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은 왜 모스크바를 겨눴나? [주말엔]

입력 2023.06.03 (12:00) 수정 2023.06.03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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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이라 부를 수 있을까?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전쟁이 아닙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훨씬 지났지만,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전쟁'이라는 말 대신 '특별 군사 작전'이라는 개념을 씁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밤낮없이 울리는 공습 경보와 대피,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되는 일들이 일상이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러시아인들에게 이런 전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탈 나치화'를 위한 특별 군사 작전이 국경 근처와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고 있을 뿐입니다.

현지 시각 5월 30일 새벽,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는 전쟁과 상관없이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뒤흔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스크바 동남부 지역 러시아의 엘리트층들이 주로 거주하는 주거지에 드론 공습이 벌어진 겁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드론 8대가 이번 공격에 동원됐고, 모두 격추됐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매체들은 이보다 많은 30여 대의 드론이 공습에 동원됐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모스크바 드론 공격의 영향으로 아파트 건물이 부서지고, 경미하지만 부상자들도 나왔습니다. 러시아는 이 공격의 배후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부인했습니다. 공격의 주체가 누구이든 모스크바를 향한 공격은 전쟁의 공포를 러시아인들의 일상 속으로 끌어오기에 충분했습니다.

"새벽 4시 15분에서 4시 30분쯤에 매우 큰 '쾅'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폭발음 같은... 아내와 저는 벌떡 일어났어요."
-세르게이/모스크바 시민-

"분명히 기억해요. 불꽃 튀는 것 같은 소리였어요."
-다니일/모스크바 시민-



정말 배후는 우크라이나일까?
모스크바를 향한 드론 공습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대반격의 시기가 결정됐다"고 밝힌지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번 공격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대부분의 서방 언론들은 이번 공격이 '러시아 지배층에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만약, 이번 공습에 사용된 드론이 실제로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까지 날아왔다면, 최단거리로 잡아도 450km가 넘는 거리를 러시아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온 셈입니다.


모스크바를 겨냥한 드론 공습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5월 3일에도 크렘린궁 상공에서 드론이 격추된 적이 있습니다. 이번처럼 민간인 거주 구역이 아니었다는 점은 차이가 있죠. 이때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라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 공격도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렇다면, 크렘린궁을 겨냥했던 이 공격은 누가 한 걸까요?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보 당국은 공격 명령이 우크라이나 정부 고위급에서 내려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이 크렘린 궁에 대한 드론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본다"고 보도했습니다.


'드론'은 왜 지금 모스크바를 겨냥했나?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국경 근처나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드론 공격이 있었습니다. 이런 공격들은 대부분 러시아의 기반시설이나 물류 시설을 겨냥한 것들이었습니다. '전투' 자체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목적이 있는 공격들인 겁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을 앞두고 러시아 내부의 '심리적 분열'과 '공포'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장기화 되고 있는 전쟁에서 필수 요소인 시민들의 지지가 흔들리 수 있는 겁니다.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이 투입된 용병, '바그너그룹' 내에서부터 비판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번 공격은 러시아가 드론 전쟁에서 기술적으로 뒤쳐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브게니 프리고진/바그너그룹 수장-

AP통신은 전문가의 분석을 인용해 이번 공격은 "우크라이나가 단지 방어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향한) 공격에 나설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분석했습니다. '가디언'도 "이번 공격이 전쟁을 러시아의 수도 안으로 가지고 오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방공 시스템을 반복적으로 뚫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분석했습니다.


푸틴의 '레드라인'…있다? 없다?
이런 분석대로 이번 공격을 우크라이나가 의도한 것이라면,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미국과 서방 국가로부터 더 많은 무기 지원을 얻어내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요?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습니다. 이번 모스크바 드론 공격 사태와 관련해서도 백악관은 "미국은 러시아 영토 내의 공격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독일은 당장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주춤하는 듯 합니다. 전선이 러시아 영토 내로 확장되는 건 독일도 바라는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모스크바를 향한 드론 공격은 독일이 '타우러스 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것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독일 고위 당국자의 말을 전했습니다. 기술적으로만 따져봤을 때,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를 공격하는 데 '타우러스' 미사일이 사용될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타우러스 미사일은 최대 사거리가 500km에 달하는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독일에 이 미사일을 지원해 달라고 거듭 요청해 왔습니다.

모스크바를 향한 드론 공격 직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가 뭘 할 수 있을지 두고 보라"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미 여러 번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는데요. 지난달 말에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에 전술핵 무기 배치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확전 가능성은 차단하면서 우크라이나가 계속 싸울 수 있는 동력은 계속 공급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정교한 계산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우리가 무언가 했는데 러시아의 반응도, 확전도 없었다면 (미국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는가" 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저울질하고 있다고 미 정부 고위당국자의 말을 전했습니다. 러시아의 심장부 모스크바를 겨냥한 드론 공격, 러시아는 정말 공언한 것처럼 '뭘 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선택을 하게 될까요?


한 장의 사진
사진은 5월 29일, 대낮에 공습경보가 울리자 지하철 역으로 대피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시민들의 모습입니다.
러시아는 5월 한 달에만 키이우를 향해 17번 공습을 감행했습니다.


(사진 출처:AP)(사진 출처: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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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론’은 왜 모스크바를 겨눴나? [주말엔]
    • 입력 2023-06-03 12:00:11
    • 수정2023-06-03 14:09:03
    주말엔


'전쟁' 이라 부를 수 있을까?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아직도 전쟁이 아닙니다.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1년이 훨씬 지났지만, 러시아에서는 아직도 '전쟁'이라는 말 대신 '특별 군사 작전'이라는 개념을 씁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밤낮없이 울리는 공습 경보와 대피, 삶의 터전이 파괴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되는 일들이 일상이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러시아인들에게 이런 전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크라이나의 '탈 나치화'를 위한 특별 군사 작전이 국경 근처와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고 있을 뿐입니다.

현지 시각 5월 30일 새벽,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서는 전쟁과 상관없이 살아온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뒤흔드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스크바 동남부 지역 러시아의 엘리트층들이 주로 거주하는 주거지에 드론 공습이 벌어진 겁니다. 러시아 국방부는 드론 8대가 이번 공격에 동원됐고, 모두 격추됐다고 밝혔습니다. 러시아 매체들은 이보다 많은 30여 대의 드론이 공습에 동원됐다고 전했습니다. 이번 모스크바 드론 공격의 영향으로 아파트 건물이 부서지고, 경미하지만 부상자들도 나왔습니다. 러시아는 이 공격의 배후로 우크라이나를 지목했지만, 우크라이나는 부인했습니다. 공격의 주체가 누구이든 모스크바를 향한 공격은 전쟁의 공포를 러시아인들의 일상 속으로 끌어오기에 충분했습니다.

"새벽 4시 15분에서 4시 30분쯤에 매우 큰 '쾅'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폭발음 같은... 아내와 저는 벌떡 일어났어요."
-세르게이/모스크바 시민-

"분명히 기억해요. 불꽃 튀는 것 같은 소리였어요."
-다니일/모스크바 시민-



정말 배후는 우크라이나일까?
모스크바를 향한 드론 공습은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대반격의 시기가 결정됐다"고 밝힌지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이번 공격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습니다. 워싱턴포스트와 뉴욕타임스, 가디언 등 대부분의 서방 언론들은 이번 공격이 '러시아 지배층에 위기감을 조성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만약, 이번 공습에 사용된 드론이 실제로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까지 날아왔다면, 최단거리로 잡아도 450km가 넘는 거리를 러시아의 방공망을 뚫고 들어온 셈입니다.


모스크바를 겨냥한 드론 공습이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지난 5월 3일에도 크렘린궁 상공에서 드론이 격추된 적이 있습니다. 이번처럼 민간인 거주 구역이 아니었다는 점은 차이가 있죠. 이때 러시아는 '푸틴 대통령에 대한 암살 시도'라면서 격앙된 반응을 보였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이 공격도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렇다면, 크렘린궁을 겨냥했던 이 공격은 누가 한 걸까요? 뉴욕타임스는 "미국 정보 당국은 공격 명령이 우크라이나 정부 고위급에서 내려온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정보당국이 크렘린 궁에 대한 드론 공격을 감행한 것으로 본다"고 보도했습니다.


'드론'은 왜 지금 모스크바를 겨냥했나?
우크라이나가 대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가운데, 러시아 국경 근처나 러시아가 점령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지역에서는 이미 여러 차례 드론 공격이 있었습니다. 이런 공격들은 대부분 러시아의 기반시설이나 물류 시설을 겨냥한 것들이었습니다. '전투' 자체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목적이 있는 공격들인 겁니다.

하지만 이번 공격은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을 앞두고 러시아 내부의 '심리적 분열'과 '공포'를 불러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장기화 되고 있는 전쟁에서 필수 요소인 시민들의 지지가 흔들리 수 있는 겁니다.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이 투입된 용병, '바그너그룹' 내에서부터 비판이 터져 나왔습니다.

"이번 공격은 러시아가 드론 전쟁에서 기술적으로 뒤쳐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예브게니 프리고진/바그너그룹 수장-

AP통신은 전문가의 분석을 인용해 이번 공격은 "우크라이나가 단지 방어뿐만 아니라 (러시아를 향한) 공격에 나설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분석했습니다. '가디언'도 "이번 공격이 전쟁을 러시아의 수도 안으로 가지고 오도록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방공 시스템을 반복적으로 뚫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고 분석했습니다.


푸틴의 '레드라인'…있다? 없다?
이런 분석대로 이번 공격을 우크라이나가 의도한 것이라면,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미국과 서방 국가로부터 더 많은 무기 지원을 얻어내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을까요?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러시아 본토 공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혀왔습니다. 이번 모스크바 드론 공격 사태와 관련해서도 백악관은 "미국은 러시아 영토 내의 공격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독일은 당장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주춤하는 듯 합니다. 전선이 러시아 영토 내로 확장되는 건 독일도 바라는 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모스크바를 향한 드론 공격은 독일이 '타우러스 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는 것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독일 고위 당국자의 말을 전했습니다. 기술적으로만 따져봤을 때,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를 공격하는 데 '타우러스' 미사일이 사용될 여지가 있다는 겁니다. 타우러스 미사일은 최대 사거리가 500km에 달하는 장거리 공대지 미사일입니다. 우크라이나는 독일에 이 미사일을 지원해 달라고 거듭 요청해 왔습니다.

모스크바를 향한 드론 공격 직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가 뭘 할 수 있을지 두고 보라"며 강력히 반발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이미 여러 번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언급했는데요. 지난달 말에는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친러 국가인 벨라루스에 전술핵 무기 배치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확전 가능성은 차단하면서 우크라이나가 계속 싸울 수 있는 동력은 계속 공급해야 하는 미국으로서는 정교한 계산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워싱턴포스트는 미국 정부가 "우리가 무언가 했는데 러시아의 반응도, 확전도 없었다면 (미국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도 되는가" 라는 질문을 계속해서 저울질하고 있다고 미 정부 고위당국자의 말을 전했습니다. 러시아의 심장부 모스크바를 겨냥한 드론 공격, 러시아는 정말 공언한 것처럼 '뭘 할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선택을 하게 될까요?


한 장의 사진
사진은 5월 29일, 대낮에 공습경보가 울리자 지하철 역으로 대피한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시민들의 모습입니다.
러시아는 5월 한 달에만 키이우를 향해 17번 공습을 감행했습니다.


(사진 출처: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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