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속 단속 억울”…알고 보니 경찰 장비 오류였다

입력 2023.06.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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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최대 속도가 110km인데 142km로 달렸다며 과속 통지서가 나왔다면 어떠실 것 같나요?

KBS제주가 이 같은 속도 위반 통보를 받은 제주의 한 택시기사 사연을 끈질기게 추적 취재한 결과, 경찰 단속 과정에 오류가 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110km가 최대 속도인데 142km 속도 위반?

서상의 씨가 자신의 대형 택시를 몰고 가고 있는 모습.서상의 씨가 자신의 대형 택시를 몰고 가고 있는 모습.

대형택시 운전자인 서상의 씨는 지난 3월 황당한 속도 위반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최대 속도가 110km로 제한된 자신의 차가 전남 해남의 도로에서 142km로 달렸다는 이유로 60일간 면허 정지 처분을 받을 위기에 처한 겁니다.

자녀의 이사를 돕기 위해 제주를 나갔다 온 서 씨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서 씨의 차는 출고 당시부터 최고 110km의 속도제한장치가 부착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주시 자동차검사소에서 서 씨의 대형 택시 최고 속도를 측정해봤더니 ‘110km’ 언저리를 맴돌았습니다.제주시 자동차검사소에서 서 씨의 대형 택시 최고 속도를 측정해봤더니 ‘110km’ 언저리를 맴돌았습니다.

서 씨의 말이 진짜인지, 교통안전공단의 협조를 받아 서 씨의 차를 점검해봤습니다.

가속 페달을 최대한 밟아도 110km 언저리를 맴돌 뿐 그 이상으로 넘어가진 않았습니다.

서 씨는 자신의 차를 적발한 암행 순찰차 탑재형 단속 장비의 오류 가능성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서 씨의 거주지 담당 경찰서인 제주서부경찰서는 "전남경찰청으로부터 장비에 이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 재분석 결과 "데이터 중첩 오류 확인"…경찰·장비업체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전남경찰청은 어떤 근거로 이상이 없다고 말한 걸까.

전남경찰청은 KBS와의 통화에서 "장비 제작 업체에 오류 기록을 확인해본 결과,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해마다 한 번씩 점검하고 있어 성능에도 이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전남경찰청은 혹시 모를 가능성을 열어 두고 도로교통공단에 점검을 의뢰하는 한편 장비 제작 업체에도 재분석을 요청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취재진은 사건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암행 순찰차가 탑재형 단속 장비 레이더를 이용해 1차선과 2차선 차량을 찍고 있는 모습. 장비 제작 업체에서 당시 기록을 분석한 결과, 2차선을 달리던 택시에 1차선을 달리던 다른 차의 과속 수치가 중첩 기록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암행 순찰차가 탑재형 단속 장비 레이더를 이용해 1차선과 2차선 차량을 찍고 있는 모습. 장비 제작 업체에서 당시 기록을 분석한 결과, 2차선을 달리던 택시에 1차선을 달리던 다른 차의 과속 수치가 중첩 기록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도로교통공단의 조사 결과 장비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장비 제작 업체의 재조사 과정에서 단속 과정에 오류가 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장비 제작 업체에 따르면 서 씨의 대형 택시는 2차선을 달렸는데, 1차선에서 달리던 다른 차의 과속 수치가 찍힌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업체 측은 "처음 민원인 의뢰가 들어왔을 때 2차선 데이터만 분석해 문제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며 "2차 분석 때 1·2차선을 모두 분석한 결과 데이터가 중첩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업체 측은 "보통 필터에서 걸러지는데 이런 예외적인 데이터가 생기는 건 만 분의 한 번꼴"이라며 "장비 설정값을 조정해서 단속에 지장 없도록 조치했다"고 말했습니다.

업체 측은 또 "앞으로 억울한 민원인이 생기지 않도록 장비를 섬세하게 조율하겠다"면서 "차량이 지나가기 전과 뒤 10초간 동영상을 백업하도록 장비를 개선해 추후 민원인이 확인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취재진과 함께 적극적으로 원인 규명에 나섰던 전남경찰청은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정현찬 전남경찰청 단속반장은 "단속 장비 오류 발생으로 인해 피해를 본 민원인께 사과 드린다"면서 "재발 사태 방지를 위해 무인 영상실에서 오류 단속 데이터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신뢰성 확보해야"…추가 피해 조사도 필요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가 KBS 취재진과 줌 인터뷰를 하는 모습.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가 KBS 취재진과 줌 인터뷰를 하는 모습.

2021년부터 현재까지 전남경찰청을 비롯해 전국 15개 경찰청에 보급된 탑재형 단속 장비는 71개(암행 순찰차 54대·일반 순찰차 17대)입니다.

모두 한 업체에서 보급했는데, 이 같은 데이터 중첩 오류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번 택시의 경우엔 속도 제한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일반 차종은 그냥 당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며 "신뢰성 측면에서 좀 더 정확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이어 "이동용 장비는 차가 움직이기 때문에 차의 위치에 따라 정보에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며 "경찰은 충분히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장비 뿐 아니라 측정 방법에 오류가 없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암행 순찰차에 탑재된 단속 장비 화면.암행 순찰차에 탑재된 단속 장비 화면.

해당 장비를 도입하면서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줄어든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고정형 단속 카메라 앞에서만 잠깐 속도를 줄인 뒤 다시 과속하는 운전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선량한 피해자가 없어야 하는 만큼, 장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 또한 중요해졌습니다.

아울러 KBS제주뉴스 '캔디' 유튜브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댓글들이 잇따르는 만큼 또 다른 피해는 없는지 추가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한편 억울함을 호소했던 서 씨에게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연관 기사]
110km가 최대인데 142km 속도 위반?…“60일 면허정지 억울”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59446
“나도 억울한 과속 단속”…장비 대대적 점검 필요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6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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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속 단속 억울”…알고 보니 경찰 장비 오류였다
    • 입력 2023-06-08 08:00:07
    심층K

자동차 최대 속도가 110km인데 142km로 달렸다며 과속 통지서가 나왔다면 어떠실 것 같나요?

KBS제주가 이 같은 속도 위반 통보를 받은 제주의 한 택시기사 사연을 끈질기게 추적 취재한 결과, 경찰 단속 과정에 오류가 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 110km가 최대 속도인데 142km 속도 위반?

서상의 씨가 자신의 대형 택시를 몰고 가고 있는 모습.
대형택시 운전자인 서상의 씨는 지난 3월 황당한 속도 위반 통지서를 받았습니다.

최대 속도가 110km로 제한된 자신의 차가 전남 해남의 도로에서 142km로 달렸다는 이유로 60일간 면허 정지 처분을 받을 위기에 처한 겁니다.

자녀의 이사를 돕기 위해 제주를 나갔다 온 서 씨는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서 씨의 차는 출고 당시부터 최고 110km의 속도제한장치가 부착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주시 자동차검사소에서 서 씨의 대형 택시 최고 속도를 측정해봤더니 ‘110km’ 언저리를 맴돌았습니다.
서 씨의 말이 진짜인지, 교통안전공단의 협조를 받아 서 씨의 차를 점검해봤습니다.

가속 페달을 최대한 밟아도 110km 언저리를 맴돌 뿐 그 이상으로 넘어가진 않았습니다.

서 씨는 자신의 차를 적발한 암행 순찰차 탑재형 단속 장비의 오류 가능성을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서 씨의 거주지 담당 경찰서인 제주서부경찰서는 "전남경찰청으로부터 장비에 이상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답했습니다.

■ 재분석 결과 "데이터 중첩 오류 확인"…경찰·장비업체 "재발 방지 대책 수립"

전남경찰청은 어떤 근거로 이상이 없다고 말한 걸까.

전남경찰청은 KBS와의 통화에서 "장비 제작 업체에 오류 기록을 확인해본 결과, 문제없다는 답변을 받았다"며 "해마다 한 번씩 점검하고 있어 성능에도 이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전남경찰청은 혹시 모를 가능성을 열어 두고 도로교통공단에 점검을 의뢰하는 한편 장비 제작 업체에도 재분석을 요청했습니다.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취재진은 사건의 진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암행 순찰차가 탑재형 단속 장비 레이더를 이용해 1차선과 2차선 차량을 찍고 있는 모습. 장비 제작 업체에서 당시 기록을 분석한 결과, 2차선을 달리던 택시에 1차선을 달리던 다른 차의 과속 수치가 중첩 기록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도로교통공단의 조사 결과 장비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장비 제작 업체의 재조사 과정에서 단속 과정에 오류가 있던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장비 제작 업체에 따르면 서 씨의 대형 택시는 2차선을 달렸는데, 1차선에서 달리던 다른 차의 과속 수치가 찍힌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업체 측은 "처음 민원인 의뢰가 들어왔을 때 2차선 데이터만 분석해 문제를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며 "2차 분석 때 1·2차선을 모두 분석한 결과 데이터가 중첩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업체 측은 "보통 필터에서 걸러지는데 이런 예외적인 데이터가 생기는 건 만 분의 한 번꼴"이라며 "장비 설정값을 조정해서 단속에 지장 없도록 조치했다"고 말했습니다.

업체 측은 또 "앞으로 억울한 민원인이 생기지 않도록 장비를 섬세하게 조율하겠다"면서 "차량이 지나가기 전과 뒤 10초간 동영상을 백업하도록 장비를 개선해 추후 민원인이 확인할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취재진과 함께 적극적으로 원인 규명에 나섰던 전남경찰청은 재발 방지를 약속했습니다.

정현찬 전남경찰청 단속반장은 "단속 장비 오류 발생으로 인해 피해를 본 민원인께 사과 드린다"면서 "재발 사태 방지를 위해 무인 영상실에서 오류 단속 데이터에 대한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신뢰성 확보해야"…추가 피해 조사도 필요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가 KBS 취재진과 줌 인터뷰를 하는 모습.
2021년부터 현재까지 전남경찰청을 비롯해 전국 15개 경찰청에 보급된 탑재형 단속 장비는 71개(암행 순찰차 54대·일반 순찰차 17대)입니다.

모두 한 업체에서 보급했는데, 이 같은 데이터 중첩 오류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이번 택시의 경우엔 속도 제한이 걸려 있었기 때문에 확인할 수 있었지만, 일반 차종은 그냥 당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며 "신뢰성 측면에서 좀 더 정확성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 교수는 이어 "이동용 장비는 차가 움직이기 때문에 차의 위치에 따라 정보에 혼동을 일으킬 수 있다"며 "경찰은 충분히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장비 뿐 아니라 측정 방법에 오류가 없는지를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암행 순찰차에 탑재된 단속 장비 화면.
해당 장비를 도입하면서 과속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줄어든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고정형 단속 카메라 앞에서만 잠깐 속도를 줄인 뒤 다시 과속하는 운전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선량한 피해자가 없어야 하는 만큼, 장비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것 또한 중요해졌습니다.

아울러 KBS제주뉴스 '캔디' 유튜브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댓글들이 잇따르는 만큼 또 다른 피해는 없는지 추가 조사가 필요해 보입니다.

한편 억울함을 호소했던 서 씨에게는 무혐의 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연관 기사]
110km가 최대인데 142km 속도 위반?…“60일 면허정지 억울”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59446
“나도 억울한 과속 단속”…장비 대대적 점검 필요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60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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