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 기름 쟁여, 말아…‘이것’ 보면 답 나온다? [세계엔]

입력 2023.06.03 (08:00) 수정 2023.06.03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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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제 유가 한 달 새 11% '뚝'

지난해 여름 천정부지로 치솟던 기름값이 올해는 잠잠합니다. 오히려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는데요. 어제(2일) 기준 인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70.1달러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지난달 30일 70달러 선이 무너진 뒤 이틀 연속 크게 떨어지자, 반발 매수세에 겨우 70달러 선을 회복했다는 분석입니다. 5월 한 달 국제 유가는 11.32% 떨어져, 지난해 9월 이후 최대 하락 폭을 보였습니다.

중국 '리오프닝' 기대 못 미쳐…원유 수요 '그닥'

기름값이 이렇게 떨거지는 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 탓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그만큼 원유 수요는 늘지 않을 테니까요.

특히 코로나19 빗장을 푼 중국의 '리오프닝'이 기대만큼 경기 부양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5월 제조업 구매자관리자지수(PMI)가 48.8을 기록해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전달(49.2)보다도 낮은 수치입니다. 소비 회복세도 더딥니다. 원유뿐 아니라 구리 등 주요 원자재 가격도 같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6월에야말로 금리 인상을 확실히 멈출 것으로 보였던 미국 연준(Fed)도 다시 시장을 헷갈리게 하고 있습니다. 연준 내 매파 인사(금리 인상 주장) 중 한 명인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금리 인상을) 멈춰야 할 이유를 정말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5~5.25%로 이미 16년 만에 최고치에 도달했습니다. 미국이 높은 금리로 긴축을 계속하면 글로벌 경기는 더 큰 타격을 받게 되고, 역시 원유 수요를 줄이게 될 겁니다.

원유 수요는 시원찮은 상황인데, 원유 공급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란 핵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진 건데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최근 이란의 고농도 우라늄 입자 발견과 관련된 조사를 마쳤다고 밝혔습니다. 이 결과에 따라 미국과 이란이 '핵 합의'를 다시 시작하면, 미국의 제재 탓에 수출길이 막힌 이란산 원유가 다시 유통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달 23일(현지 시각) 도하에서 열린 ‘카타르 경제 포럼’에 참석한 압둘 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 모습.지난달 23일(현지 시각) 도하에서 열린 ‘카타르 경제 포럼’에 참석한 압둘 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 모습.

■ 속 타는 사우디…'추가 감산' 으름장

이런 상황에 속이 쓰린 건 산유국들, 특히 산유국 '대장'격인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는 원유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지난해 11월과 올해 4월 2번이나 원유 생산을 줄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발표 직후에만 국제 유가가 잠깐 올랐을 뿐, 큰 효과가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배럴당 125달러까지 치솟았던 브렌트유는 최근 석 달 동안 70달러를 간신히 웃돌고 있습니다. 적어도 80~90달러 선을 유지할 거란 기대가 깨진 겁니다.

석유 팔아 먹고사는 사우디의 경제 성장률은 덩달아 꺾이고 있습니다. 고유가가 유지됐던 지난해는
9% 가까운 높은 성장률을 보였지만, 올해는 3%를 겨우 넘길 것으로 전망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우디는 추가 감산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는 모양새입니다. 압둘 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카타르 경제 포럼'에서 "유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세력은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를 날렸죠. OPEC+가 이번 내일(4일) 정례 회의를 열 예정인데, 여기서 또 감산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겁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습.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이후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 됐다.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습.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이후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 됐다.

■ "추가 감산 없을 것" 엇박자 내는 러시아

그런데 같은 OPEC+ 안에서도 사우디와는 달리 싸게라도 원유를 더 팔고 싶어 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러시아입니다. 사우디가 추가 감산 으름장을 놓은 직후 러시아는 엇갈린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4월에 이미 감산을 했기 때문에 이번 회의에선 추가 감산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방 제재에 돈줄이 막힌 "러시아가 값싼 원유를 시장에 계속 쏟아 붓고 있다"며, "공급을 줄여 유가를 띄우고 싶은 사우디와 마찰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자금 사정이 급해진 러시아가 산유국들 사이의 감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러시아는 이런 지적은 사실이 아니고, OPEC+ 계획대로 감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놓고 미국과 갈등하는 러시아, 대표적인 친미 국가에서 중국, 러시아와 밀착하며 운신의 폭을 넓혀가는 사우디. 이해관계가 맞아 친해지고 있던 두 나라가 유가 탓에 삐걱거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 그래서 기름값은 어떻게 될까?

이런 상황이라면 올 여름 기름값은 안심해도 되는 걸까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이란 핵 합의'가 정말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 온갖 변수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날씨'가 문제입니다.

유난히 더울 거라는 올 여름, 글로벌 경기 상황과 관계없이 폭염이 찾아오면 에너지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폭발적인 수요는 가격을 올리게 되겠죠.

지난해 6월 미국 네바다주 미드호. 폭염과 이상기후로 바닥을 드러낸 모습. (AFP)지난해 6월 미국 네바다주 미드호. 폭염과 이상기후로 바닥을 드러낸 모습. (AFP)

미국은 가격이 많이 내려간 지금, 올 여름 폭염에 대비해 원유를 쟁여두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달 전략비축유(SPR) 300만 배럴을 보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유가가 폭등하면서 비축유를 2억 배럴 넘게 방출한 탓에 미국 비축유는 1983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대규모로 원유를 매입하면 유가를 끌어올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연 산유국들은 '폭염'을 믿고 공급량을 유지하게 될까요? 아니면 '경기 침체' 우려에 한 번 더 감산을 결정할까요? 현지시각 내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OPEC+ 정례 회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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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차 기름 쟁여, 말아…‘이것’ 보면 답 나온다? [세계엔]
    • 입력 2023-06-03 08:00:39
    • 수정2023-06-03 10:09:07
    주말엔

■ 국제 유가 한 달 새 11% '뚝'

지난해 여름 천정부지로 치솟던 기름값이 올해는 잠잠합니다. 오히려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는데요. 어제(2일) 기준 인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70.1달러로 거래를 마쳤습니다. 지난달 30일 70달러 선이 무너진 뒤 이틀 연속 크게 떨어지자, 반발 매수세에 겨우 70달러 선을 회복했다는 분석입니다. 5월 한 달 국제 유가는 11.32% 떨어져, 지난해 9월 이후 최대 하락 폭을 보였습니다.

중국 '리오프닝' 기대 못 미쳐…원유 수요 '그닥'

기름값이 이렇게 떨거지는 건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 탓입니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그만큼 원유 수요는 늘지 않을 테니까요.

특히 코로나19 빗장을 푼 중국의 '리오프닝'이 기대만큼 경기 부양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5월 제조업 구매자관리자지수(PMI)가 48.8을 기록해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고 발표했습니다. 전달(49.2)보다도 낮은 수치입니다. 소비 회복세도 더딥니다. 원유뿐 아니라 구리 등 주요 원자재 가격도 같이 떨어지는 이유입니다.

6월에야말로 금리 인상을 확실히 멈출 것으로 보였던 미국 연준(Fed)도 다시 시장을 헷갈리게 하고 있습니다. 연준 내 매파 인사(금리 인상 주장) 중 한 명인 로레타 메스터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금리 인상을) 멈춰야 할 이유를 정말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미국 기준금리는 5~5.25%로 이미 16년 만에 최고치에 도달했습니다. 미국이 높은 금리로 긴축을 계속하면 글로벌 경기는 더 큰 타격을 받게 되고, 역시 원유 수요를 줄이게 될 겁니다.

원유 수요는 시원찮은 상황인데, 원유 공급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란 핵 문제'가 풀릴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진 건데요.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최근 이란의 고농도 우라늄 입자 발견과 관련된 조사를 마쳤다고 밝혔습니다. 이 결과에 따라 미국과 이란이 '핵 합의'를 다시 시작하면, 미국의 제재 탓에 수출길이 막힌 이란산 원유가 다시 유통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난달 23일(현지 시각) 도하에서 열린 ‘카타르 경제 포럼’에 참석한 압둘 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에너지부 장관 모습.
■ 속 타는 사우디…'추가 감산' 으름장

이런 상황에 속이 쓰린 건 산유국들, 특히 산유국 '대장'격인 사우디아라비아입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비OPEC 산유국 협의체인 OPEC+는 원유 가격을 방어하기 위해 지난해 11월과 올해 4월 2번이나 원유 생산을 줄이자고 뜻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발표 직후에만 국제 유가가 잠깐 올랐을 뿐, 큰 효과가 없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배럴당 125달러까지 치솟았던 브렌트유는 최근 석 달 동안 70달러를 간신히 웃돌고 있습니다. 적어도 80~90달러 선을 유지할 거란 기대가 깨진 겁니다.

석유 팔아 먹고사는 사우디의 경제 성장률은 덩달아 꺾이고 있습니다. 고유가가 유지됐던 지난해는
9% 가까운 높은 성장률을 보였지만, 올해는 3%를 겨우 넘길 것으로 전망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우디는 추가 감산 카드를 다시 만지작거리는 모양새입니다. 압둘 아지즈 빈 살만 사우디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카타르 경제 포럼'에서 "유가 하락에 베팅하는 공매도 세력은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를 날렸죠. OPEC+가 이번 내일(4일) 정례 회의를 열 예정인데, 여기서 또 감산할 수도 있다고 으름장을 놓은 겁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모습.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이후 중국은 러시아산 원유의 최대 수입국이 됐다.
■ "추가 감산 없을 것" 엇박자 내는 러시아

그런데 같은 OPEC+ 안에서도 사우디와는 달리 싸게라도 원유를 더 팔고 싶어 하는 나라도 있습니다. 러시아입니다. 사우디가 추가 감산 으름장을 놓은 직후 러시아는 엇갈린 메시지를 내놨습니다. 알렉산드르 노박 러시아 부총리는 "4월에 이미 감산을 했기 때문에 이번 회의에선 추가 감산 조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서방 제재에 돈줄이 막힌 "러시아가 값싼 원유를 시장에 계속 쏟아 붓고 있다"며, "공급을 줄여 유가를 띄우고 싶은 사우디와 마찰을 빚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자금 사정이 급해진 러시아가 산유국들 사이의 감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러시아는 이런 지적은 사실이 아니고, OPEC+ 계획대로 감산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대놓고 미국과 갈등하는 러시아, 대표적인 친미 국가에서 중국, 러시아와 밀착하며 운신의 폭을 넓혀가는 사우디. 이해관계가 맞아 친해지고 있던 두 나라가 유가 탓에 삐걱거리고 있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 그래서 기름값은 어떻게 될까?

이런 상황이라면 올 여름 기름값은 안심해도 되는 걸까요?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이란 핵 합의'가 정말 탈출구를 찾을 수 있을지 온갖 변수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날씨'가 문제입니다.

유난히 더울 거라는 올 여름, 글로벌 경기 상황과 관계없이 폭염이 찾아오면 에너지 수요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폭발적인 수요는 가격을 올리게 되겠죠.

지난해 6월 미국 네바다주 미드호. 폭염과 이상기후로 바닥을 드러낸 모습. (AFP)
미국은 가격이 많이 내려간 지금, 올 여름 폭염에 대비해 원유를 쟁여두기 시작했습니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달 전략비축유(SPR) 300만 배럴을 보충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지난해 유가가 폭등하면서 비축유를 2억 배럴 넘게 방출한 탓에 미국 비축유는 1983년 이후 최저 수준까지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미국이 대규모로 원유를 매입하면 유가를 끌어올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과연 산유국들은 '폭염'을 믿고 공급량을 유지하게 될까요? 아니면 '경기 침체' 우려에 한 번 더 감산을 결정할까요? 현지시각 내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리는 OPEC+ 정례 회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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