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는 왜 콕 집어 ‘F-16’을 원했나?
입력 2023.05.27 (10:00)
수정 2023.05.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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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오랫동안 F-16 전투기를 공급해 달라고 미국과 서방에 요청해 왔습니다. 일본에서 열린 G7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일단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의 F-16 전투기 조종 훈련을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F-16 전투기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될 가능성은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현지 시간 25일 네델란드와 덴마크가 유럽국가들이 결성한 전투기 지원 동맹을 대표해서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의 F-16 전투기 조종 훈련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F-16 안 된다'던 미국, 왜 입장 바꿨나?
사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거듭된 요구에도 F-16 전투기 제공에 난색을 표해 왔습니다. AP통신은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 건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F-16 조종 훈련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부터라고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지난 4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공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국가들 간 협의체(UDCG)에서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에 대한 F-16 훈련을 우리가 하겠으니, 미국이 승인해주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가 먼저 나왔고, 이걸 바탕으로 미국이 조종 훈련 승인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걸 바탕으로 오스틴 국방장관은 G7 정상회의 이전에 동맹국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의 훈련을 승인하고 F-16을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안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AP통신은 전했습니다. 5월 8일에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런던으로 날아가 영국과 프랑스, 독일 측과 만나 어떻게 조종사 훈련을 제공할지, 또 어느 나라들이 우크라이나에 F-16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이 논의를 바탕으로 당장은 전투기를 보내는 문제가 아닌 '조종 훈련'에 방점을 찍는 것으로 합의했다는 게 막후 상황을 AP통신에 전한 미 당국자의 설명입니다.
■ F-16은 '게임체인저' 인가?
우크라이나는 지금 전쟁의 판도를 바꿀 '대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때맞춰 F-16 전투기 조종 훈련 승인이 발표된 건데, 그렇다면 F-16은 전쟁의 양상을 우크라이나에 확실히 유리하게 바꿔 놓을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이 소식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F-16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장기적 관점으로 봤을 때 우크라이나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전황을 극적으로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 군 수뇌부는 지금 우크라이나에 가장 필요한 건 우크라니아 도시 곳곳을 러시아의 미사일과 전투기의 공격로부터 막아 낼 '대공 방어 시스템'이라는 입장입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F-16이 마법의 무기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F-16은 4세대 전투기에 속하는데, 러시아는 이 4세대 전투기를 이미 1,000대나 보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러시아와 공중전을 하려면 "상당한 규모의 4세대와 5세대 전투기가 필요하다"면서, "가장 현명한 방법은 영공에서 러시아의 침입을 막기 위해 통합 방공망을 제공하는 것" 이라고 마크 밀리 합참 의장은 전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F-16이 필요한 이유
확실한 건 우크라이나가 최전선 지역에서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한 채 영공 방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우크라이나의 올렉시 레즈니코우 국방장관을 직접 만난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리스트 데이비드 프렌치는 F-16 전투기가 영공 방어뿐 아니라 러시아 지상군을 공격하는 데 쓰일 수 있고, 대공미사일 사거리 밖에서 공격하는 러시아 전투기에 맞서는 데 꼭 필요하다는 것이 우크라이나 측의 판단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왜 콕 집어 F-16일까요? 러시아는 F-16보다 성능에서 앞서는 첨단 전투기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맞서려면 더 좋은 성능의 전투기가 필요하다고 할 법도 한데, 우크라이나는 'F-16'을 지원 해달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에게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는 F-16 전투기 200대 정도를 지원받기를 바라는데, 최신 F-16 전투기가 아니라 유럽에서 쓰고 있는 이른바 연식이 좀 된 기종을 원합니다. 레즈니코우 국방장관은 앞서 언급한 NYT와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F-16은 미국과 동맹국들에 수천 대가 배치돼 있고, 이들을 5세대 전투기로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따라서 상당수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더라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방위 태세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올렉시 레즈니코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NYT 인터뷰 발췌- |
군 항공 관련 저자이자 전 미 공군 조종사인 로버트 홉킨스도 CNN과의 인터뷰에서 "서방 국가들에는 즉시 쓸 수 있고, 잘 확립된 물류를 제공하는 F-16 공급 여력이 있다"면서, " F-16보다 더 능력 있는 전투기들도 있지만, 물량이 적어서 우크라이나에 보낼 수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대량 생산돼 유럽 지역에 많이 배치돼 있다는 것은 전투기를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한 부품 공급도 그만큼 원활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F-16과 관련해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미국이 우려하는 '확전 가능성'입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 조종 훈련 승인 방침을 밝힌 후 G7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F-16을 러시아 영토로 이동하는데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F-16을 공급 받더라도 확전을 촉발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한겁니다. 우크라이나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논의 되고 있는 수준의 물량은 러시아에 심각한 위협이 아니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자체에만 위협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를 전했습니다. 어찌됐든 더 많은 전투기가 필요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도 최전선에서 쓸 '방어용' 전투기로 F-16을 요구하는 것이 확전을 우려하는 미국과 서방을 설득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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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5-27 10: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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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오랫동안 F-16 전투기를 공급해 달라고 미국과 서방에 요청해 왔습니다. 일본에서 열린 G7정상회의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일단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의 F-16 전투기 조종 훈련을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F-16 전투기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될 가능성은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현지 시간 25일 네델란드와 덴마크가 유럽국가들이 결성한 전투기 지원 동맹을 대표해서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의 F-16 전투기 조종 훈련을 이끌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 'F-16 안 된다'던 미국, 왜 입장 바꿨나?
사실, 바이든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거듭된 요구에도 F-16 전투기 제공에 난색을 표해 왔습니다. AP통신은 기류가 바뀌기 시작한 건 유럽 국가들이 적극적으로 F-16 조종 훈련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피력하면서부터라고 당국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지난 4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공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된 국가들 간 협의체(UDCG)에서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에 대한 F-16 훈련을 우리가 하겠으니, 미국이 승인해주는 게 필요하다"는 얘기가 먼저 나왔고, 이걸 바탕으로 미국이 조종 훈련 승인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이걸 바탕으로 오스틴 국방장관은 G7 정상회의 이전에 동맹국들과 함께 우크라이나 조종사들의 훈련을 승인하고 F-16을 우크라이나로 보내는 안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고 AP통신은 전했습니다. 5월 8일에는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이 런던으로 날아가 영국과 프랑스, 독일 측과 만나 어떻게 조종사 훈련을 제공할지, 또 어느 나라들이 우크라이나에 F-16을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에 들어갔습니다. 이 논의를 바탕으로 당장은 전투기를 보내는 문제가 아닌 '조종 훈련'에 방점을 찍는 것으로 합의했다는 게 막후 상황을 AP통신에 전한 미 당국자의 설명입니다.
■ F-16은 '게임체인저' 인가?
우크라이나는 지금 전쟁의 판도를 바꿀 '대반격'의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때맞춰 F-16 전투기 조종 훈련 승인이 발표된 건데, 그렇다면 F-16은 전쟁의 양상을 우크라이나에 확실히 유리하게 바꿔 놓을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게 아니라면, 이 소식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걸까요? 전문가들은 F-16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장기적 관점으로 봤을 때 우크라이나에 도움이 되는 것은 맞지만, 전황을 극적으로 바꿀 정도는 아니라는 겁니다.
미국 군 수뇌부는 지금 우크라이나에 가장 필요한 건 우크라니아 도시 곳곳을 러시아의 미사일과 전투기의 공격로부터 막아 낼 '대공 방어 시스템'이라는 입장입니다.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F-16이 마법의 무기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F-16은 4세대 전투기에 속하는데, 러시아는 이 4세대 전투기를 이미 1,000대나 보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런 러시아와 공중전을 하려면 "상당한 규모의 4세대와 5세대 전투기가 필요하다"면서, "가장 현명한 방법은 영공에서 러시아의 침입을 막기 위해 통합 방공망을 제공하는 것" 이라고 마크 밀리 합참 의장은 전했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F-16이 필요한 이유
확실한 건 우크라이나가 최전선 지역에서 제공권을 장악하지 못한 채 영공 방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겁니다. 우크라이나의 올렉시 레즈니코우 국방장관을 직접 만난 뉴욕타임스(NYT)의 칼럼리스트 데이비드 프렌치는 F-16 전투기가 영공 방어뿐 아니라 러시아 지상군을 공격하는 데 쓰일 수 있고, 대공미사일 사거리 밖에서 공격하는 러시아 전투기에 맞서는 데 꼭 필요하다는 것이 우크라이나 측의 판단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런데, 왜 콕 집어 F-16일까요? 러시아는 F-16보다 성능에서 앞서는 첨단 전투기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맞서려면 더 좋은 성능의 전투기가 필요하다고 할 법도 한데, 우크라이나는 'F-16'을 지원 해달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에게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입니다. 우크라이나는 F-16 전투기 200대 정도를 지원받기를 바라는데, 최신 F-16 전투기가 아니라 유럽에서 쓰고 있는 이른바 연식이 좀 된 기종을 원합니다. 레즈니코우 국방장관은 앞서 언급한 NYT와의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F-16은 미국과 동맹국들에 수천 대가 배치돼 있고, 이들을 5세대 전투기로 교체하는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따라서 상당수를 우크라이나에 지원하더라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방위 태세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올렉시 레즈니코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 NYT 인터뷰 발췌- |
군 항공 관련 저자이자 전 미 공군 조종사인 로버트 홉킨스도 CNN과의 인터뷰에서 "서방 국가들에는 즉시 쓸 수 있고, 잘 확립된 물류를 제공하는 F-16 공급 여력이 있다"면서, " F-16보다 더 능력 있는 전투기들도 있지만, 물량이 적어서 우크라이나에 보낼 수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대량 생산돼 유럽 지역에 많이 배치돼 있다는 것은 전투기를 유지하고 보수하기 위한 부품 공급도 그만큼 원활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F-16과 관련해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미국이 우려하는 '확전 가능성'입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전투기 조종 훈련 승인 방침을 밝힌 후 G7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우크라이나가 F-16을 러시아 영토로 이동하는데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가 F-16을 공급 받더라도 확전을 촉발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한겁니다. 우크라이나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논의 되고 있는 수준의 물량은 러시아에 심각한 위협이 아니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자체에만 위협적인 수준"이라는 평가를 전했습니다. 어찌됐든 더 많은 전투기가 필요한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도 최전선에서 쓸 '방어용' 전투기로 F-16을 요구하는 것이 확전을 우려하는 미국과 서방을 설득할 수 있는 전략이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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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경 기자 truth2004@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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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우크라이나 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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