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인사이트] 계속되는 교제 폭력·살인…보호할 ‘법’이 없다

입력 2023.05.29 (18:32) 수정 2023.05.29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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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26일 사귀던 남성의 교제폭력을 신고한 여성이 경찰 조사 직후 전 남자친구 손에 숨졌습니다.

이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서울 한복판에서 여성이 전 연인에게 납치됐고, 경기도 안산에선 30대 남성이 동거녀를 살해하는 등 비슷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잇따르는 교제폭력, 교제 살인 사건과 관련해 사회부 원동희 기자와 좀 더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이었죠.

서울 시흥동 상가 주차장에서 발생한 교제 살인 사건 피의자는 구속된 거죠?

[기자]

네, 어젯밤 9시쯤 구속영장이 발부됐습니다.

이 사건 피의자인 30대 김 모 씨는 보복살인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어제 구속영장 심사 당시 모습 먼저 보시겠습니다.

[김OO/보복살인 피의자 : "(범행 계획한 겁니까?) 그러고 싶진 않았습니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한테 미안한 마음은 안 드세요?) 평생 죄 짓고(속죄하고) 살겠습니다."]

김 씨는 연인 관계였던 피해자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후 다시 만나자고 강요해왔고, 이 과정에서 폭행과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둘을 차례로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귀가한 김 씨가 피해자 조사가 끝나길 기다려 흉기로 살해한 사건입니다.

[앵커]

교제폭력을 신고해서 조사를 받고 나오자마자 살해를 당한 사건이라서 충격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이 사건 말고도 며칠 새 교제폭력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졌죠?

[기자]

그제 저녁엔 서울 합정역 부근에서 30대 남성이 헤어진 여자친구를 강제로 차에 태우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시민의 신고로 경찰이 다행히 30분 만에 검거했는데, 남성은 만취 상태였고, 과거에도 교제폭력, 스토킹 혐의로 조사받은 전력이 있다고 합니다.

어제 경기도 안산시에서는 30대 남성이 동거하는 여성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앵커]

교제폭력은 스토킹이나 가정폭력 사건과 비슷한 성격의 범죄여서 피해자 보호가 중요할텐데요.

구속된 김 씨 사건의 경우 경찰 대응은 적절했습니까?

[기자]

아무래도 경찰 조사 직후 살인 범죄가 발생한 만큼 경찰 대응이 우선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경찰은 일단 매뉴얼 대로 진행했고 당장 안전조치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경찰은 보복 범죄 위험성이 있을 때 먼저 피해자를 상대로 28개 문항을 묻는 점검표를 만들어, 위험도 등급을 매깁니다.

위험도는 '없음'부터 '매우 높음'까지 5단계로 분류되는데, 위험도 '높음' 이상이면 구속이나 체포 등과 함께 스마트위치 지급 등 안전조치가 이뤄집니다.

시흥동 사건에서 경찰은 김 씨의 교제폭력 위험도가 '낮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점검표는 지난해 '신당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스토킹이나 교제폭력 문항을 보완한 건데 지난주부터 시행됐다고 합니다.

[앵커]

점검표에서 위험성이 낮다고 나오면 안전조치를 할 수가 없는 건가요?

[기자]

그런 경우에도 피해자 의사를 물어서 스마트 워치나 임시 거처를 제공할 수는 있는데요.

경찰이 물어봤지만 피해자가 거부해 귀가시켰단 겁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아서 조치를 못 했다는 설명, 어딘가 익숙한 해명입니다.

지난해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때도 경찰은 스마트워치 지급과 접근 금지 등을 원치 않았다고 설명했었습니다.

교제폭력이나 스토킹 범죄에선, 가해자와의 과거 관계 때문에 피해자가 보호 조치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기가 힘들 수 있는데요.

경찰이 더 적극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앵커]

또 한가지 궁금한 게...

피해자 보호 말고 가해자를 분리시키는 건 어려웠던 건가요?

[기자]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경우엔 가해자를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임시조치인 '접근 금지' 조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교제폭력은 해당이 안 됩니다.

경찰은 시흥동 사건은 가정폭력도, 스토킹도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는 이제부터 찬찬히 짚어봐야 할 문제지만, 교제 폭력을 규율하는 법률이 없는 게 더 시급한 문제란 지적도 있습니다.

가정폭력과 스토킹의 경우엔 따로 처벌법이 있어서 접근금지 등 보호 방법과 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데요.

교제폭력은 별도의 처벌 근거가 없어서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스토킹 처벌법을 준용하고 있습니다.

교제폭력의 특수성을 감안해 별도의 법률 제정 논의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사회부 원동희 기자였습니다.

영상편집:여동용/그래픽:이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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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인사이트] 계속되는 교제 폭력·살인…보호할 ‘법’이 없다
    • 입력 2023-05-29 18:32:32
    • 수정2023-05-29 18: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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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26일 사귀던 남성의 교제폭력을 신고한 여성이 경찰 조사 직후 전 남자친구 손에 숨졌습니다.

이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서울 한복판에서 여성이 전 연인에게 납치됐고, 경기도 안산에선 30대 남성이 동거녀를 살해하는 등 비슷한 사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잇따르는 교제폭력, 교제 살인 사건과 관련해 사회부 원동희 기자와 좀 더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지난주 금요일이었죠.

서울 시흥동 상가 주차장에서 발생한 교제 살인 사건 피의자는 구속된 거죠?

[기자]

네, 어젯밤 9시쯤 구속영장이 발부됐습니다.

이 사건 피의자인 30대 김 모 씨는 보복살인 혐의로 구속됐습니다.

어제 구속영장 심사 당시 모습 먼저 보시겠습니다.

[김OO/보복살인 피의자 : "(범행 계획한 겁니까?) 그러고 싶진 않았습니다.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들한테 미안한 마음은 안 드세요?) 평생 죄 짓고(속죄하고) 살겠습니다."]

김 씨는 연인 관계였던 피해자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후 다시 만나자고 강요해왔고, 이 과정에서 폭행과 말다툼이 벌어졌습니다.

이때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했고 경찰은 둘을 차례로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먼저 귀가한 김 씨가 피해자 조사가 끝나길 기다려 흉기로 살해한 사건입니다.

[앵커]

교제폭력을 신고해서 조사를 받고 나오자마자 살해를 당한 사건이라서 충격이 더 컸던 것 같아요.

이 사건 말고도 며칠 새 교제폭력 사건들이 연달아 벌어졌죠?

[기자]

그제 저녁엔 서울 합정역 부근에서 30대 남성이 헤어진 여자친구를 강제로 차에 태우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시민의 신고로 경찰이 다행히 30분 만에 검거했는데, 남성은 만취 상태였고, 과거에도 교제폭력, 스토킹 혐의로 조사받은 전력이 있다고 합니다.

어제 경기도 안산시에서는 30대 남성이 동거하는 여성을 살해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앵커]

교제폭력은 스토킹이나 가정폭력 사건과 비슷한 성격의 범죄여서 피해자 보호가 중요할텐데요.

구속된 김 씨 사건의 경우 경찰 대응은 적절했습니까?

[기자]

아무래도 경찰 조사 직후 살인 범죄가 발생한 만큼 경찰 대응이 우선 도마 위에 올랐는데요.

경찰은 일단 매뉴얼 대로 진행했고 당장 안전조치를 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경찰은 보복 범죄 위험성이 있을 때 먼저 피해자를 상대로 28개 문항을 묻는 점검표를 만들어, 위험도 등급을 매깁니다.

위험도는 '없음'부터 '매우 높음'까지 5단계로 분류되는데, 위험도 '높음' 이상이면 구속이나 체포 등과 함께 스마트위치 지급 등 안전조치가 이뤄집니다.

시흥동 사건에서 경찰은 김 씨의 교제폭력 위험도가 '낮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점검표는 지난해 '신당역 살인 사건'을 계기로 스토킹이나 교제폭력 문항을 보완한 건데 지난주부터 시행됐다고 합니다.

[앵커]

점검표에서 위험성이 낮다고 나오면 안전조치를 할 수가 없는 건가요?

[기자]

그런 경우에도 피해자 의사를 물어서 스마트 워치나 임시 거처를 제공할 수는 있는데요.

경찰이 물어봤지만 피해자가 거부해 귀가시켰단 겁니다.

피해자가 원하지 않아서 조치를 못 했다는 설명, 어딘가 익숙한 해명입니다.

지난해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때도 경찰은 스마트워치 지급과 접근 금지 등을 원치 않았다고 설명했었습니다.

교제폭력이나 스토킹 범죄에선, 가해자와의 과거 관계 때문에 피해자가 보호 조치를 적극적으로 요구하기가 힘들 수 있는데요.

경찰이 더 적극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앵커]

또 한가지 궁금한 게...

피해자 보호 말고 가해자를 분리시키는 건 어려웠던 건가요?

[기자]

'가정폭력'이나 '스토킹' 경우엔 가해자를 피해자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임시조치인 '접근 금지' 조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교제폭력은 해당이 안 됩니다.

경찰은 시흥동 사건은 가정폭력도, 스토킹도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경찰의 대응이 적절했는지는 이제부터 찬찬히 짚어봐야 할 문제지만, 교제 폭력을 규율하는 법률이 없는 게 더 시급한 문제란 지적도 있습니다.

가정폭력과 스토킹의 경우엔 따로 처벌법이 있어서 접근금지 등 보호 방법과 처벌 규정을 두고 있는데요.

교제폭력은 별도의 처벌 근거가 없어서 가정폭력처벌법이나 스토킹 처벌법을 준용하고 있습니다.

교제폭력의 특수성을 감안해 별도의 법률 제정 논의도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앵커]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사회부 원동희 기자였습니다.

영상편집:여동용/그래픽:이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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