중국과의 경협으로 활로를 모색했던 북한 입장에서는 이번 조치를 조금 다른 시각에서 보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러시아, 왜 지금 통 큰 선물?

블라디보스토크 항구는 러시아 입장에서도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동해, 더 나아가 태평양으로 바로 통하는 극동지역 부동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 이런 전략적 요충지를 중국에 개방했을까요?

러시아와 중국은 최근들어 밀월 관계를 한층 강화하는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싸고 서방 국가들이 일제히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시작하고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것과 달리, 중국은 오히려 에너지분야 등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을 강화해왔습니다. 중국은 러시아가 의존하고 있는 자금줄이자 시장이기도 합니다.

우크라이나전을 둘러싼 전황이 러시아에 유리하게만 돌아가지도 않는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대반격'까지 예고된 것을 고려하면, 러시아 입장에서는 중국이 놓칠 수 없는 우방인 셈입니다. 지난 3월에는 양국 정상이 공동성명을 통해 '원활한 물류시스템을 발전시켜나가자'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가 중국과의 밀착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통 큰 선물을 줬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최근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사실상 중국의 속국이 되어가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러시아, 중국에 대해 굴종하는 모습"..."중요한 발트해에 대한 접근권도 상실, 이미 지정학적으로 패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중국, "러시아가 중국에 종속?...악의적 이간질"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는 이번 블라디보스토크 개방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 사이의 무역 협력 발전의 결과물이라고 평가하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발언으로 대표되는 '러시아의 중국 종속론'을 경계하고 나섰습니다.

"외신, 기회 틈타 '러시아가 중국에 종속된다'는 논조로 러시아 사회의 중국에 대한 우려 부추기고 '중국 위협론' 소재 삼아…러시아에 대한 고의적 폄훼이자 중국-러시아 신형 대국 관계에 대한 악의적 이간질"

중국 관영 환구시보 16일자 사설

러시아 내부에서 중국에 대한 반감 내지는 경계심이 고개를 들까 우려하는 모양새입니다. 중러 양국이 이번 조치 등으로 포괄적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면 중러 양국은 물론이고 전세계 공급 사슬의 안정과 경제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국가와 국가 사이에 오가는 선물에 설마 정말로 그런 대승적 의미만 있을까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발발 이래로 중러 양국이 계속해서 밀착 행보를 과시하고 있는 요즘, 중국이 말하는 '중러 신형 대국 관계'가 국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