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연속 우박…출하 앞둔 평창 고랭지 배추 농가 ‘시름’

입력 2023.06.1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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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지난 주말, 강원도 평창군에는 토~일 이틀 연속 우박이 내렸습니다. 시설물 피해도 걱정이지만, 바깥에서 기르는 밭 작물, 과수 작물들은 더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출하를 앞두고 거의 다 자란 배추가 몽땅 망가진 농민들의 시름은 한층 더 깊었습니다.


■출하 열흘 남았는데…"가슴이 먹먹해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한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피해 농가는 "배추 상품성이 모두 없어졌다"며 "마을 일대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만났던 농가는 23,000 제곱미터 규모로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데, 성한 배추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근처 다른 배추밭들도 한결같이 잎에 구멍이 뚫리거나 찢어진 상태였습니다. 분지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형태의 마을인데, 마을 전체가 우박의 영향권에 들어 있었습니다.

우박 피해가 난 시점도 농민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출하를 열흘에서 보름 정도 남겨뒀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배추의 모습은 장을 보러 갔을 때 마주하는 봄배추의 모습과 비슷해야 정상인 겁니다. 농민들은 이 상태면 도매 시장에 출품할 수 없는 건 당연하고, 그나마 알고 지내는 김치 공장들에 연락이라도 해봐야 할 처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건비나 장비 대금 등을 치르면 오히려 손해가 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박 피해를 입은 직후라 아직 마음 정리를 못 했지만, 수확 자체를 포기하고 "갈아엎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한 농민은 "이렇게까지 초토화되기는 육십 평생 처음이고, 출하 직전에 이런 일을 겪으면 어느 농가나 가슴이 먹먹할 수밖에 없다"고 심경을 내비쳤습니다. 자식처럼 길러낸 작물을 파내야 하는 마음도 불편하지만, 농사가 곧 생업인 만큼 당장의 생계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6월 11일 촬영본. 어른 손톱 만한 우박이 밭에 떨어져 있는 모습. 이 얼음 알갱이에 밭작물 피해가 발생. 사진 출처=평창군6월 11일 촬영본. 어른 손톱 만한 우박이 밭에 떨어져 있는 모습. 이 얼음 알갱이에 밭작물 피해가 발생. 사진 출처=평창군

■'한 농가·두 농가' 아닌 마을 단위 피해…고추·양상추·사과·브로콜리도

피해를 입은 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우박이 내린 지역 전체가 비슷한 피해를 입은 모양이었습니다. 배추밭 근처에 있는 고추밭은 줄기 자체가 낫으로 베어낸 듯하게 잘려나가거나 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과도 작게 열린 열매를 젓가락으로 찔러놓은 듯한 상처가 가득했습니다. '멍이 들었다'는 표현을 한다고 합니다. 자라면서 사라지기보다, 찌그러진 채로 크게 돼 상품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렇듯 연이틀 내린 우박은 배추 뿐만 아니라 노지 재배 작물들에 직간접적인 피해를 줬습니다.

몸통 부분이 잘린 고추(왼쪽). 열매가 달리기 시작한 사과나무 피해 모습(오른쪽).몸통 부분이 잘린 고추(왼쪽). 열매가 달리기 시작한 사과나무 피해 모습(오른쪽).

고추 농사가 생업인 한 농민은 "잎이 조금 남아 있는 건 살아날 수 있긴 하지만, 대다수가 줄기부터 부러지고 잎도 다 잘려나갔다"며 "이러면 방법이 없다"고 호소합니다. 심은 지 20일밖에 안 됐는데 우박 피해를 입게 됐고, 최근 10년 사이 피해가 가장 크다고 얘기합니다.

■평창군 "우박 피해 5개 읍면, 80ha 추산"…강원도 곳곳에서 우박 피해 관측

피해가 워낙 넓은 범위에서 확인되다보니 현황 파악에도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이틀 연속 우박이 내린 데 이어, 6월 13일 현재 파악된 피해 규모는 평창군 방림면 등 5개 읍면 80ha에 이릅니다. 축구장 100개가 넘는 규모로 잠정 집계된 겁니다. 이 같은 피해는 평창 뿐만 아니라 강원 영서 지역을 중심으로, 화천군과 양구군·원주시에서도 발생했습니다. 앞으로 조사가 진행될수록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6월 12일 평창군 방림면 계촌2리 드론 촬영본. 화면상 보이는 밭작물 모두 가까이 가보면 우박 피해 흔적이 역력.6월 12일 평창군 방림면 계촌2리 드론 촬영본. 화면상 보이는 밭작물 모두 가까이 가보면 우박 피해 흔적이 역력.

■2년 전 '무름병' 이어 또 다시 악재…두 번 우는 농민

평창 배추 농가는 한 해 걸러 악재가 터지는 통에 마음이 더 좋지 않다고 합니다. 고랭지 배추로 이름난 평창에 대한 자부심도 있지만, 불과 2년 전에는 긴 장마로 인해 여름 배추에 '무름병' 등의 질병이 생겨 수확을 못 하고 파버려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다 길러냈다 싶었는데, 난데없이 우박을 맞으며, 봄배추를 또 다시 파낼 상황에 부닥친 겁니다.

평창군은 우선, 예비비 등 쓸 수 있는 예산을 투입해 농가에 작물 영양제나 농약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작물 생육에 피해를 입었지만, 살릴 수 있는 작물을 최대한 살릴 수 있게 돕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와 함께, 1차 피해 조사에 이어 이달 말까지 피해 규모와 정도 등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 농가에 대체 작목 식재 비용이나 종자 비용 등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또, 농가 피해 복구를 돕는 데 주력하면서, 농가에는 풍수해보험료를 80% 보조하고 있는 만큼 농가별 가입을 독려했습니다.

[연관 기사] 이틀 내리 우박에…쑥대밭된 고랭지 배추밭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97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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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틀 연속 우박…출하 앞둔 평창 고랭지 배추 농가 ‘시름’
    • 입력 2023-06-14 06: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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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강원도 평창군에는 토~일 이틀 연속 우박이 내렸습니다. 시설물 피해도 걱정이지만, 바깥에서 기르는 밭 작물, 과수 작물들은 더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특히, 출하를 앞두고 거의 다 자란 배추가 몽땅 망가진 농민들의 시름은 한층 더 깊었습니다.

■출하 열흘 남았는데…"가슴이 먹먹해요."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의 한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피해 농가는 "배추 상품성이 모두 없어졌다"며 "마을 일대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을 건넸습니다. 만났던 농가는 23,000 제곱미터 규모로 배추 농사를 짓고 있는데, 성한 배추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근처 다른 배추밭들도 한결같이 잎에 구멍이 뚫리거나 찢어진 상태였습니다. 분지처럼 산으로 둘러싸인 형태의 마을인데, 마을 전체가 우박의 영향권에 들어 있었습니다.

우박 피해가 난 시점도 농민들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출하를 열흘에서 보름 정도 남겨뒀다고 합니다. 사진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배추의 모습은 장을 보러 갔을 때 마주하는 봄배추의 모습과 비슷해야 정상인 겁니다. 농민들은 이 상태면 도매 시장에 출품할 수 없는 건 당연하고, 그나마 알고 지내는 김치 공장들에 연락이라도 해봐야 할 처지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인건비나 장비 대금 등을 치르면 오히려 손해가 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우박 피해를 입은 직후라 아직 마음 정리를 못 했지만, 수확 자체를 포기하고 "갈아엎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한 농민은 "이렇게까지 초토화되기는 육십 평생 처음이고, 출하 직전에 이런 일을 겪으면 어느 농가나 가슴이 먹먹할 수밖에 없다"고 심경을 내비쳤습니다. 자식처럼 길러낸 작물을 파내야 하는 마음도 불편하지만, 농사가 곧 생업인 만큼 당장의 생계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6월 11일 촬영본. 어른 손톱 만한 우박이 밭에 떨어져 있는 모습. 이 얼음 알갱이에 밭작물 피해가 발생. 사진 출처=평창군
■'한 농가·두 농가' 아닌 마을 단위 피해…고추·양상추·사과·브로콜리도

피해를 입은 건 한두 곳이 아니었습니다. 우박이 내린 지역 전체가 비슷한 피해를 입은 모양이었습니다. 배추밭 근처에 있는 고추밭은 줄기 자체가 낫으로 베어낸 듯하게 잘려나가거나 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과도 작게 열린 열매를 젓가락으로 찔러놓은 듯한 상처가 가득했습니다. '멍이 들었다'는 표현을 한다고 합니다. 자라면서 사라지기보다, 찌그러진 채로 크게 돼 상품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이렇듯 연이틀 내린 우박은 배추 뿐만 아니라 노지 재배 작물들에 직간접적인 피해를 줬습니다.

몸통 부분이 잘린 고추(왼쪽). 열매가 달리기 시작한 사과나무 피해 모습(오른쪽).
고추 농사가 생업인 한 농민은 "잎이 조금 남아 있는 건 살아날 수 있긴 하지만, 대다수가 줄기부터 부러지고 잎도 다 잘려나갔다"며 "이러면 방법이 없다"고 호소합니다. 심은 지 20일밖에 안 됐는데 우박 피해를 입게 됐고, 최근 10년 사이 피해가 가장 크다고 얘기합니다.

■평창군 "우박 피해 5개 읍면, 80ha 추산"…강원도 곳곳에서 우박 피해 관측

피해가 워낙 넓은 범위에서 확인되다보니 현황 파악에도 시간이 걸리고 있습니다. 이틀 연속 우박이 내린 데 이어, 6월 13일 현재 파악된 피해 규모는 평창군 방림면 등 5개 읍면 80ha에 이릅니다. 축구장 100개가 넘는 규모로 잠정 집계된 겁니다. 이 같은 피해는 평창 뿐만 아니라 강원 영서 지역을 중심으로, 화천군과 양구군·원주시에서도 발생했습니다. 앞으로 조사가 진행될수록 피해 규모는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습니다.

6월 12일 평창군 방림면 계촌2리 드론 촬영본. 화면상 보이는 밭작물 모두 가까이 가보면 우박 피해 흔적이 역력.
■2년 전 '무름병' 이어 또 다시 악재…두 번 우는 농민

평창 배추 농가는 한 해 걸러 악재가 터지는 통에 마음이 더 좋지 않다고 합니다. 고랭지 배추로 이름난 평창에 대한 자부심도 있지만, 불과 2년 전에는 긴 장마로 인해 여름 배추에 '무름병' 등의 질병이 생겨 수확을 못 하고 파버려야 했습니다. 이번에는 다 길러냈다 싶었는데, 난데없이 우박을 맞으며, 봄배추를 또 다시 파낼 상황에 부닥친 겁니다.

평창군은 우선, 예비비 등 쓸 수 있는 예산을 투입해 농가에 작물 영양제나 농약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작물 생육에 피해를 입었지만, 살릴 수 있는 작물을 최대한 살릴 수 있게 돕겠다는 취지입니다. 이와 함께, 1차 피해 조사에 이어 이달 말까지 피해 규모와 정도 등에 대한 조사를 마친 뒤 농가에 대체 작목 식재 비용이나 종자 비용 등을 지원할 계획입니다. 또, 농가 피해 복구를 돕는 데 주력하면서, 농가에는 풍수해보험료를 80% 보조하고 있는 만큼 농가별 가입을 독려했습니다.

[연관 기사] 이틀 내리 우박에…쑥대밭된 고랭지 배추밭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7697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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