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재선충병 확산 ‘잰걸음’…방제는 ‘달팽이걸음’

입력 2023.05.31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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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소나무 불치병'이라고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이 전국적으로 무섭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 확산 속도가 너무 빨라, 방제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야산 곳곳에는 감염 고사목이 제때 처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습니다. 추가 확산을 막으려면 제때 방제하는 게 시급한데, 왜 방제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을까요?

강원도 춘천시에서 발생한 소나무재선충병 고사목강원도 춘천시에서 발생한 소나무재선충병 고사목

■ 야산 곳곳에 방치된 소나무재선충병 고사목

취재진은 강원도 춘천시의 한 야산을 찾았습니다.

곳곳에 잎이 누렇게 변한 소나무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감염된 나무에는 하얀색 띠가 둘러져 있습니다. 이 띠의 QR코드를 찍어보니 이미 올해 2월에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라고 나옵니다. 감염목이라 주변 나무들에도 병을 옮길 가능성이 높은 나무입니다.
원칙대로라면 4월 안에 파쇄 처리됐어야 할 나무지만, 벌써 5달 가까이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 방치된 나무가 한두 그루가 아닙니다. 같은 야산 곳곳에서 비슷한 고사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록이 더해가는 듯 보이는 초여름의 산 속, 소나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 전국의 소나무가 재선충병으로 몸살…급격한 확산세

올들어 소나무재선충병 확산 속도가 무섭습니다.
올해 강원도 춘천 지역에 발생한 소나무재선충병 고사목은 2만 2천여 그루에 이릅니다. 지난해 6천7백여 그루와 비교하면 무려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비단 강원도만의 상황이 아닙니다. 산림청 집계 결과, 올해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는 107만 그루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역시, 지난해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재선충병 급증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기후 변화가 꼽힙니다. 지난 겨울 날씨가 유난히 따뜻해
소나무재선충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전국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전나무를 중심으로 한 확산도 한 가지 원인입니다. 전나무의 경우, 재선충병 잠복기가 2년에 달해 소나무보다 재선충 발견이 더 어렵습니다.
강원도만 놓고 보면 전체 소나무재선충병 피해의 90%가 전나무에서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림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 방제단이 같은 곳을 매번 방문해 재선충병 예찰을 해도, 새로운 감염목은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QR코드 인식표가 붙어있는 소나무재선충 감염목QR코드 인식표가 붙어있는 소나무재선충 감염목

■ 재선충병 방제, 적기에 끝낼 수 있을까?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는 1년 내내 진행돼야 합니다. 이 가운데 상반기 방제 마지노선은 3월로 잡습니다. 재선충병 방제는 보통 매개충인 북방수염하늘소가 활동하는 시기 이전에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매개충의 활동기인 4월 이후 방제를 하게 되면, 고사목을 베고 옮기는 과정에서 전파가 일어나 재선충병이 더 확산됩니다.

그런데 올해는 앞서 설명한대로, 재선충병에 감염돼 죽은 나무가 너무 많아 제때 방제를 끝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올해 전국에서 감염목으로 확인된 건 107만 그루인데, 감염목 가운데 1/5인 28만 그루(5월 말 기준)가 아직 처리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소나무재선충병이 가장 심각한 경북이 16만 그루 넘게 남았고, 경남도 9만 그루, 강원도와 대구도 만 그루 이상 방제해야 할 소나무가 남았습니다.

방제 시기를 놓쳐 북방수염하늘소가 활동하는 시기에 방제를 한 고사목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북방수염하늘소 활동기인 6월에 처리된 소나무재선충 고사목북방수염하늘소 활동기인 6월에 처리된 소나무재선충 고사목

■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왜 늦어지나?…현장에서는 "예산 부족이 가장 큰 원인"

그렇다면 소나무재선충병 방제가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재선충병의 확산 속도를 방제 예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국적으로 재선충병 확산은 지속돼 왔지만, 방제 예산은 그동안 해마다 감소했습니다. 방제가 필요한 나무는 한 해 평균 2백만 그루에 달하는데, 예산은 2017년 814억 원에서 해마다 줄어 2022년에는 559억 원까지 줄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주춤하던 소나무재선충병이 다시 확산세로 돌아섰습니다. 국정감사에서 방제 예산 부족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이로 인해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예산은 지난해 559억 원에서 1,137억 원으로 '반짝'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산림청도, 지자체도 예산 부족을 호소합니다. 재선충병 확산 속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고사목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림청 집계 결과, 올해 소나무재선충에 걸린 고사목은 107만 그루입니다. 지난해 38만 그루에서 3배 가까이 증가한 겁니다. 그런데 비슷한 기간, 방제 예산은 2배 느는데 그쳤습니다.

방제 예산은 고사목 처리에만 쓰는 게 아닙니다. 소나무재선충병 예방나무주사 비용 등에도 한정된 예산을 써야 합니다. 이렇다 보니 예산을 두 배 늘려줘도 방제 현장에서는 돈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10년 째 제자리걸음인 고사목 처리 단가에 대한 지적도 나옵니다. 고사목 처리 비용은 나무 한 그루에 '훈증' 처리는 5만 6천 원, '파쇄'는 10만 원 정도입니다. 10년 전 단가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선 처리 비용이 두 배 가까이 올랐다고 말합니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훈증'은 고사목 한 그루에 10만 원, '파쇄'는 20만 원 이상 줘야한다는 겁니다. 그간 상승한 인건비·장비 임차비 등으로 처리 비용 자체가 늘었다는 설명입니다.

산림청은 부랴부랴 추가 예산 확보 등 방제 대책 수립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재선충병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가 이미 성충이 되기 시작해 확산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강원도 춘천시 소나무재선충병 발생지강원도 춘천시 소나무재선충병 발생지

■ 소나무재선충병 확산…해결할 수 있을까?

기자가 처음 소나무재선충병을 취재했던 건 7년 전입니다. 재선충병이 극심했던 경북과 제주를 비롯해 전국의 재선충병 발병지를 다녔습니다.

그 사이 민원의 주요 대상이 됐던 초록색 훈증 천막은 짙은 회색으로, GPS에 의존했던 고사목 발생지 확인 과정에는 QR코드가 도입되는 등 대응은 정밀해졌습니다. 무인 항공기와 드론을 동원한 예찰도 도입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소나무재선충병은 더욱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국 산림청과 국유림관리소·지자체 소나무재선충병 담당자는 소문난 기피 부서가 된 지 오래입니다. 좀처럼 멈출 줄 모르는 고사목 발생, 여기에 주민들의 민원까지 더해져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고 호소합니다.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내리고, 수십 미터 나무를 잘라내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재선충병과 사투를 벌이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끝을 알기 힘든 재선충과의 전쟁은 오늘도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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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5-31 16: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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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불치병'이라고 불리는 소나무재선충병이 전국적으로 무섭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그 확산 속도가 너무 빨라, 방제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야산 곳곳에는 감염 고사목이 제때 처리되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습니다. 추가 확산을 막으려면 제때 방제하는 게 시급한데, 왜 방제작업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을까요?
강원도 춘천시에서 발생한 소나무재선충병 고사목
■ 야산 곳곳에 방치된 소나무재선충병 고사목

취재진은 강원도 춘천시의 한 야산을 찾았습니다.

곳곳에 잎이 누렇게 변한 소나무를 찾을 수 있습니다. 감염된 나무에는 하얀색 띠가 둘러져 있습니다. 이 띠의 QR코드를 찍어보니 이미 올해 2월에 소나무재선충병에 감염된 나무라고 나옵니다. 감염목이라 주변 나무들에도 병을 옮길 가능성이 높은 나무입니다.
원칙대로라면 4월 안에 파쇄 처리됐어야 할 나무지만, 벌써 5달 가까이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이렇게 방치된 나무가 한두 그루가 아닙니다. 같은 야산 곳곳에서 비슷한 고사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록이 더해가는 듯 보이는 초여름의 산 속, 소나무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 전국의 소나무가 재선충병으로 몸살…급격한 확산세

올들어 소나무재선충병 확산 속도가 무섭습니다.
올해 강원도 춘천 지역에 발생한 소나무재선충병 고사목은 2만 2천여 그루에 이릅니다. 지난해 6천7백여 그루와 비교하면 무려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입니다.

비단 강원도만의 상황이 아닙니다. 산림청 집계 결과, 올해 소나무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는 107만 그루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역시, 지난해보다 3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재선충병 급증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기후 변화가 꼽힙니다. 지난 겨울 날씨가 유난히 따뜻해
소나무재선충이 죽지 않고 살아남아 전국으로 퍼져나갔기 때문입니다.

전나무를 중심으로 한 확산도 한 가지 원인입니다. 전나무의 경우, 재선충병 잠복기가 2년에 달해 소나무보다 재선충 발견이 더 어렵습니다.
강원도만 놓고 보면 전체 소나무재선충병 피해의 90%가 전나무에서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산림당국이나 지방자치단체 방제단이 같은 곳을 매번 방문해 재선충병 예찰을 해도, 새로운 감염목은 계속해서 생겨납니다.

QR코드 인식표가 붙어있는 소나무재선충 감염목
■ 재선충병 방제, 적기에 끝낼 수 있을까?

소나무재선충병 방제는 1년 내내 진행돼야 합니다. 이 가운데 상반기 방제 마지노선은 3월로 잡습니다. 재선충병 방제는 보통 매개충인 북방수염하늘소가 활동하는 시기 이전에 끝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매개충의 활동기인 4월 이후 방제를 하게 되면, 고사목을 베고 옮기는 과정에서 전파가 일어나 재선충병이 더 확산됩니다.

그런데 올해는 앞서 설명한대로, 재선충병에 감염돼 죽은 나무가 너무 많아 제때 방제를 끝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올해 전국에서 감염목으로 확인된 건 107만 그루인데, 감염목 가운데 1/5인 28만 그루(5월 말 기준)가 아직 처리되지 못한 상태입니다. 소나무재선충병이 가장 심각한 경북이 16만 그루 넘게 남았고, 경남도 9만 그루, 강원도와 대구도 만 그루 이상 방제해야 할 소나무가 남았습니다.

방제 시기를 놓쳐 북방수염하늘소가 활동하는 시기에 방제를 한 고사목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북방수염하늘소 활동기인 6월에 처리된 소나무재선충 고사목
■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왜 늦어지나?…현장에서는 "예산 부족이 가장 큰 원인"

그렇다면 소나무재선충병 방제가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재선충병의 확산 속도를 방제 예산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국적으로 재선충병 확산은 지속돼 왔지만, 방제 예산은 그동안 해마다 감소했습니다. 방제가 필요한 나무는 한 해 평균 2백만 그루에 달하는데, 예산은 2017년 814억 원에서 해마다 줄어 2022년에는 559억 원까지 줄었습니다.

그러다 지난해 주춤하던 소나무재선충병이 다시 확산세로 돌아섰습니다. 국정감사에서 방제 예산 부족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이로 인해 소나무재선충병 방제 예산은 지난해 559억 원에서 1,137억 원으로 '반짝' 증가했습니다.

그런데 산림청도, 지자체도 예산 부족을 호소합니다. 재선충병 확산 속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고사목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림청 집계 결과, 올해 소나무재선충에 걸린 고사목은 107만 그루입니다. 지난해 38만 그루에서 3배 가까이 증가한 겁니다. 그런데 비슷한 기간, 방제 예산은 2배 느는데 그쳤습니다.

방제 예산은 고사목 처리에만 쓰는 게 아닙니다. 소나무재선충병 예방나무주사 비용 등에도 한정된 예산을 써야 합니다. 이렇다 보니 예산을 두 배 늘려줘도 방제 현장에서는 돈이 부족하다는 얘기가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10년 째 제자리걸음인 고사목 처리 단가에 대한 지적도 나옵니다. 고사목 처리 비용은 나무 한 그루에 '훈증' 처리는 5만 6천 원, '파쇄'는 10만 원 정도입니다. 10년 전 단가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현장에선 처리 비용이 두 배 가까이 올랐다고 말합니다.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훈증'은 고사목 한 그루에 10만 원, '파쇄'는 20만 원 이상 줘야한다는 겁니다. 그간 상승한 인건비·장비 임차비 등으로 처리 비용 자체가 늘었다는 설명입니다.

산림청은 부랴부랴 추가 예산 확보 등 방제 대책 수립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재선충병 매개충인 솔수염하늘소가 이미 성충이 되기 시작해 확산은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우려됩니다.

강원도 춘천시 소나무재선충병 발생지
■ 소나무재선충병 확산…해결할 수 있을까?

기자가 처음 소나무재선충병을 취재했던 건 7년 전입니다. 재선충병이 극심했던 경북과 제주를 비롯해 전국의 재선충병 발병지를 다녔습니다.

그 사이 민원의 주요 대상이 됐던 초록색 훈증 천막은 짙은 회색으로, GPS에 의존했던 고사목 발생지 확인 과정에는 QR코드가 도입되는 등 대응은 정밀해졌습니다. 무인 항공기와 드론을 동원한 예찰도 도입됐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소나무재선충병은 더욱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전국 산림청과 국유림관리소·지자체 소나무재선충병 담당자는 소문난 기피 부서가 된 지 오래입니다. 좀처럼 멈출 줄 모르는 고사목 발생, 여기에 주민들의 민원까지 더해져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고 호소합니다. 가파른 산비탈을 오르내리고, 수십 미터 나무를 잘라내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재선충병과 사투를 벌이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입니다.

끝을 알기 힘든 재선충과의 전쟁은 오늘도 진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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