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프로’가 과연 IT업계의 비전인가? [비전프로③]

입력 2023.06.17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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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광대뼈를 누른다

'비전 프로'는 애플의 CEO 팀 쿡이 모처럼 'One more thing'을 외치며 공개한 야심작입니다. 하지만 찬반 양론이 뜨겁습니다. 공개 직후 비싼 가격과 실용성에 대한 의문에 내렸던 애플의 주가는 다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

여전히 무겁고, 광대뼈가 눌리고, 고글 형태라서 화장과 머리 모양을 망칠 수 있다는 우려부터 손끝이나 눈을 추적하는 방식의 VR 장치는 새로운 기술은 아니라는 지적까지, 다양한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애플의 과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이번에도 또?

에어팟이 처음 등장했던 시절을 생각해봅시다. 다른 이어폰보다 비싼 가격뿐 아니라 디자인에 대해서도 '귀에 담배를 꽂아놓은 거 같다'거나 '콩나물 같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애플 워치가 등장했을 때는 '휴대폰 나오면서 안 쓰게 된 시계를 누가 다시 차나'거나 '매일 충전하는 시계는 필요 없다'라는 여론이 강했습니다.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는 '아예 장판처럼 크게 만들어서 또 팔겠다'라는 비아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제품들은 모두 성공을 거두었고, 안드로이드 진영도 애플과 비슷한 길을 갔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우선, 무엇을 만들어도 어느 정도 사주는 충성스런 소비자 때문입니다. 이런 소비는 애플 디자인에 대한 감성적 선호, 완성도 높은 제품에 대한 기대감, 다양한 앱을 쓸 수 있는 애플의 앱스토어 생태계에 대한 신뢰에 힘입은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글꼴을 강조했던 것처럼 애플은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민감합니다. 존재했던 기술을 이용하더라도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인 제품을 출시해왔습니다. 이런 제품들이 앱스토어의 '킬러 앱'과 결합해 결국 대세가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점 논란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착용자의 눈이 보이는 애플 비전 프로. 반투명 유리를 쓴 것이 아니라 내부의 눈을 촬영해서 외부 올레드 화면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사진: 애플)착용자의 눈이 보이는 애플 비전 프로. 반투명 유리를 쓴 것이 아니라 내부의 눈을 촬영해서 외부 올레드 화면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사진: 애플)

■ 섬세함은 끝판왕…문제는 앱

글로벌 IT 기업에서 UX 디자이너로 일했던 강수진 이화여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정말 좋은 부분은 상대방이 내 눈을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구현한 섬세함의 끝판왕"이란 설명입니다.

애플은 이를 위해서 비전 프로의 안쪽 카메라로 착용자의 눈을 촬영해서 바깥쪽의 플렉서블 올레드 화면에 착용자의 눈을 보여줍니다. 어찌 보면 필수적 기능이라기보다, 감성적인 영역이지만 기능 구현에 돈을 투자한 것입니다. 비전 프로는 기존 보급형 VR 장비보다 10배 비싼 450만 원이라는 가격표를 달고 있습니다. 부품이나 개발에 들어간 비용이 그만큼 비싸다는 뜻인데, 기존 제품과 세부적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은 거의 한계치까지 비용을 투입했다는 뜻입니다.

비전 프로의 고글 속에는 마이크로 올레드 디스플레이와 이를 확대해 보기 위한 렌즈들, CPU 등 부품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이 때문에 선글라스처럼 크기를 축소하기 어렵다. (사진: 애플)비전 프로의 고글 속에는 마이크로 올레드 디스플레이와 이를 확대해 보기 위한 렌즈들, CPU 등 부품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이 때문에 선글라스처럼 크기를 축소하기 어렵다. (사진: 애플)

고글이 아니라 선글라스처럼 디자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로 올레드 디스플레이와 렌즈, CPU 등 핵심 부품을 넣을 공간을 생각해보면 비전 프로 같은 고성능 MR장비를 선글라스처럼 가벼운 물건으로 만들어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면 남는 문제는 이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앱들입니다. 애플이 정식 발매 7개월여 전에 제품을 공개한 건 매우 이례적입니다. 제작사들을 상대로 앱 개발에 나서달라는 메시지입니다(WWDC 자체가 개발자 총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VR/AR계의 분위기는 기세가 한풀 꺾여있습니다. 이미 지난 10년간 수많은 업체가 뛰어들고 페이스북은 회사 이름을 메타버스에서 따온 '메타'로 바꾸었지만 뾰족한 성과는 못 내고 있습니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 조사에서도 AR 판매량은 좋게 말해도 정체돼 있고, VR 판매량은 눈에 띄게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3D나 AR 관련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들도 이런 분위기에 주눅이 든 상태였습니다. 애플이 비전 프로 공개를 서두른 한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팀 쿡은 이 장비를 'AR 플랫폼'이라고 불렀습니다. 국내에서는 'MR 헤드셋'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VR/AR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용어가 많습니다. 완전한 가상 공간을 보여주는 것을 VR, 투명 또는 반투명 안경을 통해서 현실 위에 가상을 넣어 보여주는 것을 AR, 촬영된 현실의 모습에 가상을 섞는 것을 MR, 이 셋을 포괄하는 것을 XR이라고 부르는게 국내 업계의 용어 사용법입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냥 VR과 AR로만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AR은 MR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MR이 기존의 AR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제품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 삼성의 대응은?

삼성전자는 지난 2월 구글, 퀄컴과 협력해서 XR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선언습니다. 그 형태는 결국 '비전 프로'와 같은 MR장비일 가능성이 큽니다. 구글이 OS를 개발하고 퀄컴이 전용 칩을 설계한다면 마이크로 올레드와 메모리반도체 등 다른 부품 생산과 전체 조립은 삼성이 맡을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은 'XR 폼팩터'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결국은 과거 갤럭시기어보다 발전된 형태의 MR 장비를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삼성이 최근 2,900억 원을 들여 마이크로 올레드 관련 회사인 미국의 이매진을 인수한 것도 관련이 있는 행보로 풀이됩니다. 스마트폰용 올레드처럼 직접 사용도 하고 애플에 판매도 할 수 있습니다.

삼성 내부에서는 앞으로의 XR 시장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모습입니다. 이미 여러 업체가 많은 실패를 거둔 시장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업계 관계자는 "안드로이드 진영 역시 애플 생태계의 시도에 맞서는 제품을 출시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습니다.

애플의 스마트 스피커 ‘홈팟’ 1세대 (출처: 애플)애플의 스마트 스피커 ‘홈팟’ 1세대 (출처: 애플)

애플도 늘 성공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5년 전 야심차게 공개한 스마트스피커 홈팟은 44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과 '시리'의 부족한 인공지능 성능 때문에 비판을 받았고 판매량도 많지 않았습니다. 일부 마니아 층만 아는 제품이 됐습니다.

애플의 '비전 프로'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요? 침체된 VR 시장을 넘어서, 둔화하는 스마트폰 업황으로 고민하는 IT 업계에 하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실제로 출시될 제품과 앱이 사용자들의 '보는 방식'을 어떻게 혁신할 수 있을 것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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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전 프로’가 과연 IT업계의 비전인가? [비전프로③]
    • 입력 2023-06-17 08: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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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전히 광대뼈를 누른다

'비전 프로'는 애플의 CEO 팀 쿡이 모처럼 'One more thing'을 외치며 공개한 야심작입니다. 하지만 찬반 양론이 뜨겁습니다. 공개 직후 비싼 가격과 실용성에 대한 의문에 내렸던 애플의 주가는 다시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습니다.

여전히 무겁고, 광대뼈가 눌리고, 고글 형태라서 화장과 머리 모양을 망칠 수 있다는 우려부터 손끝이나 눈을 추적하는 방식의 VR 장치는 새로운 기술은 아니라는 지적까지, 다양한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은 애플의 과거 때문입니다.

■ 하지만 이번에도 또?

에어팟이 처음 등장했던 시절을 생각해봅시다. 다른 이어폰보다 비싼 가격뿐 아니라 디자인에 대해서도 '귀에 담배를 꽂아놓은 거 같다'거나 '콩나물 같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애플 워치가 등장했을 때는 '휴대폰 나오면서 안 쓰게 된 시계를 누가 다시 차나'거나 '매일 충전하는 시계는 필요 없다'라는 여론이 강했습니다. 아이패드가 처음 나왔을 때는 '아예 장판처럼 크게 만들어서 또 팔겠다'라는 비아냥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 제품들은 모두 성공을 거두었고, 안드로이드 진영도 애플과 비슷한 길을 갔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우선, 무엇을 만들어도 어느 정도 사주는 충성스런 소비자 때문입니다. 이런 소비는 애플 디자인에 대한 감성적 선호, 완성도 높은 제품에 대한 기대감, 다양한 앱을 쓸 수 있는 애플의 앱스토어 생태계에 대한 신뢰에 힘입은 것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글꼴을 강조했던 것처럼 애플은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민감합니다. 존재했던 기술을 이용하더라도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인 제품을 출시해왔습니다. 이런 제품들이 앱스토어의 '킬러 앱'과 결합해 결국 대세가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독점 논란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착용자의 눈이 보이는 애플 비전 프로. 반투명 유리를 쓴 것이 아니라 내부의 눈을 촬영해서 외부 올레드 화면으로 표시하는 것이다. (사진: 애플)
■ 섬세함은 끝판왕…문제는 앱

글로벌 IT 기업에서 UX 디자이너로 일했던 강수진 이화여대 디자인학부 교수는 "정말 좋은 부분은 상대방이 내 눈을 볼 수 있게 만든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기 위해 구현한 섬세함의 끝판왕"이란 설명입니다.

애플은 이를 위해서 비전 프로의 안쪽 카메라로 착용자의 눈을 촬영해서 바깥쪽의 플렉서블 올레드 화면에 착용자의 눈을 보여줍니다. 어찌 보면 필수적 기능이라기보다, 감성적인 영역이지만 기능 구현에 돈을 투자한 것입니다. 비전 프로는 기존 보급형 VR 장비보다 10배 비싼 450만 원이라는 가격표를 달고 있습니다. 부품이나 개발에 들어간 비용이 그만큼 비싸다는 뜻인데, 기존 제품과 세부적인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부분은 거의 한계치까지 비용을 투입했다는 뜻입니다.

비전 프로의 고글 속에는 마이크로 올레드 디스플레이와 이를 확대해 보기 위한 렌즈들, CPU 등 부품이 빼곡하게 들어 있다. 이 때문에 선글라스처럼 크기를 축소하기 어렵다. (사진: 애플)
고글이 아니라 선글라스처럼 디자인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하지만 마이크로 올레드 디스플레이와 렌즈, CPU 등 핵심 부품을 넣을 공간을 생각해보면 비전 프로 같은 고성능 MR장비를 선글라스처럼 가벼운 물건으로 만들어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면 남는 문제는 이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앱들입니다. 애플이 정식 발매 7개월여 전에 제품을 공개한 건 매우 이례적입니다. 제작사들을 상대로 앱 개발에 나서달라는 메시지입니다(WWDC 자체가 개발자 총회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VR/AR계의 분위기는 기세가 한풀 꺾여있습니다. 이미 지난 10년간 수많은 업체가 뛰어들고 페이스북은 회사 이름을 메타버스에서 따온 '메타'로 바꾸었지만 뾰족한 성과는 못 내고 있습니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 조사에서도 AR 판매량은 좋게 말해도 정체돼 있고, VR 판매량은 눈에 띄게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3D나 AR 관련 앱을 개발하는 스타트업들도 이런 분위기에 주눅이 든 상태였습니다. 애플이 비전 프로 공개를 서두른 한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깐, 팀 쿡은 이 장비를 'AR 플랫폼'이라고 불렀습니다. 국내에서는 'MR 헤드셋'으로 부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VR/AR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용어가 많습니다. 완전한 가상 공간을 보여주는 것을 VR, 투명 또는 반투명 안경을 통해서 현실 위에 가상을 넣어 보여주는 것을 AR, 촬영된 현실의 모습에 가상을 섞는 것을 MR, 이 셋을 포괄하는 것을 XR이라고 부르는게 국내 업계의 용어 사용법입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그냥 VR과 AR로만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AR은 MR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MR이 기존의 AR과 다른 완전히 새로운 제품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 삼성의 대응은?

삼성전자는 지난 2월 구글, 퀄컴과 협력해서 XR플랫폼을 만들겠다고 선언습니다. 그 형태는 결국 '비전 프로'와 같은 MR장비일 가능성이 큽니다. 구글이 OS를 개발하고 퀄컴이 전용 칩을 설계한다면 마이크로 올레드와 메모리반도체 등 다른 부품 생산과 전체 조립은 삼성이 맡을 것으로 보입니다.

삼성은 'XR 폼팩터'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결국은 과거 갤럭시기어보다 발전된 형태의 MR 장비를 만들어낼 것으로 예상됩니다. 삼성이 최근 2,900억 원을 들여 마이크로 올레드 관련 회사인 미국의 이매진을 인수한 것도 관련이 있는 행보로 풀이됩니다. 스마트폰용 올레드처럼 직접 사용도 하고 애플에 판매도 할 수 있습니다.

삼성 내부에서는 앞으로의 XR 시장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모습입니다. 이미 여러 업체가 많은 실패를 거둔 시장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한 업계 관계자는 "안드로이드 진영 역시 애플 생태계의 시도에 맞서는 제품을 출시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습니다.

애플의 스마트 스피커 ‘홈팟’ 1세대 (출처: 애플)
애플도 늘 성공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5년 전 야심차게 공개한 스마트스피커 홈팟은 44만 원이라는 비싼 가격과 '시리'의 부족한 인공지능 성능 때문에 비판을 받았고 판매량도 많지 않았습니다. 일부 마니아 층만 아는 제품이 됐습니다.

애플의 '비전 프로'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요? 침체된 VR 시장을 넘어서, 둔화하는 스마트폰 업황으로 고민하는 IT 업계에 하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실제로 출시될 제품과 앱이 사용자들의 '보는 방식'을 어떻게 혁신할 수 있을 것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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