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손해 명백해도, “내가 봤소”하게 되는 마음…영화 ‘올빼미’ [씨네마진국]

입력 2023.06.11 (08:03) 수정 2023.06.11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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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올빼미’의 주인공인 침술사 ‘경수’. 제공 NEW.영화 ‘올빼미’의 주인공인 침술사 ‘경수’. 제공 NEW.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주인공 경수는 밤에만 앞을 보는 맹인 침술사다. 어둠 속에서만 희미하게 사물이 분간되는 ‘주맹증’ 탓이다. 궁궐 내의원 소속인 경수에게 이는 장점이다. 주상전하의 총애를 받는 후궁도 그 앞에서는 편하게 옷을 벗고 진료를 청한다. 어차피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해야 하는 권력의 처소에서 경수는 비밀을 간직한 채 승승장구한다. 얼른 돈 벌어 돌아가기로 한 동생과의 약속도 금방 지킬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느 밤, 정말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기 전까지는.

지난해 개봉해 3백만 명 넘는 흥행 성적을 올린 영화 <올빼미>는 조선의 16대 왕 인조가 아들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돼 있다는 소현세자 독살설에 바탕을 둔다. 사망 당시 “온몸이 검은빛”이었고, “이목구비 일곱 구멍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는 스무 살의 소현세자.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사람 같았다고 묘사한 실록의 기록은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 수많은 음모론과 창작물의 씨앗이 됐다.

영화 ‘올빼미’ 속 인조(왼쪽)와 소현세자(오른쪽 )의 모습. 제공 NEW.영화 ‘올빼미’ 속 인조(왼쪽)와 소현세자(오른쪽 )의 모습. 제공 NEW.

그만큼 싫증 나기 쉬운 소재지만, 감독은 유일한 목격자가 맹인이라는 설정과 속도감 있는 전개로 극의 긴장을 유지한다. 세자의 독살은 이야기의 시작일 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이 이어지며 관객을 지루할 틈 없이 몰고 간다. 아들에 대한 최소한의 부정(父情)은 남아있는 듯하면서도, 청나라가 안긴 굴욕을 잊지 못하고 불신과 아집으로 미쳐가는 인조를 선보이는 유해진의 신들린 연기와 이에 밀리지 않는 류준열의 내공도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지나치게 장르영화의 쾌감에 집중한 결말만이 개인적으로 꼽는 유일한 단점이다.

현실을 생각하면 감독의 선택도 이해가 간다. 영화 속에서만이라도 통쾌한 결말을 관객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최근 불법 체류 신분이 드러나는 걸 감수하고 IS(이슬람국가) 추종자를 신고했지만,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여성의 사연이 언론에 알려졌다. 법원은 돌아가면 보복당할 거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제보를 받았던 수사기관은 특별 기여자로 체류 자격을 바꾸는 데 필요한 기관장 추천을 해 주지 않았다. ‘긍정 검토’가 필요하다는 공문을 경찰이 출입국사무소에 보냈을 뿐이다. 남편과 두 아이까지 추방될 판이라니, 가만히 있었을 때보다 못한 처지에 놓인 셈이다. 이래서는 비슷한 상황에서 누가 용기를 내겠느냐던 댓글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한편, 영화 속에서 경수는 완벽한 선인이 아니다. 집에 남은 동생을 향한 선의의 거짓말뿐만 아니라, 제 목숨을 구하려 타협을 서슴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라는 간청에 소경이 보았다고 하면 누가 믿겠느냐, 미천한 자신이 입을 연다고 달라질 게 있느냐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두 번의 순간 경수는 마음을 바꾼다. 남의 불행을 함께 아파하는 측은지심이 첫 선택을 불렀다면, 마지막 순간의 결단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더 잃을 게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감독의 연출은 다른 답을 들려준다. 곳곳에 심어 놓은 권력과 진실에 대한 상징 외에도, 본 것을 못 본 척할 수 없고, 사실 아닌 것을 사실이라 할 수는 없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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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3-06-11 08:03:03
    • 수정2023-06-11 08:11:07
    씨네마진국
영화 ‘올빼미’의 주인공인 침술사 ‘경수’. 제공 NEW.
※일요일 아침, 그 주의 시사 이슈와 관련된 영화를 소개합니다. 영화 내용이 포함돼 있습니다.

주인공 경수는 밤에만 앞을 보는 맹인 침술사다. 어둠 속에서만 희미하게 사물이 분간되는 ‘주맹증’ 탓이다. 궁궐 내의원 소속인 경수에게 이는 장점이다. 주상전하의 총애를 받는 후궁도 그 앞에서는 편하게 옷을 벗고 진료를 청한다. 어차피 보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들어도 못 들은 척, 봐도 못 본 척해야 하는 권력의 처소에서 경수는 비밀을 간직한 채 승승장구한다. 얼른 돈 벌어 돌아가기로 한 동생과의 약속도 금방 지킬 수 있을 것만 같다. 어느 밤, 정말로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기 전까지는.

지난해 개봉해 3백만 명 넘는 흥행 성적을 올린 영화 <올빼미>는 조선의 16대 왕 인조가 아들 소현세자의 죽음과 관련돼 있다는 소현세자 독살설에 바탕을 둔다. 사망 당시 “온몸이 검은빛”이었고, “이목구비 일곱 구멍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는 스무 살의 소현세자. 마치 약물에 중독돼 죽은 사람 같았다고 묘사한 실록의 기록은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 수많은 음모론과 창작물의 씨앗이 됐다.

영화 ‘올빼미’ 속 인조(왼쪽)와 소현세자(오른쪽 )의 모습. 제공 NEW.
그만큼 싫증 나기 쉬운 소재지만, 감독은 유일한 목격자가 맹인이라는 설정과 속도감 있는 전개로 극의 긴장을 유지한다. 세자의 독살은 이야기의 시작일 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이 이어지며 관객을 지루할 틈 없이 몰고 간다. 아들에 대한 최소한의 부정(父情)은 남아있는 듯하면서도, 청나라가 안긴 굴욕을 잊지 못하고 불신과 아집으로 미쳐가는 인조를 선보이는 유해진의 신들린 연기와 이에 밀리지 않는 류준열의 내공도 영화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지나치게 장르영화의 쾌감에 집중한 결말만이 개인적으로 꼽는 유일한 단점이다.

현실을 생각하면 감독의 선택도 이해가 간다. 영화 속에서만이라도 통쾌한 결말을 관객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최근 불법 체류 신분이 드러나는 걸 감수하고 IS(이슬람국가) 추종자를 신고했지만,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 여성의 사연이 언론에 알려졌다. 법원은 돌아가면 보복당할 거란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제보를 받았던 수사기관은 특별 기여자로 체류 자격을 바꾸는 데 필요한 기관장 추천을 해 주지 않았다. ‘긍정 검토’가 필요하다는 공문을 경찰이 출입국사무소에 보냈을 뿐이다. 남편과 두 아이까지 추방될 판이라니, 가만히 있었을 때보다 못한 처지에 놓인 셈이다. 이래서는 비슷한 상황에서 누가 용기를 내겠느냐던 댓글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지 않을까.

한편, 영화 속에서 경수는 완벽한 선인이 아니다. 집에 남은 동생을 향한 선의의 거짓말뿐만 아니라, 제 목숨을 구하려 타협을 서슴지 않는다. 진실을 밝히라는 간청에 소경이 보았다고 하면 누가 믿겠느냐, 미천한 자신이 입을 연다고 달라질 게 있느냐 반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정적인 두 번의 순간 경수는 마음을 바꾼다. 남의 불행을 함께 아파하는 측은지심이 첫 선택을 불렀다면, 마지막 순간의 결단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더 잃을 게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있을 수 있겠지만, 감독의 연출은 다른 답을 들려준다. 곳곳에 심어 놓은 권력과 진실에 대한 상징 외에도, 본 것을 못 본 척할 수 없고, 사실 아닌 것을 사실이라 할 수는 없는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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