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줄 돈 없던’ 집주인은 왜 제주도의 호텔을 샀을까

입력 2023.05.17 (14:31) 수정 2023.05.1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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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의 한 빌라부산 중구의 한 빌라

전국이 인천 미추홀 전세사기로 떠들썩할 때였습니다. 부산 중구의 한 빌라에서 전세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취재진을 만난 세입자들은 하나 같이 '최 모 씨'의 이름을 대며 "연락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기자가 직접 세입자들이 살던 빌라의 등기부 등본을 떼봤습니다. 엉뚱하게도 집주인은 '이 모 씨'였습니다. '제보가 잘못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다시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세입자들 모두, 한목소리로 '최 씨'를 찾았습니다. 명의는 이 씨지만, 집 관리부터 전세금 계약까지 '최 씨'가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대리인 역할을 한 최 씨 역시, 이 씨와 똑같은 이름의 빌라를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임대업자였습니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연락도 닿지 않는 집주인을 대신해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처리하는 최 씨가 실소유자라고 의심했습니다.

■ '세입자 전화는 안 받더니'…최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느 순간 세입자의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던 최 씨. '취재가 시작되자' 기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최 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본인은 예전부터 임대사업을 했고, 전세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본인의 부동산 등을 내놓으며 백방으로 노력 중이고, 세입자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분명 전세 '사기'와 '깡통' 전세는 다릅니다. 사기는 처음부터 세입자를 속이려 했던 거지만, 깡통 전세는 무리한 투자로 발생한 '사고'입니다.

최 씨의 말을 일단 믿기로 하고, '이 씨' 소유의 집에 관해 물었습니다. 최 씨는 이 씨를 '지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관리 아닌 관리'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씨는 사업이 바빠 연락이 잘 닿지 않고, 출장이 잦아 본인이 대신 세입자와 연락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전세금 거래의 주체는 '이 씨'임을 강조했습니다.

이 씨는 일이 워낙 바쁘시다 보니까 방을 놓는 일은 제가 했는데, 방을 얼마에 놓을지와 월세를 얼마 받을지는 항상 여쭤보고 한 거죠.
- 임대사업자 최OO

그런데 의문입니다. 이 씨의 집을 취재하고 있는데, 왜 '지인'이라는 최 씨가 해명하고 있을까요.

■ 세입자들 잠 못 이루던 날…집주인은 제주도에 4층짜리 호텔을 샀다

집주인이 산 제주도의 한 호텔집주인이 산 제주도의 한 호텔

이 씨는 집주인으로서 문제가 많았습니다.

취재진이 등본상 이 씨의 집 주소를 찾아가 봤더니 '관제실' 푯말이 걸려있었습니다. 여기다 은행에 근저당 대출을 할 때 전세금을 낮춰 적어 대출 담보 가치를 높이려 한 의혹이 포착돼 은행이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떼이진 않을까, 불안감에 잠 못 이루던 날들을 보낼 때, 이 씨는 제주도 유명 관광단지에 4층짜리 호텔을 삽니다.

돌려줄 전세금 1억이 없어 세입자에게 '계약 연장'을 종용하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31억 원의 호텔을 매매한 등본을 본 세입자는 황당하기만 합니다.

"단순히 집주인이 힘들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연장해달라는 거 해주고 기다렸는데…뒤통수 맞은 거죠."
- 세입자 정OO

■ 그런데 호텔의 전 주인 이름이 익숙하다


호텔의 등기부 등본도 확인해봤습니다. 이 씨에게 호텔을 판 전 주인의 이름이 낯이 익습니다. 바로 '지인'이라던 빌라 관리자, 최 씨였습니다. 2019년 12월, 최 씨는 호텔을 사들였고, 그로부터 약 2년 반이 지난 2022년 7월에 이 씨에게 호텔을 넘긴 겁니다.

취재해보니 이 씨는 지난해 12월에 최 씨 소유의 또 다른 호텔에 10억 원의 근저당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때 최 씨 역시, 자신이 갖고 있던 빌라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 문제를 겪던 때였습니다.

이 씨는 왜 세입자에게 '전세금 1억 줄 돈이 없다'며 나가겠다는 세입자에게 계약 연장을 요구하고, 전세금 반환 법적 소송에 휘말리면서까지 최 씨에게 10억 원을 빌려주고, 또 30억 원을 들여 최 씨의 호텔을 샀을까요?

취재진은 '지인'이라는 최 씨의 말이 진실이라 믿고, 이 씨의 해명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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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세금 줄 돈 없던’ 집주인은 왜 제주도의 호텔을 샀을까
    • 입력 2023-05-17 14:31:00
    • 수정2023-05-17 14:4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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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의 한 빌라
전국이 인천 미추홀 전세사기로 떠들썩할 때였습니다. 부산 중구의 한 빌라에서 전세금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취재진을 만난 세입자들은 하나 같이 '최 모 씨'의 이름을 대며 "연락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기자가 직접 세입자들이 살던 빌라의 등기부 등본을 떼봤습니다. 엉뚱하게도 집주인은 '이 모 씨'였습니다. '제보가 잘못된 게 아닐까?'라는 생각에 다시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하지만 세입자들 모두, 한목소리로 '최 씨'를 찾았습니다. 명의는 이 씨지만, 집 관리부터 전세금 계약까지 '최 씨'가 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알고 보니, 대리인 역할을 한 최 씨 역시, 이 씨와 똑같은 이름의 빌라를 여러 채 가지고 있는 임대업자였습니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연락도 닿지 않는 집주인을 대신해 하나부터 열까지 혼자 처리하는 최 씨가 실소유자라고 의심했습니다.

■ '세입자 전화는 안 받더니'…최 씨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느 순간 세입자의 전화도 잘 받지 않는다던 최 씨. '취재가 시작되자' 기자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최 씨는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본인은 예전부터 임대사업을 했고, 전세금 문제를 일으킨 적도 없었지만 최근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어 '돈이 없다'고 했습니다. 본인의 부동산 등을 내놓으며 백방으로 노력 중이고, 세입자에게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분명 전세 '사기'와 '깡통' 전세는 다릅니다. 사기는 처음부터 세입자를 속이려 했던 거지만, 깡통 전세는 무리한 투자로 발생한 '사고'입니다.

최 씨의 말을 일단 믿기로 하고, '이 씨' 소유의 집에 관해 물었습니다. 최 씨는 이 씨를 '지인'이라고 말했습니다. '관리 아닌 관리'를 하고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이 씨는 사업이 바빠 연락이 잘 닿지 않고, 출장이 잦아 본인이 대신 세입자와 연락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디까지나 전세금 거래의 주체는 '이 씨'임을 강조했습니다.

이 씨는 일이 워낙 바쁘시다 보니까 방을 놓는 일은 제가 했는데, 방을 얼마에 놓을지와 월세를 얼마 받을지는 항상 여쭤보고 한 거죠.
- 임대사업자 최OO

그런데 의문입니다. 이 씨의 집을 취재하고 있는데, 왜 '지인'이라는 최 씨가 해명하고 있을까요.

■ 세입자들 잠 못 이루던 날…집주인은 제주도에 4층짜리 호텔을 샀다

집주인이 산 제주도의 한 호텔
이 씨는 집주인으로서 문제가 많았습니다.

취재진이 등본상 이 씨의 집 주소를 찾아가 봤더니 '관제실' 푯말이 걸려있었습니다. 여기다 은행에 근저당 대출을 할 때 전세금을 낮춰 적어 대출 담보 가치를 높이려 한 의혹이 포착돼 은행이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7월, 세입자들이 전세금을 떼이진 않을까, 불안감에 잠 못 이루던 날들을 보낼 때, 이 씨는 제주도 유명 관광단지에 4층짜리 호텔을 삽니다.

돌려줄 전세금 1억이 없어 세입자에게 '계약 연장'을 종용하던 바로 그때였습니다. 31억 원의 호텔을 매매한 등본을 본 세입자는 황당하기만 합니다.

"단순히 집주인이 힘들구나, 그렇게 생각하고 연장해달라는 거 해주고 기다렸는데…뒤통수 맞은 거죠."
- 세입자 정OO

■ 그런데 호텔의 전 주인 이름이 익숙하다


호텔의 등기부 등본도 확인해봤습니다. 이 씨에게 호텔을 판 전 주인의 이름이 낯이 익습니다. 바로 '지인'이라던 빌라 관리자, 최 씨였습니다. 2019년 12월, 최 씨는 호텔을 사들였고, 그로부터 약 2년 반이 지난 2022년 7월에 이 씨에게 호텔을 넘긴 겁니다.

취재해보니 이 씨는 지난해 12월에 최 씨 소유의 또 다른 호텔에 10억 원의 근저당을 빌려주기도 했습니다. 그때 최 씨 역시, 자신이 갖고 있던 빌라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아 문제를 겪던 때였습니다.

이 씨는 왜 세입자에게 '전세금 1억 줄 돈이 없다'며 나가겠다는 세입자에게 계약 연장을 요구하고, 전세금 반환 법적 소송에 휘말리면서까지 최 씨에게 10억 원을 빌려주고, 또 30억 원을 들여 최 씨의 호텔을 샀을까요?

취재진은 '지인'이라는 최 씨의 말이 진실이라 믿고, 이 씨의 해명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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