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우리 학교는 구조조정 중

입력 2023.05.17 (23:4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9층시사국 16회 I] 우리 학교는 구조조정 중

■ 2023년, 대학가는 구조조정이 한창입니다.

[프롤로그]

김백찬/대학생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에서 태어난 1998년생 명지대 바둑학과 18학번 김백찬입니다. 현재 지금 27대 바둑학과 학생회장을 하고 있고요. 지금 4학년 재직 중에 있습니다. (재학 중에) 아, 네. 재학 중에 있습니다."

"바둑학이라고 하죠. 국내든 해외든 바둑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저희가 많이 하려고 하는데, 지금 학교에서는 저희 바둑학과를 폐과하려고 하는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

뉴스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는 대학 이야기를…."
"일정 수준 충원율에 미치지 못하면…."
"폐교 명령까지 내릴 계획입니다."

한덕수/국무총리
"과거 우리 대학들은 국가인재 양성과 지역발전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대학 혁신의 걸림돌이 되는 규제들은 과감히 철폐하여…."

변인영/한국사학진흥재단
"현재의 위기는 인구 절벽에 따라서 대부분 거의 모든 대학들이 공통적으로 지금 겪고 있는, 어떤 공통의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이 부분들은 어떤 대학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개선이 어렵고…."

사립대 관계자(음성변조)
"교육부에서 칼질을 자꾸 해대니까 학교에서 살려면 그 칼질 당하는 원인이 뭔지를 파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부실한 학과는 없애고, 그리고 또 될 만한 학과 이렇게 좀 만들고 이제 그렇게 가는 거죠."

임광빈/신안산대 교수
"현실이 구조조정은 맞는데 절차와 과정이 무시된 상태에서는 아니라는 거죠. 최소한 교육 기관에서는."

고영훈/명지대 바둑학과
"회사에서 구조조정하는, 당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마치 어떤 부서 빼라는 느낌처럼…."

■ 적자생존의 대학가는 어떤 모습일까요?

대구 외곽, 산 중턱에 대학 캠퍼스 건물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2018년 문을 닫은 대구외국어대학교.
입구엔 경고 문구가 쓰여있고, 경보 장치가 설치돼있습니다.

폐교와 함께 학교법인이 해산하면서 사실상 방치돼 있었는데, 약 1년 전 정부 융자로 경비업체를 구해 겨우 출입만 통제하고 있습니다.

정시한/인근 주민
"주변 있는 사람들이나 동네 사람들도 안 좋죠. 저번에 한 번에 여기 또 불이 화재가 났었는데, 외부 사람들이 들어갔을 수도 있잖아요."

땅이 팔려야 교직원들 체불 임금도 지급하고 청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땅이 잘 안 팔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입지가 안 좋은 데다 교육용 재산의 용도 변경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문을 닫은 대학의 기록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이 폐교 대학 기록물 보존 서고는 올해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닫은 대학이 많아지면서 기록물을 보관할 별도의 공간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김현정/폐교 대학 서고 관리 전문요원
"지금 현재는 폐교 대학 기록물들 중에서 사본의 기록물들만 여기 담아서 봉인을 한 상태입니다."

빼곡히 쌓인 기록 속엔 학창시절의 추억도 함께 들어있습니다.

김현정/폐교 대학 서고 관리 전문요원
"졸업앨범과 사진들을 보면 그 풋풋함 그리고 20대의 설렘 그리고 그 청춘이 많이 느껴져서 저도 기분이 좋아지게 되고 저 또한 회상을 하게 되는데요. 자칫 내가 이 성적표라든지 학적부가 없으면 고졸이 되는 거죠.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약 5백 제곱미터 규모의 서고, 지난 3월 문을 열었는데 곧 꽉 찬다고 합니다.

김현정/폐교 대학 서고 관리 전문요원
"현재 이관 상자의 정리가 완료되면 이 공간은 100% 만고가 될 예정입니다."

남현종 아나운서
"폐교 기록물 보존 서고가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는데, 마치 문 닫은 대학들의 납골당 같아서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올해 문을 열었는데 벌써 꽉 찬다는 것도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문 닫는 대학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잖아요?"

김수연 기자
"네. 우리나라가 워낙 대학 진학률이 높았다 보니 보셨다시피 산 속에까지 대학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는데요. 비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지금은 폐교 대학이 전국 20곳에 이릅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폐교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이미 2년 전, 2021년부터 대학 입학생 수가 입학 정원보다 적어졌습니다.
인구 추이도 그야말로 절벽인 상황이라 15년 후엔 초등학생은 34%, 중고등학생은 46% 줄어들 거로 추산됩니다.

남현종 아나운서
"학령인구 감소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면 거의 모든 대학들이 영향을 받고 있겠는데요?"

김수연 기자
"그렇습니다. 대학가는 그야말로 ‘비상’인데요. 학과를 통폐합하는, 이른바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한 전문대, 올해 입학률이 저조한 6개 과의 모집을 중지하면서, 일부 신입생들은 입학하자마자 학과가 없어질 판입니다.

신안산대 신입생/
"올해, (폐과를) 알았어요, 3월에."
-입학하자마자 안 거예요, 그러면?
"네. 저 카톡 보고 알았어요. 다른 사람이 올려준 거 보고."
-단톡방에서?
"네. 그래서 홈페이지 들어가 보니 진짜 (폐과가) 나와 있더라고요."

명예퇴직에 응하지 않은 교수들은 면직됐고, 학내 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성대/신안산대 교양과 교수
"교수님들이 버티니까 면직을 시켰는데, 저희가 학부모들하고 학생들하고 교수들이 교육부에 감사 요구를 지금 하고 있어요. 임금 체불을 하고 있어서 노동부 진정도 진행 중이고요."

학교 측은 살기 위해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등록금 수입과 직결되는 신입생 충원율에 따라 학과를 개편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신안산대 관계자(음성변조)
"요새는 대학도 상품화가 돼서 학생들이 취향이 맞지 않으면 안가잖아요. 학교도 살리기 위해서 CPR(심폐소생술) 하다 보면 갈비뼈가 부러져도 사람이 사는 게 낫지."

4년제 대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대학은 경영 부실로 인한 회생 과정에서 재단 산하의 전문대와 통합하면서 학과구조를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회계법인의 컨설팅을 받아 바둑학과와 철학과 폐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명지대 철학과 학생
"저희가 보기에 결국 회계법인에서 제공한 자료는 정량적인 자료뿐이었기 때문에, 학과를 살리고 안 살리고의 기준치가 결국에는 돈에 달려있다는 거죠."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들었다지만, 재단의 위기를 앞세워 학과 개편안을 사실상 강행하고 있습니다.

명지대 철학과 학생
"'시기가 시기인 만큼 뭉쳐야 한다. 아니면 졸속적으로라도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만 들으니까 많이 실망을 했죠."

대학 구조조정의 본격적인 신호탄은 정부가 쏘아 올렸습니다.

이주호/교육부 장관 (2022년 9월)
"교육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고요. 그만큼 교육의 많은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렇기 위해선 교육 주체들에게 자율과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재정진단에 따라 경영위기대학으로 선정되면 장학금 등 정부의 재정지원이 대폭 제한됩니다.
자진 폐교하면 해산장려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부실대학에 컨설팅과 경영 자문을 제공한다지만, 대학들은 사실상 살생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립대 관계자(음성변조)
"2025년도부터 재정 지원 못 받으면 그때는 단순히 못 받는 게 아니라 그냥 부실대학으로 완전히 낙인 찍혀서, 교육부에서 설명한 도표는 빨간색으로 표시해놨어요. 없애겠다는 거죠."

재정진단의 주요 평가 기준은 운영 손익과 체불임금 유무.
신입생이 적은 과는 없애고 교직원을 줄이면서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습니다.

사립대 관계자(음성변조)
"교육부에서 칼질을 자꾸 해대니까 학교에서 살려면 그 칼질당하는 원인이 뭔지를 파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부실한 학과는 없애고 또 될 만한 학과 이렇게 좀 만들고 그렇게 가는 거죠."

정부는 재정진단과 동시에 '글로컬 대학'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비수도권 대학 2백여 곳 중 글로컬 대학 30곳을 선정해 집중 지원한다는 방침입니다.

교수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정세은 교수/충남대 경제학과
"기존에 있는 예산을 모아서 지역에 있는 수많은 대학 중에서 30개 정도를 뽑아서 글로컬 대학으로 키운다고 하는데요. 이를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국내총생산 대비 고등교육재정 규모가 0.69%로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열악한 비수도권 대학들만 쥐어짠다는 겁니다.

정세은 교수/충남대 경제학과
"지금도 열악한 그런 상황에 있는 대학을 더 구조조정한다면 저희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 수 있습니까."

대학이 떠난 지역은 어떻게 될까?
가야대학교 고령캠퍼스가 김해캠퍼스로 통합되면서 주변 대학촌은 활력을 잃었습니다.
학생들이 살던 인근 원룸촌에는 저렴한 월세를 찾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왔습니다.

인근 주민
"베트남,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지금 3분의 2 이상 살고 있다고 보면 돼요."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지만, 지자체에선 손을 놓았습니다.

인근 주민
"밥솥은 외국 사람들이 다 버렸을 거예요. 외국에 못 가져가니까."
-아 버리고 가는구나….
"그냥 다 버려버리고 가요. 치우면 괜찮은데 군청에서도 저걸 안 치우거든요."

남현종 아나운서
"학생 수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의 교육정책도 대학가가 들썩이는 데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었네요."

김수연 기자
"네, 한편으로는 자발적 폐교를 위한 퇴로를 마련해주겠다는 당근이 있고요. 다른 한편으론 재정진단으로 경영이 부실하다고 판단되면 지원을 끊어버리겠다는 채찍도 있습니다.
대학들은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인데요.
지난해까지 3년간 7백 개가 넘는 학과가 통폐합됐고, 학생이 자퇴하면 등록금을 환불해주겠다고 나선 대학도 있습니다."

남현종 아나운서
"글로컬 대학 30곳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겠다는 건데 이 안에 선정이 되면 어쨌든 재정 지원이 이뤄진다는 거죠?"

김수연 기자
"그렇습니다. 살릴 대학에 몰아주겠다는 기조로 보이는데요.
비수도권 대학 2백여 곳 가운데 ‘글로컬 대학’ 30곳을 선정해 5년 동안 천억 원을 집중 지원합니다.
동시에 추진하는 게 이른바 ‘라이즈’ 사업인데요.
지자체 중심의 대학 발전을 지향한 것으로, 대학 재정지원의 절반을 지자체로 이관할 계획입니다."

남현종 아나운서
"당근과 채찍이 공존하는 방안처럼 보이는데 지금 대학들은 어느 부분에 반발하는 겁니까?"

김수연 기자
"우선 소수의 대학에 지원을 몰아준다면 여기 선정되지 못한 대학은 사실상 도태되라는 것 아니냐 이런 우려가 나오고요.
또,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성급하게 진행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글로컬 대학은 당장 다음 달에 예비지정이 되면 3개월 만에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야 합니다.
대학이 지자체, 산업체와 함께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석 달 안에 얼마나 내실 있는 계획을 세우겠냐는 겁니다.

우리보다 먼저 학령인구 감소를 경험한 나라가 일본인데요.
일본에서도 대학 폐교가 잇따르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 사례를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 후쿠오카현.
규슈대학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3만 제곱미터 규모의 복합 공간이 들어섰습니다.
‘이토 캠퍼스’의 이름을 따 ‘이토 라보 플러스’로 명명한 이곳은 연구 개발의 차세대 거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위한 연구개발동과 숙박시설, 지역주민을 위한 상업시설이 함께 갖춰졌습니다.

키타 요시유키/다이와하우스 공업주식회사
"후쿠오카시, 규슈대학, 학생, 입점해 있는 기업, 스타트업을 포함한 기업, 이런 분들이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설을 콘셉트로 오픈했습니다."

후쿠오카시는 사업 공모에서 반드시 ‘연구동’이 들어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고가의 연구 장비를 누구든 무료로 활용하고 학생을 기업 인턴십에 연계하는 공간도 갖춰졌습니다.
지역주민을 위한 서점과 식당도 들어섰습니다.

모토오카 마나/규슈대학생
"(이곳이) 모두가 올 수 있는 장소가 없어서 시골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요. 이런 장소가 생긴 덕분에 사람들이 오기 쉽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올 수 있는 장소가 생겨서 지역이 활성화된 것 같습니다."

2019년 말 시의 사업 구상부터 2020년 11월 사업자 선정, 2022년 3월 착공까지 3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대학과 지자체, 기업의 동반 성장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예산을 투자한 겁니다.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의 인근 마을.
문을 닫은 전문대에 ‘원헬스 센터’란 보건연구기관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시에서 학교 부지를 기부하면 후쿠오카현이 사업을 추진합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층이 유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히로후미 히라야마/후쿠오카현 ‘원헬스’ 종합추진실장
"원헬스 센터를 정비하고 인수 공통감염대책이나 약제내성균 대책 등에 관한 조사연구나 인재 육성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학생들은 대학의 본질을 묻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등록금 수입에 의존해온 우리 대학 체제는 학생 수 감소로 이미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변인영/한국사학재단 대학구조개선지원센터장
"인구 감소로 인한 어떻게 보면 사회적 재난과도 같은 이런 상황에서 저희도 준비되지 않은 노력과 개입을 해야 하는 시점이 오게 되면 그 사회적인 비용은 어마어마할 거라고 생각이 되거든요."

그렇다고 수요와 공급, 시장 논리로 학교와 학과를 줄이기만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임광빈 교수/신안산대 기계과
"구조조정 좋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합의해서 학생들이 학습권이 침해받지 않는 조건에서 합의를 보고 합의된 거에 (따라) 진행돼야 하는데 지금 그런 상황이 전혀 아니라는, 그런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저는 이번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대에 맞는 대학이란 뭔지, 그곳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학생들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명지대 철학과 학생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대학이어야 하는데 그러한 배움의 장을 박탈시키려고 하는 게…."

취재기자 : 김수연
외부촬영 : 조선기, 설태훈
촬영기자 : 안용습
영상편집 : 손보라
CG : 정예나
자료조사 : 오석진
조연출 : 정현주 유화영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9층시사국] 우리 학교는 구조조정 중
    • 입력 2023-05-17 23:40:15
    방송 다시보기

[9층시사국 16회 I] 우리 학교는 구조조정 중

■ 2023년, 대학가는 구조조정이 한창입니다.

[프롤로그]

김백찬/대학생
"안녕하세요. 저는 부산에서 태어난 1998년생 명지대 바둑학과 18학번 김백찬입니다. 현재 지금 27대 바둑학과 학생회장을 하고 있고요. 지금 4학년 재직 중에 있습니다. (재학 중에) 아, 네. 재학 중에 있습니다."

"바둑학이라고 하죠. 국내든 해외든 바둑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저희가 많이 하려고 하는데, 지금 학교에서는 저희 바둑학과를 폐과하려고 하는 그런 상황에 있습니다."

뉴스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는 대학 이야기를…."
"일정 수준 충원율에 미치지 못하면…."
"폐교 명령까지 내릴 계획입니다."

한덕수/국무총리
"과거 우리 대학들은 국가인재 양성과 지역발전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대학 혁신의 걸림돌이 되는 규제들은 과감히 철폐하여…."

변인영/한국사학진흥재단
"현재의 위기는 인구 절벽에 따라서 대부분 거의 모든 대학들이 공통적으로 지금 겪고 있는, 어떤 공통의 위기 상황이기 때문에 이 부분들은 어떤 대학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개선이 어렵고…."

사립대 관계자(음성변조)
"교육부에서 칼질을 자꾸 해대니까 학교에서 살려면 그 칼질 당하는 원인이 뭔지를 파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부실한 학과는 없애고, 그리고 또 될 만한 학과 이렇게 좀 만들고 이제 그렇게 가는 거죠."

임광빈/신안산대 교수
"현실이 구조조정은 맞는데 절차와 과정이 무시된 상태에서는 아니라는 거죠. 최소한 교육 기관에서는."

고영훈/명지대 바둑학과
"회사에서 구조조정하는, 당하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마치 어떤 부서 빼라는 느낌처럼…."

■ 적자생존의 대학가는 어떤 모습일까요?

대구 외곽, 산 중턱에 대학 캠퍼스 건물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2018년 문을 닫은 대구외국어대학교.
입구엔 경고 문구가 쓰여있고, 경보 장치가 설치돼있습니다.

폐교와 함께 학교법인이 해산하면서 사실상 방치돼 있었는데, 약 1년 전 정부 융자로 경비업체를 구해 겨우 출입만 통제하고 있습니다.

정시한/인근 주민
"주변 있는 사람들이나 동네 사람들도 안 좋죠. 저번에 한 번에 여기 또 불이 화재가 났었는데, 외부 사람들이 들어갔을 수도 있잖아요."

땅이 팔려야 교직원들 체불 임금도 지급하고 청산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땅이 잘 안 팔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입지가 안 좋은 데다 교육용 재산의 용도 변경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문을 닫은 대학의 기록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이 폐교 대학 기록물 보존 서고는 올해 문을 열었습니다.
문을 닫은 대학이 많아지면서 기록물을 보관할 별도의 공간이 필요해졌기 때문입니다.

김현정/폐교 대학 서고 관리 전문요원
"지금 현재는 폐교 대학 기록물들 중에서 사본의 기록물들만 여기 담아서 봉인을 한 상태입니다."

빼곡히 쌓인 기록 속엔 학창시절의 추억도 함께 들어있습니다.

김현정/폐교 대학 서고 관리 전문요원
"졸업앨범과 사진들을 보면 그 풋풋함 그리고 20대의 설렘 그리고 그 청춘이 많이 느껴져서 저도 기분이 좋아지게 되고 저 또한 회상을 하게 되는데요. 자칫 내가 이 성적표라든지 학적부가 없으면 고졸이 되는 거죠. 실제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약 5백 제곱미터 규모의 서고, 지난 3월 문을 열었는데 곧 꽉 찬다고 합니다.

김현정/폐교 대학 서고 관리 전문요원
"현재 이관 상자의 정리가 완료되면 이 공간은 100% 만고가 될 예정입니다."

남현종 아나운서
"폐교 기록물 보존 서고가 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었는데, 마치 문 닫은 대학들의 납골당 같아서 안타깝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올해 문을 열었는데 벌써 꽉 찬다는 것도 상당히 충격적입니다. 문 닫는 대학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잖아요?"

김수연 기자
"네. 우리나라가 워낙 대학 진학률이 높았다 보니 보셨다시피 산 속에까지 대학들이 우후죽순 들어섰는데요. 비수도권 대학을 중심으로 하나둘 문을 닫으면서, 지금은 폐교 대학이 전국 20곳에 이릅니다.
문제는 앞으로 이런 폐교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입니다.
이미 2년 전, 2021년부터 대학 입학생 수가 입학 정원보다 적어졌습니다.
인구 추이도 그야말로 절벽인 상황이라 15년 후엔 초등학생은 34%, 중고등학생은 46% 줄어들 거로 추산됩니다.

남현종 아나운서
"학령인구 감소라는 구조적인 문제가 근본적인 원인이라면 거의 모든 대학들이 영향을 받고 있겠는데요?"

김수연 기자
"그렇습니다. 대학가는 그야말로 ‘비상’인데요. 학과를 통폐합하는, 이른바 구조조정에 나서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한 전문대, 올해 입학률이 저조한 6개 과의 모집을 중지하면서, 일부 신입생들은 입학하자마자 학과가 없어질 판입니다.

신안산대 신입생/
"올해, (폐과를) 알았어요, 3월에."
-입학하자마자 안 거예요, 그러면?
"네. 저 카톡 보고 알았어요. 다른 사람이 올려준 거 보고."
-단톡방에서?
"네. 그래서 홈페이지 들어가 보니 진짜 (폐과가) 나와 있더라고요."

명예퇴직에 응하지 않은 교수들은 면직됐고, 학내 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성대/신안산대 교양과 교수
"교수님들이 버티니까 면직을 시켰는데, 저희가 학부모들하고 학생들하고 교수들이 교육부에 감사 요구를 지금 하고 있어요. 임금 체불을 하고 있어서 노동부 진정도 진행 중이고요."

학교 측은 살기 위해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등록금 수입과 직결되는 신입생 충원율에 따라 학과를 개편할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신안산대 관계자(음성변조)
"요새는 대학도 상품화가 돼서 학생들이 취향이 맞지 않으면 안가잖아요. 학교도 살리기 위해서 CPR(심폐소생술) 하다 보면 갈비뼈가 부러져도 사람이 사는 게 낫지."

4년제 대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 대학은 경영 부실로 인한 회생 과정에서 재단 산하의 전문대와 통합하면서 학과구조를 개편하기로 했습니다.
회계법인의 컨설팅을 받아 바둑학과와 철학과 폐지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명지대 철학과 학생
"저희가 보기에 결국 회계법인에서 제공한 자료는 정량적인 자료뿐이었기 때문에, 학과를 살리고 안 살리고의 기준치가 결국에는 돈에 달려있다는 거죠."

공청회를 열어 의견을 들었다지만, 재단의 위기를 앞세워 학과 개편안을 사실상 강행하고 있습니다.

명지대 철학과 학생
"'시기가 시기인 만큼 뭉쳐야 한다. 아니면 졸속적으로라도 어떻게 마무리를 해야 된다.’ 이런 이야기만 들으니까 많이 실망을 했죠."

대학 구조조정의 본격적인 신호탄은 정부가 쏘아 올렸습니다.

이주호/교육부 장관 (2022년 9월)
"교육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고요. 그만큼 교육의 많은 난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렇기 위해선 교육 주체들에게 자율과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부 재정진단에 따라 경영위기대학으로 선정되면 장학금 등 정부의 재정지원이 대폭 제한됩니다.
자진 폐교하면 해산장려금을 지급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부실대학에 컨설팅과 경영 자문을 제공한다지만, 대학들은 사실상 살생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사립대 관계자(음성변조)
"2025년도부터 재정 지원 못 받으면 그때는 단순히 못 받는 게 아니라 그냥 부실대학으로 완전히 낙인 찍혀서, 교육부에서 설명한 도표는 빨간색으로 표시해놨어요. 없애겠다는 거죠."

재정진단의 주요 평가 기준은 운영 손익과 체불임금 유무.
신입생이 적은 과는 없애고 교직원을 줄이면서 허리띠를 졸라맬 수밖에 없습니다.

사립대 관계자(음성변조)
"교육부에서 칼질을 자꾸 해대니까 학교에서 살려면 그 칼질당하는 원인이 뭔지를 파악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부실한 학과는 없애고 또 될 만한 학과 이렇게 좀 만들고 그렇게 가는 거죠."

정부는 재정진단과 동시에 '글로컬 대학'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비수도권 대학 2백여 곳 중 글로컬 대학 30곳을 선정해 집중 지원한다는 방침입니다.

교수단체들은 거세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정세은 교수/충남대 경제학과
"기존에 있는 예산을 모아서 지역에 있는 수많은 대학 중에서 30개 정도를 뽑아서 글로컬 대학으로 키운다고 하는데요. 이를 위해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국내총생산 대비 고등교육재정 규모가 0.69%로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데 열악한 비수도권 대학들만 쥐어짠다는 겁니다.

정세은 교수/충남대 경제학과
"지금도 열악한 그런 상황에 있는 대학을 더 구조조정한다면 저희가 어떻게 세계적으로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 수 있습니까."

대학이 떠난 지역은 어떻게 될까?
가야대학교 고령캠퍼스가 김해캠퍼스로 통합되면서 주변 대학촌은 활력을 잃었습니다.
학생들이 살던 인근 원룸촌에는 저렴한 월세를 찾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왔습니다.

인근 주민
"베트남,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지금 3분의 2 이상 살고 있다고 보면 돼요."

쓰레기 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지만, 지자체에선 손을 놓았습니다.

인근 주민
"밥솥은 외국 사람들이 다 버렸을 거예요. 외국에 못 가져가니까."
-아 버리고 가는구나….
"그냥 다 버려버리고 가요. 치우면 괜찮은데 군청에서도 저걸 안 치우거든요."

남현종 아나운서
"학생 수가 자연스럽게 줄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정부의 교육정책도 대학가가 들썩이는 데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었네요."

김수연 기자
"네, 한편으로는 자발적 폐교를 위한 퇴로를 마련해주겠다는 당근이 있고요. 다른 한편으론 재정진단으로 경영이 부실하다고 판단되면 지원을 끊어버리겠다는 채찍도 있습니다.
대학들은 그야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셈인데요.
지난해까지 3년간 7백 개가 넘는 학과가 통폐합됐고, 학생이 자퇴하면 등록금을 환불해주겠다고 나선 대학도 있습니다."

남현종 아나운서
"글로컬 대학 30곳을 선정해 집중 지원하겠다는 건데 이 안에 선정이 되면 어쨌든 재정 지원이 이뤄진다는 거죠?"

김수연 기자
"그렇습니다. 살릴 대학에 몰아주겠다는 기조로 보이는데요.
비수도권 대학 2백여 곳 가운데 ‘글로컬 대학’ 30곳을 선정해 5년 동안 천억 원을 집중 지원합니다.
동시에 추진하는 게 이른바 ‘라이즈’ 사업인데요.
지자체 중심의 대학 발전을 지향한 것으로, 대학 재정지원의 절반을 지자체로 이관할 계획입니다."

남현종 아나운서
"당근과 채찍이 공존하는 방안처럼 보이는데 지금 대학들은 어느 부분에 반발하는 겁니까?"

김수연 기자
"우선 소수의 대학에 지원을 몰아준다면 여기 선정되지 못한 대학은 사실상 도태되라는 것 아니냐 이런 우려가 나오고요.
또,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성급하게 진행된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글로컬 대학은 당장 다음 달에 예비지정이 되면 3개월 만에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야 합니다.
대학이 지자체, 산업체와 함께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석 달 안에 얼마나 내실 있는 계획을 세우겠냐는 겁니다.

우리보다 먼저 학령인구 감소를 경험한 나라가 일본인데요.
일본에서도 대학 폐교가 잇따르면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공 사례를 보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일본 후쿠오카현.
규슈대학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3만 제곱미터 규모의 복합 공간이 들어섰습니다.
‘이토 캠퍼스’의 이름을 따 ‘이토 라보 플러스’로 명명한 이곳은 연구 개발의 차세대 거점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학생들을 위한 연구개발동과 숙박시설, 지역주민을 위한 상업시설이 함께 갖춰졌습니다.

키타 요시유키/다이와하우스 공업주식회사
"후쿠오카시, 규슈대학, 학생, 입점해 있는 기업, 스타트업을 포함한 기업, 이런 분들이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시설을 콘셉트로 오픈했습니다."

후쿠오카시는 사업 공모에서 반드시 ‘연구동’이 들어와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고가의 연구 장비를 누구든 무료로 활용하고 학생을 기업 인턴십에 연계하는 공간도 갖춰졌습니다.
지역주민을 위한 서점과 식당도 들어섰습니다.

모토오카 마나/규슈대학생
"(이곳이) 모두가 올 수 있는 장소가 없어서 시골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요. 이런 장소가 생긴 덕분에 사람들이 오기 쉽고 아이부터 노인까지 올 수 있는 장소가 생겨서 지역이 활성화된 것 같습니다."

2019년 말 시의 사업 구상부터 2020년 11월 사업자 선정, 2022년 3월 착공까지 3년이 넘게 걸렸습니다.
대학과 지자체, 기업의 동반 성장에 충분한 시간을 들여 예산을 투자한 겁니다.

차로 약 한 시간 거리의 인근 마을.
문을 닫은 전문대에 ‘원헬스 센터’란 보건연구기관이 들어설 예정입니다.
시에서 학교 부지를 기부하면 후쿠오카현이 사업을 추진합니다.
일자리를 창출하고 청년층이 유입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히로후미 히라야마/후쿠오카현 ‘원헬스’ 종합추진실장
"원헬스 센터를 정비하고 인수 공통감염대책이나 약제내성균 대책 등에 관한 조사연구나 인재 육성 등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 학생들은 대학의 본질을 묻고 있습니다

[에필로그]

등록금 수입에 의존해온 우리 대학 체제는 학생 수 감소로 이미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변인영/한국사학재단 대학구조개선지원센터장
"인구 감소로 인한 어떻게 보면 사회적 재난과도 같은 이런 상황에서 저희도 준비되지 않은 노력과 개입을 해야 하는 시점이 오게 되면 그 사회적인 비용은 어마어마할 거라고 생각이 되거든요."

그렇다고 수요와 공급, 시장 논리로 학교와 학과를 줄이기만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임광빈 교수/신안산대 기계과
"구조조정 좋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합의해서 학생들이 학습권이 침해받지 않는 조건에서 합의를 보고 합의된 거에 (따라) 진행돼야 하는데 지금 그런 상황이 전혀 아니라는, 그런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저는 이번 계기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많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시대에 맞는 대학이란 뭔지, 그곳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학생들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명지대 철학과 학생
"배움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대학이어야 하는데 그러한 배움의 장을 박탈시키려고 하는 게…."

취재기자 : 김수연
외부촬영 : 조선기, 설태훈
촬영기자 : 안용습
영상편집 : 손보라
CG : 정예나
자료조사 : 오석진
조연출 : 정현주 유화영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