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혈주의는 없다…‘가치의 공유’가 있을 뿐 [창+]
입력 2023.06.20 (07:00)
수정 2023.06.20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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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6월 20일은 UN이 정한 세계난민의 날이다.
단일민족, 단일혈통. 우리는 흔히 한국 사회를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사회라고 얘기한다. 이런 사회에서 난민 논의는 불편하다. 전 셰계적으로는 모두 2590만명의 난민이 있다. 물론 이 가운데 우리나라로 들어와 정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1994년 우리나라에서 첫 난민 인정자가 나온 이후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은 모두 8만 4천 9백 여 명이다. 이 가운데 1300여 명만 난민 인정을 받았다. 난민 인정률 1.6%,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그런데도 난민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불편한 존재다. 내국인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굳이’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되도록 우리 사회에 가난한 타국인은 살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은 낮은 난민 인정률로 드러나 왔다.
이 시선으로 보면 독일은 특이한 나라다. 독일은 한 해 평균 난민 인정률이 20%가 넘는다. 지난 10년 동안 난민 927만여 명을 받아들였다.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가량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 나라가 이토록 이주민 수용에 관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독일을 찾았다.
■ 일하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확실한 사람들
베를린에서 상하수도 파이프관을 생산하고 건설하는 기업을 찾았다. 이 기업은 160명 가까운 직원들 가운데 4분의 1가량은 이주민으로 채용하고 있었다. 직원들 출신 국적은 다양했다. 폴란드인이 가장 많았고, 이외에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출신, 아프리카 출신 직원들까지 있었다.
이 기업은 모두 3년의 훈련 기간이 있다. 월급의 50~70% 가량 만을 지급하고 꾸준히 기술교육을 시킨다. 그리고 3년 이후에 정직원으로 채용한다. 현장을 가보니 육체 노동의 정도가 높아 보였다. 파이프관을 타설하고 중장비를 조종하는 등의 업무들이었다. 기업 대표는 솔직하게 말했다. 독일 내국인 가운데 이런 일에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다고. 독일 내국인, 그 가운데서도 젊은 사람 채용은 해마다 어려워지고 있기에 이민자와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은 대체로 성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가장 큰 강점은 그들은 의지가 강하고 “highly motivated” 되어있다고 말했다.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확실하다는 것. 기업주는 이런 덕목을 이주민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채용된 난민들은 기술도 배우고, 언어도 익히고, 월급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매우 만족해했다. 현지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기니인 출신 노동자는 이렇게 5년 정도 더 일하고 나면 영주권 신청 자격을 충족하기에, 반드시 영주권을 신청해서 독일 사회에 정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고된 육체 노동이나, 상대적으로 적은 월급은 큰 불만 사항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여기서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얘기했다.
■ 순혈주의는 없다.
정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베를린 주정부를 찾아가, 이민정책 담당관 카트리나씨를 만났다. 그녀는 이주민 포용은 독일 사회에 분명히 득이 된다고 말했다. 난민과 이민자들은 본국에서 다양한 기술을 익히고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인 만큼,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는 독일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단순 작업에만 이들 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와 엔지니어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고급 인력도 많이 필요한데,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그런 인력도 많다는 것이다. 그녀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모인 집단이 발전한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주민들은 더 혁신적이고 활기찬 생각을 독일 사회에 부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실용적인 관점’에서만 이 문제를 보는 것을 경계했다. 단순히 그들이 독일사회에 필요하니까 받아들인다는 관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독일 사회 관용의 나머지 근원은 무엇일까? 가난한 인류에 대한 호의이자, 인류애인가?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온 세상에서 난민과 이주민들이 독일로 많이 들어오면 ‘독일인의 정체성’ 흔들릴까봐 두렵지 않냐”고 말이다.
이 질문에 그녀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독일인의 정체성이 무엇일까요? 게르만의 피를 나눈 사람만이 독일인이라는 순혈주의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피와 혈통이 그 나라 구성원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느냐가 구성원을 규정하는 요소입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고, 존중하며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든다는 독일 사회의 가치. 그것을 공유하면 그들이 바로 독일인이라는 것이다.
■ 관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참으며 배우는 것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관용을 베푸는 것은 인간 본능은 아닙니다. 이건 적극적으로 배우고 연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은 본인 머릿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적극적으로 만나고 교류하고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편견은 무너지고 관용은 학습됩니다.” 그녀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관용적이거나 선하다고 믿지 않았다. 관용은 적극적으로 연습해서 습득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한꺼번에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지는 않지만, 수세대에 걸쳐서 조금씩 생각은 변화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순혈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한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발전하는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그녀의 확신에서 독일 사회 관용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 차례
독일에 머무는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망쳐 나와 정착한 이민자들을 따로 만나 인터뷰했다. 그들의 삶은 매우 안정적으로 보였다. 독일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을 물으면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기여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독일 아프가니스탄 협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먼 미래에 독일이 전쟁으로 고통받는다면, 그리고 그때 아프가니스탄이 잘 산다면, 독일인들에게 마음껏 우리나라에 와서 사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독일인들을 향해 두 팔 벌려 안아주며 이렇게 말할 껍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제가 우리가 도울 차례입니다.”
어떤 연유로든 독일 사회는 난민을 세금 도둑이라 칭하지 않았다. 난민이 많아지면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들에게선 지나친 연민도, 맹목적인 혐오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함께 살수록 더 발전할 것이라는 신념과 여유가 있었다. 물론 독일 사회에도 수많은 갈등과 이견이 있을 것이다. 편견과 질시로 난민들이 제발 그만 들어와 줬으면 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사회 다수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비교적 분명해 보였다. 같이 살자는 것. 같이 살면 더 좋아진다는 것. 독일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되묻게 된다.
우리가 직시해야할 난민 이야기, 오늘 저녁 [시사기획 창 '나의 난민 너의 난민', KBS1TV 20일(화) 저녁 10시].
단일민족, 단일혈통. 우리는 흔히 한국 사회를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사회라고 얘기한다. 이런 사회에서 난민 논의는 불편하다. 전 셰계적으로는 모두 2590만명의 난민이 있다. 물론 이 가운데 우리나라로 들어와 정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1994년 우리나라에서 첫 난민 인정자가 나온 이후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은 모두 8만 4천 9백 여 명이다. 이 가운데 1300여 명만 난민 인정을 받았다. 난민 인정률 1.6%,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그런데도 난민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불편한 존재다. 내국인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굳이’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되도록 우리 사회에 가난한 타국인은 살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은 낮은 난민 인정률로 드러나 왔다.
이 시선으로 보면 독일은 특이한 나라다. 독일은 한 해 평균 난민 인정률이 20%가 넘는다. 지난 10년 동안 난민 927만여 명을 받아들였다.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가량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 나라가 이토록 이주민 수용에 관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독일을 찾았다.
독일 난민 인정률
■ 일하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확실한 사람들
베를린에서 상하수도 파이프관을 생산하고 건설하는 기업을 찾았다. 이 기업은 160명 가까운 직원들 가운데 4분의 1가량은 이주민으로 채용하고 있었다. 직원들 출신 국적은 다양했다. 폴란드인이 가장 많았고, 이외에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출신, 아프리카 출신 직원들까지 있었다.
이 기업은 모두 3년의 훈련 기간이 있다. 월급의 50~70% 가량 만을 지급하고 꾸준히 기술교육을 시킨다. 그리고 3년 이후에 정직원으로 채용한다. 현장을 가보니 육체 노동의 정도가 높아 보였다. 파이프관을 타설하고 중장비를 조종하는 등의 업무들이었다. 기업 대표는 솔직하게 말했다. 독일 내국인 가운데 이런 일에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다고. 독일 내국인, 그 가운데서도 젊은 사람 채용은 해마다 어려워지고 있기에 이민자와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은 대체로 성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가장 큰 강점은 그들은 의지가 강하고 “highly motivated” 되어있다고 말했다.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확실하다는 것. 기업주는 이런 덕목을 이주민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일을 배우고 있는 기니 난민
채용된 난민들은 기술도 배우고, 언어도 익히고, 월급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매우 만족해했다. 현지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기니인 출신 노동자는 이렇게 5년 정도 더 일하고 나면 영주권 신청 자격을 충족하기에, 반드시 영주권을 신청해서 독일 사회에 정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고된 육체 노동이나, 상대적으로 적은 월급은 큰 불만 사항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여기서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얘기했다.
난민 채용 독일 기업 대표
■ 순혈주의는 없다.
베를린 주정부 이민정책 담당관 인터뷰
정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베를린 주정부를 찾아가, 이민정책 담당관 카트리나씨를 만났다. 그녀는 이주민 포용은 독일 사회에 분명히 득이 된다고 말했다. 난민과 이민자들은 본국에서 다양한 기술을 익히고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인 만큼,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는 독일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단순 작업에만 이들 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와 엔지니어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고급 인력도 많이 필요한데,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그런 인력도 많다는 것이다. 그녀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모인 집단이 발전한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주민들은 더 혁신적이고 활기찬 생각을 독일 사회에 부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실용적인 관점’에서만 이 문제를 보는 것을 경계했다. 단순히 그들이 독일사회에 필요하니까 받아들인다는 관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독일 사회 관용의 나머지 근원은 무엇일까? 가난한 인류에 대한 호의이자, 인류애인가?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온 세상에서 난민과 이주민들이 독일로 많이 들어오면 ‘독일인의 정체성’ 흔들릴까봐 두렵지 않냐”고 말이다.
이 질문에 그녀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독일인의 정체성이 무엇일까요? 게르만의 피를 나눈 사람만이 독일인이라는 순혈주의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피와 혈통이 그 나라 구성원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느냐가 구성원을 규정하는 요소입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고, 존중하며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든다는 독일 사회의 가치. 그것을 공유하면 그들이 바로 독일인이라는 것이다.
■ 관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참으며 배우는 것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관용을 베푸는 것은 인간 본능은 아닙니다. 이건 적극적으로 배우고 연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은 본인 머릿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적극적으로 만나고 교류하고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편견은 무너지고 관용은 학습됩니다.” 그녀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관용적이거나 선하다고 믿지 않았다. 관용은 적극적으로 연습해서 습득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한꺼번에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지는 않지만, 수세대에 걸쳐서 조금씩 생각은 변화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순혈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한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발전하는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그녀의 확신에서 독일 사회 관용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파티마씨 가족
■이제는 우리 차례
독일에 머무는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망쳐 나와 정착한 이민자들을 따로 만나 인터뷰했다. 그들의 삶은 매우 안정적으로 보였다. 독일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을 물으면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기여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독일 아프가니스탄 협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먼 미래에 독일이 전쟁으로 고통받는다면, 그리고 그때 아프가니스탄이 잘 산다면, 독일인들에게 마음껏 우리나라에 와서 사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독일인들을 향해 두 팔 벌려 안아주며 이렇게 말할 껍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제가 우리가 도울 차례입니다.”
어떤 연유로든 독일 사회는 난민을 세금 도둑이라 칭하지 않았다. 난민이 많아지면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들에게선 지나친 연민도, 맹목적인 혐오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함께 살수록 더 발전할 것이라는 신념과 여유가 있었다. 물론 독일 사회에도 수많은 갈등과 이견이 있을 것이다. 편견과 질시로 난민들이 제발 그만 들어와 줬으면 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사회 다수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비교적 분명해 보였다. 같이 살자는 것. 같이 살면 더 좋아진다는 것. 독일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되묻게 된다.
우리가 직시해야할 난민 이야기, 오늘 저녁 [시사기획 창 '나의 난민 너의 난민', KBS1TV 20일(화) 저녁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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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혈주의는 없다…‘가치의 공유’가 있을 뿐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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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3-06-20 07:00:46
- 수정2023-06-20 10:30:46
매년 6월 20일은 UN이 정한 세계난민의 날이다.
단일민족, 단일혈통. 우리는 흔히 한국 사회를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사회라고 얘기한다. 이런 사회에서 난민 논의는 불편하다. 전 셰계적으로는 모두 2590만명의 난민이 있다. 물론 이 가운데 우리나라로 들어와 정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1994년 우리나라에서 첫 난민 인정자가 나온 이후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은 모두 8만 4천 9백 여 명이다. 이 가운데 1300여 명만 난민 인정을 받았다. 난민 인정률 1.6%,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그런데도 난민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불편한 존재다. 내국인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굳이’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되도록 우리 사회에 가난한 타국인은 살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은 낮은 난민 인정률로 드러나 왔다.
이 시선으로 보면 독일은 특이한 나라다. 독일은 한 해 평균 난민 인정률이 20%가 넘는다. 지난 10년 동안 난민 927만여 명을 받아들였다.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가량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 나라가 이토록 이주민 수용에 관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독일을 찾았다.
■ 일하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확실한 사람들
베를린에서 상하수도 파이프관을 생산하고 건설하는 기업을 찾았다. 이 기업은 160명 가까운 직원들 가운데 4분의 1가량은 이주민으로 채용하고 있었다. 직원들 출신 국적은 다양했다. 폴란드인이 가장 많았고, 이외에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출신, 아프리카 출신 직원들까지 있었다.
이 기업은 모두 3년의 훈련 기간이 있다. 월급의 50~70% 가량 만을 지급하고 꾸준히 기술교육을 시킨다. 그리고 3년 이후에 정직원으로 채용한다. 현장을 가보니 육체 노동의 정도가 높아 보였다. 파이프관을 타설하고 중장비를 조종하는 등의 업무들이었다. 기업 대표는 솔직하게 말했다. 독일 내국인 가운데 이런 일에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다고. 독일 내국인, 그 가운데서도 젊은 사람 채용은 해마다 어려워지고 있기에 이민자와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은 대체로 성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가장 큰 강점은 그들은 의지가 강하고 “highly motivated” 되어있다고 말했다.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확실하다는 것. 기업주는 이런 덕목을 이주민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채용된 난민들은 기술도 배우고, 언어도 익히고, 월급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매우 만족해했다. 현지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기니인 출신 노동자는 이렇게 5년 정도 더 일하고 나면 영주권 신청 자격을 충족하기에, 반드시 영주권을 신청해서 독일 사회에 정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고된 육체 노동이나, 상대적으로 적은 월급은 큰 불만 사항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여기서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얘기했다.
■ 순혈주의는 없다.
정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베를린 주정부를 찾아가, 이민정책 담당관 카트리나씨를 만났다. 그녀는 이주민 포용은 독일 사회에 분명히 득이 된다고 말했다. 난민과 이민자들은 본국에서 다양한 기술을 익히고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인 만큼,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는 독일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단순 작업에만 이들 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와 엔지니어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고급 인력도 많이 필요한데,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그런 인력도 많다는 것이다. 그녀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모인 집단이 발전한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주민들은 더 혁신적이고 활기찬 생각을 독일 사회에 부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실용적인 관점’에서만 이 문제를 보는 것을 경계했다. 단순히 그들이 독일사회에 필요하니까 받아들인다는 관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독일 사회 관용의 나머지 근원은 무엇일까? 가난한 인류에 대한 호의이자, 인류애인가?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온 세상에서 난민과 이주민들이 독일로 많이 들어오면 ‘독일인의 정체성’ 흔들릴까봐 두렵지 않냐”고 말이다.
이 질문에 그녀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독일인의 정체성이 무엇일까요? 게르만의 피를 나눈 사람만이 독일인이라는 순혈주의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피와 혈통이 그 나라 구성원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느냐가 구성원을 규정하는 요소입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고, 존중하며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든다는 독일 사회의 가치. 그것을 공유하면 그들이 바로 독일인이라는 것이다.
■ 관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참으며 배우는 것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관용을 베푸는 것은 인간 본능은 아닙니다. 이건 적극적으로 배우고 연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은 본인 머릿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적극적으로 만나고 교류하고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편견은 무너지고 관용은 학습됩니다.” 그녀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관용적이거나 선하다고 믿지 않았다. 관용은 적극적으로 연습해서 습득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한꺼번에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지는 않지만, 수세대에 걸쳐서 조금씩 생각은 변화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순혈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한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발전하는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그녀의 확신에서 독일 사회 관용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 차례
독일에 머무는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망쳐 나와 정착한 이민자들을 따로 만나 인터뷰했다. 그들의 삶은 매우 안정적으로 보였다. 독일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을 물으면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기여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독일 아프가니스탄 협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먼 미래에 독일이 전쟁으로 고통받는다면, 그리고 그때 아프가니스탄이 잘 산다면, 독일인들에게 마음껏 우리나라에 와서 사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독일인들을 향해 두 팔 벌려 안아주며 이렇게 말할 껍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제가 우리가 도울 차례입니다.”
어떤 연유로든 독일 사회는 난민을 세금 도둑이라 칭하지 않았다. 난민이 많아지면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들에게선 지나친 연민도, 맹목적인 혐오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함께 살수록 더 발전할 것이라는 신념과 여유가 있었다. 물론 독일 사회에도 수많은 갈등과 이견이 있을 것이다. 편견과 질시로 난민들이 제발 그만 들어와 줬으면 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사회 다수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비교적 분명해 보였다. 같이 살자는 것. 같이 살면 더 좋아진다는 것. 독일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되묻게 된다.
우리가 직시해야할 난민 이야기, 오늘 저녁 [시사기획 창 '나의 난민 너의 난민', KBS1TV 20일(화) 저녁 10시].
단일민족, 단일혈통. 우리는 흔히 한국 사회를 단일민족으로 구성된 사회라고 얘기한다. 이런 사회에서 난민 논의는 불편하다. 전 셰계적으로는 모두 2590만명의 난민이 있다. 물론 이 가운데 우리나라로 들어와 정착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1994년 우리나라에서 첫 난민 인정자가 나온 이후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 난민 신청을 한 사람은 모두 8만 4천 9백 여 명이다. 이 가운데 1300여 명만 난민 인정을 받았다. 난민 인정률 1.6%,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 수준이다.
그런데도 난민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불편한 존재다. 내국인도 어려운 사람이 많은데, 왜 ‘굳이’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가? 되도록 우리 사회에 가난한 타국인은 살지 말아줬으면 하는 바람은 낮은 난민 인정률로 드러나 왔다.
이 시선으로 보면 독일은 특이한 나라다. 독일은 한 해 평균 난민 인정률이 20%가 넘는다. 지난 10년 동안 난민 927만여 명을 받아들였다. 우리나라 인구의 4분의 1가량을 받아들인 셈이다. 이 나라가 이토록 이주민 수용에 관대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많은 이유들이 있었다.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독일을 찾았다.
■ 일하고자 하는 동기 부여가 확실한 사람들
베를린에서 상하수도 파이프관을 생산하고 건설하는 기업을 찾았다. 이 기업은 160명 가까운 직원들 가운데 4분의 1가량은 이주민으로 채용하고 있었다. 직원들 출신 국적은 다양했다. 폴란드인이 가장 많았고, 이외에 시리아와 아프가니스탄 출신, 아프리카 출신 직원들까지 있었다.
이 기업은 모두 3년의 훈련 기간이 있다. 월급의 50~70% 가량 만을 지급하고 꾸준히 기술교육을 시킨다. 그리고 3년 이후에 정직원으로 채용한다. 현장을 가보니 육체 노동의 정도가 높아 보였다. 파이프관을 타설하고 중장비를 조종하는 등의 업무들이었다. 기업 대표는 솔직하게 말했다. 독일 내국인 가운데 이런 일에 선뜻 나서는 사람은 없다고. 독일 내국인, 그 가운데서도 젊은 사람 채용은 해마다 어려워지고 있기에 이민자와 난민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할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현장에서 일하는 이주민들은 대체로 성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가장 큰 강점은 그들은 의지가 강하고 “highly motivated” 되어있다고 말했다. 반드시 이 일을 해야 한다는 동기 부여가 확실하다는 것. 기업주는 이런 덕목을 이주민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채용된 난민들은 기술도 배우고, 언어도 익히고, 월급도 받을 수 있는 환경에 매우 만족해했다. 현지에서 만나 인터뷰를 한 기니인 출신 노동자는 이렇게 5년 정도 더 일하고 나면 영주권 신청 자격을 충족하기에, 반드시 영주권을 신청해서 독일 사회에 정착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게 고된 육체 노동이나, 상대적으로 적은 월급은 큰 불만 사항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는 여기서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얘기했다.
■ 순혈주의는 없다.
정부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베를린 주정부를 찾아가, 이민정책 담당관 카트리나씨를 만났다. 그녀는 이주민 포용은 독일 사회에 분명히 득이 된다고 말했다. 난민과 이민자들은 본국에서 다양한 기술을 익히고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들어오는 사람들인 만큼, 갈수록 고령화되고 있는 독일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단순 작업에만 이들 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의사와 엔지니어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고급 인력도 많이 필요한데, 이주 배경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그런 인력도 많다는 것이다. 그녀는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모인 집단이 발전한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주민들은 더 혁신적이고 활기찬 생각을 독일 사회에 부여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도 단순히 ‘실용적인 관점’에서만 이 문제를 보는 것을 경계했다. 단순히 그들이 독일사회에 필요하니까 받아들인다는 관점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 독일 사회 관용의 나머지 근원은 무엇일까? 가난한 인류에 대한 호의이자, 인류애인가?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온 세상에서 난민과 이주민들이 독일로 많이 들어오면 ‘독일인의 정체성’ 흔들릴까봐 두렵지 않냐”고 말이다.
이 질문에 그녀는 오히려 이렇게 반문했다. "독일인의 정체성이 무엇일까요? 게르만의 피를 나눈 사람만이 독일인이라는 순혈주의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피와 혈통이 그 나라 구성원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느냐가 구성원을 규정하는 요소입니다.” 상대를 인정하고, 포용하고, 존중하며 인간답게 사는 사회를 만든다는 독일 사회의 가치. 그것을 공유하면 그들이 바로 독일인이라는 것이다.
■ 관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참으며 배우는 것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관용을 베푸는 것은 인간 본능은 아닙니다. 이건 적극적으로 배우고 연습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생각은 본인 머릿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서로 적극적으로 만나고 교류하고 함께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편견은 무너지고 관용은 학습됩니다.” 그녀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관용적이거나 선하다고 믿지 않았다. 관용은 적극적으로 연습해서 습득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한꺼번에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지는 않지만, 수세대에 걸쳐서 조금씩 생각은 변화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순혈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족주의를 벗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변한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발전하는 더 나은 사회가 될 수 있다는 믿음. 그녀의 확신에서 독일 사회 관용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이제는 우리 차례
독일에 머무는 동안 아프가니스탄에서 도망쳐 나와 정착한 이민자들을 따로 만나 인터뷰했다. 그들의 삶은 매우 안정적으로 보였다. 독일 사회에 하고 싶은 말을 물으면 “고맙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기여하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독일 아프가니스탄 협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부디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만약 먼 미래에 독일이 전쟁으로 고통받는다면, 그리고 그때 아프가니스탄이 잘 산다면, 독일인들에게 마음껏 우리나라에 와서 사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독일인들을 향해 두 팔 벌려 안아주며 이렇게 말할 껍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제가 우리가 도울 차례입니다.”
어떤 연유로든 독일 사회는 난민을 세금 도둑이라 칭하지 않았다. 난민이 많아지면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그들에게선 지나친 연민도, 맹목적인 혐오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함께 살수록 더 발전할 것이라는 신념과 여유가 있었다. 물론 독일 사회에도 수많은 갈등과 이견이 있을 것이다. 편견과 질시로 난민들이 제발 그만 들어와 줬으면 하는 사람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독일 사회 다수가 추구하는 지향점은 비교적 분명해 보였다. 같이 살자는 것. 같이 살면 더 좋아진다는 것. 독일 사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되묻게 된다.
우리가 직시해야할 난민 이야기, 오늘 저녁 [시사기획 창 '나의 난민 너의 난민', KBS1TV 20일(화) 저녁 10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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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혜 기자 grace35@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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