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자 상속권’ 유류분을 위한 변명 [주말엔]
입력 2023.05.20 (09:00)
수정 2023.05.20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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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7천만 원의 유산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경우 남편이 별다른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면, 민법에 규정된 비율에 따라 유산이 분배됩니다.
민법에 따라 자녀와 배우자는 모두 공동 1순위 상속인(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이 되고, 배우자는 자녀 한 사람이 상속받을 재산의 50%를 더 받을 수 있으므로, 남겨진 아내와 자식들이 물려받을 돈은 아내 3천만 원, 자식 2천만 원이 됩니다.
이게 민법에 따른 '법정 상속분'입니다. 법에서 정한 비율에 따라 나눈 상속재산이란 뜻이죠.
그런데 재산을 나누기 직전 "아들에게 7천만 원의 유산을 모두 물려준다"는 남편의 유언장이 발견됐다면 어떨까요. 아들이 남편의 유언대로 7천만 원을 몽땅 다 가져가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민법은 고인의 유언보다 우선해 상속인이 받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재산, '유류분'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법 제1009조(법정상속분) ①동순위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그 상속분은 균분으로 한다. ②피상속인의 배우자의 상속분은 직계비속과 공동으로 상속하는 때에는 직계비속의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하고, 직계존속과 공동으로 상속하는 때에는 직계존속의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한다. 제1112조(유류분의 권리자와 유류분) 상속인의 유류분은 다음 각호에 의한다. 1.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은 그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2.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그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3.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은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 4.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 |
아내와 딸은 아까 계산한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들은 4,500만 원, 아내가 1,500만 원, 딸이 1,000만 원을 물려받게 됩니다.
만약 아들이 "유언장대로 하자"며 7천만 원을 이미 가져갔다면 아내와 딸은 자신이 받았어야 할 1,500만 원과 1,000만 원을 달라고 아들에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 본래 '양성평등' 취지에서 신설됐던 유류분 제도
과거 민법이 제정됐을 때만 해도 고인의 유언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남겨둔 재산을 생판 남에게 주든, 자녀 중 한 명에게 주든, 제3자에게 주든 고인의 유언대로 상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엄청난 재력가가 자신의 전 재산을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유언으로 물려주고 그 재산으로 인생 역전을 하는 일도 가능했던 시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유언의 자유를 무제한으로 인정해버리니 부작용이 심했습니다.
당시 남아선호사상과 맞물려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피상속인)의 유언에 따라 장남을 위시한 특정 상속인이 재산을 독식하고 딸은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생계를 이어가기조차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과거의 입법자들은 남녀 평등과 상속에 있어서의 차별 완화를 위해 반드시 남겨두어야 하는 다른 상속인들의 몫을 법에 정해두었습니다. 이게 바로 유류분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유류분제도가 재산처분의 자유·유언의 자유와 근친자의 상속권 확보에 의한 생활보장의 필요성과 타협의 산물"이라며 "피상속인의 재산처분 자유·유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피상속인의 재산처분행위로부터 유족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상속재산형성에 대한 기여,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를 보장하려는 데 그 입법 취지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유류분은 민법 제1112조부터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1977년 입법 이후 한 번도 개정이 되지 않은 조문들입니다. 유류분을 어떻게 배분할지, 고인이 누군가에게 재산을 줘버렸다면 유류분을 계산할 때 이 재산을 넣어서 계산해야 하는지 등을 정해 놓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유류분 비율을 살펴보면 고인의 자녀와 배우자는 각각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고인의 부모와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로 정해 놓았습니다.
유류분은 상속개시 시점에 가진 재산의 가액에 고인이 죽기 전 1년간 누군가에게 증여한 재산의 가액을 더하고, 채무를 모두 뺀 금액을 기초로 계산합니다.
다만 고인이 유류분을 받을 사람을 해칠 의도로 누군가에게 재산을 증여했다면 민법은 몇십 년이 지났더라도 그에 대한 유류분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해 두었습니다.
■ 46년 지나 '안 맞는 옷' 타박…권리의식 커져 "재산권 침해" 목소리
그러나 46년이 된 유류분 제도는 시대가 바뀌면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유류분 소송 건수는 1,511건, 헌재에 유류분 제도 자체가 위헌인지 판단해 달라며 올라온 사건도 40여 건에 이릅니다.
우선 개인의 권리의식이 커지면서 "고인의 개인적인 재산을 어떻게 쓰든 자유인데 유류분 제도가 이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졌습니다. 유언의 자유나 상속을 받는 사람의 재산권도 문제가 됐습니다.
게다가 시대가 바뀌면서 당시 문제가 됐던 장남 우선 관행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평균 수명까지 높아져 고인이 사망할 때쯤이면 상속인들이 이미 성인이 돼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할 가능성이 높단 것도 그렇습니다. 본래 유류분 제도의 취지는 상속에서 배제되는 사람, 특히 미성년 자녀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수 있어 이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점이 다소 퇴색된 겁니다.
반면 너무 많은 비행을 저질러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 부적절하거나 불효·불화 등으로 고인과 관계가 극히 나빴던 자녀나 부모, 형제자매라도 재산을 물려받게 된다는 지적은 비판의 주요한 논거가 돼 왔습니다.
불효자라도 당당히 재산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서 '불효자 상속권'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인데요, 다만 이건 유류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상속결격사유를 너무 좁게 규정하고 있는 민법의 문제란 반론도 만만찮습니다.
민법 제1004조(상속인의 결격사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한 자는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 1.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한 자 2.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자 3.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 또는 유언의 철회를 방해한 자 4.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을 하게 한 자 5.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서를 위조ㆍ변조ㆍ파기 또는 은닉한 자 |
우리 민법은 상속인이 되지 못하는 경우를 아주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고인을 살해하거나 유언을 위조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상속에서 배제될 정도입니다.
■ "시대변화" Vs "유족보호" 헌법재판소 첫 공개변론
지난 17일 헌법재판소에서 유류분 제도가 위헌인지를 놓고 첫 공개변론이 열렸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금까지 유류분 제도가 위헌인지를 놓고 세 번의 합헌 판단을 했지만 공개변론을 연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헌재가 태도를 바꾸는 것 아니냐고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공개변론에서는 청구인들과 법무부의 공방이 치열했습니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유족에게도 최소한의 권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섰습니다.
이번 공개변론에선 두 사건이 병합돼 있었는데, 우선 한 사건의 배경을 보겠습니다.
부부는 6남매를 두었고 생전에 재산을 모두 분배해 유일하게 아내 명의의 경기 하남시의 토지만 남겨뒀습니다. 부부는 딸들의 몫이 적어 이를 팔아 나눠주려 했지만 양도소득세를 제외하면 큰 금액이 남지 않아 남편과 막내 아들이 공유하던 아파트를 팔아 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부부는 이후 2007년 아내의 토지를 맏며느리와 손자에게 증여했고 2014년과 2017년 각각 사망했습니다. 부부의 딸들은 맏며느리와 당시 미성년자던 손자들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냈고 맏며느리와 손자들은 2020년 유류분 제도에 대해 헌법 소원을 냈습니다.
다른 사건에서는 청구인이 장학재단이었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전 재산을 장학재단에 증여했는데 고인 사후 자식들이 재단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했고 재단이 2021년 헌법소원을 낸 사건입니다.
■ 청구인 "고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가 상속권에 우선한다"
청구인 측은 "유류분 제도의 입법목적은 △유족의 생존권 보호 △상속재산 형성의 기여에 대한 보상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보장인데, 시대의 변화와 핵가족화, 여성 지위의 향상, 남녀평등 실현 등에 따라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상당 부분 상실됐다"며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는 상속권에 우선하는데, 유류분 제도는 상속개시 당시 남아있는 잔여 재산만 상속의 대상이 된다는 상속 제도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유류분 제도는 당사자 사이의 형평과 상속 재산에 대한 기여 여부 등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까지 획일적·일률적으로 유류분 비율을 정해 매우 불합리하다"며 "유류분 상실 사유를 두지 않아 패륜적 상속인에게도 유류분반환 청구권을 인정할 뿐 아니라 자선단체에 대한 기부 등과 같은 공익적 증여까지 유류분 반환 청구의 대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공동상속인에 대한 증여는 시기의 제한 없이 유류분 산정의 기초 재산이 돼 유류분 반환 청구의 대상을 크게 확대해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제도로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은 추상적이고 불분명한 반면 일률적인 유류분으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유족 생계 기초 유지…상속의 '정당한 기대권' 보호해야"
법무부는 유류분 제도가 상속받지 못하는 딸들을 구제하기 위해 도입됐고 유족들의 기초 생계를 배려한 제도임을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유류분 제도는 유언의 자유와 가족의 상속권 사이 타협의 산물이란 겁니다.
법무부는 "시대의 변화에 맞도록 유류분 제도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도 인정되지만 제도 개정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 정책적으로 결정돼야 할 사항"이라며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의 재산처분의 자유를 인정하는 동시에 피상속인의 사망 후에 법정상속분의 일정 비율을 확보해 유족들의 생계의 기초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맞받았습니다.
또 "유류분 제도가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건 아니고 부양의 필요성이 크지 않은 상속인도 상속재산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은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며 "유류분의 범위가 법정상속분의 일부로 제한되고 있는 점이나 일률적 유류분 보장은 기여분 등을 적용해 달리 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재산권이라는 제한되는 사익이 유류분 제도로 인해 달성되는 유족들의 생존권 보호와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보상이라는 공익보다 현저히 크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 외국은 '형제자매 유류분' 불인정…청구 기간도 짧아
우리 민법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형제·자매에게까지 유류분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부양하며 재산을 모으는 '가산'이라는 개념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외국은 어떨까요?
미국에서는 자녀의 유류분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는 함께 재산을 형성한 사람이므로 보호 받아야 하지만, 자녀는 재산 형성에 기여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부모가 자녀에게 꼭 유산을 남겨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겁니다.
영국은 부모와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프랑스는 선순위 상속 자녀의 유류분권만 인정합니다. 자녀가 없는 경우에만 배우자가 권리를 갖게 됩니다. 부모나 직계존속은 권한이 없습니다. 유류분의 사전 포기도 가능합니다.
독일은 조부모나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유류분 권리자를 해칠 의사가 있는지를 불문하고 고인이 죽기 10년 전까지 이루어진 증여만 유류분 계산에 포함합니다. 유류분 박탈 제도 역시 있습니다.
일본은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고, 역시 고인이 죽기 전 10년까지 남에게 증여한 재산까지만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으로 계산합니다.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어 유류분 청구권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는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오스트리아는 부모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유류분을 상실하거나 감축할 수 있습니다.
■ 국회 발의된 민법 개정안들
유류분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편입니다. 다만 '위헌이냐'라고 묻는다면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죠.
이 때문에 국회에선 유류분 권리자의 범위를 줄이고, 그 유류분 비율도 조정하는 방향의 발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18년 법무부에서 실시한 '상속법 개정을 위한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법무부는 실제로 1인 가구가 늘면서 유류분 대상에서 형제자매를 제외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해 둔 상태입니다.
상속인이 고인을 학대했거나 부양의무를 저버렸을 때 등에는 유언이나 법원 판단 등을 통해 해당 피상속인의 유류분을 제한하는 등 유류분 상실 요건을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고인을 장기간 돌보며 봉양했다면 그 기여분을 유류분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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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효자 상속권’ 유류분을 위한 변명 [주말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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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5-20 09:00:04
- 수정2023-05-20 09:08:50
남편과 아내, 아들과 딸로 이루어진 4인 가족이 있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불의의 사고를 당해 7천만 원의 유산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 경우 남편이 별다른 유언을 남기지 않았다면, 민법에 규정된 비율에 따라 유산이 분배됩니다.
민법에 따라 자녀와 배우자는 모두 공동 1순위 상속인(재산을 물려받는 사람)이 되고, 배우자는 자녀 한 사람이 상속받을 재산의 50%를 더 받을 수 있으므로, 남겨진 아내와 자식들이 물려받을 돈은 아내 3천만 원, 자식 2천만 원이 됩니다.
이게 민법에 따른 '법정 상속분'입니다. 법에서 정한 비율에 따라 나눈 상속재산이란 뜻이죠.
그런데 재산을 나누기 직전 "아들에게 7천만 원의 유산을 모두 물려준다"는 남편의 유언장이 발견됐다면 어떨까요. 아들이 남편의 유언대로 7천만 원을 몽땅 다 가져가게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민법은 고인의 유언보다 우선해 상속인이 받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재산, '유류분'을 보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민법 제1009조(법정상속분) ①동순위의 상속인이 수인인 때에는 그 상속분은 균분으로 한다. ②피상속인의 배우자의 상속분은 직계비속과 공동으로 상속하는 때에는 직계비속의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하고, 직계존속과 공동으로 상속하는 때에는 직계존속의 상속분의 5할을 가산한다. 제1112조(유류분의 권리자와 유류분) 상속인의 유류분은 다음 각호에 의한다. 1. 피상속인의 직계비속은 그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2. 피상속인의 배우자는 그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3.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은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 4. 피상속인의 형제자매는 그 법정상속분의 3분의 1 |
아내와 딸은 아까 계산한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까지 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아들은 4,500만 원, 아내가 1,500만 원, 딸이 1,000만 원을 물려받게 됩니다.
만약 아들이 "유언장대로 하자"며 7천만 원을 이미 가져갔다면 아내와 딸은 자신이 받았어야 할 1,500만 원과 1,000만 원을 달라고 아들에게 요구할 수 있습니다.
■ 본래 '양성평등' 취지에서 신설됐던 유류분 제도
과거 민법이 제정됐을 때만 해도 고인의 유언은 절대적이었습니다. 남겨둔 재산을 생판 남에게 주든, 자녀 중 한 명에게 주든, 제3자에게 주든 고인의 유언대로 상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영화에서처럼 엄청난 재력가가 자신의 전 재산을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유언으로 물려주고 그 재산으로 인생 역전을 하는 일도 가능했던 시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유언의 자유를 무제한으로 인정해버리니 부작용이 심했습니다.
당시 남아선호사상과 맞물려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피상속인)의 유언에 따라 장남을 위시한 특정 상속인이 재산을 독식하고 딸은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생계를 이어가기조차 어려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과거의 입법자들은 남녀 평등과 상속에 있어서의 차별 완화를 위해 반드시 남겨두어야 하는 다른 상속인들의 몫을 법에 정해두었습니다. 이게 바로 유류분입니다.
헌법재판소는 "유류분제도가 재산처분의 자유·유언의 자유와 근친자의 상속권 확보에 의한 생활보장의 필요성과 타협의 산물"이라며 "피상속인의 재산처분 자유·유언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피상속인의 재산처분행위로부터 유족들의 생존권을 보호하고 상속재산형성에 대한 기여,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를 보장하려는 데 그 입법 취지가 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유류분은 민법 제1112조부터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는데요, 1977년 입법 이후 한 번도 개정이 되지 않은 조문들입니다. 유류분을 어떻게 배분할지, 고인이 누군가에게 재산을 줘버렸다면 유류분을 계산할 때 이 재산을 넣어서 계산해야 하는지 등을 정해 놓았습니다.
대표적으로 유류분 비율을 살펴보면 고인의 자녀와 배우자는 각각 법정상속분의 2분의 1, 고인의 부모와 형제자매는 법정상속분의 3분의 1로 정해 놓았습니다.
유류분은 상속개시 시점에 가진 재산의 가액에 고인이 죽기 전 1년간 누군가에게 증여한 재산의 가액을 더하고, 채무를 모두 뺀 금액을 기초로 계산합니다.
다만 고인이 유류분을 받을 사람을 해칠 의도로 누군가에게 재산을 증여했다면 민법은 몇십 년이 지났더라도 그에 대한 유류분을 요구할 수 있다고 규정해 두었습니다.
■ 46년 지나 '안 맞는 옷' 타박…권리의식 커져 "재산권 침해" 목소리
그러나 46년이 된 유류분 제도는 시대가 바뀌면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전국 법원에 접수된 유류분 소송 건수는 1,511건, 헌재에 유류분 제도 자체가 위헌인지 판단해 달라며 올라온 사건도 40여 건에 이릅니다.
우선 개인의 권리의식이 커지면서 "고인의 개인적인 재산을 어떻게 쓰든 자유인데 유류분 제도가 이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커졌습니다. 유언의 자유나 상속을 받는 사람의 재산권도 문제가 됐습니다.
게다가 시대가 바뀌면서 당시 문제가 됐던 장남 우선 관행이 거의 없어졌습니다. 평균 수명까지 높아져 고인이 사망할 때쯤이면 상속인들이 이미 성인이 돼 독립적인 경제활동을 할 가능성이 높단 것도 그렇습니다. 본래 유류분 제도의 취지는 상속에서 배제되는 사람, 특히 미성년 자녀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할 수 있어 이들을 부양해야 한다는 것이었는데 이런 점이 다소 퇴색된 겁니다.
반면 너무 많은 비행을 저질러 재산을 상속받는 것이 부적절하거나 불효·불화 등으로 고인과 관계가 극히 나빴던 자녀나 부모, 형제자매라도 재산을 물려받게 된다는 지적은 비판의 주요한 논거가 돼 왔습니다.
불효자라도 당당히 재산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고 해서 '불효자 상속권'이라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인데요, 다만 이건 유류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상속결격사유를 너무 좁게 규정하고 있는 민법의 문제란 반론도 만만찮습니다.
민법 제1004조(상속인의 결격사유)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한 자는 상속인이 되지 못한다. 1.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한 자 2.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자 3.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 또는 유언의 철회를 방해한 자 4.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을 하게 한 자 5.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서를 위조ㆍ변조ㆍ파기 또는 은닉한 자 |
우리 민법은 상속인이 되지 못하는 경우를 아주 제한적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고인을 살해하거나 유언을 위조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상속에서 배제될 정도입니다.
■ "시대변화" Vs "유족보호" 헌법재판소 첫 공개변론
지난 17일 헌법재판소에서 유류분 제도가 위헌인지를 놓고 첫 공개변론이 열렸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지금까지 유류분 제도가 위헌인지를 놓고 세 번의 합헌 판단을 했지만 공개변론을 연 건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헌재가 태도를 바꾸는 것 아니냐고 짐작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공개변론에서는 청구인들과 법무부의 공방이 치열했습니다.
시대가 달라졌으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유족에게도 최소한의 권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맞섰습니다.
이번 공개변론에선 두 사건이 병합돼 있었는데, 우선 한 사건의 배경을 보겠습니다.
부부는 6남매를 두었고 생전에 재산을 모두 분배해 유일하게 아내 명의의 경기 하남시의 토지만 남겨뒀습니다. 부부는 딸들의 몫이 적어 이를 팔아 나눠주려 했지만 양도소득세를 제외하면 큰 금액이 남지 않아 남편과 막내 아들이 공유하던 아파트를 팔아 딸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부부는 이후 2007년 아내의 토지를 맏며느리와 손자에게 증여했고 2014년과 2017년 각각 사망했습니다. 부부의 딸들은 맏며느리와 당시 미성년자던 손자들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 청구 소송을 냈고 맏며느리와 손자들은 2020년 유류분 제도에 대해 헌법 소원을 냈습니다.
다른 사건에서는 청구인이 장학재단이었습니다. 고인이 생전에 전 재산을 장학재단에 증여했는데 고인 사후 자식들이 재단을 상대로 유류분 반환을 청구했고 재단이 2021년 헌법소원을 낸 사건입니다.
■ 청구인 "고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가 상속권에 우선한다"
청구인 측은 "유류분 제도의 입법목적은 △유족의 생존권 보호 △상속재산 형성의 기여에 대한 보상 △상속재산에 대한 기대 보장인데, 시대의 변화와 핵가족화, 여성 지위의 향상, 남녀평등 실현 등에 따라 입법 목적의 정당성이 상당 부분 상실됐다"며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는 상속권에 우선하는데, 유류분 제도는 상속개시 당시 남아있는 잔여 재산만 상속의 대상이 된다는 상속 제도의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유류분 제도는 당사자 사이의 형평과 상속 재산에 대한 기여 여부 등 구체적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까지 획일적·일률적으로 유류분 비율을 정해 매우 불합리하다"며 "유류분 상실 사유를 두지 않아 패륜적 상속인에게도 유류분반환 청구권을 인정할 뿐 아니라 자선단체에 대한 기부 등과 같은 공익적 증여까지 유류분 반환 청구의 대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특히 공동상속인에 대한 증여는 시기의 제한 없이 유류분 산정의 기초 재산이 돼 유류분 반환 청구의 대상을 크게 확대해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며 "제도로 달성할 수 있는 공익은 추상적이고 불분명한 반면 일률적인 유류분으로 인해 침해되는 사익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유족 생계 기초 유지…상속의 '정당한 기대권' 보호해야"
법무부는 유류분 제도가 상속받지 못하는 딸들을 구제하기 위해 도입됐고 유족들의 기초 생계를 배려한 제도임을 상기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유류분 제도는 유언의 자유와 가족의 상속권 사이 타협의 산물이란 겁니다.
법무부는 "시대의 변화에 맞도록 유류분 제도를 수정해야 할 필요성도 인정되지만 제도 개정은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거쳐 입법 정책적으로 결정돼야 할 사항"이라며 "유류분 제도는 피상속인의 재산처분의 자유를 인정하는 동시에 피상속인의 사망 후에 법정상속분의 일정 비율을 확보해 유족들의 생계의 기초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맞받았습니다.
또 "유류분 제도가 피상속인의 재산 처분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건 아니고 부양의 필요성이 크지 않은 상속인도 상속재산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은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며 "유류분의 범위가 법정상속분의 일부로 제한되고 있는 점이나 일률적 유류분 보장은 기여분 등을 적용해 달리 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재산권이라는 제한되는 사익이 유류분 제도로 인해 달성되는 유족들의 생존권 보호와 상속재산 형성에 대한 기여 보상이라는 공익보다 현저히 크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 외국은 '형제자매 유류분' 불인정…청구 기간도 짧아
우리 민법은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형제·자매에게까지 유류분 청구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모든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를 부양하며 재산을 모으는 '가산'이라는 개념이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외국은 어떨까요?
미국에서는 자녀의 유류분을 완전히 배제할 수 있습니다. 배우자는 함께 재산을 형성한 사람이므로 보호 받아야 하지만, 자녀는 재산 형성에 기여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부모가 자녀에게 꼭 유산을 남겨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겁니다.
영국은 부모와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프랑스는 선순위 상속 자녀의 유류분권만 인정합니다. 자녀가 없는 경우에만 배우자가 권리를 갖게 됩니다. 부모나 직계존속은 권한이 없습니다. 유류분의 사전 포기도 가능합니다.
독일은 조부모나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유류분 권리자를 해칠 의사가 있는지를 불문하고 고인이 죽기 10년 전까지 이루어진 증여만 유류분 계산에 포함합니다. 유류분 박탈 제도 역시 있습니다.
일본은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고, 역시 고인이 죽기 전 10년까지 남에게 증여한 재산까지만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으로 계산합니다. 가정법원의 허가를 얻어 유류분 청구권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스위스는 형제자매의 유류분을, 오스트리아는 부모의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스트리아는 유류분을 상실하거나 감축할 수 있습니다.
■ 국회 발의된 민법 개정안들
유류분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편입니다. 다만 '위헌이냐'라고 묻는다면 의견이 갈리는 상황이죠.
이 때문에 국회에선 유류분 권리자의 범위를 줄이고, 그 유류분 비율도 조정하는 방향의 발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2018년 법무부에서 실시한 '상속법 개정을 위한 전문가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가 형제자매를 유류분 권리자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법무부는 실제로 1인 가구가 늘면서 유류분 대상에서 형제자매를 제외하는 민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해 둔 상태입니다.
상속인이 고인을 학대했거나 부양의무를 저버렸을 때 등에는 유언이나 법원 판단 등을 통해 해당 피상속인의 유류분을 제한하는 등 유류분 상실 요건을 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고인을 장기간 돌보며 봉양했다면 그 기여분을 유류분에 반영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백인성 법조전문기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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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인성 기자 isbaek@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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