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년째 바닷속 방치…“국가는 17명을 잊었나?”

입력 2023.06.06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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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침몰한 해양경찰 72정과 실종 대원들1980년 침몰한 해양경찰 72정과 실종 대원들

신군부 시절인 1980년 1월 23일 오전 5시쯤,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 앞바다에서 경계 근무 중이던 해양경찰 소속 60톤급 '72'정이 침몰했습니다. 항해하던 해경 207함과 충돌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당시 72정에 타고 있던 경찰관과 전경 17명은 전원 실종됐습니다. 새벽 시간 침몰한 선체에 갇혀, 그대로 순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관계기관은 서둘러 사고를 종결했습니다. 17명이 모두 실종됐지만, 일주일도 안 돼 시신 없는 영결식이 진행됐습니다. 언론도 통제했습니다. 신문은 물론 방송도 실종과 침몰 소식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벌써 43년이 지났습니다.

김덕순 할머니 휴대전화 바탕화면의 아들(故 강철구 일경)김덕순 할머니 휴대전화 바탕화면의 아들(故 강철구 일경)

■"돈 달라는 거 아냐…아들 뼈라도 봤으면 좋겠어."

올해 87살인 김덕순 할머니의 장남, 故 강철구 일경도 당시 72정에서 근무하다 실종됐습니다. 할머니의 휴대전화를 열면, 바탕 화면에 사진이 나옵니다. 고등학교 시절 찍은 강철구 일경의 사진이었습니다.

"핸드폰에 넣어가지고 전화할 때마다 보고 그래. (40년 넘게 지났지만)철구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

할머니의 소원은 아들을 차가운 바닷 속에서 꺼내주는 일입니다. 아들의 유해를 수습하면, 양지 바른 땅에 묻어주고 싶다고 합니다. 다만 할머니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가 걱정입니다. 할머니는 요즘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면서 "내일이라도 내가 죽으면 끝이지 뭐..."라고 말을 흐렸습니다.
특히, "나는 '돈 달라' 뭐 그런 거 생각하는 거 아냐"라면서 "(유해 수습해서 아들)신체라도 보고 뼈라도 보면 더 낫잖아"라고 했습니다.

수중 탐색 무인잠수정(ROV)에 포착된 72정 선체수중 탐색 무인잠수정(ROV)에 포착된 72정 선체

■국가의 책무라더니…분노로 바뀐 기대

2018년 11월, 국회에서 청와대 국정감사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들은 정부가 순직자들의 유해 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자유한국당 이양수 의원과 이철규 의원은 "정부가 72정 탐색과 인양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특히 국가가 책임을 지고 유해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감장에 나온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당연히 국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가족의 아픔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72정 탐색 등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이후 선체 탐색에 나선 해양경찰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과 함께 민관 합동 수색에 나섰고, 2019년 4월 고성군 거진 앞바다에서 침몰한 해경 72정 선체를 찾았습니다. 수심 105미터 지점이었습니다.
유족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금방이라도 가족의 유해를 찾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습니다. 해경은 또 다시 추가 탐색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연구 용역도 진행해야 한다면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72정은 점차 잊혀졌습니다.

유족들은 분노했습니다. 당시 조병주(故 조병섭 경장의 동생) 씨는 "선체를 찾아놓고, 왜 정부와 국가가 가만있는지 모르겠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왜 방치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특히 "70년 지난 6·25 전사자도 유해를 발굴하는 상황에, 40년 지난 72정 순직자의 유해를 제발 바닷속에서 꺼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72정에 탑승한 해양경찰 소속 경찰관과 전경72정에 탑승한 해양경찰 소속 경찰관과 전경

■연이은 예산 확보 실패…"국가는 순직한 17명 잊었나?"

침몰한 72정의 선체 인양과 유해 수습 등을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해경과 정부는 예산 확보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2020년 11월, 국회 농해수위는 72정 인양과 관련해 예산 205억 원을 증액 의결했습니다. 당시 예산 증액 논의에 참여한 이양수 국회의원은 "조속히 (72정이)인양돼 유가족의 아픔을 달래고, 순직한 대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국회 예결위와 본회의 의결 과정에서 72정 관련 예산은 전액 삭감됐습니다.
이후에도 예산 확보 노력은 국회의 몫이었다는 게 유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유가족들은 "왜 국가가 할 일을 국회에 미루는지 모르겠다"며, "국가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강태윤 해경 72정 유가족협의회장(왼쪽)이 기자에게 설명하는 모습강태윤 해경 72정 유가족협의회장(왼쪽)이 기자에게 설명하는 모습

■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얼마 남지 않은 시간

유가족들은 지친 상태입니다. 너무 오랜 세월 기다려왔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포기하자는 가족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태윤 해경 72정 유가족협의회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 차가운 바다에서 기다리고 있는 17명을 국가가 잊어선 안 된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40년 넘게 방치되고 있는 17명을 바닷속에서 꺼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강태윤 회장은 "(유해를 수습해서)국립묘지에 모셔달라는 것" 뿐이라며 "다른 건 없어요. 그것만 해주면 불만이 없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해양경찰청은 선배 대원들의 유해 수습 등을 위해 올해도 관련 예산을 신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현실화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더욱이 침몰한 지 40년 이상 훌쩍 지나면서, 실종 대원들의 부모가 대부분 숨지는 등 가족들에게 남은 시간도 길지 않습니다.

또 다시 찾아온 6월 6일 현충일.
점점 잊혀지고 있는 17명의 호국영령은 여전히 차가운 바닷 속에 43년째 잠들어 있습니다. 어쩌면 꼭 꺼내줄 거라는 믿음을 갖고, 국가와 국민들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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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침몰한 해양경찰 72정과 실종 대원들
신군부 시절인 1980년 1월 23일 오전 5시쯤,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 앞바다에서 경계 근무 중이던 해양경찰 소속 60톤급 '72'정이 침몰했습니다. 항해하던 해경 207함과 충돌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당시 72정에 타고 있던 경찰관과 전경 17명은 전원 실종됐습니다. 새벽 시간 침몰한 선체에 갇혀, 그대로 순직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관계기관은 서둘러 사고를 종결했습니다. 17명이 모두 실종됐지만, 일주일도 안 돼 시신 없는 영결식이 진행됐습니다. 언론도 통제했습니다. 신문은 물론 방송도 실종과 침몰 소식을 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벌써 43년이 지났습니다.

김덕순 할머니 휴대전화 바탕화면의 아들(故 강철구 일경)
■"돈 달라는 거 아냐…아들 뼈라도 봤으면 좋겠어."

올해 87살인 김덕순 할머니의 장남, 故 강철구 일경도 당시 72정에서 근무하다 실종됐습니다. 할머니의 휴대전화를 열면, 바탕 화면에 사진이 나옵니다. 고등학교 시절 찍은 강철구 일경의 사진이었습니다.

"핸드폰에 넣어가지고 전화할 때마다 보고 그래. (40년 넘게 지났지만)철구를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어."

할머니의 소원은 아들을 차가운 바닷 속에서 꺼내주는 일입니다. 아들의 유해를 수습하면, 양지 바른 땅에 묻어주고 싶다고 합니다. 다만 할머니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지가 걱정입니다. 할머니는 요즘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면서 "내일이라도 내가 죽으면 끝이지 뭐..."라고 말을 흐렸습니다.
특히, "나는 '돈 달라' 뭐 그런 거 생각하는 거 아냐"라면서 "(유해 수습해서 아들)신체라도 보고 뼈라도 보면 더 낫잖아"라고 했습니다.

수중 탐색 무인잠수정(ROV)에 포착된 72정 선체
■국가의 책무라더니…분노로 바뀐 기대

2018년 11월, 국회에서 청와대 국정감사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국회 운영위원회 위원들은 정부가 순직자들의 유해 수습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 자유한국당 이양수 의원과 이철규 의원은 "정부가 72정 탐색과 인양에 소극적으로 임하고 있다"고 질타했습니다. 특히 국가가 책임을 지고 유해라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국감장에 나온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당연히 국가의 책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또, "시간이 지난다고 해서 가족의 아픔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72정 탐색 등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취지로 답변했습니다.

이후 선체 탐색에 나선 해양경찰은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등과 함께 민관 합동 수색에 나섰고, 2019년 4월 고성군 거진 앞바다에서 침몰한 해경 72정 선체를 찾았습니다. 수심 105미터 지점이었습니다.
유족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금방이라도 가족의 유해를 찾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습니다. 해경은 또 다시 추가 탐색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연구 용역도 진행해야 한다면서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72정은 점차 잊혀졌습니다.

유족들은 분노했습니다. 당시 조병주(故 조병섭 경장의 동생) 씨는 "선체를 찾아놓고, 왜 정부와 국가가 가만있는지 모르겠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왜 방치하는지 모르겠다."라며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특히 "70년 지난 6·25 전사자도 유해를 발굴하는 상황에, 40년 지난 72정 순직자의 유해를 제발 바닷속에서 꺼내달라"고 호소했습니다.

72정에 탑승한 해양경찰 소속 경찰관과 전경
■연이은 예산 확보 실패…"국가는 순직한 17명 잊었나?"

침몰한 72정의 선체 인양과 유해 수습 등을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동안 해경과 정부는 예산 확보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2020년 11월, 국회 농해수위는 72정 인양과 관련해 예산 205억 원을 증액 의결했습니다. 당시 예산 증액 논의에 참여한 이양수 국회의원은 "조속히 (72정이)인양돼 유가족의 아픔을 달래고, 순직한 대원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국회 예결위와 본회의 의결 과정에서 72정 관련 예산은 전액 삭감됐습니다.
이후에도 예산 확보 노력은 국회의 몫이었다는 게 유가족들의 이야기입니다. 유가족들은 "왜 국가가 할 일을 국회에 미루는지 모르겠다"며, "국가의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강태윤 해경 72정 유가족협의회장(왼쪽)이 기자에게 설명하는 모습
■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얼마 남지 않은 시간

유가족들은 지친 상태입니다. 너무 오랜 세월 기다려왔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포기하자는 가족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강태윤 해경 72정 유가족협의회장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무엇보다 차가운 바다에서 기다리고 있는 17명을 국가가 잊어선 안 된다고 거듭 밝혔습니다. 40년 넘게 방치되고 있는 17명을 바닷속에서 꺼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강태윤 회장은 "(유해를 수습해서)국립묘지에 모셔달라는 것" 뿐이라며 "다른 건 없어요. 그것만 해주면 불만이 없다."라고 덧붙였습니다.

해양경찰청은 선배 대원들의 유해 수습 등을 위해 올해도 관련 예산을 신청하는 등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현실화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더욱이 침몰한 지 40년 이상 훌쩍 지나면서, 실종 대원들의 부모가 대부분 숨지는 등 가족들에게 남은 시간도 길지 않습니다.

또 다시 찾아온 6월 6일 현충일.
점점 잊혀지고 있는 17명의 호국영령은 여전히 차가운 바닷 속에 43년째 잠들어 있습니다. 어쩌면 꼭 꺼내줄 거라는 믿음을 갖고, 국가와 국민들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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