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층시사국] 지망생을 지망합니다

입력 2023.05.24 (23:4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9층시사국 17회 I] 지망생을 지망합니다


■ '꿈을 먹고 사는 산업' K팝, 황금기를 맞다

[프롤로그]

K팝이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고 있습니다.

국내 음원차트 인기 음악이 그대로 해외 차트에 오르는 건 흔한 일.

2023.3.29. KBS 뉴스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악 앨범 10개 중에 무려 8개가 K팝 앨범으로 집계된 건데요.”

그룹 블랙핑크는 월드 투어 두 달 만에 1,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연예기획사 대표들은 단숨에 억만장자가 됐습니다.

"안녕하세요, 뉴진스입니다!"

어린 나이가 무색할 만큼 완벽한 외모와 실력을 자랑하는 K팝 아이돌.

꿈을 먹고 사는 이 산업은 갈수록 활황입니다.

김형규/ RBW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 개발 이사
“최소 3년 정도의 트레이닝 기간이 있다 라고 하면 그래도 실력자로 키울 수 있겠다는 저희가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어릴 때부터, 더 완벽하게 키워지면 이들은 꿈에 더 다가서게 될까요?

■ 아이돌 데뷔에도 정석이 있다?…'지망생을 지망하는' 아이들

서울의 한 댄스 아카데미, 신곡 안무 연습이 한창인 K팝 걸그룹반입니다.
평일 저녁 수업인데도, 수강생들이 가득 찼습니다.

수강생들의 국적도, 나이도 다양하지만 꿈은 하나, 아이돌이 되는 겁니다.

그 사이로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정지아 양이 보입니다.

정지아/ 13살
“어렸을 때부터 그냥 밥 먹을 때도 노래 틀면서 춤추고 그러면서 그냥 계속 그렇게 계속 되니까 자동적으로 그렇게 아이돌의 꿈이 생긴 것 같아요. (롤모델이 있어요, 혹시?) 롤모델은 블랙핑크 로제요. 다른 아이돌보다 목소리가 특이하고, 음색이 예뻐서 노래 부르는데도 사람들이 듣기 좋은 목소리인 것 같아서 좋아요.”

지아의 하루 일과는 어떨까요?

정지아/ 13살
“일단은 7시쯤에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학교에 가면 9시쯤에 수업이 시작해서 2시 반 정도에 수업이 끝나고. 그리고 2시 반부터 3시 반까지 바이올린 수업을 들은 다음에, 3시 반부터 4시 반까지 피아노 학원 가 가지고 피아노 친 다음에 집에 와서, 춤을 춰야 되니까 밥을 잠깐 먹고 여기 학원으로 와서 학원에서 6시 반까지 그냥 춤이랑 노래 이렇게 자유롭게 연습한 다음에 그다음에 보컬 연습 6시 반부터 7시까지. 8시 반에 수업 들어서 10시까지 댄스 수업 들어요.”

본격적인 기획사 연습생이 된 것도 아닌데, 연습생이 되기 위한 학원 스케줄이 연습생 못지않게 빡빡합니다.

하지만 이걸 감당해 내면 기획사에 들어갈 수 있을거란 희망을 갖고있습니다.

정지아/ 13살
“힘든데 연습을 하고 나면 그 전보다 더 좋게 성장할 수 있어서 그거에 대한 만족감이 있는 것 같아요.”

학원 곳곳에는 이곳을 거쳐 간 아이돌들과 유명 기획사 연습생들의 사진이 훈장처럼 걸려 있습니다.

열두 살 딸을 댄스 수업에 들여보낸 엄마는 아이에게서 눈을 뗄 줄 모릅니다.

학부모
“아이가 학교 방과후에서 배우다가 지금 조금 더.. 뭐라고 해야 되지, 좀 적극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해가지고 좀 알아보다가 좀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찾다가 이곳에 오게 됐어요.”

기자
“아이가 춤 쪽으로 소질이 있다고 느끼신 건가요?”

학부모
“제가 봤을 때는 소질이 좀 있는 것 같아가지고요.”

기자
”힘들지 않으세요?“

학부모
”힘들어도 하고 싶어 하는 게 있으니까 그래도 좀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요.”

아이돌 지망생이 선망하는 그곳, 대형 연예기획사입니다.
말 그대로 ‘바늘구멍’을 뚫고 기획사에 입성한 연습생들입니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번 있는 안무 평가 날.
기획사 관계자의 날카로운 피드백이 이어집니다.

김형규/ RBW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 개발 이사
“지금 보니까 (안무를) 카피하는 단계이긴 한데 그래도 뭔가 동선 정리를 좀 더 잘해야 될 것 같아, 그렇지? 훨씬 이것보다 크게 써도 돼, 공간을.”

김형규 이사는 비스트와 포미닛부터 마마무와 여자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K팝 아이돌을 만들었습니다.

K팝의 성공 신화는 바로 기획사의 트레이닝 시스템 덕분이라고 자신합니다.

김형규/ RBW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 개발 이사
“K팝이 지금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각광을 받는 것은 분명히 트레이닝의 힘이 있다고 보여지거든요. 내가 음악적인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정말 효율성 있게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그렇게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그 판단을 나중에 오디션장에서 할 수 있겠죠. 지금은 정말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전세계에서도 벤치마킹하려고 많이 찾아오시고.”

이 기획사에 소속된 9명의 연습생에게 춤과 노래 교육은 기본!
오늘은 작곡 능력을 갖추기 위한 기초 음악 이론을 배우는 날입니다.

기획사 직원/
“숙제 해볼 때는 C스케일부터 총 12개 스케일을 다 스케일을, 메이저 스케일을 그려보는거야 숙제는.”

혹독한 연습 끝에 열아홉살에 이 기획사에 들어온 지연우 군도, 벌써 아홉달 째 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획사에 들어온 뒤 데뷔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연우/ 아이돌 연습생
“일단 지금은 (아이돌이) 안된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고요. 그냥 무조건 돼야지 하는 생각으로 일단은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남현종/ 9층시사국 MC
"저는 아이돌이 태어날 때부터 아이돌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고 또 키워지는 거였네요.

요즘 아이돌의 인기가 정말 높아지면서 그만큼 아이돌 데뷔를 준비하는 연습생 숫자도 많아졌을 것 같습니다. 대략 그 수가 얼마나 될까요?"

김소영/ 9층시사국 취재기자
"개인적으로 연습을 하는 연습생을제외하고 봐도 그 수가 상당한데요, 2020년 기준으로 국내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만 1,800명이 넘고요. 가수 지망생이 가장 많습니다. 여기에 기획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연습생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아집니다."

남현종
"그럼 거의 한 2,000명 정도는 충분히 넘을 것 같은데 사실 이 꿈을 이루고 데뷔하는 인원은 극소수잖아요. 정말 작은 가능성 하나를 보고 준비하는 걸 텐데, 데뷔까지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김소영
"네, 취재 중에 만난 기획사 관계자는 연습생 1명을 키워내는 데에 한 달에 최소 200만 원 정도가 든다고 얘기했습니다. 아이돌 그룹 하나가 데뷔하는 데에는 5억에서 20억 원이 든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기획사의 투자 없이 개인이 이 돈을 들여 가면서 데뷔하기는 쉽지 않겠죠. 이렇다 보니까 ‘데뷔하는 것보다 대형기획사의 연습생이 되는 게 더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연습생 지망생들은 마치 취업을 준비하듯 각 기획사들이 원하는 인재상까지 공부하며 맞춤형으로 오디션을 준비합니다. 유튜브에는 기획사별 공략법을 전수하는 영상도 가득한데요. 기획사 연습생이 되기 위한 일종의 입시 학원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남현종
"그러니까 한마디로 아이돌 기획사에 가기 위한, '지망생을 지망하는'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네요. 아이돌 사교육 시장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말이고요."

김소영
"그렇습니다. 아이돌을 준비하는 지망생들의 나이도 점점 어려지는 추세인데요,
요즘 아이돌 업계에서 말하는 ‘정석’이라는게 있기 때문입니다."

남현종
"정석이요?"

김소영
"초등학교 6학년 때쯤 기획사에 들어가서, 3~4년 동안 연습을 한 다음에 고등학생 때쯤에는 데뷔를 해야 한다는 건데요, 최근에는 국내 대표적인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가 아예 이런 연예 지망생들을 위한 입시 학원을 차려서 이런 분위기를 실감케 하고 있습니다. 현장 찾아가봤습니다."

■ 대치동 한복판에 들어선 SM표 '아이돌 학원'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영어, 수학, 논술 등 다양한 학원들이 즐비합니다.
그런데 올해 초 이곳 한복판에 아이돌 학원이 들어섰습니다.

전통의 아이돌 명가, SM엔터테인먼트가 만든 ‘SM 유니버스’입니다.

‘SM 유니버스’ 홍보 영상
”안녕하세요, 에스파입니다! SM 유니버스에 다녔더라면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서 좋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너무너무 다니고 싶어요!“

3년간 학기제로 운영되는데, 학기당 학비가 최대 천만 원에 달합니다.

‘ SM 유니버스’ 홍보 영상
"노하우를 보유한 에스팀, 학원업계의 대가 종로학원이 함께 창설한 교육 기관입니다. 여러분, 직접 아티스트가 되어 K팝 문화를 이끌어간다면 어떨까요?"

그런데 이 학원의 존재가 알려진 뒤, 뜻밖의 논란이 일었습니다. 바로 이 학원에 입학하려면 정규교육과정을 그만둬야 한다는 겁니다.

학생들이 학교를 마친 후부터 수업이 시작되는 기존 아카데미들과는 달리, SM 유니버스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 수업을 합니다. 학교 수업과 병행이 불가능합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들어왔지만 학생들도 별 미련은 없어 보입니다.

기자
"어떻게 알고 (학원에) 오게 된 거예요?"

SM 유니버스 재학생 (음성변조)
"SNS에서 보고 왔어요."

기자
"학교 그만 두고 들어가야 되잖아요. 어떻게 진행을 하신 거예요?"

SM 유니버스 재학생 (음성변조)
"원래 이쪽 길이 꿈이기도 했고, 그냥 학교에 대해 안 좋은 추억들이 많아서 바로 그만두고 온 것 같아요. (부모님은) 많이 걱정하죠. 그런데 더 자랑스러워 하시는 게 큰 것 같아요."

남현종/ 9층시사국 MC
"아무래도 SM이 차린 학원이다 보니까 학생들도 그렇고 학부모들도 그렇고 더 믿고 들어가고 싶어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제 어떻게 보면 이 시기가 가장 기초 교육도 중요한 나이잖아요. 그런데 학교를 아예 관두고 이 학원에 들어간다는 건 상당히 이르고 위험한 선택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김소영/ 9층시사국 취재기자
"업계에서는 연예 기획사와 입시 학원이 결합하는 이 방식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전문가의 얘기 한번 들어보시죠."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이사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너무 효율성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K팝 산업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육 시스템 안에 가수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 시스템이 같이 결합되는 것, 그리고 아이돌 연습생이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고액의 비용을 내고 그 트레이닝 시스템에 참여하는 부분이 과연 좀 옳은 방식인가.”

김소영
"기획사가 입시 학원과 손 잡고 공교육까지 대신하려 하는 건 문제가 있다라는 지적인데요. 이같은 우려에 대한 학원 측 입장도 들어봤습니다.

먼저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들어와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되는 연령이 매우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고, 기본적인 학력에 문제가 없도록 검정고시 관련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수강료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는주 5일간 전일제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수강료가 높다고 인식될 수 있다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결국 선택은 아이들과 학부모의 몫인데, 너무 상업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업계에 자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이돌 연습생으로 살았던 25살 빈하늘 씨.

빈하늘/ 전 아이돌 연습생
“중학교 1학년 때부터 3년 전 22살 때까지 연습생 생활을 한 8년 정도 했고, 회사는 여섯 군데 정도 거쳐왔습니다.”

2017년, 한 케이블 채널의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팬들도 생겼습니다.

빈하늘/ 전 아이돌 연습생
“정말 악바리로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되게 저 때 많이 울기도 울었고 그만큼 웃기도 웃었어요. 팬분들 때문에 웃기도 웃었는데 힘들었던 기억이 조금 더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기대와 현실은 달랐습니다.

2020. 2. 17 KBS 뉴스
'또 투표 조작'입니다. '아이돌학교'라는 프로그램에서도 투표 조작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결국 데뷔를 포기했고, 그때부터 막막한 미래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빈하늘/ 전 아이돌 연습생
“무조건 데뷔 무조건 시켜주겠다는 조건 하에 제가 그 회사에 들어간 거였기 때문에 그전까지도 저는 아직 어리니까 안되면 또 하면 되지라는 생각에 이제 ‘플랜B’ 같은 건 짜 볼 생각을 못 했거든요. ‘여태 해온게 춤 노래밖에 없는데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라는 생각에 좀 되게 힘든 시간을 좀 겪었었어요.”

아이돌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말을 누군가 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이사
“미성년자 아동 청소년이기 때문에 성인이나 보호자가 여러 가지 가이드라인 혹은 케어를 해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할 수 있도록 돌봐줘야 되는데, 실제적으로 그냥 개인의 의지라는 것만 너무 주목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성격도 다양하고 학생들의 신체적인 조건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 환경에 맞춰서 기획사 관계자와도 소통을 하면서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역할도 함께 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빈 씨는 요즘 같은 길을 걸고 있는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줍니다.

빈하늘/ 전 아이돌 연습생
“‘한번 도전해보세요’라는 말을 해주고 싶지만 생각보다, ‘생각한 것과는 다르다’라는 말도 해주고 싶습니다.”

[에필로그]

많은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바로 아이돌입니다.

박예지/ 13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이돌 꿈을 꾸게 됐어요. 아이돌의 직캠(무대 영상)을 보다가 너무 예쁘고 잘하고, 저도 저 TV에 나오고 싶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돌의 꿈을 꾸게 됐어요.”

예지에겐 구체적인 계획도 있습니다.

박예지/ 13살
“고등학교 가기 전까지는 기획사에 들어가서 연습을 하고 데뷔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선호하는 기획사나 이런 데가 있어요?) 저 아이브가 있는 ‘스타쉽’이나, ‘JYP’를 보고 있어요.”

K팝 산업은 이런 아이들의 꿈에 빚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이 이용되거나 다치지 않게 하는 것,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요.

박예지/ 13살
“앞으로 제 목표는 제 롤모델처럼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다 잘 하는 솔직한 가수가 되고 싶고. 실력을 더 많이 쌓고 노력해서 멋진 아이돌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취재기자 : 김소영
외부촬영 : 설태훈 조선기
영상편집 : 강정희
CG : 정예나
자료조사 : 김보현
조연출 : 정현주 유화영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9층시사국] 지망생을 지망합니다
    • 입력 2023-05-24 23:40:18
    방송 다시보기
[9층시사국 17회 I] 지망생을 지망합니다

■ '꿈을 먹고 사는 산업' K팝, 황금기를 맞다

[프롤로그]

K팝이 그야말로 황금기를 맞고 있습니다.

국내 음원차트 인기 음악이 그대로 해외 차트에 오르는 건 흔한 일.

2023.3.29. KBS 뉴스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음악 앨범 10개 중에 무려 8개가 K팝 앨범으로 집계된 건데요.”

그룹 블랙핑크는 월드 투어 두 달 만에 1,000억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고,
연예기획사 대표들은 단숨에 억만장자가 됐습니다.

"안녕하세요, 뉴진스입니다!"

어린 나이가 무색할 만큼 완벽한 외모와 실력을 자랑하는 K팝 아이돌.

꿈을 먹고 사는 이 산업은 갈수록 활황입니다.

김형규/ RBW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 개발 이사
“최소 3년 정도의 트레이닝 기간이 있다 라고 하면 그래도 실력자로 키울 수 있겠다는 저희가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어릴 때부터, 더 완벽하게 키워지면 이들은 꿈에 더 다가서게 될까요?

■ 아이돌 데뷔에도 정석이 있다?…'지망생을 지망하는' 아이들

서울의 한 댄스 아카데미, 신곡 안무 연습이 한창인 K팝 걸그룹반입니다.
평일 저녁 수업인데도, 수강생들이 가득 찼습니다.

수강생들의 국적도, 나이도 다양하지만 꿈은 하나, 아이돌이 되는 겁니다.

그 사이로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인 정지아 양이 보입니다.

정지아/ 13살
“어렸을 때부터 그냥 밥 먹을 때도 노래 틀면서 춤추고 그러면서 그냥 계속 그렇게 계속 되니까 자동적으로 그렇게 아이돌의 꿈이 생긴 것 같아요. (롤모델이 있어요, 혹시?) 롤모델은 블랙핑크 로제요. 다른 아이돌보다 목소리가 특이하고, 음색이 예뻐서 노래 부르는데도 사람들이 듣기 좋은 목소리인 것 같아서 좋아요.”

지아의 하루 일과는 어떨까요?

정지아/ 13살
“일단은 7시쯤에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하고 학교에 가면 9시쯤에 수업이 시작해서 2시 반 정도에 수업이 끝나고. 그리고 2시 반부터 3시 반까지 바이올린 수업을 들은 다음에, 3시 반부터 4시 반까지 피아노 학원 가 가지고 피아노 친 다음에 집에 와서, 춤을 춰야 되니까 밥을 잠깐 먹고 여기 학원으로 와서 학원에서 6시 반까지 그냥 춤이랑 노래 이렇게 자유롭게 연습한 다음에 그다음에 보컬 연습 6시 반부터 7시까지. 8시 반에 수업 들어서 10시까지 댄스 수업 들어요.”

본격적인 기획사 연습생이 된 것도 아닌데, 연습생이 되기 위한 학원 스케줄이 연습생 못지않게 빡빡합니다.

하지만 이걸 감당해 내면 기획사에 들어갈 수 있을거란 희망을 갖고있습니다.

정지아/ 13살
“힘든데 연습을 하고 나면 그 전보다 더 좋게 성장할 수 있어서 그거에 대한 만족감이 있는 것 같아요.”

학원 곳곳에는 이곳을 거쳐 간 아이돌들과 유명 기획사 연습생들의 사진이 훈장처럼 걸려 있습니다.

열두 살 딸을 댄스 수업에 들여보낸 엄마는 아이에게서 눈을 뗄 줄 모릅니다.

학부모
“아이가 학교 방과후에서 배우다가 지금 조금 더.. 뭐라고 해야 되지, 좀 적극적으로 배우고 싶다고 해가지고 좀 알아보다가 좀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으로 찾다가 이곳에 오게 됐어요.”

기자
“아이가 춤 쪽으로 소질이 있다고 느끼신 건가요?”

학부모
“제가 봤을 때는 소질이 좀 있는 것 같아가지고요.”

기자
”힘들지 않으세요?“

학부모
”힘들어도 하고 싶어 하는 게 있으니까 그래도 좀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요.”

아이돌 지망생이 선망하는 그곳, 대형 연예기획사입니다.
말 그대로 ‘바늘구멍’을 뚫고 기획사에 입성한 연습생들입니다.

오늘은 일주일에 한번 있는 안무 평가 날.
기획사 관계자의 날카로운 피드백이 이어집니다.

김형규/ RBW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 개발 이사
“지금 보니까 (안무를) 카피하는 단계이긴 한데 그래도 뭔가 동선 정리를 좀 더 잘해야 될 것 같아, 그렇지? 훨씬 이것보다 크게 써도 돼, 공간을.”

김형규 이사는 비스트와 포미닛부터 마마무와 여자아이들에 이르기까지, 내로라하는 K팝 아이돌을 만들었습니다.

K팝의 성공 신화는 바로 기획사의 트레이닝 시스템 덕분이라고 자신합니다.

김형규/ RBW엔터테인먼트 아티스트 개발 이사
“K팝이 지금 전세계적으로 이렇게 각광을 받는 것은 분명히 트레이닝의 힘이 있다고 보여지거든요. 내가 음악적인 자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정말 효율성 있게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그렇게 꾸준히 해나가다 보면 그 판단을 나중에 오디션장에서 할 수 있겠죠. 지금은 정말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시대이기 때문에 이 부분을 전세계에서도 벤치마킹하려고 많이 찾아오시고.”

이 기획사에 소속된 9명의 연습생에게 춤과 노래 교육은 기본!
오늘은 작곡 능력을 갖추기 위한 기초 음악 이론을 배우는 날입니다.

기획사 직원/
“숙제 해볼 때는 C스케일부터 총 12개 스케일을 다 스케일을, 메이저 스케일을 그려보는거야 숙제는.”

혹독한 연습 끝에 열아홉살에 이 기획사에 들어온 지연우 군도, 벌써 아홉달 째 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기획사에 들어온 뒤 데뷔까지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지연우/ 아이돌 연습생
“일단 지금은 (아이돌이) 안된다는 생각을 안 하고 있고요. 그냥 무조건 돼야지 하는 생각으로 일단은 지금 상황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남현종/ 9층시사국 MC
"저는 아이돌이 태어날 때부터 아이돌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타고나는 게 아니라 만들어지고 또 키워지는 거였네요.

요즘 아이돌의 인기가 정말 높아지면서 그만큼 아이돌 데뷔를 준비하는 연습생 숫자도 많아졌을 것 같습니다. 대략 그 수가 얼마나 될까요?"

김소영/ 9층시사국 취재기자
"개인적으로 연습을 하는 연습생을제외하고 봐도 그 수가 상당한데요, 2020년 기준으로 국내 연예기획사에 소속된 연습생만 1,800명이 넘고요. 가수 지망생이 가장 많습니다. 여기에 기획사에 들어가기 위해서 준비하는 연습생까지 합치면 그 수는 더 많아집니다."

남현종
"그럼 거의 한 2,000명 정도는 충분히 넘을 것 같은데 사실 이 꿈을 이루고 데뷔하는 인원은 극소수잖아요. 정말 작은 가능성 하나를 보고 준비하는 걸 텐데, 데뷔까지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도 만만치 않겠습니다. 어떻습니까?"

김소영
"네, 취재 중에 만난 기획사 관계자는 연습생 1명을 키워내는 데에 한 달에 최소 200만 원 정도가 든다고 얘기했습니다. 아이돌 그룹 하나가 데뷔하는 데에는 5억에서 20억 원이 든다는 얘기도 있는데요. 기획사의 투자 없이 개인이 이 돈을 들여 가면서 데뷔하기는 쉽지 않겠죠. 이렇다 보니까 ‘데뷔하는 것보다 대형기획사의 연습생이 되는 게 더 어렵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연습생 지망생들은 마치 취업을 준비하듯 각 기획사들이 원하는 인재상까지 공부하며 맞춤형으로 오디션을 준비합니다. 유튜브에는 기획사별 공략법을 전수하는 영상도 가득한데요. 기획사 연습생이 되기 위한 일종의 입시 학원도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남현종
"그러니까 한마디로 아이돌 기획사에 가기 위한, '지망생을 지망하는' 숫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네요. 아이돌 사교육 시장이 그만큼 커지고 있다는 말이고요."

김소영
"그렇습니다. 아이돌을 준비하는 지망생들의 나이도 점점 어려지는 추세인데요,
요즘 아이돌 업계에서 말하는 ‘정석’이라는게 있기 때문입니다."

남현종
"정석이요?"

김소영
"초등학교 6학년 때쯤 기획사에 들어가서, 3~4년 동안 연습을 한 다음에 고등학생 때쯤에는 데뷔를 해야 한다는 건데요, 최근에는 국내 대표적인 연예기획사 SM엔터테인먼트가 아예 이런 연예 지망생들을 위한 입시 학원을 차려서 이런 분위기를 실감케 하고 있습니다. 현장 찾아가봤습니다."

■ 대치동 한복판에 들어선 SM표 '아이돌 학원'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대치동.
영어, 수학, 논술 등 다양한 학원들이 즐비합니다.
그런데 올해 초 이곳 한복판에 아이돌 학원이 들어섰습니다.

전통의 아이돌 명가, SM엔터테인먼트가 만든 ‘SM 유니버스’입니다.

‘SM 유니버스’ 홍보 영상
”안녕하세요, 에스파입니다! SM 유니버스에 다녔더라면 다양한 분야의 친구들을 사귈 수 있어서 좋았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너무너무 다니고 싶어요!“

3년간 학기제로 운영되는데, 학기당 학비가 최대 천만 원에 달합니다.

‘ SM 유니버스’ 홍보 영상
"노하우를 보유한 에스팀, 학원업계의 대가 종로학원이 함께 창설한 교육 기관입니다. 여러분, 직접 아티스트가 되어 K팝 문화를 이끌어간다면 어떨까요?"

그런데 이 학원의 존재가 알려진 뒤, 뜻밖의 논란이 일었습니다. 바로 이 학원에 입학하려면 정규교육과정을 그만둬야 한다는 겁니다.

학생들이 학교를 마친 후부터 수업이 시작되는 기존 아카데미들과는 달리, SM 유니버스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일 수업을 합니다. 학교 수업과 병행이 불가능합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들어왔지만 학생들도 별 미련은 없어 보입니다.

기자
"어떻게 알고 (학원에) 오게 된 거예요?"

SM 유니버스 재학생 (음성변조)
"SNS에서 보고 왔어요."

기자
"학교 그만 두고 들어가야 되잖아요. 어떻게 진행을 하신 거예요?"

SM 유니버스 재학생 (음성변조)
"원래 이쪽 길이 꿈이기도 했고, 그냥 학교에 대해 안 좋은 추억들이 많아서 바로 그만두고 온 것 같아요. (부모님은) 많이 걱정하죠. 그런데 더 자랑스러워 하시는 게 큰 것 같아요."

남현종/ 9층시사국 MC
"아무래도 SM이 차린 학원이다 보니까 학생들도 그렇고 학부모들도 그렇고 더 믿고 들어가고 싶어할 것 같습니다. 다만 이제 어떻게 보면 이 시기가 가장 기초 교육도 중요한 나이잖아요. 그런데 학교를 아예 관두고 이 학원에 들어간다는 건 상당히 이르고 위험한 선택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김소영/ 9층시사국 취재기자
"업계에서는 연예 기획사와 입시 학원이 결합하는 이 방식이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데요. 전문가의 얘기 한번 들어보시죠."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이사
“대형 엔터테인먼트 회사가 너무 효율성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K팝 산업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교육 시스템 안에 가수가 되기 위한 트레이닝 시스템이 같이 결합되는 것, 그리고 아이돌 연습생이 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고액의 비용을 내고 그 트레이닝 시스템에 참여하는 부분이 과연 좀 옳은 방식인가.”

김소영
"기획사가 입시 학원과 손 잡고 공교육까지 대신하려 하는 건 문제가 있다라는 지적인데요. 이같은 우려에 대한 학원 측 입장도 들어봤습니다.

먼저 어린 나이에 학교를 그만두고 들어와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아티스트로 활동하게 되는 연령이 매우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어릴 때부터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고, 기본적인 학력에 문제가 없도록 검정고시 관련 수업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수강료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서는주 5일간 전일제로 수업을 하기 때문에 수강료가 높다고 인식될 수 있다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결국 선택은 아이들과 학부모의 몫인데, 너무 상업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않도록 업계에 자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아이돌 연습생으로 살았던 25살 빈하늘 씨.

빈하늘/ 전 아이돌 연습생
“중학교 1학년 때부터 3년 전 22살 때까지 연습생 생활을 한 8년 정도 했고, 회사는 여섯 군데 정도 거쳐왔습니다.”

2017년, 한 케이블 채널의 연습생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팬들도 생겼습니다.

빈하늘/ 전 아이돌 연습생
“정말 악바리로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되게 저 때 많이 울기도 울었고 그만큼 웃기도 웃었어요. 팬분들 때문에 웃기도 웃었는데 힘들었던 기억이 조금 더 많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기대와 현실은 달랐습니다.

2020. 2. 17 KBS 뉴스
'또 투표 조작'입니다. '아이돌학교'라는 프로그램에서도 투표 조작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결국 데뷔를 포기했고, 그때부터 막막한 미래와 마주해야 했습니다.

빈하늘/ 전 아이돌 연습생
“무조건 데뷔 무조건 시켜주겠다는 조건 하에 제가 그 회사에 들어간 거였기 때문에 그전까지도 저는 아직 어리니까 안되면 또 하면 되지라는 생각에 이제 ‘플랜B’ 같은 건 짜 볼 생각을 못 했거든요. ‘여태 해온게 춤 노래밖에 없는데 이제 와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라는 생각에 좀 되게 힘든 시간을 좀 겪었었어요.”

아이돌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라는 말을 누군가 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있었습니다.

이종임/ 문화사회연구소 이사
“미성년자 아동 청소년이기 때문에 성인이나 보호자가 여러 가지 가이드라인 혹은 케어를 해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을 할 수 있도록 돌봐줘야 되는데, 실제적으로 그냥 개인의 의지라는 것만 너무 주목을 하기 때문에. 학생들의 성격도 다양하고 학생들의 신체적인 조건도 다양하기 때문에 그런 환경에 맞춰서 기획사 관계자와도 소통을 하면서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역할도 함께 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빈 씨는 요즘 같은 길을 걸고 있는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해줍니다.

빈하늘/ 전 아이돌 연습생
“‘한번 도전해보세요’라는 말을 해주고 싶지만 생각보다, ‘생각한 것과는 다르다’라는 말도 해주고 싶습니다.”

[에필로그]

많은 초등학생들의 장래희망, 바로 아이돌입니다.

박예지/ 13살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아이돌 꿈을 꾸게 됐어요. 아이돌의 직캠(무대 영상)을 보다가 너무 예쁘고 잘하고, 저도 저 TV에 나오고 싶다, 무대에 서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돌의 꿈을 꾸게 됐어요.”

예지에겐 구체적인 계획도 있습니다.

박예지/ 13살
“고등학교 가기 전까지는 기획사에 들어가서 연습을 하고 데뷔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선호하는 기획사나 이런 데가 있어요?) 저 아이브가 있는 ‘스타쉽’이나, ‘JYP’를 보고 있어요.”

K팝 산업은 이런 아이들의 꿈에 빚지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순수한 열정이 이용되거나 다치지 않게 하는 것,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요.

박예지/ 13살
“앞으로 제 목표는 제 롤모델처럼 춤이면 춤, 노래면 노래, 다 잘 하는 솔직한 가수가 되고 싶고. 실력을 더 많이 쌓고 노력해서 멋진 아이돌 가수가 되고 싶습니다!”

취재기자 : 김소영
외부촬영 : 설태훈 조선기
영상편집 : 강정희
CG : 정예나
자료조사 : 김보현
조연출 : 정현주 유화영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