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원 걱정된다며 ‘위험지구’서 제외…결국 침수 피해

입력 2023.06.08 (14:00) 수정 2023.06.08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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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내린 폭우로 침수돼 일가족 3명이 숨진 서울 관악구의 빌라지난해 내린 폭우로 침수돼 일가족 3명이 숨진 서울 관악구의 빌라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방이 폭우로 물에 잠겨 일가족 3명이 숨졌습니다.

9월엔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경북 포항에 시간당 최대 80mm 넘는 비가 내렸는데,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되면서 8명이 숨졌습니다.

집중호우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는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라 재해 우려 지역을 '위험지구' 등으로 지정·고시한 뒤 행안부에 보고하게 돼 있습니다.

그 뒤부터는 의무가 따릅니다. 예를 들어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되면 의무적으로 침수 방지시설을 설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감사원이 감사해 보니, 위험지구 지정 과정에 여러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 "민원 우려된다며 '침수위험지구'서 제외"

감사원이 2018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지자체가 지정한 ' 침수위험지구'를 전수조사했습니다.

126개 기초자치단체가 지정한 369개 지구가 대상이었는데, 이 중 38%142개 지구에서 문제점이 발견됐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자체 중 일부가 '민원 발생'을 이유로 ' 주거·상가' 등을 침수위험지구에서 제외한 거였습니다.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되면 '물막이판'을 세워야 하는 등 건축 행위에 제약이 생깁니다. 민원의 소지가 있는 겁니다.

이 때문에 일부 지자체들은 주인이 없어 민원이 안 들어오는 '도로'나 '하천' 등만 위험 지구로 지정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집중 호우로 침수되면 주거지역이나 상가에서 인명 피해가 날 가능성이 큰데, 정작 이런 곳들을 위험지구에서 제외한 겁니다.

감사원이 침수 위험지구에서 누락된 몇 곳을 뽑아 조사해봤더니, 실제 피해가 난 곳도 있었습니다.

울산과 경북 포항, 충북 증평 등의 저층 주택 밀집 지역 3곳이었는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5세대가 물에 잠겨 2천2백만 원의 재산피해가 났습니다.

지난해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도로지난해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도로

■ 위험지구서 빠진 채 '건축 허가' 168건

침수가 예상되는데도 위험지구로 지정하지 않으면서, 부대 조건 없이 건축허가가 나기도 했습니다.

감사원은 부산과 울산, 경남 창원에서 침수방지시설 설치 조건 없이 건축 허가를 낸 사례168건 적발됐다고 밝혔습니다.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됐더라면 물막이판 등을 세웠어야 할 곳들인데, 결과적으로 안전 시설이 누락된 겁니다. 이 지역에는 큰비가 내리면 언제든 침수 피해가 날 수 있습니다.

일부 지자체들은 '재해위험지구' 개선사업 우선순위도 규정에 맞지 않게 주관적으로 운영해 온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침수 등 재해가 나면 인명·재산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보이는 곳부터 최우선적으로 정비 순위에 넣어야 하지만, 이를 객관적인 조사 없이 주관적으로 정했다는 의미입니다.

감사원은 행안부에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를 요구했고, 행안부는 감사 결과를 토대로 지자체의 지구 지정 때 침수 예상지역이 잘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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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내린 폭우로 침수돼 일가족 3명이 숨진 서울 관악구의 빌라
지난해 8월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반지하방이 폭우로 물에 잠겨 일가족 3명이 숨졌습니다.

9월엔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경북 포항에 시간당 최대 80mm 넘는 비가 내렸는데, 아파트 지하주차장이 침수되면서 8명이 숨졌습니다.

집중호우 등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는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라 재해 우려 지역을 '위험지구' 등으로 지정·고시한 뒤 행안부에 보고하게 돼 있습니다.

그 뒤부터는 의무가 따릅니다. 예를 들어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되면 의무적으로 침수 방지시설을 설치해야 합니다.

그런데 감사원이 감사해 보니, 위험지구 지정 과정에 여러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 "민원 우려된다며 '침수위험지구'서 제외"

감사원이 2018년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지자체가 지정한 ' 침수위험지구'를 전수조사했습니다.

126개 기초자치단체가 지정한 369개 지구가 대상이었는데, 이 중 38%142개 지구에서 문제점이 발견됐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지자체 중 일부가 '민원 발생'을 이유로 ' 주거·상가' 등을 침수위험지구에서 제외한 거였습니다.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되면 '물막이판'을 세워야 하는 등 건축 행위에 제약이 생깁니다. 민원의 소지가 있는 겁니다.

이 때문에 일부 지자체들은 주인이 없어 민원이 안 들어오는 '도로'나 '하천' 등만 위험 지구로 지정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집중 호우로 침수되면 주거지역이나 상가에서 인명 피해가 날 가능성이 큰데, 정작 이런 곳들을 위험지구에서 제외한 겁니다.

감사원이 침수 위험지구에서 누락된 몇 곳을 뽑아 조사해봤더니, 실제 피해가 난 곳도 있었습니다.

울산과 경북 포항, 충북 증평 등의 저층 주택 밀집 지역 3곳이었는데,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5세대가 물에 잠겨 2천2백만 원의 재산피해가 났습니다.

지난해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침수된 도로
■ 위험지구서 빠진 채 '건축 허가' 168건

침수가 예상되는데도 위험지구로 지정하지 않으면서, 부대 조건 없이 건축허가가 나기도 했습니다.

감사원은 부산과 울산, 경남 창원에서 침수방지시설 설치 조건 없이 건축 허가를 낸 사례168건 적발됐다고 밝혔습니다.

'침수위험지구'로 지정됐더라면 물막이판 등을 세웠어야 할 곳들인데, 결과적으로 안전 시설이 누락된 겁니다. 이 지역에는 큰비가 내리면 언제든 침수 피해가 날 수 있습니다.

일부 지자체들은 '재해위험지구' 개선사업 우선순위도 규정에 맞지 않게 주관적으로 운영해 온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침수 등 재해가 나면 인명·재산 피해가 가장 클 것으로 보이는 곳부터 최우선적으로 정비 순위에 넣어야 하지만, 이를 객관적인 조사 없이 주관적으로 정했다는 의미입니다.

감사원은 행안부에 관련 업무를 철저히 하라고 '주의'를 요구했고, 행안부는 감사 결과를 토대로 지자체의 지구 지정 때 침수 예상지역이 잘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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