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가 끝나고 난 뒤…깨끗해진 캠퍼스에 남은 과제 [주말엔]

입력 2023.06.04 (08:01) 수정 2023.06.04 (11:1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3월,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을 놓고 전례 없는 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처우 개선을 주장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이 5개월간 이어지자, 연세대에 재학중이던 일부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들을 '학습권 침해'로 경찰에 고소한 겁니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쟁의는 과거에도 수 차례 반복됐고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대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이런 반응을 내놓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학생이 문제인지, 청소노동자들이 문제인지 저마다 의견은 엇갈렸습니다. 언론들도 앞다퉈 학생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관점에서 이 일을 다뤘습니다.

■ 모두가 주목했던 "청소노동자 VS 대학생"… 그 이후 어떤 일이 있었나

그로부터 1년 뒤, 취재진은 연세대학교를 다시 찾았습니다.

청소노동자들의 현수막으로 가득했던 캠퍼스는 협상이 타결된 뒤 깨끗해졌습니다. 집회 소음도 사라졌습니다. 청소노동자들의 시급은 작년과 올해 각각 4백 원 씩 올랐고, 지하에 있던 휴게시설은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겉보기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 한 상황. 캠퍼스 이면, 구성원들의 생각은 어떤지 들어봤습니다.

■ "수업료 150만 원 vs 시급 400원" 비교했던 대학생, "고소는 너무했다."


서강대학교에 재학 중인 백동민 씨. 지난해 시위 당시 KBS와의 인터뷰에서 "학생 수십 명이 한 시간에 150만 원을 쓰고 수업을 듣고 있는 건데, 시급 400원을 올려 달라고 공부를 방해하는 것은 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던 바 있습니다. 보도 이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발언을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백 씨와 다시 접촉해봤습니다. 최근 백 씨는 지난 1년간 이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고 KBS 취재진에 전했습니다.

백 씨는 "지금은 청소 노동자들을 상대로 고소한 것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방송 이후 비판도 받으며 의견이 다른 다양한 이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그동안 세상을 지나치게 이성적, 이기적으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인터뷰는 "학생들의 피해도 고려해 달라"는 소수 의견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청소노동자들과 학교 사이에서 학생들은 피해만 입고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으니, 학생들이 가장 약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 서강대학교 백동민 씨, 지난달 인터뷰 중

또 백 씨는 "두 편으로 갈라져 서로 헐뜯는 건 무의미하니, 같이 행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소박한 소망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 "손주 같은 학생들 밉지 않아"…각자의 목소리 낸 것


연세대학교에서 2008년부터 청소 일을 해 온 김현옥 씨. 지난해 청소노동자 집회에 참여해 목소리를 냈고, 일부 학생들이 자신들을 고소하는 풍경을 직접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학생들이 밉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식 같은 학생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김 씨는 "경찰서에도 한 번 가본적이 없었다"며, "학생 고소로 처음 겪어봤는데 가슴이 벌렁대고, 경찰에서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학생들을 어떻게 보는지 묻자, 웃으며 답했습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다 손녀 같고 손자 같죠. 내 나이가 곧 70인데, 학생들이 고소했다 그래서 밉지는 않죠. 공부는 공부대로 해야 되고 우리는 우리대로 목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렇게 밉지는 않아요."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연세대 분회장 김현옥 씨, 지난 1일 인터뷰 중

김 씨는 "올해는 집회가 없어서 너무 좋다"며, "청소부니까, 학교 더 깨끗하게 청소 해 주고 싶다"고 말해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 과제는 남아있다…경찰, 미신고 집회 여부 "법적 검토 필요"

김 씨의 바람대로 캠퍼스는 평화를 되찾았지만, 아직 갈등이 완전히 아문 건 아닙니다.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의 시위와 관련해 집시법 위반 혐의를 수사해 온 경찰은 지난달 9일 불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최근 돌연 이 사건의 법적 판단을 두고 다시 수사 심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캠퍼스 내부에서 일어난 노동자의 쟁의 행위를 '미신고 집회'로 볼지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소식을 들은 김 씨는 "착잡하다"며, "15년 일하며 처음 겪은 일이라, 일이 이렇게 복잡해질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한편, 연세대 재학생 3명이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수업권 침해'에 대한 첫 민사재판이 지난 1일 열렸습니다. 민사상 손해액 '638만여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입니다. 원고 가운데 한 명은 소를 취하했고, 두 번째 재판은 다음 달 열릴 예정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시위가 끝나고 난 뒤…깨끗해진 캠퍼스에 남은 과제 [주말엔]
    • 입력 2023-06-04 08:01:25
    • 수정2023-06-04 11:13:37
    주말엔
지난해 3월,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을 놓고 전례 없는 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처우 개선을 주장하는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이 5개월간 이어지자, 연세대에 재학중이던 일부 학생들이 청소노동자들을 '학습권 침해'로 경찰에 고소한 겁니다.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쟁의는 과거에도 수 차례 반복됐고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지만, 대학생들이 공개적으로 이런 반응을 내놓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학생이 문제인지, 청소노동자들이 문제인지 저마다 의견은 엇갈렸습니다. 언론들도 앞다퉈 학생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벌어진 갈등의 관점에서 이 일을 다뤘습니다.

■ 모두가 주목했던 "청소노동자 VS 대학생"… 그 이후 어떤 일이 있었나

그로부터 1년 뒤, 취재진은 연세대학교를 다시 찾았습니다.

청소노동자들의 현수막으로 가득했던 캠퍼스는 협상이 타결된 뒤 깨끗해졌습니다. 집회 소음도 사라졌습니다. 청소노동자들의 시급은 작년과 올해 각각 4백 원 씩 올랐고, 지하에 있던 휴게시설은 지상으로 올라왔습니다.

겉보기로는 모든 문제가 해결된 듯 한 상황. 캠퍼스 이면, 구성원들의 생각은 어떤지 들어봤습니다.

■ "수업료 150만 원 vs 시급 400원" 비교했던 대학생, "고소는 너무했다."


서강대학교에 재학 중인 백동민 씨. 지난해 시위 당시 KBS와의 인터뷰에서 "학생 수십 명이 한 시간에 150만 원을 쓰고 수업을 듣고 있는 건데, 시급 400원을 올려 달라고 공부를 방해하는 것은 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던 바 있습니다. 보도 이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 발언을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백 씨와 다시 접촉해봤습니다. 최근 백 씨는 지난 1년간 이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고 KBS 취재진에 전했습니다.

백 씨는 "지금은 청소 노동자들을 상대로 고소한 것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방송 이후 비판도 받으며 의견이 다른 다양한 이들과 대화를 나눴는데, 그동안 세상을 지나치게 이성적, 이기적으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인터뷰는 "학생들의 피해도 고려해 달라"는 소수 의견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청소노동자들과 학교 사이에서 학생들은 피해만 입고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으니, 학생들이 가장 약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 서강대학교 백동민 씨, 지난달 인터뷰 중

또 백 씨는 "두 편으로 갈라져 서로 헐뜯는 건 무의미하니, 같이 행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소박한 소망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 "손주 같은 학생들 밉지 않아"…각자의 목소리 낸 것


연세대학교에서 2008년부터 청소 일을 해 온 김현옥 씨. 지난해 청소노동자 집회에 참여해 목소리를 냈고, 일부 학생들이 자신들을 고소하는 풍경을 직접 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학생들이 밉지는 않다'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자식 같은 학생들에게 고소를 당하는 것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김 씨는 "경찰서에도 한 번 가본적이 없었다"며, "학생 고소로 처음 겪어봤는데 가슴이 벌렁대고, 경찰에서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다"고 했습니다.

이제는 학생들을 어떻게 보는지 묻자, 웃으며 답했습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이 다 손녀 같고 손자 같죠. 내 나이가 곧 70인데, 학생들이 고소했다 그래서 밉지는 않죠. 공부는 공부대로 해야 되고 우리는 우리대로 목소리를 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거고. 그렇게 밉지는 않아요."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연세대 분회장 김현옥 씨, 지난 1일 인터뷰 중

김 씨는 "올해는 집회가 없어서 너무 좋다"며, "청소부니까, 학교 더 깨끗하게 청소 해 주고 싶다"고 말해 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 과제는 남아있다…경찰, 미신고 집회 여부 "법적 검토 필요"

김 씨의 바람대로 캠퍼스는 평화를 되찾았지만, 아직 갈등이 완전히 아문 건 아닙니다.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의 시위와 관련해 집시법 위반 혐의를 수사해 온 경찰은 지난달 9일 불송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최근 돌연 이 사건의 법적 판단을 두고 다시 수사 심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캠퍼스 내부에서 일어난 노동자의 쟁의 행위를 '미신고 집회'로 볼지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소식을 들은 김 씨는 "착잡하다"며, "15년 일하며 처음 겪은 일이라, 일이 이렇게 복잡해질 줄은 몰랐다"고 했습니다.

한편, 연세대 재학생 3명이 청소노동자들을 상대로 제기한 '수업권 침해'에 대한 첫 민사재판이 지난 1일 열렸습니다. 민사상 손해액 '638만여 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입니다. 원고 가운데 한 명은 소를 취하했고, 두 번째 재판은 다음 달 열릴 예정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