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진 가보면 간호법제정 반대 못할거예요”

입력 2023.06.0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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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요청하면 병원이 아닌 환자가 있는 집에 가서 진료하는 것을 왕진이라고 합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왕진 의사를 집으로 부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왕진 의사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방문진료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의사가 병원 밖에서 진료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의료수가의 문제 때문에 실질적으로 환자를 찾아가는 의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강원도 춘천 소양호 주변의 시골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환자를 만나는 의사가 있습니다. 그는 시골 마을에 왕진을 다녀보면 왜 왕진이 필요한지 알 것이라고 말합니다. 의사가 찾아갈 수 없다면 간호사라도 찾아가면 어떻냐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간호법 아니냐고 말합니다. 거의 대부분 의사들이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속에서 홀로 간호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들어봤습니다.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 원장은 춘천 시내에서 짧게는 30분, 길게는 두 시간을 걸려 환자를  찾아갑니다. 하루 만나는 환자는 많아야 5명 정도, 그들은 양 원장이 오지 않는다면 아마도  아파도 참고 병원 가는 것을 포기했을 수 있는  고령자들입니다.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 원장은 춘천 시내에서 짧게는 30분, 길게는 두 시간을 걸려 환자를 찾아갑니다. 하루 만나는 환자는 많아야 5명 정도, 그들은 양 원장이 오지 않는다면 아마도 아파도 참고 병원 가는 것을 포기했을 수 있는 고령자들입니다.

■ 국내 유일 시골 왕진 의사, 멀게는 춘천 시내에서 차로 두 시간을 가서 환자를 만나기도.

양창모 의사는 올해 25년 차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하지만 그는 병원이나 의원에서 환자를 만나지 않는다. 소속된 병·의원이 없다 보니 당연히 진료실도 없다, 그런데도 매일 환자를 만나고 상담을 하고 진료를 한다. 그는 현재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수자원공사’와 함께 하는 의료복지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춘천에 있는 ‘호호방문진료센터’ 원장이 그의 직함이다. 진료센터라고 해봤자 일하는 직원은 그를 포함해 간호사 1명, 매니저 1명, 이렇게 3명이 전부다. 3명은 매주 세 차례 이상 왕진 가방을 들고 환자를 찾아 나선다.

저희가 오전 10시 정도에 저희 센터에서 이제 출발을 하고요. 오전에 한두 가구 정도 들리고, 점심 먹고 오후에 한두 가구 정도, 그래서 보통 하루에 네 가구 정도를 들립니다.

그가 왕진가서 만나는 환자 대부분은 도심 병원까지 나오기 힘든 고령자들이다. 가까운 춘천 시내 병·의원을 찾으려면 최소 30분, 길게는 1시간 30분을 차로 운전해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한나절을 다 길에서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파도 쉽게 병·의원을 찾지 못하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제때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병도 키우는 경우가 많다.

왕진가면 환자의 삶의 맥락이 눈에 들어와서 의사의 태도도 달라져….

양 원장은 그러나 왕진을 하면서 환자보다 본인이 더 많은 것을 얻는다고 한다.

"진료실 진료는 환자분이 들어올 때 환자분의 삶의 맥락 그러니까, 이분이 누구의 부모님이고, 누구의 자식이고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존엄한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의사가 어르신들 댁에 가면 일단 어르신이 사시는 곳이 보이고, 이분이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보이고, 어떤 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게 보이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이분의 삶의 맥락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래서 달라지는 의사의 태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양 원장처럼 왕진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는 국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다. 자신 말고 한 명 정도가 더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왕진 가방을 들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전공의 할 때 장애인 단체 회원으로 등록했었는데요. 그때 장애인단체의 간사분이 장애인분 중에서 집에서 못 나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병원에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얘기를 하시면서 한번 와달라고 하셨어요. 그때 처음 왕진을 가게 된 거죠. 그게 사실은 왕진인지도 모르고 가게 된 거죠.”

그렇게 처음에는 잘 모르고 시작했던 왕진이었는데, 지금은 왕진 전문의사가 됐다.

“원주에 ‘강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라고 하는 곳이 있어요. 2013년에 제가 4년 정도 근무할 때였는데 그때는 매주 왕진을 갔어요. 낮에는 진료실 진료도 하고 저녁에는 왕진을 갔죠. 그렇게 4년 정도 하다가 제가 춘천으로 오면서 왕진을 못 했었죠. 다시 시작한 것이 4년 전쯤에 수자원공사에서 수몰 지역의 농촌 어르신들에 대한 왕진서비스 사업을 지원하면서 하게 된 겁니다.”

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의 주민들을 위한 수자원공사의 의료서비스 지원 사업이 그에게 다시 왕진 가방을 들게 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의사들은 왕진 가방을 왜 들지 못하는 것일까?

■ 2019년부터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 시행 중이지만 참여율은 저조

보건복지부는 2019년 말부터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의과는 2019년 12월 말부터 지금까지 3차례 결처 참여기관을 모집했다, 한의과는 2021년 8월 말부터 참여기관을 모집했다. 지금까지 방문진료를 해보겠다고 신청한 의원이 858개, 한의원이 2,803개다. 숫자만 보면 왕진 의사 만나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22년 기준 선정된 시범기관 중에 수가를 청구한 곳은 34%에 불과했다. 일단 신청은 했지만, 실제 왕진을 한 번이라고 한 의원은 세 곳 중의 한 곳밖에 안 되는 셈이다. 이유는 결국 의사가 벌어들이는 수익이다. 왕진 한번 가는데 적어도 한 시간 전후로 잡아야 하는데 방문진료 수가는 23년 기준 의과가 최대 한번 진료에 126,900원, 한의과는 99,020원에 불과하다, 진료실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수익 면에서는 유리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2022년도에 왕진을 갔던 의사가 전체 의사 수에 0.16% 예요. 무슨 얘기냐면 의사가 천명이 면 그 중에 왕진 가능 의사가 한 두 명이고 나머지 998명은 왕진을 가지 않고 진료실에서만 진료하는 거죠. "

그렇다고 수가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 이미 건강보험공단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결국, 양 원장처럼 뜻한 바가 있지 않은 이상 왕진 의사는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찾기 힘든 별종일 수밖에 없다.

궁금했다. 왜 굳이 어렵고 힘든 길을 택했는지?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내가 몸이 아파서 옆집에도 못 가요. 근데 옆집에 명의가 살아요. 그 명의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지난해에는 어떤 어르신도 봤냐면 그 어르신 집에서 병원까지 건강한 사람이 걸었을 때 한 4분 정도밖에 안 걸려요. 그런데 4분 거리를 이 어르신은 한 시간이 넘게 걸려서 가요. 무릎 관절염도 심하고 또 심장도 안 좋으시기 때문에 계속 쉬었다 가시는 거죠. 그 어르신한테 가까이 있는 4분 거리에 병원이 정말 가까운 건가?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렇다면 그 어르신을 좀 찾아오는 의사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 공공 의대 늘리고, 공공영역에서 일하는 의사 늘려야만 농촌 의료사각지대 해결될 수 있어.

양 원장은 공공 의대를 늘리고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적어도 이런 시골 지역에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시골에 안정적으로 의료진이 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의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그 의사들을 공공 의대에서 교육하고 또 그 의사들을 공무원화해서 보건소나 이런 곳에서 평생직으로 남아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의사협회는 공공 의대 증설을 그동안 계속 반대해왔다. 일정 기간 공공영역에서 있다가 민간영역으로 진입하면 경쟁자가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지금 의사협회에서 이거를 반대하는 이유가 의사정원을 늘렸을 때 그 사람들이 전부 민간시장에 들어와서 본인들의 경쟁자가 되기 때문에 반대하는 거잖아요. (공공영역 의무근무가) 끝나면 다시 민간의료 영역에 들어와서 본인들의 경쟁자가 되기 때문에 그걸 반대하는 건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공공의료 영역에 남을 수 있는 의사들을 정부에서 만들어 내고 그분들을 계속해서 평생직으로 그 공공영역에 계속 있을 수 있게 해준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공공 의대를 신설하고 의사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에 정부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올해 안에 방안을 내 놓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공공 의대를 증설해 의대 신입생을 선발한다고 해도 실제 의사가 양성돼서 투입되기까지는 최소 10년, 아니 그 이상의 기간이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농어촌 지역의 고령자들은 여전히 의료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의사들이 안 가는 곳에 간호사들이 가겠다는 것이 '간호법' , "왕진 다녀보면 반대 못 해"

당장 단기적인 대안은 없을지 양 원장의 의견을 물었더니 본인이 겪은 사례를 들려줬다.

"실은 오늘 진료한 어르신 같은 경우도 처음 만났을 때 팔이 많이 부어 있었어요. 림프부종을 의심해서 대학병원에 연결해서 치료를 받도록 했죠. 그런데 한 달 후에 가보니 치료를 받고 있으시다는데 오히려 팔이 더 부은 거죠. 왜냐면 림프부종 치료는 각각 다른 종류의 붕대를 여러 개 감아야 해요. 그런데 어려운 거죠. 어르신 혼자서 하기에는요. 그렇다 보니 오히려 붕대가 림프순환을 억제해서 오히려 더 부은 거예요. 결국, 병원에 매일 다니셔야 하는데 여기서 시내에 있는 병원까지 가는 것이 엄청 힘든 일이죠. 어르신이 또 허리도 안 좋으셔가지고 걷는 것도 굉장히 불편하신데. 그래서 그때 병원에 매일 가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너무 죄송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근처에 보건진료소가 있었어요. 보건진료소는 의사 없이 간호사 가 소장을 하는 곳이거든요. 제가 그분한테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더니 소장님이 흔쾌히 본인이 와서 드레싱을 해주겠다 한 거예요. 그분이 거의 6개월 정도를 환자 집에 와서 매일 드레싱을 해주신 거예요. 그렇게 해서 지금 굉장히 많이 좋아지셨어요. 의사들이 못 가는 곳을 똑같은 의료진인 간호사들이 가겠다고 하는 것이 저는 간호법이라고 생각을 해요. "

양창모 원장이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70대 이상의 고령으로 몸이 아파도 시내 병원까지 나오기가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양창모 원장이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70대 이상의 고령으로 몸이 아파도 시내 병원까지 나오기가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양 원장이 생각하던 간호법 제정을 결국 불발됐다. 찬성과 반대 양측의 논쟁에서 의료현장에서도, 국회에서도, 그리고 언론에서도 정작 환자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았다.

사실 저는 지금 이 어르신들 같은 이런 환자분들을 매일 만나요. 병원에 갈 수 없고 병원에 가기 힘든 분들 이런 분들은 제가 매일 만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간호법을 찬성합니다. 제가 뭐 특별한 의사여서가 아니라 그냥 제가 의사이기 때문에 그래요. 저는 솔직히 지금 간호법 반대하시는 의협회장님도 저랑 똑같이 여기 현장에 매일 오신다면 그분이 앞서서 간호법 하자고 할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간호법을 찬성하는 의사로 알려지면서 동료 의사들의 시선이 좋을 리가 없을 것 같은데 불편하지 않냐고 물으니 양 원장이 웃으면서 답했다. “ 동료 의사들을 잘 안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하하...”

▲ 동영상 인터뷰는 KBS사사건건 https://news.kbs.co.kr/vod/program.do?bcd=0073&ref=pSiteMap#20230602&1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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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진 가보면 간호법제정 반대 못할거예요”
    • 입력 2023-06-03 09: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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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요청하면 병원이 아닌 환자가 있는 집에 가서 진료하는 것을 왕진이라고 합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왕진 의사를 집으로 부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왕진 의사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방문진료라는 이름으로 지금도 의사가 병원 밖에서 진료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하지만 의료수가의 문제 때문에 실질적으로 환자를 찾아가는 의사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하지만 강원도 춘천 소양호 주변의 시골 곳곳을 찾아다니면서 환자를 만나는 의사가 있습니다. 그는 시골 마을에 왕진을 다녀보면 왜 왕진이 필요한지 알 것이라고 말합니다. 의사가 찾아갈 수 없다면 간호사라도 찾아가면 어떻냐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간호법 아니냐고 말합니다. 거의 대부분 의사들이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는 속에서 홀로 간호법 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들어봤습니다.

양창모 호호방문진료센터 원장은 춘천 시내에서 짧게는 30분, 길게는 두 시간을 걸려 환자를  찾아갑니다. 하루 만나는 환자는 많아야 5명 정도, 그들은 양 원장이 오지 않는다면 아마도  아파도 참고 병원 가는 것을 포기했을 수 있는  고령자들입니다.
■ 국내 유일 시골 왕진 의사, 멀게는 춘천 시내에서 차로 두 시간을 가서 환자를 만나기도.

양창모 의사는 올해 25년 차 가정의학과 전문의다. 하지만 그는 병원이나 의원에서 환자를 만나지 않는다. 소속된 병·의원이 없다 보니 당연히 진료실도 없다, 그런데도 매일 환자를 만나고 상담을 하고 진료를 한다. 그는 현재 ‘원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서 ‘수자원공사’와 함께 하는 의료복지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춘천에 있는 ‘호호방문진료센터’ 원장이 그의 직함이다. 진료센터라고 해봤자 일하는 직원은 그를 포함해 간호사 1명, 매니저 1명, 이렇게 3명이 전부다. 3명은 매주 세 차례 이상 왕진 가방을 들고 환자를 찾아 나선다.

저희가 오전 10시 정도에 저희 센터에서 이제 출발을 하고요. 오전에 한두 가구 정도 들리고, 점심 먹고 오후에 한두 가구 정도, 그래서 보통 하루에 네 가구 정도를 들립니다.

그가 왕진가서 만나는 환자 대부분은 도심 병원까지 나오기 힘든 고령자들이다. 가까운 춘천 시내 병·의원을 찾으려면 최소 30분, 길게는 1시간 30분을 차로 운전해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버스를 이용할 경우 한나절을 다 길에서 보내야 할 수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파도 쉽게 병·의원을 찾지 못하는 환자가 대부분이다. 제때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니 병도 키우는 경우가 많다.

왕진가면 환자의 삶의 맥락이 눈에 들어와서 의사의 태도도 달라져….

양 원장은 그러나 왕진을 하면서 환자보다 본인이 더 많은 것을 얻는다고 한다.

"진료실 진료는 환자분이 들어올 때 환자분의 삶의 맥락 그러니까, 이분이 누구의 부모님이고, 누구의 자식이고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존엄한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의사가 어르신들 댁에 가면 일단 어르신이 사시는 곳이 보이고, 이분이 어떤 일을 하고 있다는 게 보이고, 어떤 곳에 거주하고 있다는 게 보이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이분의 삶의 맥락이 눈에 들어오기 때문에 그래서 달라지는 의사의 태도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양 원장처럼 왕진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는 국내에서 손에 꼽을 정도다. 자신 말고 한 명 정도가 더 있는 것 같다고 한다. 왕진 가방을 들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전공의 할 때 장애인 단체 회원으로 등록했었는데요. 그때 장애인단체의 간사분이 장애인분 중에서 집에서 못 나오시는 분들이 있는데 병원에 가고 싶어도 못 간다는 얘기를 하시면서 한번 와달라고 하셨어요. 그때 처음 왕진을 가게 된 거죠. 그게 사실은 왕진인지도 모르고 가게 된 거죠.”

그렇게 처음에는 잘 모르고 시작했던 왕진이었는데, 지금은 왕진 전문의사가 됐다.

“원주에 ‘강원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라고 하는 곳이 있어요. 2013년에 제가 4년 정도 근무할 때였는데 그때는 매주 왕진을 갔어요. 낮에는 진료실 진료도 하고 저녁에는 왕진을 갔죠. 그렇게 4년 정도 하다가 제가 춘천으로 오면서 왕진을 못 했었죠. 다시 시작한 것이 4년 전쯤에 수자원공사에서 수몰 지역의 농촌 어르신들에 대한 왕진서비스 사업을 지원하면서 하게 된 겁니다.”

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의 주민들을 위한 수자원공사의 의료서비스 지원 사업이 그에게 다시 왕진 가방을 들게 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그렇다면 다른 의사들은 왕진 가방을 왜 들지 못하는 것일까?

■ 2019년부터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 시행 중이지만 참여율은 저조

보건복지부는 2019년 말부터 일차의료 방문진료 수가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의과는 2019년 12월 말부터 지금까지 3차례 결처 참여기관을 모집했다, 한의과는 2021년 8월 말부터 참여기관을 모집했다. 지금까지 방문진료를 해보겠다고 신청한 의원이 858개, 한의원이 2,803개다. 숫자만 보면 왕진 의사 만나기가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2022년 기준 선정된 시범기관 중에 수가를 청구한 곳은 34%에 불과했다. 일단 신청은 했지만, 실제 왕진을 한 번이라고 한 의원은 세 곳 중의 한 곳밖에 안 되는 셈이다. 이유는 결국 의사가 벌어들이는 수익이다. 왕진 한번 가는데 적어도 한 시간 전후로 잡아야 하는데 방문진료 수가는 23년 기준 의과가 최대 한번 진료에 126,900원, 한의과는 99,020원에 불과하다, 진료실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수익 면에서는 유리할 수밖에 없는 셈이다.

“2022년도에 왕진을 갔던 의사가 전체 의사 수에 0.16% 예요. 무슨 얘기냐면 의사가 천명이 면 그 중에 왕진 가능 의사가 한 두 명이고 나머지 998명은 왕진을 가지 않고 진료실에서만 진료하는 거죠. "

그렇다고 수가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 이미 건강보험공단에 경고등이 켜진 상황이다. 결국, 양 원장처럼 뜻한 바가 있지 않은 이상 왕진 의사는 여전히 대한민국에서 찾기 힘든 별종일 수밖에 없다.

궁금했다. 왜 굳이 어렵고 힘든 길을 택했는지?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내가 몸이 아파서 옆집에도 못 가요. 근데 옆집에 명의가 살아요. 그 명의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지난해에는 어떤 어르신도 봤냐면 그 어르신 집에서 병원까지 건강한 사람이 걸었을 때 한 4분 정도밖에 안 걸려요. 그런데 4분 거리를 이 어르신은 한 시간이 넘게 걸려서 가요. 무릎 관절염도 심하고 또 심장도 안 좋으시기 때문에 계속 쉬었다 가시는 거죠. 그 어르신한테 가까이 있는 4분 거리에 병원이 정말 가까운 건가? 그렇지 않다는 거죠. 그렇다면 그 어르신을 좀 찾아오는 의사가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요.”

■ 공공 의대 늘리고, 공공영역에서 일하는 의사 늘려야만 농촌 의료사각지대 해결될 수 있어.

양 원장은 공공 의대를 늘리고 의사 수를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적어도 이런 시골 지역에 사시는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시골에 안정적으로 의료진이 올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의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그 의사들을 공공 의대에서 교육하고 또 그 의사들을 공무원화해서 보건소나 이런 곳에서 평생직으로 남아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의사협회는 공공 의대 증설을 그동안 계속 반대해왔다. 일정 기간 공공영역에서 있다가 민간영역으로 진입하면 경쟁자가 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지금 의사협회에서 이거를 반대하는 이유가 의사정원을 늘렸을 때 그 사람들이 전부 민간시장에 들어와서 본인들의 경쟁자가 되기 때문에 반대하는 거잖아요. (공공영역 의무근무가) 끝나면 다시 민간의료 영역에 들어와서 본인들의 경쟁자가 되기 때문에 그걸 반대하는 건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고 공공의료 영역에 남을 수 있는 의사들을 정부에서 만들어 내고 그분들을 계속해서 평생직으로 그 공공영역에 계속 있을 수 있게 해준다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공공 의대를 신설하고 의사정원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에 정부도 필요성을 인정하고 올해 안에 방안을 내 놓는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당장 내년부터 공공 의대를 증설해 의대 신입생을 선발한다고 해도 실제 의사가 양성돼서 투입되기까지는 최소 10년, 아니 그 이상의 기간이 걸릴 것이다. 그때까지 농어촌 지역의 고령자들은 여전히 의료사각지대에서 벗어날 수 없다.

■ 의사들이 안 가는 곳에 간호사들이 가겠다는 것이 '간호법' , "왕진 다녀보면 반대 못 해"

당장 단기적인 대안은 없을지 양 원장의 의견을 물었더니 본인이 겪은 사례를 들려줬다.

"실은 오늘 진료한 어르신 같은 경우도 처음 만났을 때 팔이 많이 부어 있었어요. 림프부종을 의심해서 대학병원에 연결해서 치료를 받도록 했죠. 그런데 한 달 후에 가보니 치료를 받고 있으시다는데 오히려 팔이 더 부은 거죠. 왜냐면 림프부종 치료는 각각 다른 종류의 붕대를 여러 개 감아야 해요. 그런데 어려운 거죠. 어르신 혼자서 하기에는요. 그렇다 보니 오히려 붕대가 림프순환을 억제해서 오히려 더 부은 거예요. 결국, 병원에 매일 다니셔야 하는데 여기서 시내에 있는 병원까지 가는 것이 엄청 힘든 일이죠. 어르신이 또 허리도 안 좋으셔가지고 걷는 것도 굉장히 불편하신데. 그래서 그때 병원에 매일 가야 한다고 말씀을 드리는 것이 너무 죄송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근처에 보건진료소가 있었어요. 보건진료소는 의사 없이 간호사 가 소장을 하는 곳이거든요. 제가 그분한테 연락해 상황을 설명했더니 소장님이 흔쾌히 본인이 와서 드레싱을 해주겠다 한 거예요. 그분이 거의 6개월 정도를 환자 집에 와서 매일 드레싱을 해주신 거예요. 그렇게 해서 지금 굉장히 많이 좋아지셨어요. 의사들이 못 가는 곳을 똑같은 의료진인 간호사들이 가겠다고 하는 것이 저는 간호법이라고 생각을 해요. "

양창모 원장이 만나는 환자들은 대부분 70대 이상의 고령으로 몸이 아파도 시내 병원까지 나오기가 힘든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양 원장이 생각하던 간호법 제정을 결국 불발됐다. 찬성과 반대 양측의 논쟁에서 의료현장에서도, 국회에서도, 그리고 언론에서도 정작 환자들의 목소리를 들리지 않았다.

사실 저는 지금 이 어르신들 같은 이런 환자분들을 매일 만나요. 병원에 갈 수 없고 병원에 가기 힘든 분들 이런 분들은 제가 매일 만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간호법을 찬성합니다. 제가 뭐 특별한 의사여서가 아니라 그냥 제가 의사이기 때문에 그래요. 저는 솔직히 지금 간호법 반대하시는 의협회장님도 저랑 똑같이 여기 현장에 매일 오신다면 그분이 앞서서 간호법 하자고 할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간호법을 찬성하는 의사로 알려지면서 동료 의사들의 시선이 좋을 리가 없을 것 같은데 불편하지 않냐고 물으니 양 원장이 웃으면서 답했다. “ 동료 의사들을 잘 안 만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하하...”

▲ 동영상 인터뷰는 KBS사사건건 https://news.kbs.co.kr/vod/program.do?bcd=0073&ref=pSiteMap#20230602&1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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