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K콘텐츠 지키기 위해, 영화관에 뱀을 풀었다고? – 김윤지 연구원(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입력 2023.05.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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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아래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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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를 3세대로 구분하면 1세대 1990년대 사랑이 뭐길래, 질투 등 드라마의 아시아 확산, 2세대 2000년대 HOT 등 K팝, 3세대는 2010년대 이후 K팝과 드라마 등 유럽, 미국까지 확산 등으로 구분
- 한류의 성공은 설계되지 않은 성공임; 비계획적으로 뜻하지 않은 결과들로 성공을 이룸
- 1988년 올림픽때 유명 영화 감독 등이 직배영화에 반대하면서 영화관에 뱀을 풀어놓았던 사건은 K콘텐츠의 보호를 위해서였으나 결국 우리 문화 시장의 개방을 알리는 신호탄
- 우루과이 라운드 개방에 맞춰 스크린쿼터제 등으로 우리 콘텐츠를 지키려 했음
- 넷플릭스 등 OTT의 자본력과 경쟁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국내 OTT도 해외 진출 등의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야
- 전도유망한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재산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본력과 투자자를 확보해야
-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한국에서 60%, 중국에서 15%의 시청률, 이후 겨울연가 일본에서 대박상품. 단순한 드라마 판매에만 머물지 않고 관련 문화상품과 국내여행 상품 등 파급효과를 깨닫기 시작함
- 최근, 아이돌 앨범의 세계 초동 판매량이 100만장을 넘어서기도. 엔터산업의 무한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음
- 단순히 한류로서 아시아권에서만 머물지 않고 미국, 유럽을 넘어 아프리카 등 까지도 뻗어나가고 있음
- 드라마, 영화, 케이팝 모두 새로운 대안들을 만련해왔듯이 앞으로도 이런 시스템 유지보완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

■ 프로그램명 :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 방송시간 : 5월 22일(월) 09:05-10:53 KBS1R FM 97.3MHz
■ 진행 : 이대호 편집장(와이스트릿)
■ 출연 : 김윤지 연구원(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이대호>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2부가 열렸습니다. 코스피, 코스닥 0.4, 0.5%씩 오르고 있고요. 코스피는 2567포인트 코스닥은 856.9포인트 환율은 좀 안정되고 있습니다. 1312원까지 어제보다 6원 정도 내려왔습니다. 1310원 초반까지 이제 환율은 내려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K-콘텐츠 우리는 그냥 코리아 한국인이니까 다 K-콘텐츠를 보겠구나. 대외적으로 많이 국위선양을 하고 있고 또 이제는 국위선양뿐만이 아니라 돈도 많이 벌어오고 있습니다. 빌보드 1위, 넷플릭스 1위 또 어디 국제영화제 시상 1등 이런 거 받는 일이 이제 일상다반사가 됐습니다. 자랑스럽기도 한데요. 또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얼마나 도움이 될지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김윤지 연구원이 최근에 한류외전이라는 책을 통해서 재밌게 풀어냈는데요. 한류의 일대기를 따라가 볼까요? 어서 오세요.

◆김윤지> 안녕하세요.

◇이대호> 안녕하세요. 수출입은행 다니시면서 해외 경제도 연구하고 계시고.

◆김윤지> 네, 저희 연구소에 소속돼 있습니다.

◇이대호> 그리고 또 최근에는 콘텐츠 쪽으로도 연구를 또 많이 하고 계시고.

◆김윤지> 네 콘텐츠산업 연구하면서 이번에 한류외전이라는 책을 통해서 지난 30년간 이 한류산업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한번 정리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대호> 그렇죠, 요즘에 젊은 세대들은 그냥 K-팝, 오징어 게임 이 정도만 보는데 이게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가 있어요.

◆김윤지> 그렇죠. 지금 굉장히 성공적이니까 우리 원래 잘했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사실 한 30년 전만 딱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상품들이 이렇게 해외로 수출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상황이 많았고요. 갑자기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지라는 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해요. 이렇게 성공을 보면서. 그래서 이렇게 되는 과정에는 약간 산업화라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들이 있었다. 이걸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이대호> 근데 예전에 모르겠네, 한 20년 전에는 한류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열풍이었는데 지금은 한류라기보다는 그냥 K-콘텐츠.

◆김윤지> K자로 가늠이 됐죠.

◇이대호> 왜냐하면 이게 대만, 홍콩, 중국 쪽에서 유행을 할 때는 한류였는데 이제는 서양 쪽으로 많이 가다 보니까 거기서는 한류를 모를 거 아니에요.

◆김윤지> 네 그래서 K-웨이브라고도 얘기를 하다가 그래서 아직도 아시아에서는 한류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기는 하는데 이제 K라는 걸로 바뀐 것 같아요. 그래서 K-팝, K-드라마, K-무비 이런 식으로 약간의 접두어가 좀 바뀐 상황이기는 합니다.

◇이대호> 자랑스럽네요.

◆김윤지> 엄청나죠.

◇이대호> 그래서 KBS 1라디오 성공예감. K-성공, K-성공. 김윤지 연구원님은 기억에 남는 한류는 어디서부터 시작합니까? 팬으로서.

◆김윤지> 팬으로서 저는 HOT가 나왔던 순간이 그래도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이대호> 그런데 지금 작가님이 써주신 게 별은 내 가슴에 안재욱, 클론 이런 거 써주셨어요. 저는 블랙핑크나 FIFTY FIFTY 이 세대거든요.

◆김윤지> 그러신가요?

◇이대호> 그럼요. 요즘에도 좀 많이 바뀌었죠?

◆김윤지> 굉장히 많이 바뀌었고요. 예전에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아시아 중심에서 지금은 미국, 유럽, 중남미 이런 쪽으로 굉장히 K-팝, K-드라마 열풍이 크고요. 넷플릭스 차트 같은 걸, 국가별 차트 같은 걸 보면 나이지리아 이런 나라에서 우리나라 드라마가 1등하고 그래요. 그래서 저는 이거는 왜 여기서 보고 있지? 이럴 정도로 굉장히 반응이 되게 좋고 일단 한국 상품이다, 그리고 K-팝이다라고 하면 주목을 한번 받고 시작을 하게 되는 그런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이대호> 예전에는 K-팝 미국에서 공연한다 하는데 LA지역에서 다 아시아인만 와 있고.

◆김윤지> 그렇죠. 한국 교포들 와 있고.

◇이대호> 한국인 사람들이 이제 해외 친구들 몇 명 데려오고 이 정도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이제 K-팝, K-드라마가 아프리카, 남미 구석구석 어디 안 나가 있는 데가 없네요. 그런데 이것도 한류의 발전이 1단계, 2단계, 3단계 단계가 있다면서요?

◆김윤지> 굳이 나눠보면 단계를 좀 살펴볼 수는 있는데요. 1990년대 후반부터 한 2000년대까지는 이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같은 그런 드라마들이 중국이나 아시아 쪽으로 많이 확산이 돼서.

◇이대호> 사랑이 뭐길래.

◆김윤지> 사랑이 뭐길래, 질투 이런 드라마들이.

◇이대호> 전설, 전설적인 드라마.

◆김윤지> 그런 드라마들이 이제 아시아 중심으로 많이 확산이 됐고요. 그다음에 2000년대 넘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HOT가 물꼬를 트기 시작해서 아이돌 그룹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잖아요. 그래서 이때는 K-팝 중심으로 아시아 쪽으로 쭉 확산이 되다가 이제 3세대가 2010년대 이후부터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그때는 K-팝뿐만이 아니라 넷플릭스 같은 것들을 통해서 드라마들도 크게 확산이 되는 그리고 아시아 중심이 아니라 유럽, 미국까지 확산이 되고 약간 여기에는 기술적인 변화도 되게 중요했죠. 인터넷, 유튜브, 넷플릭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앉아서 수출하는 시대로 바뀐 게 지금인 것 같습니다.

◇이대호> 이게 예전에는 문화의 관점에서 이제는 경제의 관점으로 더 많이 보게 되잖아요. 한류가 가장 성공한 이유 하나를 꼽자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김윤지> 저는 산업화 아까 말씀드렸듯이 산업화를 성공한 게 굉장히 컸다라고 할 수 있는 게 사실은 그 산업화라는 게 여러 가지를 담고 있어요. 자본도 계속 유입이 돼야 되고요. 기업들도 열심히 활동을 해야 하고 시장에서 계속 팔 만한 시장도 있어야 되는데 사실 30년 전 이전만 생각해 보면 그런 일들이 다 가능하지 않았어요.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한 90년대 초반 정도 우리나라에서 이제 개방이 갑자기 되면서 시장이 개방이 되는 것에 맞춰서 갑자기 기업들도 약간 자각을 하고 자본들도 유입되고 이러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졌는데 그래서 한류의 성공에 대해서 제가 설계되지 않은 성공이다라는 이야기들을 해요. 그런데 이게 무슨 얘기인가 하면 누구 하나가 계획해서 쭉 흘러간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일들이 막 섞이면서 뜻하지 않은 결과들이 계속 나타났고 그런 것들로 인해 지금의 성공이 일어났다 이런 설명들을 하고 있는 거죠.

◇이대호> 복합적으로. 우리가 그래서 뭔가 문화를 말 그대로 문화 혹은 정신으로만 생각을 하다가 이게 산업화가 됐고 또 기업들이 뛰어들면서 돈 벌려고 사업화 하다 보니까 이게 또 글로벌 진출에서 또 대박을 낼 수도 있었고 분야별로 한번 나눠서 볼게요. 영화 시장.

◆김윤지> 영화 시장.

◇이대호> 36년 전에 극장가에 뱀 사건이 있었어요? 뱀 사건은 뭐예요?

◆김윤지> 이거 이제 기억하고 계신 분들은 연식이 나오기 시작하는 건데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막 개최되고 있었던 때였는데 가을에 신촌리 신형 극장하고 명동 코리아 극장에서 뱀이 한 10마리, 4마리가 풀리는 일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대호> 누가 일부러 극장에다 뱀을 풀어놓은 거예요?

◆김윤지> 푼 거죠. 그래서 굉장히 관객들이 놀라서 막 도망가고 이런 일들이 벌어졌거든요.

◇이대호> 왜요, 왜요?

◆김윤지> 그런데 이 일이 사실 생각해 보면 조금 슬펐던 게 당시에 그 영화 시장이 막 개방이 되기 시작한 거예요. 그 이전까지는 한국 영화들은 수입사들이 한 20개 정도 되는 수입사들이 있었는데 그 수입사들이 독점적으로 영화를 수입해 올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때 한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장 개방 압력 때문에 미국에서 한국의 영화 시장을 열어라, 열어라 이런 요구들을 계속했고 그러다 보니까 한국에 직접 배급을 하겠다. 왜냐하면 할리우드의 영화사들이 직접 미국 영화들을 들여와서 직접 배급해서 수익을 챙기겠다 이렇게 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니까 이제 한국 영화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수익이 되는 건 당시에는 미국 영화들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영화를 우리가 직접 수입하지 못하고 미국이 직접 들어와서 배급을 하게 되면 우리는 이 영화 산업이 완전히 망하게 된다. 특히 그때는 한국 영화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았어요. 한국 영화가 어느 정도였냐면 외국 영화를 수입해 오려면 한국 영화 15편 이상을 제작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있었거든요. 이 조건 맞추려고 한국 영화를 만들 정도로 그러니까 15개만 만들면 내가 외국 영화를 수입할 수 있으니까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수준도 별로 좋지 않았고 그래도 그나마 종사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걸 미국 영화로 수입 못 해오면 완전히 토대가 무너진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굉장히 절박한 마음에 굉장히 유명하신 영화감독님과 한 분이 같이 뱀이라도 풀어서 이걸 좀 정부에게 얘기를 해보자라는 차원에서 뱀을 풀게 된 거였죠.

◇이대호> 실제로 1988년에.

◆김윤지> 네.

◇이대호> 생각해 보면 저 어릴 적에는 이제 우루과이 라운드라는 게 90년대 초반까지도 뉴스에 매번 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우루과이 라운드가 그때는 이제 권투가 유행이었거든요.

◆김윤지> 라운드.

◇이대호> 권투 선수도 무슨 라운드, 추가 라운드인 줄 알았어요. 그 정도로 뉴스에 많이 나왔고. 또 영화 산업에서 짚어보면 한국영화 쿼터제.

◆김윤지> 스크린 쿼터제.

◇이대호> 스크린 쿼터제가 있었는데 그거 폐지한다고 해서 영화인들이 다 삭발하고, 여성 배우들도 삭발하고 이랬던 장면도 봤었는데. 그 뒤에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영화는 더 경쟁력을 갖추게 된 거였잖아요.

◆김윤지> 사실 이 과정이 개방을 약간 강제로 개방을 당하는 입장이었던 거죠. 아까 말씀해 주신 것처럼 우루과이라운드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이 사실은 서비스 시장이랑 쌀, 농산물 시장인데. 우리는 우루과이라운드라고 하면 농산물 시장 열어준 거 기억을 많이 해요. 쌀 개방이 그때 됐기 때문에.

◇이대호> 그때 시위도 많았고.

◆김윤지> 시위도 많았고. 그런데 그 뒤에 전초전을 보면 영화 시장은 이미 조금씩 조금씩 그 라운드의 영향으로 열어주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 두 산업이 되게 큰 차이가 뭐였냐면 영화 시장은 당시에 그런 개방에 맞서서 여러 가지 정책이 나오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해서 기업들이 들어와서 우리가 영화를 이런 식으로 만들자라는 식으로 산업이 된 거고. 쌀은 그때 보조금을 주는 형태로 약간 유지가 된 거죠. 산업화를 이루지는 못한 거예요. 이 두 개가 지금에 와서는 엄청난 차익을 낳은 거거든요.

◇이대호> 쌀이나 농업 분야는 사실 지금도 똑같죠, 거의.

◆김윤지> 계속 보조금 문제가 중요해졌잖아요. 그래서 이게 산업화를 이뤘다는 게 지금 한 30년 놓고 보니까 이 두 가지가 되게 비슷한 산업이었는데, 큰 차이를 알았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이대호> 물론 그거는 이제 자급이 가능하느냐, 또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느냐라는.

◆김윤지> 그 차이는 크고 더 크고요. 그렇죠

◇이대호> 맞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도 보면 90년대부터는 할리우드 영화가 물밀듯이 들어왔지 않습니까? 그것도 대작들.

◆김윤지> 그렇죠.

◇이대호> 그때가 할리우드 영화들이 가장 수익성도 좋고, 재미있고 이럴 때가, 지금도 여전히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직접 배급을 하게 되니까 모든 미국 영화들 잘 될 만한 미국 영화들은 할리우드 직배사들이 다 직접 배급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 영화사들이 수입해 올 만한 영화가 없는 거죠, 미국 영화가. 그리고 또 뭔가는 대체를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이때 잘 생각해 보시면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 홍콩 영화 많이 보신 기억이 있지 않으세요?

◇이대호> 홍콩 느와르.

◆김윤지> 그때 엄청나게 많은 홍콩 영화들이 들어왔는데. 그때 홍콩 영화의 수준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영화사들이 대체제로 수입을 많이 해 온 거죠. 미국 영화는 직배 때문에 우리가 들여올 게 없으니까, 다 알아서 하니까 대신 수입해 올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찾은 게 홍콩 영화들이었던 거죠.

◇이대호> 우리가 수입해 와서 유통할 수 있는 영화를 찾아보자.

◆김윤지> 그렇죠.

◇이대호> 그래서 그때 눈에 띈 게 홍콩 영화들.

◆김윤지> 당시 수준도 좋았기는 했지만.

◇이대호> 그렇게 되면서 홍콩 영화가 자연스럽게 더 많이 들어왔던 그 내용.

◆김윤지> 그리고 여전히 한국 영화는 아직도 길을 아직 헤매고 있었어요, 90년대 초반까지.

◇이대호>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그래도 좀 우리가 산업 경쟁력을 찾게 됐는데. 사실 산업화, 산업화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문화가 산업이 되려면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되지 않습니까?

◆김윤지> 가장 중요하죠.

◇이대호> 초반에는 그냥 돈이 모이지는 않았을 거고요.

◆김윤지> 그렇죠. 사실 이전에도 왜 영화나 이쪽으로 산업이 되지 않았는가를 보면, 서비스 산업은 향락산업으로 분류가 됐어요. 그러면 은행에서 향락산업은 대출을 해주지 않아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제작비를 대출할 수가 없는 거죠. 지금도 물론 힘들기는 한데. 그만큼 국가적으로도 서비스 산업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어요.

◇이대호> 오락산업도 아니고 향락사업이라고.

◆김윤지> 향락산업이기 때문에. 그래서 정책적으로 뭔가가 바뀌는 게 되게 중요했는데. 이게 이제 바뀌기 시작한 게 1990년대 초반에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가 굉장히 대히트를 합니다, 93년인데요. 이 영화가 크게 히트를 하고 또 우리나라에서도 뭔가 우리에게도 서비스 산업에 대해서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자각이 생길 때였는데. 1994년 김영삼 대통령 때 과학기술자문회의라는 보고에서 이런 보고가 나왔어요. 쥬라기 공원 1년 흥행 수입이 우리나라 차 150만 대 수출한 것과 효과가 같다. 이게 당시로는 굉장히 엄청나게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거였던 게, 우리 차 수출하는 게 얼마나 어렵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이대호> 그렇죠.

◆김윤지> 그런데 겨우 영화 한 편이 차 150만 대랑 똑같아 이게 말이 돼? 사람들의 약간 인식의 전환이 필요했을 때 이 문구가 굉장히 효율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김영삼 대통령도 이 문구를 굉장히 여러 번 쓰셨어요. 그래서 이만큼 처음에 자본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바뀌는 게 필요할 텐데, 관료들의 마인드나 기업들한테 영화산업, 영상산업이 돈이 될 수 있는 거다라는 약간 자각을 일으킨 게 이때 쥬라기 공원에 대한 문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대호> 그렇게 되면서 우리가 이걸로 그냥 뭐라고 해야 될까, 자본이 유출되는 이런 폐해보다는 우리가 직접 해보자, 투자도 해보자 이렇게 일어났던 거고. 당시에 그래서 벤처 창투사.

◆김윤지> 이쪽으로 자본이 흘러가게 된 과정이 사실 되게 중요한 게, 우리 IMF 위기를 겪었습니다. 1997년에 IMF 위기를 겪고 김대중 대통령 새로 들어오셨죠. 그런데 IMF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기존의 경제 체제에서의 문제가 굉장히 많이 드러났던 거였잖아요. 그러면 이제 새로운 성장산업, 성장 동력을 찾아야만 하는 위기감이었던 거죠. 뭔가 새로운 걸 찾아야 되고. 그런데 또 당시에 정보 사회론, 인터넷 붐 그래서 미국에서 엄청나게 닷컴붐 도 일어나고 있었고. 그래서 이 두 가지가 맞물려서 그때 처음 김대중 대통령이 내놨던 게 코스닥 활성화, 벤처 투자 활성화 이걸 내놓으셨어요. 그래서 많은 자금들이 코스닥 시장에 흘러가기 시작했죠. 그런데 여기에 신의 한 수를 더 둔 게 벤처 투자를 할 때 문화산업에도 투자를 하면 똑같은 혜택을 준다, 제조업 투자와 똑같은 혜택을 준다. 이렇게 되니까 창투사들이 보기에 문화산업, 지금 영화 보니까 좀 재미있게 만들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 여기에 투자하는 게 벤처 투자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은데 하면서 굉장히 많은 자본들이 영화 투자에 몰려들기 시작했고요. 사실 그때부터 투자하신 분들이 지금까지도 투자를 하고 계세요. 그래서우리 영화 볼 때 자막 올라갈 때 보면 무슨 무슨 창투사, 무슨 무슨 기술 투자 이런 것들이 쭉 있잖아요. 이분들이 그때부터 투자를 하시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우리 영화에 투자하고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한 돈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대호> 93년도에 우리가 쥬라기 공원을 보면서 산업적으로, 경제적으로 충격을 받았다면, 사실 98년이었나요? 그때는 타이타닉이었잖아요.

◆김윤지> 그렇죠.

◇이대호> 금 모으기 운동한 거 다 벌어 나갔다고. 그렇게 되면서 이제 우리도 그때부터 투자자에 대한.

◆김윤지> 투자를 할 수 있다. 투자를 해서 영화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라는 움직임이 시작되기 시작하는 거죠.

◇이대호> 생각이 많이 전환이 된 거네요. 그로부터 대기업 자본들도 많이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되면서 좀 작은, 영세한 극장들 단성사, 피카디리, 스카라, 국도 허리우드 극장 진짜 추억의 이름들인데. 이게 이른바 멀티플렉스로 바뀌게 되었고, 극장도 이제 체인처럼 바뀌게 되었죠. 이 대기업들이 잡은 이렇게 좀 대체가 된 과정은 좀 어떻게 평가하세요?

◆김윤지> 우리나라 영화 산업에 대기업이 들어왔던 때가 두 번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1980년대 말에 아까 직배 영화 들어올 때 할리우드가 이렇게 들어오려고 하는 건 뭔가 시장이 있다는 증거잖아요. 그때 대기업들이 삼성전자, 대우, LG 이런 비디오데크를 만드는 전자산업 중심의 대기업들이 모두 다 영화 산업에 진입을 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영화를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대기업들이 와서 시스템을 바꿨죠. 아까 말씀하신 옛날 영화 하시는 분들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대기업 스타일로 그때 제일 유명했던 영화가 결혼 이야기라는 영화였는데. 이게 삼성전자가 투자를 해서, 삼성영상사업단이 투자를 해서 만든 건데. 약간 대기업의 시스템으로 새로운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대기업 자본과 새로 영화를 기획하시는 분들이 생겨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게 자리를 잡아가려는 찰나에 아까 말씀드린 IMF 위기가 딱 터지면서 이 대기업들이 모조리 철수를 합니다. 여기 큰 돈 안 되는 데고, 지금 구조조정이 너무 필요한 때니까 우리는 철수해서 쫙 철수를 했는데. 그때 철수를 하지 않은 기업들이 CJ, 지금의 CJ 그리고 오리온 당시 오리온 그리고 롯데 이런 기업들은 남았어요. 이 기업들이 왜 남았냐면, 우리는 지금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라는 걸 세울 건데,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세우면 사실 굉장히 극장 환경이 바뀌게 되거든요. 아까 말씀하신 단성사, 스카라 이런 극장들하고는 조금 다르고. 영화도 내가 직접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가지게 되니까 좀 더 시장이 버텨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분들은 버텨요. 그러다 보니까 아까 말씀드린 그 영화 자본들이 유입이 되고, 이렇게 멀티플렉스 중심으로 인프라도 바뀌고. 한국 영화 시장이 굉장히 커지게 되면서 이 세 기업 중심으로 영화 산업이 재편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세 기업들 중심의 멀티플렉스 다 지금도 이용하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이 중심으로 영화 산업이 재편되기 시작한 거죠.

◇이대호> 그런데 이제 그때도 위기였는데 또 한 번의 위기가 코로나19 이후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한 3년, 4년 다 리오프닝도 다 됐고,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당시에 그렇게 흥하던 멀티플렉스들은 지금 아직도 적자에서 못 벗어나고, 이제 사람들이 극장에 주말에 할 일 없는데 영화나 보러 갈까? 데이트할 때 뭐 하지? 영화 보러 가지. 이게 이제는 안 나오는 시대가 됐어요, 이 말이.

◆김윤지> 그렇죠. 이게 이제 그동안 또 다른 변화가 한쪽에 생기고 있었는데, OTT라는 게 등장했죠.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이런 디즈니의 이런 OTT들이 생겨나면서 코로나 기간 동안 우리가 극장을 한 2, 3년 못 가고 살았잖아요. 그리고 OTT를 통해서 뭔가를 보는 게 굉장히 익숙해진 거예요. 그리고 영화를 만들거나 드라마를 만드시는 분들도 그쪽에 가서 많이 작업을 하시고 지금 영화관에서 새롭게 영화를 올리려고 보니 이미 만들어진 영화들이 좀 옛날 영화들 코로나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들 이런 것들이 많이 남아 있는 상태고 코로나 기간 동안 투자가 잘 진행되지 못해서 지금 새로운 대작 영화들이 좀 못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요. 아마 올해부터는 조금 나오기 시작하면 시장이 조금은 바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서 근본적으로 OTT라는 새로운 매체가 생겼다는 게 영화관이 옛날 같은 영화를 누릴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되는 것 같기는 합니다.

◇이대호> 갑자기 우리 청취자분들도 추억 속으로 들어가 계시는 것 같은데 조성빈 님이 홍콩 영화 유행하면서 책받침 스타들도 유행했었죠. 하기야 문방구에 가서 스타들 코팅한 책받침 많이 팔았었는데, 문방구에서.

◆김윤지> 그렇죠.

◇이대호> 맞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옛날 추억에 들어가 계시는데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와서 보면 최근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그렇고 윤여정 배우 미나리 이걸로 여우주연상도 받았고 헤어질 결심을 만든 박찬욱 감독도 그렇고 브로커의 송강호 배우까지 이제는 이제 케이무비라고 해야 될까요? 이거는 콘텐츠 저력이 상당합니다. 세계 시장에서 아예 퀄리티도 그렇고 사람들의 수준도 다 인정을 받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 밑바탕은 좀 뭐라고 분석을 하고 계세요?

◆김윤지> 그 영화랑 드라마가 지금 다 잘 되고는 있는데 사실은 약간 기초가 되는 건 영화이기는 해요. 영화에서 여러 가지 스타일의 영화 장르들을 다 실험해 본 것들이 지금 꽃피우고 있는 게 많은데 저는 이제 이렇게 다양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에는 자본이 그만큼 뒷받침해줬던 연습의 효과들이 분명히 있다는 거죠. 박찬욱 감독이나 지금 봉준호 감독들 초창기 작품들 보면 굉장히 흥행에 실패하셨어요. 플란다스의 개.

◇이대호> 초창기.
◆김윤지> 그러면 사실 요즘 같은 때 그렇게 첫 영화를 실패했다 그러면 한 10년 쉬셔야 해요. 입봉을 다시 한 번 했다고 하더라도 첫 번째 작품이 실패하게 되면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을 만들기 되게 어렵거든요. 그런데 당시에 영화 한국의 영화 산업이 굉장히 성장하고 있던 때였고 자본도 많이 들어오고 하니까 그런 분들한테도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랬던 것들이 지금의 그런 거장들을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자본이 계속 유입되고 계속 새로운 작품들을 지금 보기에는 좀 재미없지 않아 하지만 계속 그런 것들이 연습되는 것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대호> 계속해서 연습 그리고 한 번 더 기회 이런 것들. 그런데 최근에 그 영화 시장 자체만 놓고 보면 아까 이야기해 주셨던 OTT에 계속 밀리고 있어서 그런데 이거를 다시 영화 혹은 드라마 이걸 구분하는 것 자체도 이제는 말이 안 되는 시대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김윤지> 그렇죠. 만드시는 분들이 거의 다 왔다 갔다 다 하시니까요. 지금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도 영화 감독 출신이시잖아요.

◇이대호> 그렇죠 이제 아예 그냥 구분을 두지 않는 게.

◆김윤지> 저도 이제 약간 이 구분은 모호해졌다는 생각은 드는데 약간의 제작 스타일의 약간 다른 차이는 좀 있어요. 영화 같은 경우는 영화 투자자들 아까 말씀드린 벤처 투자자들 같은 분들이 제작비를 대고 영화를 만들어서 흥행을 성공을 하면 수익을 셰어하는 이런 형태를 갖게 되잖아요. 지금 OTT 같은 형태는 제작할 때 보면 얼마만에 제작비가 필요하다 하면 그걸 OTT가 다 주고 사요.

◇이대호> 넷플릭스가 50억이든 100억이든 먼저 주죠.

◆김윤지> 먼저 주고 그 대신 이건 내 영화야 하게 되고 그래서 이거를 그냥 전 세계에 유통해서 굉장히 성공하면 그 수익은 넷플릭스가 가져가고 성공이 안 돼도 그냥 깔아놓는 영화들이 필요하니까 그런 형태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국내 OTT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자본력이 큰 해외 OTT랑 경쟁하려면 자본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하고 아까 영화 같은 경우는 여러 투자자들이 붙어서 여러 편을 만드는 구조인데 지금 티빙이나 웨이브 같은 데서 그런 제작비를 다 대고 사주고 제작한다 사실 불가능한 거거든요. 그래서지금 OTT 중심의 제작 시스템에서도 저는 이제 국내의 OTT들이 투자자들과 같이 가는 형태로 바뀌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셰어하는 형태로 가야 좋은 작품들을 계속 OTT에 수급할 수 있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 OTT들이 해외로 가야 됩니다. 우리나라 상품 만들어서 우리나라에서 유통하는 것만으로는 이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고요. 이 제작비 이상의 수익을 올리려면 해외에 직접 팔아야 되는데 그러려면 국내 OTT들이 해외로 가야죠. 그래서 직접 유통까지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대호> 사실 우리나라가 OTT와 같은 플랫폼은 사실 좀 약하고.

◆김윤지> 그렇죠.

◇이대호> 하지만 콘텐츠는 강한데 그 콘텐츠도 OTT의 귀속이 되는 구조다 보니 사실 뭐 100억, 200억짜리여도 제작사는 10% 정도 마진만 확정적으로 확보가 되어 있고 나머지는 그냥 그게.

◆김윤지> 유통사가 가져가는 거니까요.

◇이대호> 그렇죠. 넷플릭스 가입자가 얼마나 많이 늘건 간에 그건 다 그쪽 몫이고 그래서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물론 오징어 게임 정도 되면 속편을 만들 때 뭔가 협상력이 달라질 것이다라는 전망들은 있기는 합니다마는 이걸 구조적으로 바꾸기는 사실은 좀 쉽지 않죠.

◆김윤지> 쉽지는 않은데 그래도 요즘 얘기하는 게 그래서 IP라는 것들을 제작사가 가지면.

◇이대호> 지식재산권, 지적재산권

◆김윤지> 지식재산권 하면 좀 어려워지는데요. 그냥 판권이에요.

◇이대호> 판권.

◆김윤지> 내가 판매할 수 있는 권한, 내가 2차 저작물을 만들 수 있는 권한 예를 들어서 오징어게임에 IP를약에 제작사가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시즌2,시즌3 만드는 게 중요하잖아요. 이거를 다른 OTT하고도 협상도 할 수 있고 가격도 좀 올릴 수 있고 그리고 요즘 큰 OTT들 말고 작은 OTT들도 되게 많거든요, 아시아 지역에. 그런 데 여러 군데 팔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이 있어서 IP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는 이 점 때문에 나오는데 여전히 제작사들이 IP를 가지려면 자본력이 있어야 해요. 내가 뒷배가 든든해야 협상을 할 수 있는 건데 돈이 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도 투자자들이 투자자들과 같이 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대호> K-드라마 이야기 좀 더 들어가 보면 K-드라마 그 수출의 효시라고 해야 될지 그게 사랑이 뭐길래.

◆김윤지> 사랑이 뭐길래. 그렇죠.

◇이대호> 사랑이 뭐길래가 1991년에서 92년 드라마였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수출이 된 게 96년, 97년이에요?

◆김윤지> 97년 중국 CCTV에 판매가 됐는데요. 그때 중국에서 중국 전역 CCTV 전국에 방송이 되니까 15%의 시청률이 나와요, 이게.

◇이대호> 중국에서 15%.

◆김윤지> 물론 그때 우리나라에서 60% 시청률을 올린 드라마이기는 했습니다, 이 드라마가.

◇이대호> 그럼요, 사랑이 뭐길래는.

◆김윤지> 그런데 중국에서 15%는 정말 엄청난 현상이었고 그래서 한류라는 단어가 처음 이렇게 쓰이기 시작한 때에 대해서는 약간 모호하기는 한데 사람들이 다 동의하는 건 하여간에 사랑이 뭐길래 이후다 한류라는 단어가 굉장히 자리 잡게 된 것은 사랑이 뭐길래다라는 얘기를 많이 하고 계십니다.

◇이대호> 저는 어제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 원고 준비하면서 사랑이 뭐길래가 몇 년도 거지 이렇게 찾아보다가 너튜브 영상이 떠서 한번 클릭을 했는데 큰일 날 뻔했습니다. 방송 준비 못하고 계속 볼 뻔했어요.

◆김윤지> 지금 보셔도 재미있죠?

◇이대호> 지금 봐도 재미있어요. 이게 91년 드라마인데 그러니까 당시에 시청률 60% 나왔던 이유가 있는 거고 그런데 이게 수출의 효시였던 거고 그다음으로 가보면 2000년대 초반에 욘사마.

◆김윤지> 욘사마. 겨울연가.

◇이대호> 겨울연가.

◆김윤지> KBS 겨울연가.

◇이대호> KBS 겨울연가가 이거는 이제 일본에서 대박이 났죠.

◆김윤지> 그렇죠. 욘사마 이 겨울 영화가 되게 중요한 것은 사실 이 전까지만 해도 콘텐츠 하나 잘 만들면 여러 가지로 수익을 낼 수 있다. 원소스 멀티 유즈라는 이름으로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한 번도 검증이 된 적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 하나가 성공을 했다고 해도 부가적인 산업이 뭐가 일어날 게 많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겨울연가 같은 경우에는 일본에서 터지다 보니까 이게 부가 산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확인이 된 거죠. 남이섬으로 관광도 오고 해외 팬클럽들이 굿즈도 사주고 2차, 3차로 계속 방영이 되고.

◇이대호> 그때 진짜 남이섬은 일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김윤지> 그게 그때부터 드라마를 수출을 하게 되면 이런 산업적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이 생긴다는 게 확인이 됐다는 점에서 이 겨울 연가가 산업화 과정에서 되게 중요한 효시가 되었습니다.

◇이대호> 그러면서 진짜 이게 수출 그리고 이게 부가적인 수익이 생기네 화장품도 잘 팔리네 관광 수익도 생기네 이러면서 우리를 일깨워줬던 거죠. 이게 돈이 되기 시작했던 것도 사실은 그러면 2000년대 초반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될까요?

◆김윤지> 그런데 여전히 지금 2000년대 초반까지도 크게 돈이 된 적은 없어요. 왜냐하면 이제 그때까지만 해도 드라마들의 제작비는 다 방송사가 댔어요. 그리고 만약에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서 굉장히 시청률이 좋아져도 방송사가 광고 수익을 좀 더 올릴 수 있는 정도지 이게 시장이 굉장히 큰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수출도 되면 다행이고 안 돼도 제작비 산정할 때 수출을 염두하고 만든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까 해외에서 초고속 인터넷 깔리면서 불법 유통 많이 됐거든요. 그럴 때도 사실은 수익은 많이 못 얻었지만 덕분에 우리 드라마들이 해외에 확산이 되고 서로 공유하고 이런 문화들이 자리 잡게 되는 거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우리가 저작권을 잘 못 챙겨서 더 많이 확산이 됐네 이런 효과는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대호> 역설적이네요.

◆김윤지> 당시에는 왜 우리 수익을 못 올리냐 우리 이렇게 해외에서 많이 보는데 이거 우리가 좀 단속해야 하는 거 아니냐 했는데 그때 확산이 확 됐던 게 지금 성공에 약간 기반이 됐다는 측면이 있기도 합니다.

◇이대호> 어떻게 보면 남의 손을 타고 다니면서 더 확산이 됐던.

◆김윤지> 그렇죠. 사실 공짜로 그들이 막 보긴 했지만.

◇이대호> 아이러니 하네요. K-팝 이야기해볼까요? K-팝. K-팝도 이게 아이돌도 세대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1세대 아이돌, 3세대 아이돌, 4세대 아이돌. 그런데 이제 한류도 사실 예전에 아까 좋아하셨다고 했던 HOT, 클론, NRG 이런 분들이 중국이나 대만 이런 데서부터 유행을 타기 시작을 했었고, 그다음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2세대는.

◆김윤지> 2세대가 이제 아시아를 중심으로 슈퍼주니어 이런 분들이 아시아를 중심으로 확산이 되기 시작하는 거고요. 그다음에 3세대가 BTS 이후. BTS가 큰 성공을 하게 되면서.

◇이대호> BTS가 3세대예요?

◆김윤지> 네, BTS부터 이제 완전히 아시아 이상의 미국, 북미, 유럽 중심으로 된 게 3세대. 그러면 4세대는 뭘까 하는데요. 4세대가 약간 애매한데 BTS 이후. BTS 이후는 어떻게 달라졌느냐면 이제는 K-팝을 그냥 앉아서 다 보세요. 누구 하나 때문에 보는 게 아니라 일단 K-팝이 나왔다고 하면 다 일단 주목이 되고 나오자마자부터 해외 팬덤이 생기는 이게 지금 현재 4세대 그룹들입니다.

◇이대호> 지금은 데뷔하자마자.

◆김윤지> 하자마자 해외에서 일단 초동 판매 몇만 장 10만 장.

◇이대호> 데뷔하지도 않은 걸그룹인데. 보이 그룹도 마찬가지고 미리 약간의 선 공개 혹은 멤버 선발 과정을 만드는데 더 튜브 구독자가 막 100만 명 이렇게 되고.

◆김윤지> 그분들이 4세대입니다.

◇이대호>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4세대. 그 뭐라고 해야 될까요. K-팝이 이제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크게 열풍을 불었던 거 기억을 더듬어보면 물론 BTS도 있습니다만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었죠. 그런데 이거는 전략적으로 노리고 해외에 진출했다가 아니라. 그냥 곡을 발표했는데 너튜브에서 전 세계인들이 이걸 돌려보면서 어떻게 보면 빌보드 핫 차트, 빌보드 핫100 2위까지 올라갔던. 이거를 강제 해외 진출이었다라고 표현하는 분도 계세요.

◆김윤지> 이렇게 기술 환경이 변화가 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보면 약간 뜻하지 않게 벌어진 것이기는 했는데 그 이전에는 기업들이 약간 의욕을 가지고 진출을 했어요. 첫 번째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 SM의 보아를 통해서 일본 진출에 성공을 했죠. 우리가 아시아를 성공한 다음에 일본이 가고 그다음으로 가야 할 중요한 시장은 어디일까요?

◇이대호> 미국.

◆김윤지> 미국이죠. 그래서 미국을 계속 문을 두드립니다. SM도 보아를 가지고 미국 시장을 진출하는데 잘 안 돼요. 이게 기업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게 약간 미국 시장이었던 거예요. 당시만 해도. JYP가 또 미국 시장을 가는데 유명한 원더걸스를 데리고 가는데 정말 밑바닥부터 훑는 미국식 기업 미국식 팝스타들이 하는 형태로 그대로 했거든요. 역시 안 되는 거죠.

◇이대호> 너무 고생했죠.

◆김윤지> 너무 고생했고 아시아 스타들이 그런 식으로 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는 게 계속 절감이 되고 있었는데 싸이와 같은 경우는 그런 노력을 사실 안 했어요. 그냥 재미있는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렸는데. 당시에 유튜브와 SNS 같은 것들이 굉장히 발달하면서 공유 확산 이런 것들이 일어날 때였잖아요. 그래서 산다라가 맨 먼저 올렸고. YG에 있던 산다라가 제일 먼저 올렸고 그걸 산다라 팬이 공유를 하고 이걸 또 다른 인플루언서가 한 번 더 공유를 하면서 갑자기 확산되기 시작했거든요. 싸이의 강남 스타일 같은 경우가. 그래서 사실은 이거를 어떻게 봐야 되냐 이거는 기업이 열심히 노력해서 진출한 것도 아니지만 굉장히 자연스럽게 유튜브나 SNS를 통해서 확산이 됐고 그런데 여기서 되게 중요한 건 K-팝은 이제 유튜브나 SNS를 통해서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확산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막 기업들이 나가서 옛날에 방송국 분들이 드라마 팔 때처럼 비디오 테이프도 들고 나가서 판매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 우리가 잘 만들어서 인터넷에 올리기만 하면 사람들이 찾아보고 공유하고 확산할 수 있게 됐다. 이게 이제 이때부터 팬덤이 만들어내는 시대로 바뀌게 됩니다.

◇이대호> 잠자고 있는데도 돈이 들어오는 거죠.

◆김윤지> 네, 잘만 만들면.

◇이대호> 그래서 소셜 시대가 되면서 소셜 네트워크의 힘도 싸이 그 다음에 BTS도 사실 그렇게.

◆김윤지> BTS가 가장 크게 보여준 거죠.

◇이대호> 그리고 또 소통도 잘 했고. 신승호 님이 앨범 선주문 100만 장이면 CD 하나에 1만 5000원이라고 하면 300억 원인데 요즘 인기 아이돌은 100만 장이 기본으로 가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신곡 나오기 전에.

◆김윤지> 초동, 초동 판매로.

◇이대호> 요즘 100만 장, 150만 장 이렇게 가더라고요. 초동 자체가, 선 주문이. 대단합니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건 이 정도 되면 돈은 얼마나 법니까?

◆김윤지> 돈을 많이 버시죠. 많이 버시는데 이게 기업들의 약간 사이즈가 달라진 것 같아요. 옛날에는 K-팝 기업들 같은 경우에 K-팝 수익을 크게 세 가지로 봐요. 첫 번째는 음원, 음반 수익. 두 번째는 IP 수입이라고 하는데 출연료나 광고료, 굿즈 같은 거 판매하는 수익. 세 번째가 공연 수익이거든요. 그런데 이제 가격으로 보면 사실 갈수록 높아지는 거예요. 음원이 제일 싸고 그다음에 좀 더 팬심이 높아지면 굿즈나 광고도 나오게 되고 거기서 팬심이 아주 깊어져야 10만 원, 20만 원 하는 공연도 가고 이런 것이기 때문에 점점 더 비싼 게 되는데. 사실은 BTS 나오기 이전까지만 해도 공연 수익이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큰 사이즈가 아니었는데 BTS 이후로 팬덤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면서 우리가 이제 첫 번째 음원 수익 IP 수익은 기본으로 높아지고 공연 수익이 굉장히 커졌거든요. 지금은 BTS 이후에 나오는 아이돌들은 공연 수익도 다 그 정도는 예상할 수 있을 만큼이 되다 보니까 기업이 과거의 K-팝 기업들과 지금의 K-팝들은 약간의 수익의 기본 단위가 좀 달라졌다고 할 수 있죠.

◇이대호> 신승원 님이 150억 원으로 정정해 주셨네요. 그렇죠. 왠지 100만 장에 1만 5000원이면 300억이 아닌데 순간 읽으면서도 이상했는데 고맙습니다. 또 이렇게 우리 청취자분들이 또 이렇게 바로 잡아주시고 고맙습니다. 얼마 전에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프로듀서가 자기 기업 시가총액이 3조 원을 넘어서 트위터에 글을 하나 올렸어요. 그런데 본인이 14년 전인가 공언했던 너무 허무맹랑해 보였는데 그걸 달성을 했다 이 얘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한 2주 만에 시가총액은 4조 원을 또 넘었습니다. 기업의 가치도 그렇게 커지는 거고 이게 우리의 이제 자랑스러운 산업 혹은 이제 사업이 되는 건데 이게 어떻게 창출하고 있는 부가적인 효과 혹은 경제적인 효과 규모를 좀 다 따져볼 수 있을까요?

◆김윤지> 이게 굉장히 힘든 작업이기는 한데 과거에는 보통 다른 산업에서는 매출액 또는 수출액 정도 얘기하면 됐어요. 그런데 이 K-팝, K-드라마 같은 경우는 매출액, 수출액 이외에 뭔가 효과가 더 많을 것 같잖아요. 왜냐하면 이런 것들을 알게 되면서 외국인들이 K-팝을 사랑하면 한국 음식도 더 먹고 한국 화장품도 더 쓰고 이런 효과들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사실 이게 더 클 것 같은데 이걸 좀 어떻게 숫자로 확인할 수 없을까 이런 요구들이 많이 있었고 그래서 제가 그거 관련해서 2012년부터 한류 수출의 소비재 수출 효과라는 걸 좀 연구를 많이 해왔는데요. 최근에 연구했던 것에 따르면 한류 수출을 100억, 100달러 정도 많이 수출을 했을 때 소비재 수출. 특히 한류에 영향을 많이 받는 소비재 수가 예를 들어서 화장품이나 가공식품이나 의류, 휴대폰 같은 간단한 전자제품 같은 것들인데 이런 것들이 수출이 1.8배가 더 된다. 100달러를 한류로 수출하면 이런 소비자들은 180달러 이상 수출이 더 늘어난다는 거거든요. 그러면 단순히 이제 이렇게 자꾸 경제적으로만 얘기하는 게 좋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한류는 수출하는 것 말고도 그 부가적인 것들이 훨씬 더 크다는 게 경제적으로도 확인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대호> 역시 그게 문화의 힘이죠. 그런데 마지막으로 시간이 많지 않은데 걱정이 되는 게 있습니다. 예전에 항상 미국 드라마, 홍콩 느와르, 중국 드라마 이런 것들이 잠깐 유행은 했었는데 지금 K-팝, K-드라마, K-콘텐츠가 열풍이기는 한데 이것도 혹시 유행으로 언젠가 꺾이지는 않을까라는 그냥 앞서가는 걱정이 있거든요. 어떻게 보세요?

◆김윤지> 질문을 한 30년 전에도 계속해 왔습니다. 아이돌이 인기를 얻으면 이게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우리 꺾이지 않을까요. 드라마가 굉장히 성공을 해도 이게 얼마나 갈까요. 이런 질문들을 30년 전부터 꾸준히 우리가 해왔거든요.

◇이대호> 우리는 걱정의 민족이라.

◆김윤지> 그렇죠. 항상. 항상 위기에 직면해 있고. 그래서 지금 약간 30년 전과는 토대가 좀 달라져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전히 아까 말씀해 주신 대로 영화 산업 같은 경우는 굉장히 큰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항상 우리가 이제 설계되지 않은 성공에서 보였듯이 이 위기가 있을 때마다 뭔가 새로운 대안들을 마련해 왔거든요. 이런 것이 지금도 지금 필요한 때 OTT가 등장하면서 영화 산업도 한번 재편이 될 필요가 있고 드라마 산업도 재편이 될 필요가 있고 K-팝도 잘하고는 있지만 계속 이런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 좀 더 어떤 점들이 보완이 돼야 될지 계속 다각적으로 노력하는 모습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있고, 지금도 그런 노력들을 계속해야 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이대호> 저변도 계속해서 넓어져야 되겠고 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면서 경쟁력이 높아지는 걸 테고 또 자본의 힘도 계속해서 들어와야 될 테고요. 또 우리의 관심도 지속돼야 될 테고. 오늘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김윤지 연구위원 통해서 정말 재밌게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윤지> 감사합니다.

◇이대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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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K콘텐츠 지키기 위해, 영화관에 뱀을 풀었다고? – 김윤지 연구원(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 입력 2023-05-24 08:30:05
    성공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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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라디오에 있습니다.
전문 게재나 인터뷰 인용 보도 시,
아래와 같이 채널명과 정확한 프로그램명을 밝혀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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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류를 3세대로 구분하면 1세대 1990년대 사랑이 뭐길래, 질투 등 드라마의 아시아 확산, 2세대 2000년대 HOT 등 K팝, 3세대는 2010년대 이후 K팝과 드라마 등 유럽, 미국까지 확산 등으로 구분
- 한류의 성공은 설계되지 않은 성공임; 비계획적으로 뜻하지 않은 결과들로 성공을 이룸
- 1988년 올림픽때 유명 영화 감독 등이 직배영화에 반대하면서 영화관에 뱀을 풀어놓았던 사건은 K콘텐츠의 보호를 위해서였으나 결국 우리 문화 시장의 개방을 알리는 신호탄
- 우루과이 라운드 개방에 맞춰 스크린쿼터제 등으로 우리 콘텐츠를 지키려 했음
- 넷플릭스 등 OTT의 자본력과 경쟁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국내 OTT도 해외 진출 등의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야
- 전도유망한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재산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자본력과 투자자를 확보해야
- 1997년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한국에서 60%, 중국에서 15%의 시청률, 이후 겨울연가 일본에서 대박상품. 단순한 드라마 판매에만 머물지 않고 관련 문화상품과 국내여행 상품 등 파급효과를 깨닫기 시작함
- 최근, 아이돌 앨범의 세계 초동 판매량이 100만장을 넘어서기도. 엔터산업의 무한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음
- 단순히 한류로서 아시아권에서만 머물지 않고 미국, 유럽을 넘어 아프리카 등 까지도 뻗어나가고 있음
- 드라마, 영화, 케이팝 모두 새로운 대안들을 만련해왔듯이 앞으로도 이런 시스템 유지보완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

■ 프로그램명 :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 방송시간 : 5월 22일(월) 09:05-10:53 KBS1R FM 97.3MHz
■ 진행 : 이대호 편집장(와이스트릿)
■ 출연 : 김윤지 연구원(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이대호> 성공예감 이대호입니다. 2부가 열렸습니다. 코스피, 코스닥 0.4, 0.5%씩 오르고 있고요. 코스피는 2567포인트 코스닥은 856.9포인트 환율은 좀 안정되고 있습니다. 1312원까지 어제보다 6원 정도 내려왔습니다. 1310원 초반까지 이제 환율은 내려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K-콘텐츠 우리는 그냥 코리아 한국인이니까 다 K-콘텐츠를 보겠구나. 대외적으로 많이 국위선양을 하고 있고 또 이제는 국위선양뿐만이 아니라 돈도 많이 벌어오고 있습니다. 빌보드 1위, 넷플릭스 1위 또 어디 국제영화제 시상 1등 이런 거 받는 일이 이제 일상다반사가 됐습니다. 자랑스럽기도 한데요. 또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얼마나 도움이 될지 살펴보겠습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김윤지 연구원이 최근에 한류외전이라는 책을 통해서 재밌게 풀어냈는데요. 한류의 일대기를 따라가 볼까요? 어서 오세요.

◆김윤지> 안녕하세요.

◇이대호> 안녕하세요. 수출입은행 다니시면서 해외 경제도 연구하고 계시고.

◆김윤지> 네, 저희 연구소에 소속돼 있습니다.

◇이대호> 그리고 또 최근에는 콘텐츠 쪽으로도 연구를 또 많이 하고 계시고.

◆김윤지> 네 콘텐츠산업 연구하면서 이번에 한류외전이라는 책을 통해서 지난 30년간 이 한류산업이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지 한번 정리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이대호> 그렇죠, 요즘에 젊은 세대들은 그냥 K-팝, 오징어 게임 이 정도만 보는데 이게 조금 거슬러 올라가면 역사가 있어요.

◆김윤지> 그렇죠. 지금 굉장히 성공적이니까 우리 원래 잘했나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사실 한 30년 전만 딱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상품들이 이렇게 해외로 수출된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 상황이 많았고요. 갑자기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지라는 건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해요. 이렇게 성공을 보면서. 그래서 이렇게 되는 과정에는 약간 산업화라는 굉장히 중요한 역할들이 있었다. 이걸 한번 정리해 봤습니다.

◇이대호> 근데 예전에 모르겠네, 한 20년 전에는 한류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열풍이었는데 지금은 한류라기보다는 그냥 K-콘텐츠.

◆김윤지> K자로 가늠이 됐죠.

◇이대호> 왜냐하면 이게 대만, 홍콩, 중국 쪽에서 유행을 할 때는 한류였는데 이제는 서양 쪽으로 많이 가다 보니까 거기서는 한류를 모를 거 아니에요.

◆김윤지> 네 그래서 K-웨이브라고도 얘기를 하다가 그래서 아직도 아시아에서는 한류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기는 하는데 이제 K라는 걸로 바뀐 것 같아요. 그래서 K-팝, K-드라마, K-무비 이런 식으로 약간의 접두어가 좀 바뀐 상황이기는 합니다.

◇이대호> 자랑스럽네요.

◆김윤지> 엄청나죠.

◇이대호> 그래서 KBS 1라디오 성공예감. K-성공, K-성공. 김윤지 연구원님은 기억에 남는 한류는 어디서부터 시작합니까? 팬으로서.

◆김윤지> 팬으로서 저는 HOT가 나왔던 순간이 그래도 가장 생각이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이대호> 그런데 지금 작가님이 써주신 게 별은 내 가슴에 안재욱, 클론 이런 거 써주셨어요. 저는 블랙핑크나 FIFTY FIFTY 이 세대거든요.

◆김윤지> 그러신가요?

◇이대호> 그럼요. 요즘에도 좀 많이 바뀌었죠?

◆김윤지> 굉장히 많이 바뀌었고요. 예전에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아시아 중심에서 지금은 미국, 유럽, 중남미 이런 쪽으로 굉장히 K-팝, K-드라마 열풍이 크고요. 넷플릭스 차트 같은 걸, 국가별 차트 같은 걸 보면 나이지리아 이런 나라에서 우리나라 드라마가 1등하고 그래요. 그래서 저는 이거는 왜 여기서 보고 있지? 이럴 정도로 굉장히 반응이 되게 좋고 일단 한국 상품이다, 그리고 K-팝이다라고 하면 주목을 한번 받고 시작을 하게 되는 그런 상황인 것 같습니다.

◇이대호> 예전에는 K-팝 미국에서 공연한다 하는데 LA지역에서 다 아시아인만 와 있고.

◆김윤지> 그렇죠. 한국 교포들 와 있고.

◇이대호> 한국인 사람들이 이제 해외 친구들 몇 명 데려오고 이 정도 수준이었는데 지금은 이제 K-팝, K-드라마가 아프리카, 남미 구석구석 어디 안 나가 있는 데가 없네요. 그런데 이것도 한류의 발전이 1단계, 2단계, 3단계 단계가 있다면서요?

◆김윤지> 굳이 나눠보면 단계를 좀 살펴볼 수는 있는데요. 1990년대 후반부터 한 2000년대까지는 이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같은 그런 드라마들이 중국이나 아시아 쪽으로 많이 확산이 돼서.

◇이대호> 사랑이 뭐길래.

◆김윤지> 사랑이 뭐길래, 질투 이런 드라마들이.

◇이대호> 전설, 전설적인 드라마.

◆김윤지> 그런 드라마들이 이제 아시아 중심으로 많이 확산이 됐고요. 그다음에 2000년대 넘어오기 시작하면서부터는 HOT가 물꼬를 트기 시작해서 아이돌 그룹들이 굉장히 많이 생겼잖아요. 그래서 이때는 K-팝 중심으로 아시아 쪽으로 쭉 확산이 되다가 이제 3세대가 2010년대 이후부터라고 얘기를 하는데요. 그때는 K-팝뿐만이 아니라 넷플릭스 같은 것들을 통해서 드라마들도 크게 확산이 되는 그리고 아시아 중심이 아니라 유럽, 미국까지 확산이 되고 약간 여기에는 기술적인 변화도 되게 중요했죠. 인터넷, 유튜브, 넷플릭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앉아서 수출하는 시대로 바뀐 게 지금인 것 같습니다.

◇이대호> 이게 예전에는 문화의 관점에서 이제는 경제의 관점으로 더 많이 보게 되잖아요. 한류가 가장 성공한 이유 하나를 꼽자면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김윤지> 저는 산업화 아까 말씀드렸듯이 산업화를 성공한 게 굉장히 컸다라고 할 수 있는 게 사실은 그 산업화라는 게 여러 가지를 담고 있어요. 자본도 계속 유입이 돼야 되고요. 기업들도 열심히 활동을 해야 하고 시장에서 계속 팔 만한 시장도 있어야 되는데 사실 30년 전 이전만 생각해 보면 그런 일들이 다 가능하지 않았어요.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는데 한 90년대 초반 정도 우리나라에서 이제 개방이 갑자기 되면서 시장이 개방이 되는 것에 맞춰서 갑자기 기업들도 약간 자각을 하고 자본들도 유입되고 이러면서 여러 가지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졌는데 그래서 한류의 성공에 대해서 제가 설계되지 않은 성공이다라는 이야기들을 해요. 그런데 이게 무슨 얘기인가 하면 누구 하나가 계획해서 쭉 흘러간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일들이 막 섞이면서 뜻하지 않은 결과들이 계속 나타났고 그런 것들로 인해 지금의 성공이 일어났다 이런 설명들을 하고 있는 거죠.

◇이대호> 복합적으로. 우리가 그래서 뭔가 문화를 말 그대로 문화 혹은 정신으로만 생각을 하다가 이게 산업화가 됐고 또 기업들이 뛰어들면서 돈 벌려고 사업화 하다 보니까 이게 또 글로벌 진출에서 또 대박을 낼 수도 있었고 분야별로 한번 나눠서 볼게요. 영화 시장.

◆김윤지> 영화 시장.

◇이대호> 36년 전에 극장가에 뱀 사건이 있었어요? 뱀 사건은 뭐예요?

◆김윤지> 이거 이제 기억하고 계신 분들은 연식이 나오기 시작하는 건데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막 개최되고 있었던 때였는데 가을에 신촌리 신형 극장하고 명동 코리아 극장에서 뱀이 한 10마리, 4마리가 풀리는 일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이대호> 누가 일부러 극장에다 뱀을 풀어놓은 거예요?

◆김윤지> 푼 거죠. 그래서 굉장히 관객들이 놀라서 막 도망가고 이런 일들이 벌어졌거든요.

◇이대호> 왜요, 왜요?

◆김윤지> 그런데 이 일이 사실 생각해 보면 조금 슬펐던 게 당시에 그 영화 시장이 막 개방이 되기 시작한 거예요. 그 이전까지는 한국 영화들은 수입사들이 한 20개 정도 되는 수입사들이 있었는데 그 수입사들이 독점적으로 영화를 수입해 올 수 있었어요. 그런데 이때 한 1980년대 후반부터 시장 개방 압력 때문에 미국에서 한국의 영화 시장을 열어라, 열어라 이런 요구들을 계속했고 그러다 보니까 한국에 직접 배급을 하겠다. 왜냐하면 할리우드의 영화사들이 직접 미국 영화들을 들여와서 직접 배급해서 수익을 챙기겠다 이렇게 하기 시작한 거죠. 그러니까 이제 한국 영화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수익이 되는 건 당시에는 미국 영화들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 영화를 우리가 직접 수입하지 못하고 미국이 직접 들어와서 배급을 하게 되면 우리는 이 영화 산업이 완전히 망하게 된다. 특히 그때는 한국 영화의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았어요. 한국 영화가 어느 정도였냐면 외국 영화를 수입해 오려면 한국 영화 15편 이상을 제작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이 있었거든요. 이 조건 맞추려고 한국 영화를 만들 정도로 그러니까 15개만 만들면 내가 외국 영화를 수입할 수 있으니까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수준도 별로 좋지 않았고 그래도 그나마 종사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이걸 미국 영화로 수입 못 해오면 완전히 토대가 무너진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굉장히 절박한 마음에 굉장히 유명하신 영화감독님과 한 분이 같이 뱀이라도 풀어서 이걸 좀 정부에게 얘기를 해보자라는 차원에서 뱀을 풀게 된 거였죠.

◇이대호> 실제로 1988년에.

◆김윤지> 네.

◇이대호> 생각해 보면 저 어릴 적에는 이제 우루과이 라운드라는 게 90년대 초반까지도 뉴스에 매번 나왔습니다. 그래서 어릴 적에는 우루과이 라운드가 그때는 이제 권투가 유행이었거든요.

◆김윤지> 라운드.

◇이대호> 권투 선수도 무슨 라운드, 추가 라운드인 줄 알았어요. 그 정도로 뉴스에 많이 나왔고. 또 영화 산업에서 짚어보면 한국영화 쿼터제.

◆김윤지> 스크린 쿼터제.

◇이대호> 스크린 쿼터제가 있었는데 그거 폐지한다고 해서 영화인들이 다 삭발하고, 여성 배우들도 삭발하고 이랬던 장면도 봤었는데. 그 뒤에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영화는 더 경쟁력을 갖추게 된 거였잖아요.

◆김윤지> 사실 이 과정이 개방을 약간 강제로 개방을 당하는 입장이었던 거죠. 아까 말씀해 주신 것처럼 우루과이라운드에서 가장 중요한 시장이 사실은 서비스 시장이랑 쌀, 농산물 시장인데. 우리는 우루과이라운드라고 하면 농산물 시장 열어준 거 기억을 많이 해요. 쌀 개방이 그때 됐기 때문에.

◇이대호> 그때 시위도 많았고.

◆김윤지> 시위도 많았고. 그런데 그 뒤에 전초전을 보면 영화 시장은 이미 조금씩 조금씩 그 라운드의 영향으로 열어주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 두 산업이 되게 큰 차이가 뭐였냐면 영화 시장은 당시에 그런 개방에 맞서서 여러 가지 정책이 나오고,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시작해서 기업들이 들어와서 우리가 영화를 이런 식으로 만들자라는 식으로 산업이 된 거고. 쌀은 그때 보조금을 주는 형태로 약간 유지가 된 거죠. 산업화를 이루지는 못한 거예요. 이 두 개가 지금에 와서는 엄청난 차익을 낳은 거거든요.

◇이대호> 쌀이나 농업 분야는 사실 지금도 똑같죠, 거의.

◆김윤지> 계속 보조금 문제가 중요해졌잖아요. 그래서 이게 산업화를 이뤘다는 게 지금 한 30년 놓고 보니까 이 두 가지가 되게 비슷한 산업이었는데, 큰 차이를 알았다 이렇게 볼 수 있는 거죠.


◇이대호> 물론 그거는 이제 자급이 가능하느냐, 또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느냐라는.

◆김윤지> 그 차이는 크고 더 크고요. 그렇죠

◇이대호> 맞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도 보면 90년대부터는 할리우드 영화가 물밀듯이 들어왔지 않습니까? 그것도 대작들.

◆김윤지> 그렇죠.

◇이대호> 그때가 할리우드 영화들이 가장 수익성도 좋고, 재미있고 이럴 때가, 지금도 여전히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데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할리우드 영화사들이 직접 배급을 하게 되니까 모든 미국 영화들 잘 될 만한 미국 영화들은 할리우드 직배사들이 다 직접 배급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한국 영화사들이 수입해 올 만한 영화가 없는 거죠, 미국 영화가. 그리고 또 뭔가는 대체를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이때 잘 생각해 보시면 80년대 후반, 90년대 초반에 홍콩 영화 많이 보신 기억이 있지 않으세요?

◇이대호> 홍콩 느와르.

◆김윤지> 그때 엄청나게 많은 홍콩 영화들이 들어왔는데. 그때 홍콩 영화의 수준이 좋은 것도 있었지만 우리나라 영화사들이 대체제로 수입을 많이 해 온 거죠. 미국 영화는 직배 때문에 우리가 들여올 게 없으니까, 다 알아서 하니까 대신 수입해 올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찾은 게 홍콩 영화들이었던 거죠.

◇이대호> 우리가 수입해 와서 유통할 수 있는 영화를 찾아보자.

◆김윤지> 그렇죠.

◇이대호> 그래서 그때 눈에 띈 게 홍콩 영화들.

◆김윤지> 당시 수준도 좋았기는 했지만.

◇이대호> 그렇게 되면서 홍콩 영화가 자연스럽게 더 많이 들어왔던 그 내용.

◆김윤지> 그리고 여전히 한국 영화는 아직도 길을 아직 헤매고 있었어요, 90년대 초반까지.

◇이대호>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그래도 좀 우리가 산업 경쟁력을 찾게 됐는데. 사실 산업화, 산업화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문화가 산업이 되려면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되지 않습니까?

◆김윤지> 가장 중요하죠.

◇이대호> 초반에는 그냥 돈이 모이지는 않았을 거고요.

◆김윤지> 그렇죠. 사실 이전에도 왜 영화나 이쪽으로 산업이 되지 않았는가를 보면, 서비스 산업은 향락산업으로 분류가 됐어요. 그러면 은행에서 향락산업은 대출을 해주지 않아요.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제작비를 대출할 수가 없는 거죠. 지금도 물론 힘들기는 한데. 그만큼 국가적으로도 서비스 산업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았어요.

◇이대호> 오락산업도 아니고 향락사업이라고.

◆김윤지> 향락산업이기 때문에. 그래서 정책적으로 뭔가가 바뀌는 게 되게 중요했는데. 이게 이제 바뀌기 시작한 게 1990년대 초반에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가 굉장히 대히트를 합니다, 93년인데요. 이 영화가 크게 히트를 하고 또 우리나라에서도 뭔가 우리에게도 서비스 산업에 대해서 준비가 필요하다, 이런 자각이 생길 때였는데. 1994년 김영삼 대통령 때 과학기술자문회의라는 보고에서 이런 보고가 나왔어요. 쥬라기 공원 1년 흥행 수입이 우리나라 차 150만 대 수출한 것과 효과가 같다. 이게 당시로는 굉장히 엄청나게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는 거였던 게, 우리 차 수출하는 게 얼마나 어렵다는 걸 알고 있잖아요.

◇이대호> 그렇죠.

◆김윤지> 그런데 겨우 영화 한 편이 차 150만 대랑 똑같아 이게 말이 돼? 사람들의 약간 인식의 전환이 필요했을 때 이 문구가 굉장히 효율적으로 쓰이기 시작했고, 김영삼 대통령도 이 문구를 굉장히 여러 번 쓰셨어요. 그래서 이만큼 처음에 자본이 들어오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바뀌는 게 필요할 텐데, 관료들의 마인드나 기업들한테 영화산업, 영상산업이 돈이 될 수 있는 거다라는 약간 자각을 일으킨 게 이때 쥬라기 공원에 대한 문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대호> 그렇게 되면서 우리가 이걸로 그냥 뭐라고 해야 될까, 자본이 유출되는 이런 폐해보다는 우리가 직접 해보자, 투자도 해보자 이렇게 일어났던 거고. 당시에 그래서 벤처 창투사.

◆김윤지> 이쪽으로 자본이 흘러가게 된 과정이 사실 되게 중요한 게, 우리 IMF 위기를 겪었습니다. 1997년에 IMF 위기를 겪고 김대중 대통령 새로 들어오셨죠. 그런데 IMF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기존의 경제 체제에서의 문제가 굉장히 많이 드러났던 거였잖아요. 그러면 이제 새로운 성장산업, 성장 동력을 찾아야만 하는 위기감이었던 거죠. 뭔가 새로운 걸 찾아야 되고. 그런데 또 당시에 정보 사회론, 인터넷 붐 그래서 미국에서 엄청나게 닷컴붐 도 일어나고 있었고. 그래서 이 두 가지가 맞물려서 그때 처음 김대중 대통령이 내놨던 게 코스닥 활성화, 벤처 투자 활성화 이걸 내놓으셨어요. 그래서 많은 자금들이 코스닥 시장에 흘러가기 시작했죠. 그런데 여기에 신의 한 수를 더 둔 게 벤처 투자를 할 때 문화산업에도 투자를 하면 똑같은 혜택을 준다, 제조업 투자와 똑같은 혜택을 준다. 이렇게 되니까 창투사들이 보기에 문화산업, 지금 영화 보니까 좀 재미있게 만들기 시작하는 것 같은데 여기에 투자하는 게 벤처 투자하는 것과 비슷할 것 같은데 하면서 굉장히 많은 자본들이 영화 투자에 몰려들기 시작했고요. 사실 그때부터 투자하신 분들이 지금까지도 투자를 하고 계세요. 그래서우리 영화 볼 때 자막 올라갈 때 보면 무슨 무슨 창투사, 무슨 무슨 기술 투자 이런 것들이 쭉 있잖아요. 이분들이 그때부터 투자를 하시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우리 영화에 투자하고 있는 게 굉장히 중요한 돈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대호> 93년도에 우리가 쥬라기 공원을 보면서 산업적으로, 경제적으로 충격을 받았다면, 사실 98년이었나요? 그때는 타이타닉이었잖아요.

◆김윤지> 그렇죠.

◇이대호> 금 모으기 운동한 거 다 벌어 나갔다고. 그렇게 되면서 이제 우리도 그때부터 투자자에 대한.

◆김윤지> 투자를 할 수 있다. 투자를 해서 영화에서도 돈을 벌 수 있다라는 움직임이 시작되기 시작하는 거죠.

◇이대호> 생각이 많이 전환이 된 거네요. 그로부터 대기업 자본들도 많이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되면서 좀 작은, 영세한 극장들 단성사, 피카디리, 스카라, 국도 허리우드 극장 진짜 추억의 이름들인데. 이게 이른바 멀티플렉스로 바뀌게 되었고, 극장도 이제 체인처럼 바뀌게 되었죠. 이 대기업들이 잡은 이렇게 좀 대체가 된 과정은 좀 어떻게 평가하세요?

◆김윤지> 우리나라 영화 산업에 대기업이 들어왔던 때가 두 번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1980년대 말에 아까 직배 영화 들어올 때 할리우드가 이렇게 들어오려고 하는 건 뭔가 시장이 있다는 증거잖아요. 그때 대기업들이 삼성전자, 대우, LG 이런 비디오데크를 만드는 전자산업 중심의 대기업들이 모두 다 영화 산업에 진입을 했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영화를 재미있는 것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그때 처음으로 대기업들이 와서 시스템을 바꿨죠. 아까 말씀하신 옛날 영화 하시는 분들과는 좀 다른 방식으로 대기업 스타일로 그때 제일 유명했던 영화가 결혼 이야기라는 영화였는데. 이게 삼성전자가 투자를 해서, 삼성영상사업단이 투자를 해서 만든 건데. 약간 대기업의 시스템으로 새로운 영화들을 만들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이제 대기업 자본과 새로 영화를 기획하시는 분들이 생겨서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게 자리를 잡아가려는 찰나에 아까 말씀드린 IMF 위기가 딱 터지면서 이 대기업들이 모조리 철수를 합니다. 여기 큰 돈 안 되는 데고, 지금 구조조정이 너무 필요한 때니까 우리는 철수해서 쫙 철수를 했는데. 그때 철수를 하지 않은 기업들이 CJ, 지금의 CJ 그리고 오리온 당시 오리온 그리고 롯데 이런 기업들은 남았어요. 이 기업들이 왜 남았냐면, 우리는 지금 멀티플렉스 영화관이라는 걸 세울 건데,멀티플렉스 영화관을 세우면 사실 굉장히 극장 환경이 바뀌게 되거든요. 아까 말씀하신 단성사, 스카라 이런 극장들하고는 조금 다르고. 영화도 내가 직접 공급할 수 있는 인프라를 가지게 되니까 좀 더 시장이 버텨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이분들은 버텨요. 그러다 보니까 아까 말씀드린 그 영화 자본들이 유입이 되고, 이렇게 멀티플렉스 중심으로 인프라도 바뀌고. 한국 영화 시장이 굉장히 커지게 되면서 이 세 기업 중심으로 영화 산업이 재편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이 세 기업들 중심의 멀티플렉스 다 지금도 이용하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이 중심으로 영화 산업이 재편되기 시작한 거죠.

◇이대호> 그런데 이제 그때도 위기였는데 또 한 번의 위기가 코로나19 이후였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한 3년, 4년 다 리오프닝도 다 됐고, 일상으로 돌아왔는데. 당시에 그렇게 흥하던 멀티플렉스들은 지금 아직도 적자에서 못 벗어나고, 이제 사람들이 극장에 주말에 할 일 없는데 영화나 보러 갈까? 데이트할 때 뭐 하지? 영화 보러 가지. 이게 이제는 안 나오는 시대가 됐어요, 이 말이.

◆김윤지> 그렇죠. 이게 이제 그동안 또 다른 변화가 한쪽에 생기고 있었는데, OTT라는 게 등장했죠.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이런 디즈니의 이런 OTT들이 생겨나면서 코로나 기간 동안 우리가 극장을 한 2, 3년 못 가고 살았잖아요. 그리고 OTT를 통해서 뭔가를 보는 게 굉장히 익숙해진 거예요. 그리고 영화를 만들거나 드라마를 만드시는 분들도 그쪽에 가서 많이 작업을 하시고 지금 영화관에서 새롭게 영화를 올리려고 보니 이미 만들어진 영화들이 좀 옛날 영화들 코로나 이전에 만들었던 영화들 이런 것들이 많이 남아 있는 상태고 코로나 기간 동안 투자가 잘 진행되지 못해서 지금 새로운 대작 영화들이 좀 못 나오고 있는 상황인데요. 아마 올해부터는 조금 나오기 시작하면 시장이 조금은 바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서 근본적으로 OTT라는 새로운 매체가 생겼다는 게 영화관이 옛날 같은 영화를 누릴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을 갖게 되는 것 같기는 합니다.

◇이대호> 갑자기 우리 청취자분들도 추억 속으로 들어가 계시는 것 같은데 조성빈 님이 홍콩 영화 유행하면서 책받침 스타들도 유행했었죠. 하기야 문방구에 가서 스타들 코팅한 책받침 많이 팔았었는데, 문방구에서.

◆김윤지> 그렇죠.

◇이대호> 맞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옛날 추억에 들어가 계시는데 저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최근으로 다시 거슬러 올라와서 보면 최근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도 그렇고 윤여정 배우 미나리 이걸로 여우주연상도 받았고 헤어질 결심을 만든 박찬욱 감독도 그렇고 브로커의 송강호 배우까지 이제는 이제 케이무비라고 해야 될까요? 이거는 콘텐츠 저력이 상당합니다. 세계 시장에서 아예 퀄리티도 그렇고 사람들의 수준도 다 인정을 받고 있는 것 아닙니까? 그 밑바탕은 좀 뭐라고 분석을 하고 계세요?

◆김윤지> 그 영화랑 드라마가 지금 다 잘 되고는 있는데 사실은 약간 기초가 되는 건 영화이기는 해요. 영화에서 여러 가지 스타일의 영화 장르들을 다 실험해 본 것들이 지금 꽃피우고 있는 게 많은데 저는 이제 이렇게 다양하게 영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에는 자본이 그만큼 뒷받침해줬던 연습의 효과들이 분명히 있다는 거죠. 박찬욱 감독이나 지금 봉준호 감독들 초창기 작품들 보면 굉장히 흥행에 실패하셨어요. 플란다스의 개.

◇이대호> 초창기.
◆김윤지> 그러면 사실 요즘 같은 때 그렇게 첫 영화를 실패했다 그러면 한 10년 쉬셔야 해요. 입봉을 다시 한 번 했다고 하더라도 첫 번째 작품이 실패하게 되면 두 번째 세 번째 작품을 만들기 되게 어렵거든요. 그런데 당시에 영화 한국의 영화 산업이 굉장히 성장하고 있던 때였고 자본도 많이 들어오고 하니까 그런 분들한테도 두 번째, 세 번째 기회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랬던 것들이 지금의 그런 거장들을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자본이 계속 유입되고 계속 새로운 작품들을 지금 보기에는 좀 재미없지 않아 하지만 계속 그런 것들이 연습되는 것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대호> 계속해서 연습 그리고 한 번 더 기회 이런 것들. 그런데 최근에 그 영화 시장 자체만 놓고 보면 아까 이야기해 주셨던 OTT에 계속 밀리고 있어서 그런데 이거를 다시 영화 혹은 드라마 이걸 구분하는 것 자체도 이제는 말이 안 되는 시대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김윤지> 그렇죠. 만드시는 분들이 거의 다 왔다 갔다 다 하시니까요. 지금 오징어 게임 황동혁 감독도 영화 감독 출신이시잖아요.

◇이대호> 그렇죠 이제 아예 그냥 구분을 두지 않는 게.

◆김윤지> 저도 이제 약간 이 구분은 모호해졌다는 생각은 드는데 약간의 제작 스타일의 약간 다른 차이는 좀 있어요. 영화 같은 경우는 영화 투자자들 아까 말씀드린 벤처 투자자들 같은 분들이 제작비를 대고 영화를 만들어서 흥행을 성공을 하면 수익을 셰어하는 이런 형태를 갖게 되잖아요. 지금 OTT 같은 형태는 제작할 때 보면 얼마만에 제작비가 필요하다 하면 그걸 OTT가 다 주고 사요.

◇이대호> 넷플릭스가 50억이든 100억이든 먼저 주죠.

◆김윤지> 먼저 주고 그 대신 이건 내 영화야 하게 되고 그래서 이거를 그냥 전 세계에 유통해서 굉장히 성공하면 그 수익은 넷플릭스가 가져가고 성공이 안 돼도 그냥 깔아놓는 영화들이 필요하니까 그런 형태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국내 OTT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자본력이 큰 해외 OTT랑 경쟁하려면 자본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하고 아까 영화 같은 경우는 여러 투자자들이 붙어서 여러 편을 만드는 구조인데 지금 티빙이나 웨이브 같은 데서 그런 제작비를 다 대고 사주고 제작한다 사실 불가능한 거거든요. 그래서지금 OTT 중심의 제작 시스템에서도 저는 이제 국내의 OTT들이 투자자들과 같이 가는 형태로 바뀌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셰어하는 형태로 가야 좋은 작품들을 계속 OTT에 수급할 수 있고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 OTT들이 해외로 가야 됩니다. 우리나라 상품 만들어서 우리나라에서 유통하는 것만으로는 이 제작비를 감당할 수 없고요. 이 제작비 이상의 수익을 올리려면 해외에 직접 팔아야 되는데 그러려면 국내 OTT들이 해외로 가야죠. 그래서 직접 유통까지 하는 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대호> 사실 우리나라가 OTT와 같은 플랫폼은 사실 좀 약하고.

◆김윤지> 그렇죠.

◇이대호> 하지만 콘텐츠는 강한데 그 콘텐츠도 OTT의 귀속이 되는 구조다 보니 사실 뭐 100억, 200억짜리여도 제작사는 10% 정도 마진만 확정적으로 확보가 되어 있고 나머지는 그냥 그게.

◆김윤지> 유통사가 가져가는 거니까요.

◇이대호> 그렇죠. 넷플릭스 가입자가 얼마나 많이 늘건 간에 그건 다 그쪽 몫이고 그래서 이 구조를 바꿔야 한다. 물론 오징어 게임 정도 되면 속편을 만들 때 뭔가 협상력이 달라질 것이다라는 전망들은 있기는 합니다마는 이걸 구조적으로 바꾸기는 사실은 좀 쉽지 않죠.

◆김윤지> 쉽지는 않은데 그래도 요즘 얘기하는 게 그래서 IP라는 것들을 제작사가 가지면.

◇이대호> 지식재산권, 지적재산권

◆김윤지> 지식재산권 하면 좀 어려워지는데요. 그냥 판권이에요.

◇이대호> 판권.

◆김윤지> 내가 판매할 수 있는 권한, 내가 2차 저작물을 만들 수 있는 권한 예를 들어서 오징어게임에 IP를약에 제작사가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시즌2,시즌3 만드는 게 중요하잖아요. 이거를 다른 OTT하고도 협상도 할 수 있고 가격도 좀 올릴 수 있고 그리고 요즘 큰 OTT들 말고 작은 OTT들도 되게 많거든요, 아시아 지역에. 그런 데 여러 군데 팔 수도 있고 이런 것들이 있어서 IP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는 이 점 때문에 나오는데 여전히 제작사들이 IP를 가지려면 자본력이 있어야 해요. 내가 뒷배가 든든해야 협상을 할 수 있는 건데 돈이 좀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도 투자자들이 투자자들과 같이 가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대호> K-드라마 이야기 좀 더 들어가 보면 K-드라마 그 수출의 효시라고 해야 될지 그게 사랑이 뭐길래.

◆김윤지> 사랑이 뭐길래. 그렇죠.

◇이대호> 사랑이 뭐길래가 1991년에서 92년 드라마였더라고요. 그런데 이게 수출이 된 게 96년, 97년이에요?

◆김윤지> 97년 중국 CCTV에 판매가 됐는데요. 그때 중국에서 중국 전역 CCTV 전국에 방송이 되니까 15%의 시청률이 나와요, 이게.

◇이대호> 중국에서 15%.

◆김윤지> 물론 그때 우리나라에서 60% 시청률을 올린 드라마이기는 했습니다, 이 드라마가.

◇이대호> 그럼요, 사랑이 뭐길래는.

◆김윤지> 그런데 중국에서 15%는 정말 엄청난 현상이었고 그래서 한류라는 단어가 처음 이렇게 쓰이기 시작한 때에 대해서는 약간 모호하기는 한데 사람들이 다 동의하는 건 하여간에 사랑이 뭐길래 이후다 한류라는 단어가 굉장히 자리 잡게 된 것은 사랑이 뭐길래다라는 얘기를 많이 하고 계십니다.

◇이대호> 저는 어제 큰일 날 뻔했습니다. 이 원고 준비하면서 사랑이 뭐길래가 몇 년도 거지 이렇게 찾아보다가 너튜브 영상이 떠서 한번 클릭을 했는데 큰일 날 뻔했습니다. 방송 준비 못하고 계속 볼 뻔했어요.

◆김윤지> 지금 보셔도 재미있죠?

◇이대호> 지금 봐도 재미있어요. 이게 91년 드라마인데 그러니까 당시에 시청률 60% 나왔던 이유가 있는 거고 그런데 이게 수출의 효시였던 거고 그다음으로 가보면 2000년대 초반에 욘사마.

◆김윤지> 욘사마. 겨울연가.

◇이대호> 겨울연가.

◆김윤지> KBS 겨울연가.

◇이대호> KBS 겨울연가가 이거는 이제 일본에서 대박이 났죠.

◆김윤지> 그렇죠. 욘사마 이 겨울 영화가 되게 중요한 것은 사실 이 전까지만 해도 콘텐츠 하나 잘 만들면 여러 가지로 수익을 낼 수 있다. 원소스 멀티 유즈라는 이름으로 이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한 번도 검증이 된 적이 없었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시장이 그렇게 크지 않기 때문에 드라마 하나가 성공을 했다고 해도 부가적인 산업이 뭐가 일어날 게 많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겨울연가 같은 경우에는 일본에서 터지다 보니까 이게 부가 산업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확인이 된 거죠. 남이섬으로 관광도 오고 해외 팬클럽들이 굿즈도 사주고 2차, 3차로 계속 방영이 되고.

◇이대호> 그때 진짜 남이섬은 일본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어요.

◆김윤지> 그게 그때부터 드라마를 수출을 하게 되면 이런 산업적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이 생긴다는 게 확인이 됐다는 점에서 이 겨울 연가가 산업화 과정에서 되게 중요한 효시가 되었습니다.

◇이대호> 그러면서 진짜 이게 수출 그리고 이게 부가적인 수익이 생기네 화장품도 잘 팔리네 관광 수익도 생기네 이러면서 우리를 일깨워줬던 거죠. 이게 돈이 되기 시작했던 것도 사실은 그러면 2000년대 초반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보면 될까요?

◆김윤지> 그런데 여전히 지금 2000년대 초반까지도 크게 돈이 된 적은 없어요. 왜냐하면 이제 그때까지만 해도 드라마들의 제작비는 다 방송사가 댔어요. 그리고 만약에 드라마가 인기를 얻어서 굉장히 시청률이 좋아져도 방송사가 광고 수익을 좀 더 올릴 수 있는 정도지 이게 시장이 굉장히 큰 상황은 아니었거든요. 수출도 되면 다행이고 안 돼도 제작비 산정할 때 수출을 염두하고 만든 건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까 해외에서 초고속 인터넷 깔리면서 불법 유통 많이 됐거든요. 그럴 때도 사실은 수익은 많이 못 얻었지만 덕분에 우리 드라마들이 해외에 확산이 되고 서로 공유하고 이런 문화들이 자리 잡게 되는 거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우리가 저작권을 잘 못 챙겨서 더 많이 확산이 됐네 이런 효과는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대호> 역설적이네요.

◆김윤지> 당시에는 왜 우리 수익을 못 올리냐 우리 이렇게 해외에서 많이 보는데 이거 우리가 좀 단속해야 하는 거 아니냐 했는데 그때 확산이 확 됐던 게 지금 성공에 약간 기반이 됐다는 측면이 있기도 합니다.

◇이대호> 어떻게 보면 남의 손을 타고 다니면서 더 확산이 됐던.

◆김윤지> 그렇죠. 사실 공짜로 그들이 막 보긴 했지만.

◇이대호> 아이러니 하네요. K-팝 이야기해볼까요? K-팝. K-팝도 이게 아이돌도 세대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1세대 아이돌, 3세대 아이돌, 4세대 아이돌. 그런데 이제 한류도 사실 예전에 아까 좋아하셨다고 했던 HOT, 클론, NRG 이런 분들이 중국이나 대만 이런 데서부터 유행을 타기 시작을 했었고, 그다음이 어떻게 되는 거예요. 2세대는.

◆김윤지> 2세대가 이제 아시아를 중심으로 슈퍼주니어 이런 분들이 아시아를 중심으로 확산이 되기 시작하는 거고요. 그다음에 3세대가 BTS 이후. BTS가 큰 성공을 하게 되면서.

◇이대호> BTS가 3세대예요?

◆김윤지> 네, BTS부터 이제 완전히 아시아 이상의 미국, 북미, 유럽 중심으로 된 게 3세대. 그러면 4세대는 뭘까 하는데요. 4세대가 약간 애매한데 BTS 이후. BTS 이후는 어떻게 달라졌느냐면 이제는 K-팝을 그냥 앉아서 다 보세요. 누구 하나 때문에 보는 게 아니라 일단 K-팝이 나왔다고 하면 다 일단 주목이 되고 나오자마자부터 해외 팬덤이 생기는 이게 지금 현재 4세대 그룹들입니다.

◇이대호> 지금은 데뷔하자마자.

◆김윤지> 하자마자 해외에서 일단 초동 판매 몇만 장 10만 장.

◇이대호> 데뷔하지도 않은 걸그룹인데. 보이 그룹도 마찬가지고 미리 약간의 선 공개 혹은 멤버 선발 과정을 만드는데 더 튜브 구독자가 막 100만 명 이렇게 되고.

◆김윤지> 그분들이 4세대입니다.

◇이대호>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4세대. 그 뭐라고 해야 될까요. K-팝이 이제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크게 열풍을 불었던 거 기억을 더듬어보면 물론 BTS도 있습니다만 싸이의 강남 스타일이었죠. 그런데 이거는 전략적으로 노리고 해외에 진출했다가 아니라. 그냥 곡을 발표했는데 너튜브에서 전 세계인들이 이걸 돌려보면서 어떻게 보면 빌보드 핫 차트, 빌보드 핫100 2위까지 올라갔던. 이거를 강제 해외 진출이었다라고 표현하는 분도 계세요.

◆김윤지> 이렇게 기술 환경이 변화가 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보면 약간 뜻하지 않게 벌어진 것이기는 했는데 그 이전에는 기업들이 약간 의욕을 가지고 진출을 했어요. 첫 번째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일본. SM의 보아를 통해서 일본 진출에 성공을 했죠. 우리가 아시아를 성공한 다음에 일본이 가고 그다음으로 가야 할 중요한 시장은 어디일까요?

◇이대호> 미국.

◆김윤지> 미국이죠. 그래서 미국을 계속 문을 두드립니다. SM도 보아를 가지고 미국 시장을 진출하는데 잘 안 돼요. 이게 기업이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게 약간 미국 시장이었던 거예요. 당시만 해도. JYP가 또 미국 시장을 가는데 유명한 원더걸스를 데리고 가는데 정말 밑바닥부터 훑는 미국식 기업 미국식 팝스타들이 하는 형태로 그대로 했거든요. 역시 안 되는 거죠.

◇이대호> 너무 고생했죠.

◆김윤지> 너무 고생했고 아시아 스타들이 그런 식으로 하기에는 여전히 한계가 많다는 게 계속 절감이 되고 있었는데 싸이와 같은 경우는 그런 노력을 사실 안 했어요. 그냥 재미있는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렸는데. 당시에 유튜브와 SNS 같은 것들이 굉장히 발달하면서 공유 확산 이런 것들이 일어날 때였잖아요. 그래서 산다라가 맨 먼저 올렸고. YG에 있던 산다라가 제일 먼저 올렸고 그걸 산다라 팬이 공유를 하고 이걸 또 다른 인플루언서가 한 번 더 공유를 하면서 갑자기 확산되기 시작했거든요. 싸이의 강남 스타일 같은 경우가. 그래서 사실은 이거를 어떻게 봐야 되냐 이거는 기업이 열심히 노력해서 진출한 것도 아니지만 굉장히 자연스럽게 유튜브나 SNS를 통해서 확산이 됐고 그런데 여기서 되게 중요한 건 K-팝은 이제 유튜브나 SNS를 통해서 이렇게 가만히 있어도 확산이 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막 기업들이 나가서 옛날에 방송국 분들이 드라마 팔 때처럼 비디오 테이프도 들고 나가서 판매하는 그런 스타일이 아니라 우리가 잘 만들어서 인터넷에 올리기만 하면 사람들이 찾아보고 공유하고 확산할 수 있게 됐다. 이게 이제 이때부터 팬덤이 만들어내는 시대로 바뀌게 됩니다.

◇이대호> 잠자고 있는데도 돈이 들어오는 거죠.

◆김윤지> 네, 잘만 만들면.

◇이대호> 그래서 소셜 시대가 되면서 소셜 네트워크의 힘도 싸이 그 다음에 BTS도 사실 그렇게.

◆김윤지> BTS가 가장 크게 보여준 거죠.

◇이대호> 그리고 또 소통도 잘 했고. 신승호 님이 앨범 선주문 100만 장이면 CD 하나에 1만 5000원이라고 하면 300억 원인데 요즘 인기 아이돌은 100만 장이 기본으로 가네요. 그렇죠. 그러니까 신곡 나오기 전에.

◆김윤지> 초동, 초동 판매로.

◇이대호> 요즘 100만 장, 150만 장 이렇게 가더라고요. 초동 자체가, 선 주문이. 대단합니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건 이 정도 되면 돈은 얼마나 법니까?

◆김윤지> 돈을 많이 버시죠. 많이 버시는데 이게 기업들의 약간 사이즈가 달라진 것 같아요. 옛날에는 K-팝 기업들 같은 경우에 K-팝 수익을 크게 세 가지로 봐요. 첫 번째는 음원, 음반 수익. 두 번째는 IP 수입이라고 하는데 출연료나 광고료, 굿즈 같은 거 판매하는 수익. 세 번째가 공연 수익이거든요. 그런데 이제 가격으로 보면 사실 갈수록 높아지는 거예요. 음원이 제일 싸고 그다음에 좀 더 팬심이 높아지면 굿즈나 광고도 나오게 되고 거기서 팬심이 아주 깊어져야 10만 원, 20만 원 하는 공연도 가고 이런 것이기 때문에 점점 더 비싼 게 되는데. 사실은 BTS 나오기 이전까지만 해도 공연 수익이 우리나라에서는 별로 큰 사이즈가 아니었는데 BTS 이후로 팬덤 시장이 엄청나게 커지면서 우리가 이제 첫 번째 음원 수익 IP 수익은 기본으로 높아지고 공연 수익이 굉장히 커졌거든요. 지금은 BTS 이후에 나오는 아이돌들은 공연 수익도 다 그 정도는 예상할 수 있을 만큼이 되다 보니까 기업이 과거의 K-팝 기업들과 지금의 K-팝들은 약간의 수익의 기본 단위가 좀 달라졌다고 할 수 있죠.

◇이대호> 신승원 님이 150억 원으로 정정해 주셨네요. 그렇죠. 왠지 100만 장에 1만 5000원이면 300억이 아닌데 순간 읽으면서도 이상했는데 고맙습니다. 또 이렇게 우리 청취자분들이 또 이렇게 바로 잡아주시고 고맙습니다. 얼마 전에 JYP엔터테인먼트 박진영 프로듀서가 자기 기업 시가총액이 3조 원을 넘어서 트위터에 글을 하나 올렸어요. 그런데 본인이 14년 전인가 공언했던 너무 허무맹랑해 보였는데 그걸 달성을 했다 이 얘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한 2주 만에 시가총액은 4조 원을 또 넘었습니다. 기업의 가치도 그렇게 커지는 거고 이게 우리의 이제 자랑스러운 산업 혹은 이제 사업이 되는 건데 이게 어떻게 창출하고 있는 부가적인 효과 혹은 경제적인 효과 규모를 좀 다 따져볼 수 있을까요?

◆김윤지> 이게 굉장히 힘든 작업이기는 한데 과거에는 보통 다른 산업에서는 매출액 또는 수출액 정도 얘기하면 됐어요. 그런데 이 K-팝, K-드라마 같은 경우는 매출액, 수출액 이외에 뭔가 효과가 더 많을 것 같잖아요. 왜냐하면 이런 것들을 알게 되면서 외국인들이 K-팝을 사랑하면 한국 음식도 더 먹고 한국 화장품도 더 쓰고 이런 효과들이 굉장히 크기 때문에 사실 이게 더 클 것 같은데 이걸 좀 어떻게 숫자로 확인할 수 없을까 이런 요구들이 많이 있었고 그래서 제가 그거 관련해서 2012년부터 한류 수출의 소비재 수출 효과라는 걸 좀 연구를 많이 해왔는데요. 최근에 연구했던 것에 따르면 한류 수출을 100억, 100달러 정도 많이 수출을 했을 때 소비재 수출. 특히 한류에 영향을 많이 받는 소비재 수가 예를 들어서 화장품이나 가공식품이나 의류, 휴대폰 같은 간단한 전자제품 같은 것들인데 이런 것들이 수출이 1.8배가 더 된다. 100달러를 한류로 수출하면 이런 소비자들은 180달러 이상 수출이 더 늘어난다는 거거든요. 그러면 단순히 이제 이렇게 자꾸 경제적으로만 얘기하는 게 좋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한류는 수출하는 것 말고도 그 부가적인 것들이 훨씬 더 크다는 게 경제적으로도 확인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대호> 역시 그게 문화의 힘이죠. 그런데 마지막으로 시간이 많지 않은데 걱정이 되는 게 있습니다. 예전에 항상 미국 드라마, 홍콩 느와르, 중국 드라마 이런 것들이 잠깐 유행은 했었는데 지금 K-팝, K-드라마, K-콘텐츠가 열풍이기는 한데 이것도 혹시 유행으로 언젠가 꺾이지는 않을까라는 그냥 앞서가는 걱정이 있거든요. 어떻게 보세요?

◆김윤지> 질문을 한 30년 전에도 계속해 왔습니다. 아이돌이 인기를 얻으면 이게 얼마나 오래 가겠습니까. 우리 꺾이지 않을까요. 드라마가 굉장히 성공을 해도 이게 얼마나 갈까요. 이런 질문들을 30년 전부터 꾸준히 우리가 해왔거든요.

◇이대호> 우리는 걱정의 민족이라.

◆김윤지> 그렇죠. 항상. 항상 위기에 직면해 있고. 그래서 지금 약간 30년 전과는 토대가 좀 달라져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여전히 아까 말씀해 주신 대로 영화 산업 같은 경우는 굉장히 큰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에 항상 우리가 이제 설계되지 않은 성공에서 보였듯이 이 위기가 있을 때마다 뭔가 새로운 대안들을 마련해 왔거든요. 이런 것이 지금도 지금 필요한 때 OTT가 등장하면서 영화 산업도 한번 재편이 될 필요가 있고 드라마 산업도 재편이 될 필요가 있고 K-팝도 잘하고는 있지만 계속 이런 시스템이 유지되기 위해서 좀 더 어떤 점들이 보완이 돼야 될지 계속 다각적으로 노력하는 모습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있고, 지금도 그런 노력들을 계속해야 되는 때인 것 같습니다.

◇이대호> 저변도 계속해서 넓어져야 되겠고 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으면서 경쟁력이 높아지는 걸 테고 또 자본의 힘도 계속해서 들어와야 될 테고요. 또 우리의 관심도 지속돼야 될 테고. 오늘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김윤지 연구위원 통해서 정말 재밌게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김윤지> 감사합니다.

◇이대호>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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