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열흘 남았는데…정부는 “처방약 없으면 더 먼 약국 가라”

입력 2023.05.22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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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용해왔던 비대면 진료는 다음 달 1일부터 '시범사업'으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는 코로나19 위기 단계가 '심각' 단계여서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됐지만, '경계'로 하향되면서 의료법 개정 전까지 비대면 진료는 법적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를 지금처럼 계속 이용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의 형태로 가져가겠다는 게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의 설명입니다.

다만 이 경우 지금처럼 초진부터 자유롭게 비대면 진료를 받는 것은 어려워집니다. 감염병의 대규모 확산 위험이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허용됐던 만큼, 이 같은 위험이 줄어든 상황에서는 의료 접근성 제고도 좋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복지부는 이와 같은 방향성 아래 구체적인 비대면 진료 이용 대상 등을 조만간 확정해 발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지침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이를 현장에서 구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당장 시범사업까지 열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환자, 진료해야 하는 의사, 무엇보다 이들을 중개할 플랫폼까지 현장에서의 혼란이 불 보듯 한 상황인데도 복지부는 이에 대해서는 답이 없습니다.

■ '재진 중심' 이라는데…'재진 여부'는 누가 알려주나

당정이 시범사업을 위해 마련한 원칙의 핵심은 '재진 환자',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를 시행한다는 겁니다. 초진이 가능한 경우는 의료기관이 현저히 부족한 지역에 살고 있거나 이동이 어려운 경우, 감염병 확진 환자나 휴일·야간 시간대 의료 공백이 문제가 된 소아 환자 등으로 제한됩니다. 이대로라면 지금처럼 퇴근 후 병원 방문이 어려워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는 등의 사례, 앞으로는 어려워집니다.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게 비대면 진료 플랫폼입니다. 의사는 자신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기록을 통해 환자가 재진이 맞는지, 비대면 진료 대상에 해당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플랫폼은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는 환자가 초진인지 재진인지의 여부를 현재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플랫폼은 의료법상 환자의 의료 기록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추후 비대면 진료를 위해 진료 기록이 담긴 증빙 서류를 떼야 하는 것인지, 이런 서류만 있으면 재진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것도 명확하게 정해진 게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 점을 언급해 온 플랫폼 업계는 복지부가 시범사업안을 발표한 지난 20일 곧바로 성명을 내고 "국민이 비대면 진료를 효용성 높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개진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며 "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아쉬움을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열흘 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 명확하게 안이 마련된 것도 아니고, 마련된 안을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플랫폼에서 기술적으로 구현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대로라면 비대면 진료를 실제로 이용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데 복지부는 이 부분에 대해 딱히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당일 기자들의 질문에 "(3개월 간의) 계도기간 동안 구축되어야 할 것 같다"고만 설명했습니다. 의사 단체 역시 이에 대해서는 "의사들도 플랫폼의 '이용자'인 만큼 플랫폼이 해결 방안을 내놓아야 할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 '약 배송도 금지'…이유 있나?

시범사업을 통해 단순히 진료만 제한되는 게 아닙니다. 그동안은 비대면 진료를 받으면 약을 집으로 배송 받을 수 있었는데 이 역시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약을 집에서 수령할 수 있도록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초진이 가능한 사유 등으로 제한되고, 이 때도 '약사'와 협의를 거쳐야만 합니다.

의사의 판단 하에 재진 과정에서 비대면 진료를 이용해 약 처방을 받아도, 정작 약은 직접 받으러 가야하는 상황인 겁니다. 진료 요건 자체는 차치하더라도 약을 수령하는 방식만 보면 이제는 '비대면'이라고 말하는 게 불가능해 보입니다.


복지부는 "원칙은 환자의 선택권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환자의 선택권'에 '약 배송'이 왜 없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없습니다. 환자의 위치 주변에 처방약을 가진 약국이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주변에 없으면 더 주변을 찾을 수 있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비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가 집 주변 약국에 약이 있는지 알기 위해 처방전을 보내거나 사전에 전화로 일일이 문의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에 대해서도 "고민스럽다. 사실 그럴 수 있다"며 "참여 약국이나 의료기관이 많으면 이런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만 언급했습니다.

주무부서의 답변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기존부터 예정된 것이었는데 왜 아직 대책이 없는지, 대책이 없는데 왜 시범사업안이라고 발표한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6월부터 석달 간 계도기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복지부의 태도라면 석달 안에 의미 있는 해결책이 나올 거라 믿을 수 있을까요?

약 배송 금지는 대한약사회 등 약사 단체가 비대면 진료에 대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부분입니다. 약사회는 다만 자신들이 '공공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이용한다면 약 배송도 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약사회는 시범사업 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입법으로 풀어야할 문제를 시범사업으로 푸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이라면서도 "약 배달이 제한적으로만 허용된 만큼 기존 우려했던 점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밝혔습니다.

■ 혼란은 의료 현장의 몫…플랫폼 사업 계속될 수 있나

복지부는 이번에 마련된 시범사업 안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음달 1일까지 남은 기간 전문가와 업계 등의 의견을 계속 수렴해 보완하고, 석달 간의 계도기간 동안도 충분히 바뀔 수 있는 내용이라고 강조합니다.

다만 지금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대로라면 당장 다음달 1일부터 의료 현장의 혼란은 불보듯 뻔합니다. 그리고 그 몫은 복지부가 아닌 현장의 의사와 환자가 지게 됩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는 지금 상태로라면 시행 자체가 어렵고, 업계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장기적으로 의료법 개정을 통해 비대면 진료가 보다 폭넓게 허용될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는 지금의 플랫폼 업계는 고사되고 난 이후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더라도 새로운 플랫폼이 생겨날 것이라고 믿는 걸까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뒷짐 지는' 정부를 보고서 누가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픽 : 안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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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22 07: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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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이용해왔던 비대면 진료는 다음 달 1일부터 '시범사업'으로 이어집니다. 지금까지는 코로나19 위기 단계가 '심각' 단계여서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가 허용됐지만, '경계'로 하향되면서 의료법 개정 전까지 비대면 진료는 법적 공백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를 지금처럼 계속 이용할 수 있도록 시범사업의 형태로 가져가겠다는 게 국민의힘과 보건복지부의 설명입니다.

다만 이 경우 지금처럼 초진부터 자유롭게 비대면 진료를 받는 것은 어려워집니다. 감염병의 대규모 확산 위험이 있는 특수한 상황에서 허용됐던 만큼, 이 같은 위험이 줄어든 상황에서는 의료 접근성 제고도 좋지만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겁니다. 복지부는 이와 같은 방향성 아래 구체적인 비대면 진료 이용 대상 등을 조만간 확정해 발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문제는, 지침이 마련된다 하더라도 이를 현장에서 구현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점입니다. 당장 시범사업까지 열흘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환자, 진료해야 하는 의사, 무엇보다 이들을 중개할 플랫폼까지 현장에서의 혼란이 불 보듯 한 상황인데도 복지부는 이에 대해서는 답이 없습니다.

■ '재진 중심' 이라는데…'재진 여부'는 누가 알려주나

당정이 시범사업을 위해 마련한 원칙의 핵심은 '재진 환자', '의원급 의료기관'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를 시행한다는 겁니다. 초진이 가능한 경우는 의료기관이 현저히 부족한 지역에 살고 있거나 이동이 어려운 경우, 감염병 확진 환자나 휴일·야간 시간대 의료 공백이 문제가 된 소아 환자 등으로 제한됩니다. 이대로라면 지금처럼 퇴근 후 병원 방문이 어려워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는 등의 사례, 앞으로는 어려워집니다.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게 비대면 진료 플랫폼입니다. 의사는 자신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기록을 통해 환자가 재진이 맞는지, 비대면 진료 대상에 해당하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플랫폼은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는 환자가 초진인지 재진인지의 여부를 현재로서는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플랫폼은 의료법상 환자의 의료 기록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병원을 방문할 때마다 추후 비대면 진료를 위해 진료 기록이 담긴 증빙 서류를 떼야 하는 것인지, 이런 서류만 있으면 재진을 신청할 수 있는 것인지 어떤 것도 명확하게 정해진 게 없습니다. 계속해서 이 점을 언급해 온 플랫폼 업계는 복지부가 시범사업안을 발표한 지난 20일 곧바로 성명을 내고 "국민이 비대면 진료를 효용성 높게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견을 개진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며 "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아쉬움을 표한다"고 밝혔습니다.

열흘 밖에 남지 않았는데 아직 명확하게 안이 마련된 것도 아니고, 마련된 안을 비대면 진료를 이용하기 위해 필요한 플랫폼에서 기술적으로 구현하기에도 어려움이 따릅니다. 이대로라면 비대면 진료를 실제로 이용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는데 복지부는 이 부분에 대해 딱히 설명을 하지 못했습니다. 당일 기자들의 질문에 "(3개월 간의) 계도기간 동안 구축되어야 할 것 같다"고만 설명했습니다. 의사 단체 역시 이에 대해서는 "의사들도 플랫폼의 '이용자'인 만큼 플랫폼이 해결 방안을 내놓아야 할 문제"라는 입장입니다.

■ '약 배송도 금지'…이유 있나?

시범사업을 통해 단순히 진료만 제한되는 게 아닙니다. 그동안은 비대면 진료를 받으면 약을 집으로 배송 받을 수 있었는데 이 역시 원칙적으로 금지됩니다. 약을 집에서 수령할 수 있도록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초진이 가능한 사유 등으로 제한되고, 이 때도 '약사'와 협의를 거쳐야만 합니다.

의사의 판단 하에 재진 과정에서 비대면 진료를 이용해 약 처방을 받아도, 정작 약은 직접 받으러 가야하는 상황인 겁니다. 진료 요건 자체는 차치하더라도 약을 수령하는 방식만 보면 이제는 '비대면'이라고 말하는 게 불가능해 보입니다.


복지부는 "원칙은 환자의 선택권을 늘리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환자의 선택권'에 '약 배송'이 왜 없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설명이 없습니다. 환자의 위치 주변에 처방약을 가진 약국이 없는 경우에는 어떻게 하냐는 질문에 "주변에 없으면 더 주변을 찾을 수 있다"는 답을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비대면 진료를 받은 환자가 집 주변 약국에 약이 있는지 알기 위해 처방전을 보내거나 사전에 전화로 일일이 문의해야 하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에 대해서도 "고민스럽다. 사실 그럴 수 있다"며 "참여 약국이나 의료기관이 많으면 이런 문제가 줄어들 것"이라고만 언급했습니다.

주무부서의 답변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준입니다.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은 기존부터 예정된 것이었는데 왜 아직 대책이 없는지, 대책이 없는데 왜 시범사업안이라고 발표한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6월부터 석달 간 계도기간이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복지부의 태도라면 석달 안에 의미 있는 해결책이 나올 거라 믿을 수 있을까요?

약 배송 금지는 대한약사회 등 약사 단체가 비대면 진료에 대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부분입니다. 약사회는 다만 자신들이 '공공 플랫폼'을 만들고 이를 이용한다면 약 배송도 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약사회는 시범사업 안에 대해 "기본적으로 입법으로 풀어야할 문제를 시범사업으로 푸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이라면서도 "약 배달이 제한적으로만 허용된 만큼 기존 우려했던 점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밝혔습니다.

■ 혼란은 의료 현장의 몫…플랫폼 사업 계속될 수 있나

복지부는 이번에 마련된 시범사업 안이 완전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다음달 1일까지 남은 기간 전문가와 업계 등의 의견을 계속 수렴해 보완하고, 석달 간의 계도기간 동안도 충분히 바뀔 수 있는 내용이라고 강조합니다.

다만 지금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대로라면 당장 다음달 1일부터 의료 현장의 혼란은 불보듯 뻔합니다. 그리고 그 몫은 복지부가 아닌 현장의 의사와 환자가 지게 됩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업계는 지금 상태로라면 시행 자체가 어렵고, 업계의 미래도 담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장기적으로 의료법 개정을 통해 비대면 진료가 보다 폭넓게 허용될 날이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 때는 지금의 플랫폼 업계는 고사되고 난 이후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더라도 새로운 플랫폼이 생겨날 것이라고 믿는 걸까요?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뒷짐 지는' 정부를 보고서 누가 사업을 진행할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픽 : 안수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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